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현재시간 02시50분 산악대장이 오늘의 공격 목표를 대원들께 설명한다.



현 위치는 백두대간의 소 구간으로 태백산맥의 끝,

경북봉화군 도래기재 정상으로부터 소백산을 연결하는 영주시의 고치령 까지

도상거리 30km, 예상소요시간 12시간,

오늘의 도전이 강풍과 폭설로 결코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미 각오는 비장했지만 대원들은 긴장 속에서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차안에서 장비를 챙겨 중무장하니 배낭의 부피는 절반이상으로 줄어들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하얀 눈 위에 별빛을 뿌려놓는다.



처음부터 눈 덮인 길을 새롭게 개척해야하는 러셀을 시작한다.

대장님이 첫발자국을 내고 진행하면 모든 대원들이 그 발자국을 그대로 찍고 오른다.

허리춤인 사타구니까지 빠지는 눈밭이라 발을 일일이 뽑아 옮기기가 무척 힘들었고

들고 있는 스틱은 만세를 부르듯 하늘높이 들어서 옮겨야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선등자의 러셀작업은 무척 힘들어 뒷사람과 서로교대를 한다.

덕분에 35명의 대원들은 한결 편하게 나아 갈수 있었다.



어젯밤 뉴스에선 곳곳에 산불이 발생했다는데

이곳은 다른 나라 예기처럼 온통 눈이 뒤덮여 설산 그 자체였다.

옥돌봉의 세찬 칼바람은 한쪽방향을 포기하도록 돌아설 수 없을 정도였다.

백두대간의 겨울산행은 고갯마루에서 출발하여 높은 고도의 능선을 통과하기에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없고

여름엔 계곡을 한번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물 한모금도 보충

못하여 무더위와 갈증의 고통은 참기 어렵다.

그리고 계속되는 연봉들이 1km정도 마다 이어져 있어 대단한 지구력이 요구된다.



어둠 속에 길을 잘못 들어 서울 산악팀과 뒤섞여 일행인줄알고 나와 일행 3명이

주실령 고개를 넘어 약 두시간 정도를(7km) 엉뚱한 문수산 까지 따라갔다가

되돌아오게 되었다.

야간산행엔 가끔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일행들과 합류하려면 더 빨리 가속을 해야 하지만

눈길을 헤쳐 나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5시간이면 충분한 것을 2시간 헛고생 하여 아직 중간지점도 아닌 선달산을

7시간 만에 도착하니 일행들은 우릴 기다리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발로 눈을 한참을 쓸어낸 후 엠보싱 방석을 깔고 앉아

소주와 훈제고기로 먹을 것을 처음으로 입에 넣으며 언 몸을 녹였다.

이제야 쉬면서 헤드랜턴을 배낭에 수납하게 되었다.



갈곶산을 향해 또 산행은 이어졌다.

종착지까지 남은 거리 이곳에서 16km 아득한데 안부에 내려서니 탈출로가 보인다,

그냥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는 갈등을 생긴다.

하지만 대원들은 나의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산행을 재촉했다.



새벽에 2시간 헛고생 후유증으로 산악대장이 당초 목적지까지의 산행계획을

7km 수정하여 마구령 으로 하산토록 지시했다.

나로서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젠 9km 만 가면 버스에 도착한다.



갈곶산을 넘어, 5km 남긴 지점에서 도저히 체력의 한계를 느껴 눈 속에서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하체가 풀려 그냥 눈 속에 눕게 되었다.

산악대장이 이곳은 탈출로가 전혀 없다며 늘어지면 큰일 난다고 일으켜 세웠다.

이미, 체력은 바닥나 탈진상태인지라 집에서 나올 때 딸래미가 농담 삼아 한말이

씨가 됐는지 꼭 살아서 돌아오라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유일한 아가씨대원 미스 박이 배낭에서 포도즙, 사과3개, 생수와

따뜻한 물 도시락과 과자 등 먹을 것을 가득 내놓아 받아먹으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 핑계를 대며 엄살을 늘어놓았던 내 자신이

미스 박 앞에선 더욱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거뜬하게 이곳까지 왔을까?

지금의 6명의 휴식이 나 때문이라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해서

마지막 안간힘을 써 무사히 소 구간 종주를 해냈다.

미스 박의 무거운 배낭이 아니었다면 내가 종주를 할 수 있었을까?

정말 고마운 은인 이었다.



폭설과 추위, 바람이란 악조건을 이겨낸 그들의 도전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될 것이다.

다음 소구간은 마구령에서 죽령까지 이어지는 33km의 더 긴 구간이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눈이 다 녹길 바랄뿐이다.



▣ 산과하늘바다 - 산행 마치고 몸살은 하지 않으셨나요? 대단하십니다. 이 더운 여름에 에어콘 역활을 하신 발발리님께 고맙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