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머리로 '치악산 상원사' 범 종 울려 은혜를 갚다
꿩과 구렁이의 전설이 있는 치악산 산행
윤도균 (ydk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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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정상에 있는 3개의 소원탑중 하나
ⓒ 윤도균
치악산

"꿩" 머리로 "치악산 상원사" 범종 울려 은혜를 갚다

 

어느 사이 겨울이 다 간 것 같다. 그런데 올겨울은 산행하며 언제 제대로 된 설경 (눈꽃, 상고 대)를 한 번 보지 못하고 지나는 것 같아 서운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차 내가 방장이며 한 달에 한 번 '일요산행'을 하는 "우리산내음" 카페 연산동 대장께서 올겨울 마지막 눈 산행을 기대하면서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산" 산행을 하자고 한다.

 

치악산 하면 어떤 사람들은 '치 떨릴 정도로 악산' 인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산행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치악산" 하면 6.26 전쟁으로 피난 나와 전기는 고사하고 한 달에 몇 되씩 배급받아 등잔에 불을 켜고 살때 하도 등잔불이 어두워 어쩌다 심지라도 돋우면 부모님께서 석유 아까운데 심지 올렸다고 혼이났던 어린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우 환경하에서도 나의 아버지는 항상 책 읽기를 좋아하셔 우리 가족 8명이 누우면 이(louse)  옮을 정도로 비좁은 토담집 단칸방에서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이면 아버진 언제나 낭랑하신 목소리로 희미한 석유 등잔불 아래 우리 6남매에게 읽어 주시던 우리나라 다양한 소설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콩쥐팥쥐전, 홍경래의 난, 목민심서" 등을 읽어 주셨다.

 

어쩌다 책을 읽지 않으시는 날에는 대신 우리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자식 교육을 위하여 언제나 당신이 몸소 공부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던 분이다. 그때 아버지께서 들려 주신 옛날이야기 중에서 "치악산 꿩에 대한 보은(報恩)의 전설" 이야기를 들을 때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슴 콩닥거리며 마음을 졸였는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다.

 

  
황골마을 지나 황골타방지원쎈타 가는길에 만난 버섯 모양 팬션 모습이 아름답다.
ⓒ 윤도균
버섯
  
황골탐방지원쎈타 지나 비로사 오름길에 올려다본 "입석바위"
ⓒ 윤도균
입석바위

 

그래서 난 치악산 이야기만 들어도 언제나 희미한 등잔불 아래 구성지게 책을 읽어주시거나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연산동 대장의 치악산 산행 제안에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OK' 참가키로 하고 (2012. 2. 19) 오전 8시 4호선 전철 사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일행 18명을 만나 단출하게 치악산 산행을 떠난다.

  

사당에서 우리 일행을 싫고 8시 출발한 전세 버스는 "여주휴게소"에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황 골 마을 어귀까지 2시간여만에 도착해 이날의 치악산 산행이 시작되는데, 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왜? "비로 사"까지 깎아지르듯 고도를 높이며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협곡에 많은 예산 처들여 자연을 훼손하며 아스팔트 포장을 하였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렇게 해놓고 더 웃기는 것은 모든 차량은 다 통행금지시키고  "치악산황골탐방지원쎈타" 직원과 "비로 사" 사찰 방문객 차량만 통행을 시키는 것은 너무 형평에 어긋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황 골 마을 어귀에서 비로사까지 무려 한 시간여에 걸쳐 지루하게 아스팔트 길을 걸어 비로 사에 도착해 비로 사 좌측으로 올려다보이는 20여 미터 높이의 거대 "입석 바위"를 돌아보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다.  

  

입석 바위에서 20여 미터 인근엔 "원주 소초면 흥양리 마애불 좌상"도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쁘다 보니 서둘러 비로 사에서부터 본격적이 가파른 오름길 산행이 시작되는데 울퉁불퉁 너덜겅 코스에 얼음이 얼고 곁들여 오래전에 내린 눈이 쌓여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을 당할 것 같아 일행들 전원 아이젠을 착용하고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깎아지르듯 고도를 높이는 안부 (비로 사 1킬로미터 이정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핼기장 "쥐 재너미고개"에서 치악산 정상 비로봉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 윤도균
헬기장

  
헬기장에서 바라본 치악산 정상 비로보 3개의 소원탑이 나란이 보인다.
ⓒ 윤도균
소원탑

 

 

그런데 잡목 숲 앙상한 가지 사이로 멀리 "비로봉" 정상에 소원 탑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비로봉이 그렇게 호락호락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선두에서 행여 정상에 먼저 오르면 기대했던 '설경과 상고 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먼저 오르다 보니 간이 헬기장 "쥐너미 재"에 도착한다.

 

이곳 헬기장 "쥐너미 재"는 옛날 쥐떼가 넘어간 고개라 하여  "쥐너미 재"라 불린다고 하는데 옛날 범 골에 범사(凡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쥐가 너무 많아 스님들이 쥐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절을 떠났다고 한다. 하루는 그 많은 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범사(凡寺)를 떠났는데 그 후 범사(凡寺)를 찾는 사람이 없어 폐사되었다고 한다.

 

이날 우리 일요산행팀은 이곳 헬기장 "쥐너미 재"에서 "치악산" 정상 비로봉을 올려다보며 올 한해 "무탈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모시기로 해 일행들을 기다려 시산제를 모시려니 전국에서 모인 산 님들이 칼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느라 입체여지 자리가 붐벼 시산제 모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한 시간여 서성 거리다 비로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차린 제물을 올리고 "치악산 신령님"께 2012년 올 한해 무탈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모시고 점심을 먹고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 오르니 오후 3시다. 그러다 보니 다행히 인파는 별로인데 하도 모진 칼바람이 불어 서둘러 인증 샷 사진을 찍고 곧바로 (사다리 병창, 세렴폭포) 방면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올 한해 "무탈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리고 있다.
ⓒ 윤도균
시산제

  
치악산 정상석 1,288미터
ⓒ 윤도균
정상석

하지만, 이곳 하산길은 평소에도 마치 하늘 사다리를 오르내리듯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팔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 이날은 잔설이 꽁꽁 얼어 사다리 계단마다 깔린 얼음 사다리 구간을 마치 '박수무당 작두타듯' 조심스럽게 하산을 한다. 상황이 이정도로 요주의 구간인줄도 모르고 이날 치악산 산행에 동생들과 아내에게 별로 험하지 않다고 함께 오자고 했었는데 다행히 모두 불참해 큰 액땜을 면한 셈이다.

  

이날 우리가 하산하는 "세렴폭포"에서 비로봉에 이르는 암릉 구간은 표고 차가 크기 때문에 급경사 구간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다리 병창 구간은 암릉 지대가 되어 안전을 위한 철사 다리가 많이 설치되어 위험은 덜 하지만, 그래도 노약자나 어린이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다리병창 (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함) 코스는 겨울철이면 (雪花)가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고 가을엔 단풍이 그 어느 명산 못지않게 절경을 이뤄 많은 산악인과 유산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세렴폭포" 지나 "구룡사"를 돌아보고 "구룡탐방지원쎈터"에 이르는 구간은 아름드리 소나무 밀림지대가 고즈넉하게 이어지는 코스로 하산길 피로를 풀 수 있는 산책 코스 정도 수준이다.

  

우리들은 오후 6시 조금 지나 이날의 치악산 산행을 모두 마친다. 그리고 곧바로 귀갓길에 들어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새말나들목 맞은편) "새말 토종 순대" 집 (033-342-3023)에서 18명의 회원님들이 따끈한 순댓국에 이슬이 서너 잔 마시고 나니 온종일 추위에 떨었던 몸이 확 풀려 귀갓길 내내 꿀맛같은 단잠을 자며 사당에 도착해

  

'형님, 아우' 다음 산행 때 다시 만나요. 약속을 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비로봉 정상에서 사다리병창 구간으로 하산중인 일행들
ⓒ 윤도균
사다리병창

  
일행들이 조심조심 사다리 병창 구간을 내려서고 있다.
ⓒ 윤도균
사다리 병창

"치악산 유래"

 

"옛날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을 향해 떠나 적악산 (赤岳山) 기슭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숲 속에서 꿩의 비명이 들려 주위를 둘러보니 잔솔밭 아래 커다란 비단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고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그네는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려는 꿩을 불쌍히 여겨 활을 당겨 구렁이를 쏘아 죽였다.

 

그리고 길을 재촉해 가는데 깊은 산중에서 해가 저물어 부득이 인가를 찾게 되었는데 어둠 속에 간신히 찾아낸 집은 어느 이름 모를 절간이었다. 문을 들어서면서 주인을 찾으니 이상하게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나그네는 하룻밤 자고 가기를 간청했다. 여인은 쾌히 승낙하면서 방으로 안내했다. 여인은 저녁밥을 차려다 주고 대접을 융숭히 해줬다. 저녁밥을 든 나그네는 피곤이 몰려 곧장 깊은 잠에 빠졌다.

 

잠속에서 몸이 부자유스러움을 느껴 눈을 떠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나그네는 깜짝 놀라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죄 없는 선비를 해치려고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구렁이는 두 갈래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손님은 오늘 오시다가 도중에서 살생했소. 그 구렁이는 내 남편이오. 그를 죽였으니 임자도 마땅히 죽음을 당하여야 하오" 하고 대답했다.

 

나그네는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구렁이는 "이 절 뒤에 절루가 있는데 그것을 세 번만 울리면 살려줄 수가 있소"하고 조건을 내 놓았다. 나그네는 자신의 활 솜씨를 믿고 그까짓 종쯤은 문제없이 맞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믿고 날이 새기를 기다려 날이 밝자 나그네는 절 뒤뜰에 나가 보았다. 그랬더니 구렁이가 이야기한 대로 종루가 있고 그 끝에는 종이 달렸었다.

 

그러나 그 종루는 어찌나 높은지 다른 종루와는 달랐다. 나그네는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고 힘껏 당겼다. 그러나 첫 화살은 종에 미치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둘째 화살도 첫 화살처럼 종을 미칠 듯 미칠둣 하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그네는 마지막 화살을 뽑아 있는 힘을 다하여 다시 종을 향해 쏘았다. 마지막 화살도 종에 미치지 못하고 그냥 떨어지고 말았다.

 

나그네는 이제는 할 수 없이 구렁이에게 죽임을 당해야겠구나 탄식하면서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 이게 웬 변고인가? <뗑! 뗑! 뗑!>하고 종루에 종이 세 번 울리는 것이었다. 종이 울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구렁이의 변신인 소복한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려 나그네는 위기를 면하게 됐다.

 

나그네는 종소리가 난 것이 하도 이상해서 종루 밑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꿩 세 마리가 머리가 터진 채 죽어 있었다. 전날 살려준 꿩의 식솔들이 은혜를 갚으려고 나그네의 위험을 구하고자 머리로 종을 치고 죽은 것이었다. 이후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적악산 (赤岳山)이던 산 이름을 꿩이 보은(報恩)을 한 산이라 하여 꿩 치(稚)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고 바꾸었다 한다."

 

 

  
구룡사 대웅전
ⓒ 윤도균
구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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