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8년 7월19일((6/17)초복 날씨:흐린 후 비

 

산행지: 옛길을 따라가는 물굽이계곡 트래킹

 

산행자: 한산님. 나(대간령에서 그대로님 동행)

 

산행코스: 창암~작은새이령~마장터~큰새이령~마장터~물굽이계곡~합수베리~흘리계곡~진부령

 

산행거리:15.12km , 산행시간:8시간30분

 

개요

 

이 산행기록은 옛길을 따라 가는 계곡트레킹이다.

 

1.물길은

큰새이령 계곡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화암계곡의 물줄기와 합수되고 마산봉아래 흘리계곡 물줄기가

 합수베리에서 합수되어 물굽이계곡을 흘러가는 물줄기를 만들어 매자봉에서 발원되는 물줄기와 만나서

 인제의 북천을 만들고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내린천과 합수되어 소양강을 만든다.

 

소양강은 추가령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와 합수하여 북한강을 낳고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루어 서해로 흘러간다.

 

2.옛길은

진부령과 미시령이 개통되기 30여 년 전만 하여도 인제와 고성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새이령과 흘리령(흘령)이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이 길은 용대리에서 시작하여 작은새이령을 넘고 마장터를 지나 큰 대간령을 넘어

 도원리에서 간성과 속초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 진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평지를 이루는 곳에는 사람들이 쉬어 갈 역원(현재의 여관구실을 하는 것으로

관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들이 있었고 牛.馬들의 마구간 역할을 하였던 마장터와 길손의 발걸음 쉬어 가게 하는

 주막집이 있었다.

 

그러므로 새이령은 미시령이나 진부령이 개통되기 전에는 동서를 이어주던 가장 빠르고 쉬웠던 길로

현지 노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3지명의 유래는

신라 경덕왕156년 한자가 들어와 구전으로 전해 져 오던 우리의 고유한 지명들이 2음절로 이두문자화 되기

 시작하면서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도 정감 있게 남아 있는 소수의 지명들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여기에 나오는 새이령도 사이령에서 변음 된 것으로 원래는 “사이령”이었으며 현지인들은 축약하여 “샛령”으로

 부르고 있으나 2음절로 이두문자화 되면서 사이간(間)자를 사용하여 間嶺이 되였고 두 개의 령을 대.소 로

 구분하다 보니 大間嶺과 小間嶺으로 쓰게 되었다.

 

새이령은 신동국여지승람에서는 “小破嶺”이라 하였고(미륵천의 상류로 “小波嶺”의 물길이란 문헌은

 새이령의 물줄기를 이른 말이다) 택당 이식의 “수성지”에서는 “石坡嶺”이라 하였고 광여도 등에도“石坡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흘리령(이 곳 주민들은 “흘령”으로 부른다)은 안흘리에서 중흘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름이며 흘(屹)은

쭈삣할 (屹)로서 고원에 있는 마을을 뜻 한다.

 

고구려 언어인 고어에서 山은 達을 뜻하고 홀(忽)은 촌락, 시, 주, 군의 집단 또는 성읍의 뜻으로

달흘(達忽)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고구려 때 고성군의 지명이 “달홀(達忽)”이었던 것으로 보아 흘(屹)은 높은 산위의 고원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와 산경표

 

흘리령에 대한 대동여지도와 산경표의 내용이 다르다.

대동여지도에는 진부령과 연수파령(미시파령)사이에 흘리령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산경표에는 마기라산(지금의향로봉)과 미시파령 사이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비교하여 보면 대동여지도의 흘리령은 지금의 새이령이 되어야 하고

산경표에서는 진부령과 흘리령 사이에 마기라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마산봉이 되어야 하는데...

산경표의 오기인듯 하다.

 

 

미시령과 진부령구간 상세도( 흘리령상세도 )클릭

(파란색 점선들이 옛 길이다)

 

 흘리령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백두대간 마루금이 우회하고 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갈 뿐이다.

바깥흘리에서 안흘리로 넘어가는 지점에 위치하며 고갯마루에는 성황당이 있었고 지금도 고갯길 가장자리에

 돌탑의 흔적이 남아 있다.(이 곳 주민들은 흘리령을 "흘령"으로 부르고 있으나 아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7월26일 향로봉 다녀오는 길에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73세이신000님의 도움을 받아 현장을 답사할 예정으로 있다.

 옛 길과 계곡트래킹 진행도

 

박달나무집쉼터~작은새이령~마장터~큰새이령까지는 인제에서 도원리를 거쳐 간선과 속초로 이어지는

옛 길이며 큰새이령~마장터~합수베리~흘리계곡(스키발물관)까지는 물줄기 따르는 계곡 트래킹 코스이다.

 

참고: 합수베리에서 시작되는 물굽이계곡은 군부대와 사격장이 있어 통제하고 있어 갈 수 없는 구간이다.

 

산행글

 

 2006년12월15일 15명의 소수인원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였던 백두대간 꿈의종주대가 진부령에

 도착하면서 졸업식을 하는 날 산행에 초대 받아 축하산행 하러 가는 날이다.

 

사실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엉겹결에 따라 나섰던 대간길을 육십령까지만 동행하기로 하였지만 숱한 우여곡절을

격으면서 리더의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피재까지 3분의2를 진행하고 개인적인 사유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었다.

 

두 구간을 뒤로하고 함께 하려고 했지만 인간사 새옹지마라 ...

동행하지 못하는 서글픈 일이 생기고 말아 혼자서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뜻 하지 않게 초대를 받고 보니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선듯 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잊지 않고 초청 해 주는 대원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건강 때문에

두 달여 가까이 산행을 하지 못했지만 기꺼히 동행 하기로 하였다.

 

송내와 사당 그리고 양재에서 오랫 만에 만나는 대원님들 표정 밝기만 하고.....

졸업식에 가는 학생들의 표정인양 줄겁기만 한데.....

마음 한 구석 짓누르는 무게는 피할 수 없이 밀려 오고...

그렇게 미시령에 도착한다.

 

산행을 하지 못 할 찰라간의 숨막히는 긴장이 흐른 후 대원들 상봉으로 올려 보냈는데 함께 동행하지 못하는 마음이 무겁다

상봉오름길 힘들것으로 예견되어 호산자님께 새이령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한산님과 함께 창암으로 향한다.

 

 03시37분

창암에 도착하나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녁이라 길 바닥에 돗자리 깔고 동트기를 기다린다.

 작은새이령 오르는 들머리

 산행을 끝 내고 속초로 이동하는 중에 디카에 담았다.

658봉과 665.8봉 사이에 있는 작은새이령 계류를 따라 진행한다.

 

나무사이의 도로를 따라서 100여터 진행하면 공터가 나오고 예비군훈련표지판에 있는 곳에서 좌측방향

창암천을 건너서 훈련교정 우측 가장자리 등로를 따라 오르면 외길이다.

 창암(窓巖)

처음에는 마을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 도착 하여서야 바위를 뜻 함을 알았다.

 날이 밝아오기 30여분을 기다렸는데....

 

바위 가운데로 뚫린 구멍이 기이하다.

05:13

 창암천을 건너고 교정을 건너 작은새이령 계류를 따르는 입구에 설치 된 출입금지 이정표이다.

 

참고: 출입통제구간을 왜 다녀왔냐고 할 분들이 있어 미리 告한다.

창암에서 작은새이령~마장터~큰새이령구간의 등로는 설악산 국립공원출입금지구간의 경계선이 위치한다.

즉/ 오른발은 출입금지 위반이고 왼 발은 아니다.

이 것도 위법이라면 할 수 없지만....

 05:46분

작은새이령(585m)에 도착한다.

여기에 노루오줌과 동자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그런데 고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가쁜 숨 몰아쉬지 안해도 오를 수 있었으니...

 

작은새이령 넘어서 개울따라 마장터 가는 길은 미끈한 낙엽송나무 숲 반겨주고

고요한 산 속에 이름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드린다.

 

 사람들이 거주하던 윗 마장터와 아랫 마장터의 갈림길이다.

오른 쪽이 윗 마장터.

 공터

예전에는 20여가구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윗 사진 갈림길에서 하천을 건너면 다시 윗 마장터로 가는 길이 나 온다.

여기서 왼 쪽길은 큰새이령 가는3km지점이다.

 

오른 쪽 사진은 마장터 주인이 거주하는 집인데 되 돌아 오는 길에 알았고...

가는 길에 들려 보았던 집 안의 풍경은 세 사람 고이 잠들어 있었다. 

 화암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큰새이령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합수되는 곳!

 가는 길에 만나는 돌무덤..

길 가는 나그네 잠시 쉬어가는 구실을 했으리라...

 09:09분

큰 새이령(641m)에 도착한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흘리령.석파령.원기령.대간령.새이령.샛령 등.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새이령을 이두문자화 하면서 "새이"를 "사이"로 보고 사이(間)자를 사용하여 間嶺이라 하였고

작은 두 개의 새이령을 대.소로 구분하기 위하여 큰大와 작을小자를 사용하여 대간령과 소간령으로 구분하였을 것이다.

 

혹자는 일제강점기에 나라찬탈을 노리는 일본인들에 의해 "대간령"이란 지명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데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야기한 것이리라.

 

그러나 대안이 없는 비약은 논리적이지 않다.

신라경덕왕(156)6년에 전 국토의 지명을 한자로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구전으로 전해 져 오던 지명들을

 2음절로 이두문자화 하였고 이것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새이령이 언제부터 대간령으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헌은 반결할 수 없었지만 

새이령이 이두문화 되면서間嶺이 되었고 두 개의 간령을 구분하기 위하여 小와 大자를 앞 에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학자들의 몫이며  풀어야 할 과제이다.

 

참고: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순수 우리말인 큰새이령과 작은새이령으로 불려지기를 바란다.

석파령은 화암재을 지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본다.

 

왜냐하면

 고지도나 문헌상 나타나는석파령은  石波嶺 또는石坡嶺으로 쓰고 있는데 새이령은 육산이며 나즈막한 고개로

 한자로 표헌하는 석파령과는 뜻이 맞지 않아 보인다.

 

석파령의 돌石자와 물결波자 또는 고개坡자는 돌과 관게된 지명이어야 하고 령(위치)도 돌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맞아 떨어지는 곳이 화암재이다.

 

石波의 뜻을 풀어보면 물결치는 돌을 뜻함인데 돌이 춤을 춘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너널지대를 생각하면 의뢰로 쉽게 이해가 된다.

신선봉이 너덜이고 상봉으로 이어지는 톱날능선이 험하고 상봉이 너덜이다.

너널지대를 石波로 보았던 것으로 보여 화암재가 석파령이 아닐까? 한다.

 

참고: 이것은 개인의 소견임을 전제로 한다. 

 돌담의 흔적과 이 곳에 집이 있었다는 증거를 나타내는 기와조각들

길손을 위한 주막집이나 관원을 위한 院이  있었을 것이다. 

 대간팀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한산님과 함께 돌탑을 쌓앗다.

 

이 곳을 찾아오기 시작한 지 20년을 넘어 30년이 되어가고....

일곱 번인지 여덟 번인지 기억은 흐릿 하지만 사람의 손떼가 묻어 굴러다니는 돌들을 주어서

탑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오늘에야 소원을 이룬다.

 

이 곳은 다녀 가는 모든 이에게 다리 아프지 말라고 행운을 가득 담아주는 행운탑이 되기를 바라는 소원과 함께...

또 다른 소원은 이 곳의 역사를 되 집어 볼 수 있게 쉼터로 복원되어지기를 기대 해 본다.

 

그대로님 동행하기로 하여 왔던 길을 작은새이령 갈림길까지 회귀하기로 한다.

그래야 물굽이계곡과 흘리계곡으로 갈 수 있으니까...

 소금을 가득싫은 牛.馬도 이 길을 넘었을 것이다.

 

큰 새이령에서 대간팀 만나서 함께 식사하기로 하였지만 그 것도 내 마음 아닌지라...

대간팀 보내고 셋 이서 식사를 한다.

 

마산봉 넘을까 했지만 체력이 부담이 되고 ...

그래서 계곡길 따라 스키장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야생화 지천으로 피어 있다. 

 내를 건너고.

 심마니들의 움막인지?

마장터 주인인 백승학씨와 그의 집 

 

외국에서 살다가 이 곳에 정착한지 10여년 되었다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아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언론에 간혹 등장하는 정씨노인은 이 분의 배려로 윗 마장터의 집을 내 주었는에 매스컴에 오르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사진찍기를 꺼려 옆 모습만 담는 것을 허락 받는다.

여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작은새이령과 물굽이계곡 갈림길

우측으로 진행하여 내를 건너서 곧바로 왼쪽의 계류를 따라야 물굽이로 갈 수 있다.

직진하는 길은 병풍바위 가는 길!

 동자꽃 반겨주는 낙엽송 숲길

 식용 버섯이라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오른 쪽은 싸리버섯이라 함. 

 옅게 깔린 물안개가 신비스러운 그림을 연출 해 준다.

 큰꿩의다리는 금꿩의다리로 바로 잡습니다.

 단풍취군락지

 간혹 등로를 놓치기 쉽지만 자세히 찾아보면 내를 건너게 만든다.

 다시 건너고...

 바위틈에 자란 단풍취의 넓다란 잎사귀에 매료되어 한참을 머문다.

 복숭아탕 연상시키고

   死魚流水

죽은물고기는 물에 떠 내려 가지만

 

活魚逆水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타고 오른다.

 

맑은 물을 바라보며 생각나는대로 읆어 본다.

 오른 쪽의 새이령계류와 왼 쪽의 흘리계류가 만나서 물굽이계곡을 만들고 매자봉 물줄기를 만들어 소양강의 상류인 북천을 이룬다.

 

이 곳 사람들은 합수(두물머리)를 "합수베리"라 부른다.

인근의 군사격장 때문에 통제되고 있는 물굽이계곡과 작별하고 흘리계곡으로 접어 든다

 양 쪽 물줄기가 대조적이다.

새이령물은 옷추럼 투명하나 흘리계곡물은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어 두물이 만나는 물굽이물까지 혼탁하다.

바깥흘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폐수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스키장이 개장되고 나면 얼마나 더 오연될까?

해당관청은 폐수처리장 설치하여 정화시켜야할 것이다.

 갑자기 키를 넘기는 잡풀속으로 접어 든다.

 갈대밭을 지나는 한산님과 그대로님.

신발 속에서 개구리 우는소리 오래 되었다.

 내를 건너서 오른 쪽 임도를 따른다.

 

12시에 흘리초등학교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 도착하여 감자전 주문하여 피망저장소에서 대간팀 기다리라 하고...

나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초등학교 옆 군부대 입구에 있는 초소에서 대간팀을 기다린다.

 

12시20분이 지날무렵 알프스스키장 콘도옆 임도를 지나온 대간팀이 허니님과 출발님을 선두로하여 속속 도착하고...

이 때부터 길 안내가 시작되었다.

 

피망저장소에서 감자전에 소주잔 준비 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한산님과 그대로님 만나서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진부령을 향해 시멘트 포장길을 따른다.

 

임도삼거리 외 딴집을 지나고 사슴목장을 지나 소똥령 넘어가는 내리막길 가다 좌측의 마루금 접어들어

진부령에 내려선다.

 

참고:흘리령(이 곳 사람들은 "흘령"이라 부른다)은 군부대 주둔으로 마루금이 우회하기 때문에 대간 하는분들

 대부분이 위치를 모른다.

 

흘리령은 피망저장소에서 임도따라 진행하다 만나는 마지막집앞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100여미터 진행하면

삼거리 나오고삼거리에서 좌측은 진부령가는 길이며 우측길 따라 500여미터 진행하면 돌무덤이

만들어진(서냥당)둔덕이 나오는데 여기가 흘리령이다.

 

흘리의 유래와 뜻은 개요란에 설멸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

 13:34분

진부령 도착하여 대간팀 졸업식(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행위)에 참석하여 감사패도 받고...

다음 날 단독종주 마지막구간에 나서는 동해바다님 축하산행하기 위해 속초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하여

동해바다님 차량으로 한산님과 함께 속초로 이동하였다.

 

속초에서 공단관리자 만나서 대간꾼들의 애환에 대해 이야기나누니 호탕한 기질의 선배님 이외로

우리를 이해 해 주어 주기적인 만남을 갖기로 하였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이동 하룻밤 보내노니

다음날 새벽 04시에 동해바다님 만나서 미시령으로 향하는데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줄기 멈추지 않고

대간이 끝 나는 순간까지 계속되더라.

 용대리 삼거리에서, 좌측은 진부령. 간성 방향이고 우측릉  미시령 고개고 가는  삼거리에서 서쪽의 있는  바위가 매바위다.

자연암벽에 물을 끌어올려 설치된 인공폭포는 높이 82m, 폭 5m의 규모이며 연중 웅장한 물줄기를 품어내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암벽에 얼어붙은 수십미터의 빙폭을 이용 해 빙벽타기로 유명하다.

 창바위(658봉)

매바위와 마주보고 있다.

 백두대간 완주하신

안나푸르나님.호산자님.허니님.바위솔님.산과스키님.솔망울님.한산님.그대로님.동해바다님. 축하드리고

한 구간 남아 있는 산사랑님께도 무사히 종주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진부령에서 만난 홀대모의 02님과 고창의 장영옥님 백두대간 단족종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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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마지막길 초청받아 출발한 산행길이었지만 전 구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흘리에서 진부령까지만 동행하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오름길 힌들어 함께 하지 못하고 계곡길을 택하였는데 혹시라도 닥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여

동행하여 준 한산님께감사드리고 오랫만에 해 보는 계곡 트레킹은 여름산행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마장터에서 만나 본 주인장과 또 다른 만남의 약속과 공당관계자와 맺은 우정도 빼 놓을 수 없는 줄거움이었다.

 

산행 다음 날 강릉으로 나들이도 줄거웠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흘리에서 동해바다님 동행하여 진부령에 내린 것 또한 기쁨이었다.

 

올 해 들어 진부령에 다섯 번을 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게될지 모르겠다.

산방의 많은 분들이 계속하여 진부령을 향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7월 26일에 진부령에 또 가야 한다.

 

향로봉에 오르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화암재 옛 길을 넘어 보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세 번째는 흘리령 위치 확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