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공룡능선 화채능선 산행기

공룡능선

혼자서

(1981.6.11 - 6.14)

 

'장비를 갖춘 전문가들만이 갈 수 있는 곳'

1970년대 산악잡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단 한 명의 등산객도 만날 수 없었던 고독한 산행, 트래버스, 하강...

 

 

1981년 6월 11일(목)

 

울산-원주

울산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원주로 갔다. 차창밖으로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1981년 6월 12일(금)

 

원주-춘천-소양댐-인제-원통-용대리-백담사-수렴동 대피소

원주역에 새벽에 내려 춘천 가는 버스를 탔다.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인제로 갔다.

광치고개를 넘어가는 험난한 비포장 산악도로, 온통 절벽, 엄청 겁났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비포장 도로 걸어 들어가다 운 좋게 승용차를 만나 타고 들어갔다.

수렴동 대피소 문 입구에 쪽지 한 장 적어 놓고 관리인은 내려가 버려 아무도 없다.

저녁을 해 먹고 앉으니 어둠이 내린다.

시커먼 대피소,

혼자서,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적막감 속에 대피소 앞을 흐르는 개울소리가 무섭다. 천둥소리 같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무인 대피소 안 어둠속에서

소주 한 병 마시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무섭다.

시커먼 대피소 문을 숟가락으로 걸어 잠그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칼을 옆에 두고 누웠다.

이 칼로 어쩌잔 말인가?

잠이 안 온다.

무섭다.

정말...

 

6월 13일 (토)

 

수렴동 대피소-구곡담계곡-대청-희운각 직등코스-공룡능선 옛길-마등령-설악동

아침 일찍 일어나 밥 해 먹고 구곡담계곡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

한참 올라가다 한 사람을 만났다.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가기 전에 설악을 오르고 싶어서 왔단다.

함께 오르며 찍은 사진을 나중에 보내 주니 고맙다고 답장이 왔다.

 

대청에서 희운각 직등코스를 탔다.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70년대 동계등반시 이코스를 택해 올랐었다.

오르면 좌측으로 죽음의 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동계등반시 서북풍에 몸이 죽음의 계곡쪽으로 날아갈 것 같은 능선이다.

 

무너미고개에서 신선대(공룡능선옛길-공룡능선 들어서면서 오른쪽 암벽군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 지금은 줄을 쳐서 출입금지)로 오르면서 공룡능선은 시작된다. 신선대에서 암벽을 트래버스 해야 한다. 높지는 않지만 무거운 배낭을 지고 암벽에 붙었다.

암벽능선길을 계속 가다 1275봉을 지나니 50-60m 암벽 하강길이 나온다. 암벽장비를 준비해 오지 않았다.

비록 7-8년 암벽등반을 해왔지만 지금은 혼자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려간다.

(1275봉에서 내려가다 보면 우측, 지금은 위험 출입금지구역으로 되어 있는 곳으로 당시는 길이 분명치 않아 길을 잘못 들었음)

여기서 떨어지면 설악골로 바로 떨어져 아무도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내려와서 보니 이 절벽길을 우회하는 길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공룡능선 전체가 좁은 등로,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이다.

이정표, 고정로프등의 안전시설이 전혀 없는

몇개의 까마득한 봉우리를 기어 오르고 기어내린 끝에 드디어 마등령에 도착했다.

4시간 40분 걸렸다.

지나온 공룡능선의 암릉길이 대청봉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아무도 만나지 못한 공룡능선, 내가 이 길을 왔던가?

 

 

 

화채능선

 

6월 14일(일)

 

설악동-천불동계곡-대청-화채봉-칠선봉-집선봉-권금성-설악동

아침을 해 먹고 설악을 다시 오른다.

일요일이라 천불동계곡에서 대청봉까지 등산객들이 제법 있다.

어제 그 힘든 산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가볍다.

대청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 장쾌하다. 어제 저길 갔었지.

대청 아래로 보이는 희운각-대청 직등능선과 죽음의 계곡이 손짓한다.

이리로 내려오라고...

 

오늘은 화채능선을 탄다.

화채능선도 만만찮다.

대청봉에서 화채봉을 거쳐 권금성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

이 코스로 다니는 등산객이 거의 없다. 외국인을 포함해서 두 팀을 만났던 것 같다.

화채봉과 칠선봉을 거쳐 아래로 죽 내려가다가 소토왕골이 시작되는 계곡을 건너 다시 위로 올라가 집선봉에 이르게 된다.

지금은 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된 능선이지만 이 능선을 타게 되면 천불동계곡을 가운데 두고 공룡능선을 바라보고 갈 수 있다.

전망이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지금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공룡능선

암벽구간은 우회로가 다 생겼고 등로도 넓혀지고 고정로프와 발판도 생겨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안내산악회마다 설악산 공룡능선 간단다.

단풍시즌이나 주말이면 일부 구간에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던 1981년 그 때를 떠올리며 나도 밀려밀려서 공룡능선을 걸어간다.

 

 

 

아래의 사진들은

1970,80년대 찍은 사진을 넣어 두었던 박스를

몇번의 이사를 하다 박스채 잃어 버리고

필름을 겨우 찾아 인화한 것임

 

 

소양댐 유람선을 타고 양구에 내려 인제를 거쳐 용대리로 들어 갔다.

검문이 엄청 심하다.

중국집에 들어가 잡채밥을 시키니 큰 접시에 2인분이 될 정도로 많이 준다.

아마 군인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배 고플까봐 많이 주는 것 같다.

밖을 내다보니 온통 군인들,

 

백담사에서 수렴동계곡을 끼고 수렴동 대피소로 가는 길

지금의 대로와는 달리 당시에는 이처럼 좁았음

 

 

옛 수렴동 대피소(빌려온 사진)

시커먼 통나무 건물로 내부는 방 하나였음

 

 

수렴동 대피소 뒤 용아장성

여기도 가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했음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신선대 암벽군(공룡능선 옛길)

여기서 높지는 않지만 암벽을 트래버스 해야 했음

 

 

신선대에서 바라 본 공룡능선

 

다행히도 앨범속에 남아있는 사진

 

지금은 지도와 사진등 사전 정보를 다 알고 가지만

당시에는 공룡능선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등고선지도가 나오기 전이라 평면지도를 들고 갔다.

이정표도 없어 얼마나 더 가야 할지도 몰랐다.

가파른 암벽지대는 고정 로프도 없어 그냥 오르내렸고, 겨우 한 명 지나갈 정도의 등로는

길이 숲으로 가는지 절벽으로 가는지 헷갈리는 구간도 있었다.

 

 

 

50-60m 하강을 해야 했던 곳

1275봉에서 죽 내려와 우측 설악골로 떨어 지는 곳

그 전에 길이 분명치 않아 이 암벽 위가 루트인줄 알고 잘못 들어섰음

(그 당시 찍은 사진이 없어 이번에 찍은 사진으로 올림)

암벽장비를 가지고 가지 않아 맨손으로 하강을 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설악골로 떨어져 아무도 찾지 못할거라 생각하면서

암벽등반 7-8년한 나도 가슴 조이며 하강을 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마등령에서 내려오다 바라 본 공룡능선과 대청봉

 

 

공룡능선 개념도

1981년 6월 갔다온 직후에 작성한 것으로

지금 현재와는 다르니 그냥 보기만 하세요.

 

 

*

1970,80년대 초에 부산, 울산에서 설악산을 가려면

열차와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야 했다.

더군다나 내설악으로 들어가려면 하루 종일 걸렸다.

울산서 야간열차로 출발해야 다음날 저녁 백담사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

1970년대의 카메라와 사진 촬영

지금처럼 카메라 흔치 않아 산에 갈 때면 카메라점에서 카메라를 빌려갔다.

필름은 24(+3)이나 36(+3)짜리를 2,3롤 가지고 가서 찍으니 많이 찍지를 못했다.

(카메라는 국내 생산은 커녕 수입도 되지 않아 거의 몰래 들려온 것으로

본인도 1982년 영국인에게 부탁해 영국을 통해 Nikon FG를 가지고 들어와 사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