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여행(7)/ 옹진군 신도, 시도, 모도 답사 Photo 에세이

*.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철도를 타고 영종도의 옹진군 북도면의 3 섬을 가려고 김포공항에 왔더니 요금 체제가 전과 바뀌었다.
전에 왔을 때는 지공('지'하철 '공'짜) 나이 이상의 노인들은 주민등록증을 보이고 800원을 할일 받던 것이, 서울 9호선 개통 후부터 공항철도도 수도권과 같이 노인네들에게 행복하게도 무임승차로 바뀌었다. 
  지난 8월에는 일산에서 김포공항까지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승차를 거절당하여서 섭섭하게 그냥 되돌아 간 일이 있었는데 2009년 10월부터 자전거를 휴대하고 탈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 모양이다.

  역에서 개표 후 [비상 게이트로 입장→ 층계 옆의 자전거 전용 슬로프로 이동→ 김포공항역 첫 번째 전용 칸 출입문으로 승차→객실 수직 봉에 자전거 거치]한다.

공항철도 당국이 정부의 '저 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자전거 이용객에게 이용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자전거 휴대 승차제를 10월 4일부터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보안상 인천공항을 제외한 '김포공항~ 화물청사'까지만의 운행이었다.
자전거 휴대는 일요일인 경우에는 수도권 전역으로도 확대 된 모양이다.
이런 때 내가 늘 하는 독백이 있다.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구나!'


*. 삼목도(三木島) 선착장에서


옛날의 영종도는 삼각형 모양으로 지금의 신공항도시가 있는 그 운서동 서쪽에 제일 큰 섬 삼목도(三木島)가 있었다.
그러던 섬이 1990년대 무렵 인천국제공항 공사가 시작되면서 영종도-용유도 사이는 물론 삼목도의 산도 깎아내려서 바다를 메워 영종도에 편입시키는 바람에 영종도는 지금 같은 잠수함 모양의 형태가 되었다.
영종도는 유인도만 해도 삼목도 외에도 신불도, 운렴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도상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명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인천 연안부두에서 옹진군 북면의 장봉도, 모도, 신·시도를 가려면 서쪽 을왕리해수욕장을 우회하여야 하는 불편 때문에 편의상 옛날의 삼목도에 선착장을 만들어야 하였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에는 강화와 시도를 잇는 연도교가 생긴다는 말도 있고, 모도와 장봉도를 있는 계획도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게 되면 서울에서는 영종대교로, 인천에서는 10월에 개통 된다는 인천대교를 통하여 승용차로 영종도→ 신도→시도→모도→ 강화도를 오가는 세상이 될 것 같다.

*. 옹진군 북도면 섬 이야기
   옹진군 북도면에는 4개의 유인도와 10개의 무인도가 있다.
그 네 개의 유인도가 저기 보이는 신도, 시도, 모도로 삼목선착장에서 배로 10분 거리지만, 또 한 섬 그 서쪽에 있는 장봉도는 3 ~40분 거리다. 그 섬은 모양이 길고 봉우리가 많은 섬이라하여 장봉도(長峰島)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북도면의 섬들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넓고 비옥한 목초지에서 말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이 있었다.
그러다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 되었다가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어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으로 총 가구 986 가구에 인구 2,122명이 살고 있는 섬들이다.
  옹진이란 말은 휴전선 이북에 위치한 황해도 연안의 반도의 모양이 항아리처럼 생긴 포구라 하여 항아리 '擁(옹)', 나루 '津(진)' 옹진(甕津)이라 한 것이다. 
           
  이 세 섬을 가는 첫 배가 7시 1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13 번 있는데 막차가 오후 6시 30분에 있다.
내가 오늘 가려는 3섬은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어 승용차를 몰고 가면 편리하겠지만, 김포에서 영종대교를 넘는 왕복 통행료만도 17,000원 정도에다가 신도로 가는 뱃삯만도 2만원인데 게다가 섭섭하게도 운전사는 별도 요금을 내야 한다니 망설이게 한다.
이런 경우 삼목선착장 주차장(무료)에 차를 놓고 배를 탈 일이다.
섬에 가면 배 시간에 맞추어 섬 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가서 명승지를 찾아가는 것이 멀다 싶으면 시간에 2천원을 받고 있는 자전거포를 이용하면 된다.

현재 이 세 섬의 일반적인 탐방 코스는 다음과 같지만 오늘 나는 여기에 신도의 구봉산(九峰山)을 더하려한다.

신도선착장 → 약수터 → 연육교(신ㆍ시도) → 시도도착 → 수기해변(풀 하우스, 슬픈 연가) → 연육교(시ㆍ모도) → 모도(배미꾸미해변) → 신도선착장


*. 신도의 구봉산(九峰山) 등정 이야기
신도는 한자로 '信島'라 쓴다.

  -조선왕조 말엽인 1880년경부터 이곳에서 화염을 제조하였다 하여 섬 이름을 "진염" 이라 불려오다가, 1914년 강화군에 속하게 되었다.
그때 이 섬은 삼형제 섬인 신, 시, 모도의 맏형 되는 섬으로 섬사람들이 인심이 후하고 정직하여 서로 믿고 순박하게 살아간다는 뜻으로 믿을 '信(신)' 자와 섬 '島(도)' 자를 따서 신도(信島)라 불리게 되었다는 섬이다.

섬은 우러러 보는 것보다 굽어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한자 '島' 자 모양처럼, 우리도 한 마리 새가 되어 산에 올라 산보다 더 넓은 바다와 그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배나 또 다른 주위의 섬을 굽어볼 일이다.
이 옹진군 북도의 세 섬에서 가장 높다는 산이 신도에 있는 구봉산(178m)이다.
구봉산을 오르는 길은 5 군데가 있다지만 나는 주민이 일러 준 대로 신도선착장에서 이 섬의 명물인 '신, 시도연도교'를 길을 따라 향하다가 언덕 오름길 우측 포도밭 근처에 '구정봉'이란 이정표를 따라 오솔길로 오르고 있다. 그 오솔길은 두렷하고 한적하였다. 한 30분을 올랐는가. 무덤이 모여 있는데 그 중 한 무덤 위에 새의 깃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이 평화로운 섬도 약육강식의 세계인가. 큰새가 작은 새를 잡아먹은 현장이었다. 그게 왜 꼭 무덤 봉분 위였을까.
거길 지나니 평지 같은 능선길이 시작된다. 그 능선길 좌우에는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데 유난히 무더웠던 금년 여름 탓인가.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고맙기 그지없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왜 혼자 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왜 혼자 산에 가냐구요?
마음이 부리는 대로 몸은 가고
몸이 가는 대로 발이 따르니
함께라면 어찌 가능하겠어요?
그리운 산을 찾아 하루를 맡기면
아름다운 마음이 찾아와서
산새들처럼 내 귀에 지저귀니.

왜 혼자 산에 가냐고
묻지 마세요.


얼마를 가니 차도 오를 수 있는 널찍한 임도가 계속된다. 비포장도로도 있지만, 포장도로도 있다. 그 길이 지리산 둘레길 같아서 정상을 가는 길이 맞나 하고 걱정하게 한다. 길이 하도 좋아 산악자전거 ‘MTB를 끌고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길이구나!' 하는데 사방이 툭 터진 곳에 자리하고 서있는 구봉정(九峰亭)이 나를 반가이 맞는다. 정자는 소박하나 그 전망은 황홀하였다.
지나 온 길이 옹진군에서 완만한 경사를 따라 700여 그루의 벚나무를 식재한 2Km의 임도가 있다더니 여기가 그중에 하나로구나 하였다.
이 정자에서의 볼거리 메뉴는 한 마디로 서해바다.
 

 


그 중에 동남쪽 바다 건너에 영종도에서 제일 높다는 백운산(255.5m)과 그 앞에 낮보다 불을 켠 밤이 더욱 아름다운 남쪽의 인천공항 그리고 북서쪽에 오늘 가야할 시도 해수욕장이다.

그냥 떠나기 아쉬워 수없이 카메라를 눌러대다가 이정표 따라 550m라는 구봉정을 향한다.
길은 다시 하늘을 가린 우거진 숲길이라서 산림욕장 같은 길이다.

너무 밋밋한 육산이 아니라고 변명하렴인가 얼마의 바윗길이 시작되더니 삼각표지가 있고 주위 나무에 리본이 무성하다. 그 옆에는 작지 않은 돌이 숲속에 가리어 있다.
주위가 모두 숲이어서 전망하나 보이지 않은 곳이어서 정상 같지 않은데 이곳이 정상 같다. 그것은 거기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얼마쯤 갔을까. 다시 오름길이더니 높다란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
거기서부터는 널찍한 하산 길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키를 약간 넘기는 진달래 철쭉 꽃 같은 잡목의 길이었다.
반가운 개소리가 들려온다. 캄캄한 산길에서 전깃불 빛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다. 세상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었기에 인가가 이리 반가운 것인가. 
산모퉁이를 지나니  거기가 이정표에 보일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서운해 하던 성지약수터였다.
돌로 만든 구조물이 멋진데 흐르는 물이 적구나 하였더니 그 위에 수도꼭지가 있어 틀어 보니 물이 콸콸이다.
인류의 역사가 강가에서 시작되었듯이 산에서도 샘물이 있는 것은 어디에나 휴식처가 된다.
이 성지약수터 앞에는 바다를 향하여 의자가 있고, 바다 건너에 동화 속에 나오는 고성 같은 건물이 있다.'슬픈 연가'의 드라마 세트장이라는 흰 건물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비로소 점심 대신 준비해온 계란말이 안주해서 맥주를 마신다.
망팔을 지난 나이에 이렇게 산과 술을 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냐.

*. 시도(矢島) 이야기


 시도의 명물 중의 하나는 2005년에 준공 되었다는 579m의 '신,시도 연도교' 다.
이 다리가 특히 아름다운 것은 구봉산을 배경으로 하여 마음먹고 만든 곱게 단장한 다리이기 때문이요, 이 다리 양 옆으로 있는 말쑥한 가로등이 보기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밤에 바닷가 운데서 그 불을 켜면 얼마나 멋질까.
그런데 여기서 한 마디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
연육교와 연도교 이야기다.
등산 중에 만난 '이정표'에도, '옹진군 홈페이지'에도 연도교를 연육교라 잘못 쓰고 있다.
연육교(連陸橋)는 육지와 섬을 있는 다리요, 연도교(連島橋)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 다리 그 앞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어 타고 섬 여행을 시작했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나아가지 않는다. 부레 키가 고장 난 것을 안 것은 3km도 더 지난 후였다.
자전거는 패달을 밟으면 굴러가는 맛인데 밟아도 구르지 않는다.
고개가 많은 길이어서 체인이 필요하였는데 체인도 고장 난 자전거였다.
바퀴가 구르지 않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에는 이 섬이 신도(信島)가 아니라 불신도(不信島)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좋은 것 달라고 웃돈을 더 주고 빌린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집에 두고 온 나의 MTB가 얼마나 생각나던지-.
그래서 모도 가는 길을 벗어나 있는 풀 하우스까지 가서도 슬픈 연가 세트장은 갈 수가 없었다.


드라마 풀 하우스세트장은 수기해수욕장 가에 있었다.
수기(水氣)해수욕장은 소나무 밭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 고운 백사장이 400m나 활처럼 굽어 있는데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한 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은 이 해변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 되는 KBS 수목드라마 '풀 하우스' 세트장으로도 유명하다.
드라마에 배경이 될 정도로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지닌 해수욕장이란 말도 된다.
그런데 유감이 하나 있다. 풀 하우스나 슬픈 연가의 세트장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성인 5,000원 소인 3,000원을 받고 있었다.
별 볼 것도 없는 시설을 두고 이렇게 높은 입장료로 꼭 받아야 하겠는가.
여기를 찾아온 사람 중에는 나같이 그 드라마를 못 본 사람도 있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못 본 사람이 늘어날 터인데 이 무슨 지나친 욕심인가.
한 대 때리려는 이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피하는 것이 세상이 아닌가.
다녀가는 사람마다 욕을 하며 해안을 서성이다 가고 있었다.
그 해수욕장 앞 바다 건너에 큰 산이 있어 주민에게 물어 보았더니 강화도 마니산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시도의 지명 유래가 생각난다.
시도는 한자로 시도(矢島)라 쓴다.

  -고려 말엽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하여 강화군 마이산에서 군대를 훈련을 시킬 때였다. 군사들에게 이 섬을 목표로 활쏘기 연습을 시켰다. 그래서 화살 시(矢)자와 섬도(島)자를 따서 시도(矢島)라 부르고 일명 "살섬"이라고도 한다.



고장 난 자전거라 슬픈 연가 세트장은 가 볼 염두를 보내고 '시,모도교'를 넘는다.
이 다리가 놓이던 2002년 이전까지는 제부도처럼 바닷물이 빠질 때에 하루에 2번만 다닐 수 있는 잠수교였는데 지금은 언제나 다닐 수 있는 멋진 연도교가 놓인 것이다. 다리와 그 주변은 망둥이 우럭을 낚는 낚시의 명소가 되었다.
거기서 만난 인천에서 왔다는 낚시꾼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럭과 놀래기와 팔뚝만한 농어를 잡았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모도 다리를 넘어서 친절한 동네 사람을 만나 자전거의 고충을 이야기 하였더니 노끈을 가져와서 붙들어 매 주는 바람에 배미꾸리까지 무사히 가서 돌아올 수 있었다.
덕분에 남겨가지고 온 아까운 맥주를 다 드리고 말았다.

*. 모도(茅島) 이야기
  한 시간에 한 번 배시간표에 따라 운영되는 섬내 순환 버스 종점이 모도 배미꾸리해변 못미처에 있었다.
  모도란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데 전설치고는 너무 평범한 게 흠이다.

  -1875년경인 조선왕조 말엽 김포군 통진에 차영선이란 어부가 있었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지금의 이 섬 앞에서 조업을 하면 고기는 잡히지 않고 띠(茅)만 어망에 올라왔다. 그 차씨 어부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어 띠 '모(茅)'와 섬 '도(島)'자를 사용 모도(茅島)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모도에 있는 배미꾸리해변이란 이름이다. 배미꾸리란 무슨 뜻일까.
선착장 매표소에서 구한 관광안내서에 배미꾸리를 '船底(선저)'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배미꾸리는 배 밑바닥이란 이 고장의 방언인 모양이다.
이 모도는 70여 가구가 사는 조그마한 섬이다.

  세 섬 중 가장 작은 이 모도는 관광객에게 가장 유명한 섬이다.
배미꾸리조각공원이 있고 배미꾸리 카페와 펜션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일호 조각가가 개인 작업실 겸 건물을 짓고 바다가 보이는 앞마당에 70여 점 자기의 조각을 전시한 것이다.
그 작품들의 주제는 남녀 간 사랑의 에로물로 작가의 에로티즘을 추구한 작품이다. 어찌 보면 피카소나, 스페인의 가우디를 연상케 하는 작품들이다.
시(詩)가 설명이 아니듯이, 종합예술인 조각(彫刻)도 설명은 오히려 그 감상을 속박할 뿐이라서 제목도 없는 것 같다.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니 그 조각을 보자. 그에 앞서  그는 누구인가 어떤 분인가 알아보고.

  1946년 충남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중앙일보 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등의 수상경력. 현재 현대 조각회와 홍익조각회 회장
문학과 영화, 성, 나르시시즘적 몽상이 깃든 작가로 화단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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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해가 서해 바다에 멋진 낙조로 지고 있다.
이어 어둠이 다가오더니 그 어둠을 밝히는 아름다운 배 한 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세 섬에서 보낸 아름다운 하루를 여기에 싣고 내 보금자리를 찾아 가야겠다.
'즐거운 곳에서 나를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리~.  흥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