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723m) 억새풀 산행 Photo 에세이
(2007. 10. 11/ 전남장흥 관산읍 주차장- 육각정- 장천제- 고비- 능선3거리(250고지)-종봉--환희봉-억새군락지-선- 천관사연대봉-정원석- 양근암- 봉황봉- 주차장/ 고양시 늘푸른산악회)

*. 벼르고 별로오던 천관산(天冠山)
서울 세종로 광화문에 있는 도로원표(道路元標)에서 동쪽으로 똑바로 계속 가면 정동진(正東津)이 나온다. 도로원표에서 북으로 가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다는 중강진(中江鎭)이요, 남으로 가면 정남진(正南津)이 바로 장흥(長興)이다.
고양시 일산에서 453.8km로 장장 1,110리나 되는 원거리여서 수도권 산악회들도 당일치기로는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산이다.
  그 장흥의 천관산(天冠山)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듣고 그리워 하다가 드디어 오늘 '고양늘푸른산악회' 따라 그 천관산을 향하고 있다.
동네 산악회가 좋은 것은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우리 마을이어서 이 먼 거리의 당일치기 전남 장흥의 천관산 산행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5시 30분 캄캄한 꼭두새벽에 고양시 일산을 떠나 6시간 30분만에 전남 장흥군 관산읍(冠山邑) 주차장에 12시 조금 전 도착하여 천관산(天冠山) 산행을 시작한다. 감이 익어가는 10월 중순이었다.

고양시 일산에서 장흥까지는 너무 멀어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능한 한 생략하고 그 시간도 짧게 줄여서 오고 가기로 했다. 천관산을 제대로 보는 산행코스로는 방촌리 주차장- 환희대- 억새군락지- 천관산의 정상 연대봉- 산 너머 정탑 주차장으로 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돌아오는 시간을 고려하여 그 연대봉에서- 능선- 영월정- 주차장으로 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
*. 천관산(天冠山) 도립공원
장흥은 사계절 대축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봄: 제암산 철쭉제와 키조개 축제(매년 5월)/ 여름: 개 매기 체험(매년 6월~8월 3회)/ 가을: 천관산 억새제(매년 10월초)/ 겨울: 해맞이 5경(정남진, 남포소등섬, 여닫이, 천관산, 한재공원)
  요즈음 같은 가을은 장흥 회진항에서 전어축제(9월)와 전국바다낚시대회까지 더 한다지만 우리는 그 일부를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올라 갈 시간이 바빠서다.
산의 들머리가 되는 관리소 주변은 산행기 자료를 찾을 찾아 떠나는 요즈음의 나에게는 어디나 그 산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보고(寶庫)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그 주변의 자료를 구하고 자료 사진을 챙기다 보면 언제나 초입부터 함께 온 산악회 일행과 떨어져 후미에서 혼자가 된다.
관리소에서 '천관산 억새제' 팜풀렛을 받아 챙기고 막 등산이 시작되는데 우측에 '湖南第一 支提靈山' 이란 자연석 비가 있다.
'천관산'을 '지제산(支提靈山)'이라고 하나 보다 하며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다 보니 장안사 갈림길에 그 설명이 있다.
  우측에 비석이 가득한 유적지가 있는데 이는 어떤 곳인가 하였더니 이 고장 출신 독립지사 위석규(魏錫珪)님을 기리는 비였다. 그 중에는 1906년 일제에 맞서 독립전선에 투신하면서 그분이 쓴 우국의 글도 있지만 그보다 관산읍 연혁과 장흥의 역사와 천관산기(天冠山記)가 볼 만하다.

*. 천관산기(天冠山記)
  -천관산(天冠山)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요.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하나인 산으로 한반도 최남단의 진산(鎭山)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지제산( 支提山) 또는 천풍산(天風山)이라 하였는데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는 풍천(風天)이란 이름도 보인다. 이 산은 가끔 흰 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불리던 산이다.
'천관산(天冠山)'이란 이름은 첩첩이 쌓인 기암괴석이 천자의 면류관(冕旒冠) 형상을 이루고 있는데다가, 김유신의 연인 천관보살이 살았다 해서 천관산(天冠山)이라 칭하였다 한다.
 백두대간 호남 정맥 끝자락인 이 산에는 6개 洞天, 44개 영봉(靈峰), 36개 석대(石臺)가 있다. 옛날 이 산에는 천년 고찰 89개의 절과 암자가 있어 28명의 대사를 배출하여 금강산(金剛山) 다음의 명산이었다. 그것은 왜구의 찾은 침입이 잦았던 이 남해안가의 사람들이 그 재앙을 불력(佛力)으로 막고 싶어 하던 민중의 소망이 담겨서 인 듯하다.
고려 17대 인종 왕비 공예태후 任씨가 당동에서 탄생한 곳이었다거나, 이태조가 등극하기 전에 명산대찰에 기도하러 다닐 때 지리산과 함께 불복산(不服山)으로도 유명한 산이 천관산이다.
육각정 영월정은 갈림길이었다.
좌측 길은 이 산의 정상인 연대봉(烟帶峰)까지 2.3km/1:20 코스지만 우리는 직진하여 '3.6km/1:40'라는 환희대 코스로 향한다.
그 길에는 볼거리와 이 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천관산의 암봉(岩峰)들을 먼저 보는 코스다.
상수도원이라는 큰골을 가로지르는 도화교(桃花橋)를 지나니 재실 앞에는 수령(樹齡) 600년, 수고(樹高) 20m나 되는 '태고송'의 위용이 멋있다.
태고송(太古松)이란 이름은 이 재실을 지을 당시인 조선 태종 때부터 이 나무가 이곳에 있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큰 나무 한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현애(懸崖)되어 있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그 나무가 우는 소리로 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 하여 '장천재(長川齋)'라는 지방문화재(15-12-2-4) 보호수가 되었다.
그 앞에 있는 장천재(長川齋, 유형문화재72호)는 원래 장천암(長川庵)이란 암자가 있던 자리로 위씨 가문의 묘각(墓閣)인데 그의 후손들이 강학(講學)을 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고종 때(1870년)에는 천문 지리에 능통한 실학자 존재 위백규(存齎 魏伯珪)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거기서 얼마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온다. '금수굴1.5km/한희대 2.9km/주차장0.7km'
금수굴은 연대봉에서 하산 길에 있다는 양근암(陽根岩)과 짝이 되는 남설악의 여심폭포(女深瀑布)와 같은 모양새의 굴이지만 초행길이라면 그 길(2.6km/1:20)로 가면 안 된다. 천관산의 아기자기한 환희대(歡喜臺)를 보고 억새군락지와 천관산 정상이라는 연대봉(烟帶峰)을 아우르기 위해서다.

*. 환희대(歡喜臺)에서
'풍향대 0.4km' 이정표를 뒤에 두고 환희대를 향하고 있다. 풍향대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는 능선에 있는 대(臺)로 남해를 바라보는 전망대였다.
 두 번째 다리를 넘어서부터는 계속 힘든 오름길이었다.
대개의 산은 가파른 오름길을 고생고생 오르다 보면 능선을 만나게 되고, 그 능선부터는 비교적 덜 힘든 법인데 천관산 산행은 그와 달리 환희대까지 완만하기는 하였지만 계속 되는 오름길이었다.
해발 723.1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바닷가에 불끈 솟은 산이라서 그대로 바다 가까운 데서부터 오르는 산이라서 그런지 몹시 힘이 들었다.
암봉들이 천자의 면류관이 같다는 멋진 모습은 그 정상이 아니라 환희대(歡喜臺) 일대를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바위 하나하나를 보며 오르는 것이 천관산 산행이었다.

힘들지 않아도 걸터앉아 쉬어가고 싶은 멋진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거기 앉아 오던 길을 뒤돌아 내려다보면 지금까지 잊고 살아온 쪽빛 바다가 마음을 열어 절로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 ♪ '
앞에 봉우리가 보여서 그것이 환희대인 줄 알았더니 선인봉이었다.

  그러더니 소나무 너머에 천관산이 비로소 나뭇가지 사이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그 멋진 절경을 가리는 소나무가 밉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저 암봉들은 멀리서 보면 저렇게 한 데 모여 있지만 다가 갈수록 암봉은 암봉으로 이어진다.

이럴 때 나는 갑자기 행복해 진다.
이 높은 나이에, 천 리도 넘는 길을 젊음과 함께 달려와서, 그들보다 비록 늦게나마 이렇게 산을 오르면서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하나하나에 감탄하면서 마음에는 물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아름다움을 송강 정철(松江 鄭澈)은 나와 같은 이를 위하여 관동별곡(關東瞥曲)에서 이렇게 쓰소 있다.
  -어와 조화옹(造化翁)이 헌사토 헌사할샤. 날거든 뛰지 마나 섰거든 솟지 마나. 부용(芙蓉)을 꼬잤는 듯 백옥(白玉)을 묶었는 듯, 높을시고 망고대(望高臺) 외로울사 혈망봉(穴望峰)이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사로리라 천만겁(千萬劫) 지나도록 구필 줄을 모르는다.

금강굴을 지나 종봉(鐘峰)을 옆에 끼고 층계로 오르니 천주봉이 앞을 막아선다.
-'천주봉(天柱峰)'이란  천주(天柱)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꽂아 세운 것 같다하여 불가(佛家)에서 보찰(寶刹)이라고 하는 봉우리다.
  드디어 환희대(歡喜臺)에 올랐더니 저 멀리 서쪽으로 억새풀 군락지 너머로 천관산의 정상이면서 멋진 봉화대인 연대봉(烟帶峰)이 보이는데 어느 곳이 환희봉인가.
환희봉 설명 입간판 뒤 같지만 주위가 모두가 절경이라서 헷갈린다. 환희봉의 모습은 그 이름보다 너무 소박한데 그 설명은 요란하였다.
  - 환희봉(歡喜封)은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쳐 있어서 만 권의 책이 쌓인 것 같다는 대장봉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石臺)이니 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 천관산 억새군락지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메입니다.♪♬ ♩ ♪ ~


  우리나라에서 40, 50대 이상 나이든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대중가수 고복수 노래의 '짝사랑'에 나오는 으악새는 어떤 새인가?
'으악새'는 새[鳥]가 아니라 '억새'의 방언이다.
  가을 천관산은 매력은 40만 평에 달하는 억새군락지에도 있다.
천관산 오는 길에도 '천관산 억새 가는 길' 이란 현수막이 도처에 있었고 방촌주차장 근처 들머리에도 '억새 이야기' 설명으로 우리를 맞았었다.
  -천관산 억새는 봄철에 아름다운 신록과 여름철에 초원을 이룬 후 9월 중순에 녹황색의 꽃을 피우다가 10월에 은빛 물결로 아름다움을 이루다가 11월에 열매를 맺으며 낙화(落花)한다. 억새 감상은 맑은 날 일출 직후나 일몰 직후에 태양을 마주하여 역광으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따라서 천관산 억새 산행은 오전에는 환희대에서 연대봉에 이르는 코스로, 오후에는 연대봉에서 환희대에 이르는 코스를 이용하여 일출과 일몰시에 감상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을의 여왕인 이 억새가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을 뒤덮고 있는데 그 사이로 울긋불긋한 탐승객들이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이 고물고물 곰실곰실 움직이고 있다.

천관산 갈대가 특히 아름다운 것은 짙푸른 다도해 남해를 배경으로 하여 나부끼는 모습 때문이요,

천자의 면류관 같은 저, 저 암봉들을 배경으로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 때문이다.

*. 연화봉(烟帶峰)에서

  -연화봉(烟帶峰)은 옛날에는 옥정봉(玉井峰)이라 하던 곳으로 동서 7.9m, 남북 6.6m에 높이 2.3m로 1986년에 복원한 봉화대이다. 일찍이 고려 의종왕(1160년대) 때 봉화대를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熢]로 밤에는 횃불[수]로 나라의 위급을 연락하던 통신수단이라 해서 봉수봉(熢燧峰) 또는 연대봉(烟帶峰)으로 부르게 되었다.

연화대에서 바라보이는 3면의 다도해는 동에 팔영산, 남쪽에 완도의 신지도, 약산도는 물론 해남의 두륜산, 영암의 월출산, 담양의 추월산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

*. 하산 길의 양근암

장안사 쪽으로 향한 하산 길 능선은 2.3km/1:20 코스로 남해를 굽어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가는 환상적인 길인데 양근암(陽根岩)이 그 흥취를 더하여 준다.

양근암은 여성의 거시기와 흡사한 남성의 거시기다. 불끈 힘을 주고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저 우람한 모습은 남성의 상징인가. 아니면 천관산의 상징인가.
그 모습에 장난기 어린 산악회 늘푸른산악회 회장 카우보이님이 거시기를 만지고 그 두 개의 봉알을 밟고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원석 양근바위 문바위
주차장에 내려와서 뒤풀이를 벌이면서 우리들의 오늘을 행복하게 하여준 것은 ‘광주보고파산악회’와의 만남이다. 맛있는 국거리로 푸짐한 뒤풀이 하게 도와준 것도 그렇거니와 돌아올 때 수박만한 배 한 박스의 넉넉한 인심은 천리 길을 돌아가기에도 급한 우리들을 자주자주 고속도휴게실에서 차를 멈추게 하였다.


위 사진은 그 고마운 ‘광주보고파산악회’와 ‘고양늘푸른산악회’와의 만남의 기념사진이다.
‘광주보고파 산악회’여. 그 이름처럼 산도 보고프게 우리 서로 보고프게 KIN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