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산


 

            *산행일자:2008. 5. 15일(목)

            *소재지  :경북문경/충북괴산

            *산높이  :대야산931m, 곰넘이봉733m

            *산행코스:벌바위주차장-용추계곡-월영대-밀재-대야산

                            -불란치재 -버리미기재-벌바위주차장

            *산행시간:9시57분-15시52분(5시간55분)

            *동행    :은하수산악회 회원 

 

 

  어제는 기암괴석과 계곡의 폭포 및 소(沼)가 유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하여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의 한 산으로 선정한 대야산을 탐방했습니다. 마침 어제가 스승의 날이어서 명산 탐방 길에 고마운 은사님 두 분을 떠 올렸습니다. 가난뱅이 시골농부의 3남인 제게 공부만이 살 길이라며 어머니를 설득해 한 분은 중학교 진학을 도와주셨고 또 한분은 서울의 유수고교로 유학(遊學)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이 두 분이 안 계셨더라면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어른들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에 나섰을 것입니다.  파주 시골에서 많지 않은 논 떼기를 붙여가며 그럭저럭 살아갔을 제가 서울의 대학을 졸업해 회사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 해왔고, 자식들이 이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해나가도록 올곧게 키운 것은 두 분 은사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찾아뵙지는 못해도 스승의 날이 오면 마음속으로나마 이 두 분 은사님께 새삼 고마워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빌곤 합니다.


 

  아무래도 제 인생 최고의 스승은 산일 듯싶습니다.

산은 제게 가슴을 활짝 열고 살라 합니다. 산은 산을 찾아 오르는 사람이 누구든 이런저런 이유를 대 내치지 않고 모두 받아들입니다. 미운 사람이든 고운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을 구별 말고 모든 이들에 가슴을 열라고 합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나무, 꽃 , 바람, 산짐승, 산새들, 바위와 구름 등 산식구들에게도 가슴을 열고 더불어 살라고 합니다. 산식구들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며 정맥 길을 혼자서 종주하는 제게 산은 이제껏 이들과 더불어 종주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산은 제게 보다 진지하게 살라고 합니다. 장난치듯이 인생을 가볍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산을 우습게 알고 아무 준비도 없이 덜렁덜렁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 우리 산이 가혹하리만치 무거운 벌을 주는 것도 인생을 우습게 알고 건성으로 살아갈까 걱정되어 매를 드는 것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진정 생명을 존중한다면 생명행위의 연속인 인생을 우습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산은 제게 서로 믿고 살라 합니다. 뭇 생명체가 믿고 의지해 찾아와 깃을 펴는 산처럼 다른 사람들에 믿음을 주고 또 믿으라고 합니다. 제가 산을 좋아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리를 뜨지 않고 언제나 듬직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어 힘들 때면 언제라도 산을 찾아올라 의지할 수 있어서입니다. 더불어 살고, 진지하게 살고 또 믿음을 갖고 사는 지혜를 산에서 배우고 있으니 제 인생 최고의 스승은 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침9시57분 문경 가은의 텅 빈 벌바위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군포시청 출발 3시간 만에 도착한 벌바위주차장을 가로질러 나무계단 길로 올라섰습니다. 낮은 구릉을 넘고 인삼밭을 지나 산행시작 10분 남짓 후 몇 개의 식당들이 들어선 용추계곡에 도착했습니다. 기차타고 정읍으로 내려가 호남정맥 산줄기를 당일치기로 한 구간 종주하고 오겠다는 원래계획을 접고 은하수산악회의 대야산 산행에 합류한 것은 3년 전 대간종주 시에 정상을 올랐던 이산에 명성을 더해주고 있는 여기 용추계곡을 탐방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나흘 전 황강을 막고 물을 담아놓은 가야산과 멀지않은 합천호가 물이 말라 맨 허리를 내보일 만큼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용추계곡인들 계곡물이 제대로 흐르겠나 하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물이 흘렀습니다.


 

  충북괴산과 경북 문경을 경계 짓는 대야산은 두 선유계곡에 물을 대고 있습니다.

동쪽 문경으로 흐르는 내선유계곡과 서쪽 괴산으로 흐르는 외선유계곡 모두 대야산이 빚어낸 계곡으로 이번에 탐방한 용추계곡은 월영대에서 피아골의 계곡물을 받아 아래로 흘려보내는 내선유계곡 상류의 물줄기입니다. 이 계곡을 따라 7-8분을 걸어 오르자 넓은 회백색 암반에 하트모양을 한 움푹 파진 소(沼)가 보여 용추계곡이 최고의 걸작으로 자랑하는 그 유명한 용추가 바로 이곳임을 직감했습니다. 깊이1.5m의 위 소(沼)와 1m 깊이의 아래 소(沼)가 모두 하트모양을 하고 있는 용추의 양 소 옆에 너른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용트림을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이 바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합니다만 바짝 가보지 못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라 말 도선대사가 왕건에 고려건국을 예언한 도선비기를 전해주었다는 이곳에서 KBS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했다 하니 문경시에서 안내판을 세울 만도 했다 싶었습니다.


 

  11시16분 백두대간 길이 지나는 밀재에 올라섰습니다.

용추에서 20분을 채 못 걸어 달뜨는 밤이면 교교한 달빛이 시 한수를 끌어낼 만한 월영대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피아골 길이 갈리는 합수점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밀재로 향했습니다. 떡바위를 지나서 조금 고도를 높여 안부사거리인 밀재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2005년 7월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이 고개를 지나면서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해 아쉬워했던 용추계곡을 이번에는 거슬러 올라 이 고개에 오르자 계곡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한 여름에 다시 와 용추와 월영대의 진면목을 다시 보겠다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밀재에서 버리미기재까지는 백두대간 길이어서 이미 한 번 밟은 터라 길이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20분여 가파른 길을 올라 대문바위에 이르렀습니다. 대문바위 앞에서 남쪽의 대간 길을 돌아보자 문장대에서 천황봉을 잇는 속리산의 주능선이 확실하게 조망됐습니다.


 

  12시15분 해발 931m의 대야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 왼쪽아래에 자리한 중대봉은 산줄기도 수려했고 말끔한 암봉이 북한산을 빼어 닮은 듯 했습니다. 집체만한 바위가 굴러 떨어질까 걱정해 나뭇가지를 받쳐주는 산객들의 정성을 멍청한 짓이라 매도한다면 바위를 비롯한 모든 산식구들과 더불어 살라는 산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위태롭기는 이 바위보다 철쭉꽃이 더했습니다. 수직절벽의 바위에 틈을 내어 뿌리를 박고 꽃을 피우는 철쭉꽃을 보노라니 삶이 참으로 절박하면서도 진지한 것임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이 산에 함께 오른 어머니도 한분도, 또 저 만큼이나 걸음이 느리면서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쓴 아주머니 한분도 험난한 바위 길을 로프를 잡고 올라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10평 남짓한 암봉의 정상을 오른 이분들에 대야산이 펼쳐준 산줄기와 산그리메는 일망무제의 대 파노라마였습니다. 희멀건 암벽의 희양산과 그 뒤로 보이는 백화산, 용추계곡 아래 자락에서 우뚝 솟은 둔덕산, 남쪽의 속리산으로 내닫는 대간 길의 조항산과 청화산 및 그 너머 속리산 모두가 여기 대야산과 교우하는 산들입니다.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불란치재로 향한 것은 70도가 넘어 보이는 급경사 내림 길을 다른 일행들이 식사중일 때 서두르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내려가고 싶어서였습니다.


 

  13시45분 안부사거리인 불란치재에 내려섰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하산 길은 로프가 걸리지 않았다면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급강하 길이었지만 3년 전 비가 내려 미끄러운 이 길을 한 번 내려간 적이 있어 이번에는 그 때보다 훨씬 수월했습니다. 코스가 제법 길어 거꾸로 이 길로 올라오면 어깨쭉찌가 엄청 뻐근할 급강하코스를 다 내려서서 촛대재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흙길이어서 대간 길로 접어든 후 모처럼 편안한 길을 걸었습니다. 길이 편안하니 길을 걷는 저도 마음이 편안해져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5월의 풀꽃 들과 연초록 넓은 잎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3시 조금 지나 다다른 촛대재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든 후 10분 남짓 쉬면서 계절의 여왕 5월이 안겨준 신록의 활기찬 에너지를 한껏 만끽했습니다. 촛대재에서 십 수분을 올라  묘지 위 촛대봉에 다다르자 어렵게 내려선 대야산 정상이 참으로 우람하게 보였습니다.  다시 25분 정도 걸어 안부사거리인 불란치재에 도착했습니다. 용추계곡의 떡바위에서 맨 후미로 쳐졌을 때 제가 너무 늦으면 불란치재에서 바로 벌바위주차장으로 하산하겠으니 걱정 말고 앞서 진행하라고 후미대장께 말씀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취나물을 따느라 늦어서인지 제가 한참 앞서 도착했기에 오른 쪽 아래 주자창 길로 내려서지 않고 곧바로 직진해 버리미기재로 향했습니다.


 

  15시23분 버리미기재에 도착해 대간 길 산행을 끝냈습니다.

불란치재에서 곰넘이봉으로 오르는 길도 밀재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 못지않게 경사진 바위길이 많아 몇 몇 곳은 로프를 잡고 올랐습니다.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미륵바위를 보면 미륵불의 섬세한 손놀림에 감탄해 어느 누구라도 저처럼 카메라를 꺼내 들이댔을 것입니다. 깊지 않은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곰넘이봉에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혼자서 다소곳하게 앉아있어 모처럼 안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지됐습니다. 다시 한 번 로프를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섰다가 이번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헬기장에 올라섰습니다. 먼발치의 희멀건 희양산도 3년 전에 만난 제가 반가워 연신 싱글벙글하는 모습인데 길 건너 장성봉이 왜 이번에는 자기를 만나지 않고 버리미기재에서 멈추느냐며 뾰로통해 했지만 마냥 등을 돌릴 수는 없었던지 그리 멀지 않은 악휘봉과 함께 눈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제 뒤의 한 분에 우리나라 산들은 섬 산을 제외하고는 두 봉우리를 잇는 산줄기가 반드시 꼭 하나 있으며 백두산의 장군봉과 지리산의 천왕봉을 연결하는 딱 하나의 장대한 산줄기를 영조 때 여암 신경준 선생께서 백두대간으로 명명했음과 이번 밀재-버리미기재 산줄기가 바로 대간 길임을 설명하는 동안 어느새 버리미기재에 다다랐습니다.


 

  15시52분 벌바위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6시간 가까운 원점회귀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버리미기재를 넘는 차도는 한가했습니다. 버리미기재 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차도를 따라 내려서며 아카시아 꽃을 닮았으면서도 더 귀티 나는 이름을 모르는 하얀 꽃나무와 노란씀바귀 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노랑나비를 사진 찍고 나자 이만하면 호남정맥 종주 길을 대야산으로 잘 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삼겹살에는 소주가 제격인데 소주를 못 마시는 저는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하산 주를 대신했습니다.


 

  근처 산 거의다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를 맞아 세숫대야를 엎어놓은 듯 볼록 나온 봉우리하나가 물속에서 고개를 들고 끝까지 견뎌냈다는데 그 봉우리가 바로 대야산 정상으로 대야산의 이름이 이렇게 얻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많은 산객들이 이산에 오르는 것은 대홍수에도 침수되지 않고 온전하게 자리를 지켜낸 대야산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지켜내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겠다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산은 인생 최고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위 산행기 작성에 일만 성철용 선생님의 산행기를 일부 참조했습니다.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