종일토록 마이산을 바라보았네!

 

신광재 - 성수산(▲1059m) - 국도 30호선 - 마이산 - 강정골재

 

2011년 4월 17일

 

호남정맥 마이산 구간 동행기

산사랑방과 산거북이

 

 

 

 

 

[신광재에서 북쪽으로 고랭지 채소밭 갓길을 따라 오른다.]

 

 

진안읍내의 모텔에서 잠을 깬 것은 5시에 맞춰둔 휴대폰알람 때문이었다. 새벽 1시쯤에 잠시 눈을

떴지만 숙면을 취한 셈이다. 서둘러 씻고 짐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새벽에 진안읍내 산책을 할

작정이었다. 낯선 시골의 새벽 풍광은 오랫동안 멋진 추억이 될 것임을 믿기에......

 

 

하지만 웬걸, 5시 15분에 전화가 오고 이제막 장수 지나 10분이면 진안에 도착한다는 산사랑방님의

명랑한 음성...... 도대체 대구에서 몇 시에 출발했기에 이 꼭두새벽에 도착인지...... 하긴 6시 즈음

에 산행을 시작하자고 했으니......

 

 

 

 

 

[아침 햇살이 밀려드는 신광재. 중리 쪽 그늘에는 밤사이 두터웠던 서리가 하얗다.]

 

 

배낭을 메고 진안 시외버스정거장(터미날이라는 단어보다 역시 정거장이 어울리는 색깔이다.)에

가는데 등 뒤에서 택시가 경적을 울린다. 산사랑방님이 오늘 산행 날머리에 차를 주차하고 그새

대절택시로 내 숙소 인근에 도착한 것이다.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에 동행한 지 몇 달만의 만남.

 

 

 

 

산행구간 : 신광재(약700m 해발고도)~무명봉~헬기장~성수산(▲1059m)~710봉(헬기장)~밀고개재

~옆구실재~국도30호선~마이산(등산금지구간) 은수사~탑사~봉두봉~▲532m~강정골재

 

구간거리 [ 18.75 km GPS. 그러나 등로 따라 부착된 진안문화원 안내표지에

의하면 약 21킬로로 합산되는 구간 거리다. ]

 

      [지도는 정맥꾼들 즐겨쓰는 도면을 차용했고, 경로는 분홍색으로 덧칠하였다.]

 

 

 

 

[명산이 아니니, 이런 참나무 숲길은 정맥꾼들과 재배지 관련자들만 다니는 길일 듯하다.]

 

 

1. [홀로하는 1박여행]

 

여러가지 이동방법이 가능하기에 1주일 전부터 다양하게 궁리했다. 결국 전주까지는 고속버스

로 이동하여 진안읍으로 다시 이동하기로 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의 우등 고속버스는 쾌적했다.

부산에서 진안까지 가는 하루 한번의 시외버스는 정차하는 곳이 많아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진주

를 거쳐가도 진안행 버스는 부산서 출발한 바로 그 버스편 뿐이었다.

 

 

무안 진안 장수의 오지교통이 어디 그 이름 뿐이었을까...... 하지만, 잘 뚫린 길로 그곳은 더이

상 오지가 아니었다. 

 

 

 

 

[새로이 헬기장 공사를 마친 흔적. 고도 1000 미터 가까운 능선에도 초봄의 빛깔이 스미었다.] 

 

 

버스 안에서 전주의 두타행 전화를 받았다. 이틀전 산행과 이동, 그리고 접근에 관해 전화통화

를 하였던 것이  내가 근처로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준 것 같아 미안했지만 이렇게 원거리로

와서 아우에게 도 없이 왔다가버리는 무심함도 호형호제하는 산꾼의 의리가 아니다.

 

 

'두타! 명색이 山人으로 정맥종주를 따라나선 자가 산행지도를 챙기지 못했다네. 구간지도 좀 챙

줘......' '염려마세요 형님!' 이렇게 전갈을 나눈 지 얼마지 않아 전주터미널에서 두타행 부부를

만났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진안 막차가 10여분 후에 출발한다고 하니 서둘러 떠나야만했다.

 

 

 

[이른 아침의 이런 장면이야말로 정맥종주의 선물이다.] 

 

 

3시간 10분 걸린 부산-전주 버스 속에서나, 40분 걸린 전주-진안 버스 속에서나 내내 MP3로 음악

만 듣고 있었다. 잠을 청했지만 명료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생각의 긴장을 풀고 담배연기처럼 피

어오르는 생각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옛 여행들이 가물거렸다.

 

 

홀로 여행은 언제나 침묵의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생각들과 함께했다. 인연되었던 사람

 들 그 누구에게도 미움은 없었다. 오히려 아련한 그리움이나 후회스런 미안함 그리고 본의 아니게

주고 받았던 쓸쓸한 상처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떠오르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은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사이의 갈등을 털어내고 자신을 직면하는 침묵의 시

간과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홀로산행도 마찬가지지만.

 

 

 

[뜻밖에 멋진 산이니 꼭 한번 둘러보라고 권하신다. 장안산!...... 접근 거리도 짧다는데.....]

 

 

갈등이라...... 그렇지! 그것은 내 마음에 솟아난 미움의 뿔에 부딪히는 타인의 적대적 신음이다. 

젊었을 한때는 미워하는 습성에 젖어 산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미움의 늪인 줄은 몰랐

다. 다만 옳고 그름의 판단이 예리한 칼과 같아서 타인의 행동이 이기적이고 그르다고 생각되면 쉽

게 분노하였다. 모두 허튼 내 생각일 뿐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마이산-성수산은 그 위도가 남덕유산 - 거창 별유산 - 비슬산 - 경주 감은사지와  같지만

백두대간의 서편이고 이곳의 고도(1000 m)가 높아 겨우 호랑버들만 꽃을 피웠다.]

 

 

 

 

[신광재에서 오른 첫봉우리와 이곳 성수산 봉우리 사이의 고갯마루. 지도에는 양켠으로 고랭지 채소밭이다.]

  

 

진안가는 9시 15분 마지막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다시한번 승객들을 태워 거의 만원상태

였다. 내 옆에는 잠깐 망설이던 젊은 아가씨가 앉았다. 뽀얗고 갸름한 처자라는 인상이 힐끔 본

느낌이었다.

 

 

맨 뒷자리에서 취기에 젖어 휴대폰으로 친구의 의리를 과시하는 남도사투리가 연신 MP3 음률을

파괴하며 내 귀를 울리더니, 마침내 이 뽀얀 처자도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직장일을 쫑알거리기에

하염이 없다.  

 

 

내 귓 속의 바그너도 요란하게 울리고 갑자기 버스안이 너무 시끄러워진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주니 시골길 어둠이 끝도 없이 까맣게 깊다. 마치 어떤 소리도 다 흡인해버릴듯이...... 그

심연의 어둠 끝에 침묵이 있다. 진정한 침묵은 소리에 감정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입을 닫는 것과

침묵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이 어둠만큼 깊고 깊은 것이다.

 

 

나는 침묵이 좋다.

 

 

 

 

[성수산 향한 오름길. 무척 춥다. 기온 7도,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 체감은 한겨울이다. 점퍼를 꺼내입었다.]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진안읍내는 온통 회색빛 어둠이었다. 인터넷 로드뷰로 파악해둔 정류장 근처

식당은 다행이 여지껏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맘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말투처럼 쫄깃하고 진득한

콩나물국으로 늦은 식사를 하고 진안시장 앞 밤길을 걸었다.

 

 

시골의 밤은 인적조차 죄다 빨아들였다. 밤을 새우려는듯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마트의 불빛을 길잡이

삼아 식당 아줌마가 일러준 여관을 찾았다. 겨우 한개 남은 카운트 옆 방이지만 시끄럽지는 않을 것

이란 설득을 당하고 먼길을 달려온 하루의 여정을 좁은 방에 구겨넣었다. 담배내음 베인 방 침대에

달콤한 외로움이 말없이 반겨주었다.

 

 

 

 

[복지봉(▲1008m)까지 한겨울 모드로 진행하였다]

 

 

 

2. [다시 산행여정으로 돌아와서.......]

 

새벽에 방을 나서니 카운터에는 '죄송합니다. 방이 없습니다.'라는 매직펜으로 갈겨쓴 팻말이 걸

려 있었다. 신기하다. 세상에는 나처럼 낡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산사

랑방 형님은 대구에서 두시간도 안걸려 이곳 진안까지 도착했다고 한다. 새벽 공기를 뚫고, 진안을

굽어보는 마이산을 바라보며 들머리 신광재를 향해 택시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이윽고 비포장 임도길을 올라 고도 600 미터의 신광재에 도달하였다. 한동안 일손이 닿지 않은 듯한

드넓은 고랭지밭들이 하얀 서리를 미소처럼 머금고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은 아직 계절이 변하지 않

았다. 

 

 

 

 

[한무리의 정맥팀이 지나갔지만, 이후 마이산까지는 내내 우리 둘 뿐이었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홀로 완주하고 틈틈히 계절별 명산 산행도 즐기며, 충실한 직장생활, 화목

한 가정, 달리기 운동, 새로운 분야에 대한 꾸준한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는 산꾼형님은 내 삶의 귀

감이다.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다정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산인다운 자세를 흠모한다.

 

 

그래서 백두대간 몇 구간, 낙동정맥 몇 구간을 동행하여 우정을 나누고, 대간과 정맥을 홀로 수행

하기에는 여러가지로 여력이 없는 내 처지를 달래곤했다. 호남-금남정맥은 이번 구간에서 동행해

보자고 오래 전에 약속하였던 바다.  

  

 

 

 

[고도가 800m로 낮아지니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고 바람도 잦아들었으며 햇살이 따뜻했다.]

 

 

해발고도 1000 미터가 넘는 성수산을 넘기까지 날씨는 매우 찼다. 섭씨 7도를 보였으나 바람이 세

차 체감온도를 팍팍 떨어뜨렸다. 버티다가 결국 외투를 갈아입었지만 손과 귀가 시려웠다. 그러나

성수산을 넘고 고도가 낮아지니 사방이 온화하고 따뜻해졌다. 드디어 진달래가 반기기 시작한다.

 

 

 

 

[진달래꽃 맛은 반쯤 개화한 상태가 제일 맛있어! ...... 그래요??? 난 잘 모르겠던데......]

 

 

잔잔한 봉우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길은 마치 정맥꾼들만 다닌 것 같다. 봄 문턱에 피는 노루귀

를 볼 수 있을까 싶어도 보이는 것은 분홍과 흰색의 제비꽃들 뿐이었다. 진달래가 잎사귀를 내지 않

으니 여늬 활엽수들의 새순이 돋을 리 없다. 우리 동네의 파릇한 봄기운이 이곳에 이르기엔 아직도

참 멀었다.  

 

 

우리는 서로 보일락 말락할 정도로 적당히 떨어져 진행을 했다. 한참을 보이지 않다가도 작은 고개

를 넘으면 저만치에 뭔가를 들여다보는 님이 어른거린다. 뭔가를 짐짓 들여다보는 듯하지만 실은 

내 모습이 이제나 저제나 비치는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벌목지대의 조망.가지사이로 비치던 마이산이 제대로 보인다.]

  

 

사진찍는 답시고 온갖 용을 쓰고 진행하니 대체로 느린 걸음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산행을 시

작한지 7시간대에 이르자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형님은 원추리 새순을 찾아 보여주었다. 과

연 하얀 속살이 연두빛으로 물들어 오른 원추리 나물 빛깔 그대로다.

 

 

고사리도 딱 때를 만났다. 나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형님은 잘도 찾아낸다. 등로에 밟히는

것이 고사리랄 정도로 많았다. 나도 이곳 저곳에서 고사리 새순을 따보았다. 이전에 고사리 밭이

었지 싶을 정도로 많았다. 아쉽게도 원추리 나물이나 고사리 나물은 내가 좀 꺼리는 풀이다.^^

 

 

 

[길이 희미해져버린 벌목지대. 잠시 알바를 하였지만 푸른하늘, 진달래, 마이산 풍경에 여유롭기만하다.]

 

 

 

 

 

[조림한 진달래군락보다 훠얼씬 아름다운 우리네 옛 모습 그대로의 진달래]

 

 

 

 

 

[잔잔하게 오르내리는 봉우리 사면으로 반복되는 계절감]

 

 

 

 

 

[밀고개재 인근에서 바라본 마이봉]

 

개간이나 임도 혹은 재배지를 확보하기 위해 벌목이 군데군데 행해졌는데 정맥 마루금이 여지없

이 파헤쳐진 곳이 두어군데 있어서 리번들이 잘려진 나무더미 속에 그대로 쓸려버렸다. 밀고개재

라는 진안문화원의 표지(참 친절하고 소박한 표지였다.)도 속절없이 쓰레기가 되었다. 일부러 찾

아내어 흙먼지를 털고 부근 나무에 다시 매다는 산사랑방님.

 

 

 

[저게 암마이봉 아닐까? 천만에 직관이 틀렸어! 나중에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이 동봉이 수컷다운걸......] 

 

 

 

 

 

[정맥길 능선을 따르면 마이산 동봉, 이른바 숫마이봉의 동쪽 벽에 도달한다.]

 

 

 

 

 

[마이산 은수사]

 

 

 

 

 

[ 은수사 뒤로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의 협곡이 열려있다.]

 

 

 

 

 

[마이산 탑사]

 

 

은수사와 탑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마이산 봄꽃을 구경하러나온 상춘객들은 벚꽃

이 피질 않았다고 적잖이들 실망이다. 마이산 일주 등산코스가 잘 알려진 덕택인지 15킬로를 걸어

온 우리보다 더 중무장을 한 등산객들이 많았다.

 

 

마이산 탑사 온 지가 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거린다. 그때는 탑사 바로 위에 은수사가 있었는지

도 몰랐다. 마이산 서봉, 즉 암마이봉은 등로통제된 지 오래라 정맥길이 은수사 뜨락과 탑사 앞을

지나 동봉 자락으로 급히 올라가서 마루금을 이어가야한다.

 

 

 

 

 

[마이산 청소년 야영장과 호수]

 

 

절 앞 번잡한 가게에서 동동주 한 병과 파전, 그리고 설익은 어묵까지 더하여 허기를 달랬다. 취기

가 한 낮의 열기에 더해 급박하게 상승했다. 등로가 줄곧 내리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

이었다. 탑사 매점식당에서 봉두봉(▲540m)까지의 표고 편차는 140 미터가 넘었다. 이어지는 등로

가 주의구간이라고 엊저녁 그 짧은 시간에 두타행이 당부하듯 강조했었던 바다.

 

 

별 생각없이 마이산 순환등로를 따르다보면 ▲532 봉을 놓치기 쉽게 되어있다. 많은 표지판은 마

이산 도립공원내의 등로방향만 표시하고, 호남정맥 표지는 산꾼들의 리번으로만 펄럭일 뿐이다.

 

 

 

 

 

[▲532m봉 인근 능선에서 뒤돌아본 마이산, 사진 우측 먼 산이 오늘 출발한 첫 봉우리 성수산 (▲1059m)]

 

 

아침에는 남동쪽에서 마이산을 바라보고 걷고, 낮에는 동쪽에서 마이산을 바라보고 오후에는 서쪽

에서 마이산을 바라보며 긴 종주산행이 마감에 이르렀다. 새벽 안개호수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솟은

마이산 쌍봉을 촬영하는 행운은 수십번 마이산을 찾는 이들이나 가져야 할 것이고, 나는 이 장면으

로 만족해야한다.

 

 

다만 기나긴 발걸음 끝에서 뒤를 돌아본 모습인지라 사뭇 벅차다. 사람도 오랫동안 마주보아오다

마침내 바라본 뒷모습이 훨씬 더 감동적일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 봉우리 (▲532m) 에서 익산-포항 고속국도 내려보고, 건너편 부귀산을 가늠하며......]

 

 

마치 시멘트와 갖가지 암석과 돌로 다져만든 마이산의 암질이 그냥 솟은 것이 아니다. 인근의 암봉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탑사에서 강정골재 4.5킬로는 막판의 지루함이 야금야금 시간을 갉아먹는

것 같아 서둘러 진행했다. 진안 로타리에 두타행이 산행완료를 마중하러 나와있다. 먼길이지만 일부

러 전주에서 이곳까지 왔다.

 

 

산사랑방님의 차로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부산행 열차를 탔다. 부산까지는 45분. 일박이일의 긴 여정

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종착점 강정골재, 마루금의 흔적을 대신하여 시원스레 26번 국도가 가로 지른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