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4. 22일

                   *소재지  :전북 진안

                   *산높이  :685m

                   *산행코스:30번국도변 인공수정소-합미산성-광대봉-524.5봉-비룡대

                                   -봉두봉-탑사-암마이봉/숫마이봉 안부-북부주차장

                   *동행    :송백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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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아산을 다녀오고 나서 산에 드는 입산이 정상을 오르는 등산의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산 안에 내가 있음”은 우리 선조들이 견지한 입산의 자세라면 “내 안에 산이 있음”은 서양인들이 등산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복욕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저 역시 산속에 들어가 산 식구들과 이런 저런 묵언의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바라다보고 돌아오는 입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정상을 오르는 등산을 해야 직성이 풀려 군사기지가 들어선 몇 몇 산을 제외하고는 산행할 적마다 거의 다 정상을 빼놓지 않고 올랐습니다. 어쩌다 정상을 못 오르고 하산하게 되면 “**산 산행기”라고 산 이름을 표방하는 것이 낯간지럽고 민망해 산행기를 남기기가 뭣했습니다.  어제 두 번이나 다녀온 마이산을 또다시 찾은 것도 이번만은 반드시 정상을 오른 다음 제대로 된 명산100산 산행기를 남기고 싶어서였는데 4시간 남짓 걸어 다다른 암마이봉 바로 밑 안부에서 2014년까지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많이 허탈해 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에돌아 천천히 탑사로 내려오면서 오를 수 없는 마이산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자 어느새 허탈감은 사라졌고 대신에 저를 반겨 맞는 마이산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이 산도 정상에 올랐다면 산의 정수리를 밟는 들뜸에 붕 떠 발밑에서 힘들어하는 이 산의 진정한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이산의 생성비밀은 심하게 천연두를 앓은 아이의 얼굴처럼 바위표면 여기저기에 뚫려 있는 크고 작은 구멍들에 있습니다.

이렇게 바위표면 여기저기에 벌레 먹은 사과처럼 움푹움푹 구멍이 파여 있는 현상을 타포니(Tafoni, 풍화혈)라고 하는데 이러한 타포니는 입상붕괴라고 하는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다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제 만나본 마이산이 우리나라에서 타포니를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암봉입니다.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의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산의 자리 터는 거대한 담수호였으며 이 담수호에 굴러들어온 자갈들이 쌓여 역암이라는 퇴적암을 만들었고 이 퇴적암이 습곡운동으로 횡압력을 받아 융기해 거대한 암수 두 암봉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융기한 두 암봉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받아 모암에 박혀있던 자갈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 작은 구멍이 생겼고 이 구멍들도 세월의 등살에 못 이겨 그 크기를 늘려가 오늘날의 마이산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마이산의 복잡한 생성비밀을 밝혀낸 지리학자들보다 훨씬 앞서 나름대로 이 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이산에 얽어 엮어낸 전설과 설화입니다. 아득한 옛날에 신선부부가 두 자식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위산이 되었다는 간단한 전설에서 퇴적암의 융기를 신선의 등천으로 패러디하면서도 하늘나라에 오르지 않고 바위산으로 머무르는 것으로 끝맺음한 것에서 비경의 마이산을 하늘나라로 알고 그냥 이 곳에서 머물러 살겠다는 조상들의 절제된 지혜를 읽었습니다..


 

  아침 10시40분 30번국도 변 인공수정소 맞은편의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거의 두 달 만에 함께하는 송백산악회원들과의 산행이어서 뵙고 싶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단골멤버 몇 분들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지난겨울 주흘산을 함께 산행했던 동년배 한 분과 자리를 같이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어 3시간 반의 버스길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렸다가 금남호남정맥 종주 길에 마이산을 들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산림청에서 100산의 하나로 선정한 명산을 목적지로 오르지 않고 경유지로 들르는 것이 예가 아닌 것 같아 눈 딱 감고 송백산악회의 산행에 합류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땅바닥이 촉촉했습니다. 연초록 나뭇잎들이 가지 끝에서 파릇파릇 돋아나고 조팝나무가 하얗게 활짝 웃어 합미산성터로 향하는 오름길이 상쾌했습니다. 산성의 굄돌로 쓰였을 돌들이 깔려있는 산길을 지나 그리 넓지 않은 공터에 다다르자 먼발치로 이름모르는 암벽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 번째 암봉을 오른쪽 난간 길로 우회한 다음 연초록 낙엽송과 진초록 잣나무 밭을 지났습니다. 두 번째 난간 길로 암릉을 올라 다다른 495봉에서 수박파티가 열려 철 이른 수박 두 조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얻어먹는 입이 아무리 즐겁기로서니 등짐지고 올라와 회원들에 베푸는 주인분의 가슴 뿌듯함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기에 다음 산행에도 혹시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12시1분 해발 609미터의 광대봉에 올라섰습니다.

495봉에서 편안한 솔밭 길을 지나 오른 쪽 아래로 고금당으로 갈리는 삼거리 안부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왼쪽으로 태자굴로 가는 길이 나있는 능선 갈림길에서 직진해 철제 난간을 잡고 가파른 암릉길을 올라 삼각점과 표지석이 서있는 광대봉에 다다르자 외줄 하산 길로 내려서는 산객들이 대기하고 있어 넓지 않은 광대봉 정상이 엄청 붐볐습니다. 정면으로 마이산의 암수 두 암봉이 눈에 들어오는 와 반가웠습니다. 줄을 서서 하산을 기다리는 중 나이든 남정네들 몇 사람이 새치기니 아니니 하며 서로 목청을 높이는 통에 시끄러웠는데 이번에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는 제게 이리해라 저리해라 하며 눈치 없이 시시콜콜 코치를 해대는 또 다른 남정네의 과잉친절로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외줄 병목 길을 내려가느라 20여분이 지체되어 남은 길을 서둘러 가다가 장거리산행을 처음 해본다는 여성분을 만나 속도를 줄였습니다. 봉우리 몇 개를 지나 삼각점이 박혀있는 고금당 바로 위의 524.5봉에 올라 오른 쪽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저와 함께 맨 뒤에서 걷던 앞의 여성분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다친 데는 없었으나 다리에 쥐가 나 결국에는 눈앞의 비룡대를 오르지 못하고 남편 분과 함께 안부삼거리에서 오른 쪽 아래 남부터미널로 하산했는데 후미를 맡았으면서도  끝까지 동행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14시12분 해발527미터의 나봉암에 올라 2층 전망대인 비룡대에 올랐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암릉길을 올라 저희 후미팀을 고금당에서 기다리는 산악회 대장분과 통화하고 나서야 일행들이 점심 식사를 한 고금당을 들르지 않고 똑바로 524.5봉으로 올랐음을 알았습니다. 이미 오후1시 반이 지난 시각이어서 능선 길에 주저앉아 후미 한분과 함께 서둘러 점심을 든 후 비룡대로 내달렸습니다. 100개의 계단을 걸어 오른 비룡대에서 바라다본 마이봉은 암마이봉 꼭대기의 나무들의 가지가 보일 정도로 선명했습니다. 렌즈고장으로 수리를 맡겨 어렵게 나선 마이산 나들이를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끝내나보다 싶었는데 마침 후미를 같이 한 분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 나중에 카페에서 스크랩해가기로 했습니다. 오른쪽 부부시비로 내려서는 안부를 지나 제2쉼터에 다다라 잠시 쉬었습니다.


 

  15시4분 탑사로 내려섰습니다.

나무의자가 설치된 제2쉼터에 오르자 오리모양의 놀이배가 떠 있는 저수지 탑영제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이산의 움푹 파인 구멍들이 지난날의 모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면  아담한 규모의 탑영제 저수지에서 탑사로 이어지는 화사한 벚꽃 길은 현세의 넉넉함을 내보여주어 서로 대비됐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540미터의 봉두봉에서 왼쪽 안부로 내려가 암마이봉에 바짝 다가서자 진가민가 했던 등산로폐쇄 안내판이 서 있어 크게 낙담했습니다. 수직으로 200m정도만 고도를 높이면 암마이봉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탑사로 하산하면서 오를 수 없는 암마이봉을 힐끗힐끗 올려다보자  1억년 이상을 이 자리에 지켜선 마이산이 낙담하고 내려서는 저를 불러 세워 휭 하니 그냥 내려가지 말고 구멍이 많이 나 있는 자기 얼굴을 다시 보고 가라고 말을 건네 왔습니다. 억겁의 세월을 물속에서 품어온 자갈들을 지각변동의 대 혼란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뭍으로 끌고 올라와 애지중지 품어왔는데 공해에 찌든 이 땅에서 호흡하기 힘들어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겠다며 자기 품을 떠나는 것이 안쓰럽고 서운하다는 마이산이 앞으로도 계속해 그렇게 떠나보낼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서 피한방울만 나도 온갖 난리를 떠는 데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싶었습니다. 탑사로 내려선 후 마이산의 고통을 얼마라도 덜어준 한 분이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퇴적암의 시대로 되돌아가겠다며 모암을 떼쳐 나온 자갈들을 다시 불러 모아 마이산 바로 아래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라는 분입니다. 떨어져나간 자갈들을 다시 붙이지는 못해도 주워 모아서 쉽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탑을 쌓은 이 처사님의 지극정성에 감동한 마이산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심하게 흔들릴망정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이 탑들을 보살펴왔을 것입니다.


 

  15시40분 북부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탑사에서 암수 두 봉 사이의 고개를 넘어 북부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도 비경이었습니다. 암수 마이산을 가르는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 본 돌탑들이 압권이었고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 대신에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적광전과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무량수전이 들어선 은수사에도 눈이 갔습니다. 다만 자갈이 떨어져 나가 움푹 파인 구멍 안에 촛불을 밝히며 산신령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살점이 떨어져나가 아파하는 마이산에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기꺼이 산 이름을 내걸고 산행기를 쓴 것은 정상을 오르는 등산만 산행이 아니고 산 속에 발을 들여 정상을 바라다보고 오는 입산도 산행이 분명함을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전처럼 암마이산은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안고 떠난 산 나들이라서 등산로폐쇄공고문을 보고나자 얼마고 실망했지만, 마이산과 그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나누었다는 생각에서 귀경 길은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모암에서 떨어져나가는 자갈들을 주워 모아 탑을 쌓는 이 처사님의 후예들이 남아있는 한 우리의 마이산이 자갈들처럼 예라 모르겠다하며 백악기로 되돌아가겠다고 진안 땅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그래서 안심하고 잠실에서 하차하여 몇 분들과 자리를 같이하며 알콜 결핍증을 해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