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화산(오름)

2004년 2월 28일(토요일)

물찻오름(거문오름)(717m):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산137-1번지

콘도가 있는 애월에서 9시까지 서귀포에 도착하려고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선다.
콘도앞에서 15분정도 기다리니 서귀포행 버스가 온다.
20분에 한 대가 있단다.
기사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가는 중에 열심히 묻고 또 물어본다.
친절하게도 기사는 일일이 대답을 마다 않는다.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는 8시 30분경에 도착한단다.
도착시간 30분전에 오름을 안내하실 산사랑님에게 전화를 한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산사랑님은 아직 보이질 않는다.
얼굴을 모르니 앞에 있어도 누군지 알 수 없어 전화오기만 기다리면서 다음날 한라산(성판악-관음사)코스의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바로 앞에 지프차가 산사랑님의 차였다.
어느분의 소개로 전화통화만 했을 뿐 서로가 처음 보는지라 초면 인사를 하고 오늘의 목적지로 향한다.
제주도에서 생활 하신지 40년이 되었단다.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크고 작은 오름들을 자주 오른단다.
제주도에는 한라산 백록담과 유사한 화산들의 흔적들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으나 5.16도로를 가다가 조금 벗어나니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다시 또 소로를 접어들어 삼(스기)나무가 울창한 밀림지대같은 비포장을 차로 한참을 오르다가 또 다른 샛길로 접어 들었는데 그만 차가 뻘에 빠져서 한참을 노력했지만 지대가 수렁의 성질을 가진곳이라 결국은 한참 아래 버섯농장 차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와 그 길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안전한곳에 차를 주차하고 삼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진 길도 없는 길을 가위로 가시넝쿨을 자르고 하여 한참을 오르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산사랑님은 미리 가위를 준비하고 다닌단다.
정상에는 백록담같은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주위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다.
분화구에 물이 차 있는 곳은 흔치 않단다.
바람이 조금은 불었으나 비는 조금 약해진 듯 하다.
분화구 물 속에 누군가가 물고기를 넣었으므로 지금은 번식을 하여 많은 고기가 있을 거라고 한다.
산사랑님이 준비해온 야채 쌈과 잡곡밥으로 물가에서 점심을 먹고 여유있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비 줄기가 거세 진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을 해야만 했다.
역시 길이 없는 길을 헤치면서 산사람님의 뒤를 따라 열심히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인가가 있는가 했더니 들개의 울음소리란다.
무섭지 않냐고 했더니 당당하면 개가 오히려 무서워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여기저기 천남성 열매가 있어서 농장에다 심어 보려고 몇 개를 채취해서 주머니에 넣는다.
길이 없는데도 산사랑님은 잘도 찾는다.
특히 이 오름에는 물이 있어서 좋아하기에 자주 찾는 곳이라 길이 없어도 잘 찾는다고 한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한참을 내려오니 자동차가 있는 길이 나온다.
여전히 비는 퍼붓고 옷은 거의 젖은 상태지만 겉옷이 방수가 되므로 속옷까지는 젖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동차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고 도는데 차가 갈수 없을 만큼 삼(스기)나무가 우거져 차에서 내려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손으로 나무를 잡고 있기를 몇 번인가 하고 나니 조금 넓은 길이 나오면서 등산로가 보인다.
삼(스기)나무는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심은 나무란다.
별로 쓸모가 없는 나무일뿐더러 삼(스기)나무 밑에는 다른 나무들이 살수가 없고 그 나무만 번식을 거듭한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산을 망치기로 작정하고 심은 듯 하다.
험준한 길을 몇 번인가 돌고 돌아가니 물찬오름이라는 표시와 산의 높이와 소재지가 기록되어 있다.
등산로 입구란다.
우리가 등산한 코스는 가파르고 길이 없는 곳을 택했다 한다.
그곳이 경치가 더 좋고 비가 오므로 빨리 정상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사랑님의 안내로 몇 군데의 오름들의 옆을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다음에 또 와서 저 오름들을 차례로 올라 보겠다고 희망하면서 그때도 안내를 부탁한다고 정중히 청했고 그러겠노라고 약속해 준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몇 군데의 오름을 더 오를 수 있었는데 비가 와서 힘들고 한곳을 더 비가와도 안내를 하겠다고 그곳으로 간단다.
그오름이 다랑쉬 오름이라고 한다.

다랑쉬오름(월랑봉)(382.4m):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산 6번지
비가 오는 도로를 달리자니 또 다른 운치가 기분을 들뜨게 한다.
비록 오름은 못 올랐어도 드라이브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한 기분이다.
복사한 제주도 지도를 펴서 가고있는 길을 짚어 보지만 깨알같은 글씨가 정확히 눈에 들어오질 않아서 대충 보는데 건영목장을 지나 상동을 지나 중동을 지나 송당을 지나서 비자림이 있는곳으로 가고 있다.
지도에는 월랑봉으로 명기되어 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바람도 세차다.
다랑쉬 오름은 조금전에 올랐던 거문 오름과는 전혀 다른 오름이다.
나무가 별로 없고 억새같은 풀들이 누렇게 오름 전체를 덮고 있다.
정상까지의 길은 거리 멀지 않아 쉽게 오를수 있었으나 바람이 거세게 불었으므로 몸이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이곳 역시 백록담같은 분화구가 있는데 물은 없고 누런 풀들이 깔려 있다.
바람이 너무 심하니 더 이상 가지 못하게 했지만 염려를 뒤로하고 산불관리초소가 있는 곳까지 가는데 몇 번인가 바람에 밀려 간다.
초소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옷가지와 책들이 있어서 사람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바람과 싸우면서 분화구 주위를 한바퀴 돌고나니 산사랑님이 분화구까지 내려가서 손짓을 한다.
분화구에는 바람이 잠잠하고 빗줄기도 약해져 있어서 커피를 한잔씩하면서 돌탑을 쌓아본다.
돌탑을 쌓으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시 또 이곳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어본다.
분화구에서 능선에 오르니 다시 비바람에 몸을 가눌 수가 힘들다.
비가 와서 한라산이 보이진 않지만 저기쯤이라고 알려 준다.
산사랑님은 날씨가 맑았으며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 하지만 비가와도 나쁘진 않다.
가까운곳에 보이는 오름을 지적하면서 용눈이 오름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저기도 안내하겠다는 말과 함께.
다랑쉬 오름 아래에는 1948년 4월 3일 당시 선량한 제주도민 대다수가 반국가 사범으로 취급되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후 마을이 없어지고 마을터만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이름이 잃어버린마을(다랑쉬)이라고 적혀있었고 그 옆으로는 여러채의 돔형의 숙소를 짓다말고 방치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도깨비집으로 불린다고 했다.
공사중 부족한 자금난으로 개발이 중단된 듯 하다.
조금전 약간 약해진 비 줄기는 다시 세차게 자동차의 유리를 때린다.
산사랑님의 안내로 아무나 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제주의 오름을 접하고 느낄수 있어서 나 홀로 제주도 여행이 많이 행복하다.
산사랑님에게는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까를 고민중인데 또 다른 곳으로 안내를 한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비속에 달리는 기분은 차마 말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