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 산행기


 


 


 

‘10년간 100군데 산 찾아다니기 그 스물두 번째’


  

1. 우연한 발견

 

 산행을 할 때 남의 산행기를 출력해 참고하다보니 사진이나 필요 없는 내용이 많아 지니고 다니기에 불편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필요한 내용만 복사하다가 한글의 새 글에 붙여 편집해 사용하면 선명하게 한 장으로 요약된 내용을 지닐 수 있어 편리하다. 간단한 발견이지만 미련스럽다보니 이제 발견했고 보물처럼 소중했다. 고딕체, 진한 글씨, 크기 10포인트로 세팅한 상태에서 행선지주소, 그리고 거리가 나타난 등산코스, 대중교통편, 현지교통편, 특징 정도로 정리해 편집하니 매우 훌륭했다. 순서대로 출력해 스크랩해 두고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사소한 발견 때문에 아침이 즐거웠다.

 

 

2. 장곡주차장  

 

 시간이 있어 주차장 한편에서 물건 파는 안노인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들으니 연세가 여든넷이라는데 무척 바빴다. 스무 가지 잡곡과 과일, 차 등을 늘어놓고 팔다보니 손님이 네댓 명만 몰려와 말을 걸어도 정신이 없다. 그걸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회복지재단이니 실버타운 이런데서 유서 쓰는 방법 등을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자꾸 그것과 대비됐다.

 

 그렇다면 오가는 고객들과 바쁘게 이야기하고 물건팔면서 고된 하루를 보낸 후 새로운 아침을 맞는 삶이 의미 있고 좋은 건지, 연금 타 먹어가면서 남는 시간에 유서 쓰는 연습하는 등 음습한 죽음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게 나은 건지 영 헷갈렸다. 거기다 멜라민 분유 파동 때문인지 뭔지 때문에 잡곡은 물론, 밤이며, 서리태, 둥굴레차 등 모든 품목에 국산이라고 강조한 표찰이 붙어있어 더 뒤숭숭하다. 그럼에도 불안한지 파는 물건이 국산인지, 중국산은 아닌지 또 물었다. 연세를 보니 가짜 놓고 팔 것 같지 않아 사긴 사는데 마음이 안 놓여서다. 할머니는 귀가 좀먹었다. 점심 먹기도 바쁘다. 누가 이따가 가져간다고 밤을 까놓으라고 해서 더 바쁘게 됐다. 요기로 사오라고 시켰는지 70대 허리 굽은 할머니가 듬성듬성 큼지막하게 썬 묵을 간장과 함께 가져왔다. 한 조각 입에 넣더니 바빠서 더 못 먹는다는 거다.

 

 그때 밤 사려는 여자가 한 되가 얼마냐고 묻자 뭐라고 대답하더니 한 됫박을 담아주었다(편의상 두 됫박을 한 되라고 했다). 어릴 때 본 작은 나무됫박이다. 그 됫박으로 60년을 장사한 모양인데 그거 하나에 3천원이면 너무 비싸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 됫박은 반 되짜리라는 거다. 그래서 두 됫박을 줘야한다고 수군댔다. 귀가 먹었지만 본인도 적다고 생각했는지 “‘더 줄까” 하더니 덤으로 그만큼 더 주었다. 반 됫박씩 두 개면 한 되가 되어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덤을 더 받은 여자는 기분이 좋아 둥굴레까지 포함해 8천원어치를 사고 만원을 내는데 할머니는 정신이 없어 2천원 거슬러 줄 것을 8천원을 내주니 여자가 정색을 하고 2천원만 받았다.

 

 연세가 많다보니 셈이 흐린 건가.

 

 이때 이 여자 밤 사는 것을 보고 보고있던 다른 여자가 싸다고 3천원에 밤을 두 됫박 달라고 하니 정색을 하며 한 됫박에 3천원이란다. 먼저 덤으로 산사람은 1500원씩 산 셈이다. 그런데 나중 사려던 여자가 그걸 따지자 그렇게 안했다는 거다.

 

 이걸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남으면서 파는 건지. 20대에 혼자돼 본인 말대로 집에서 대대로 키운 것을 판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어디서 사다가 판다면 손해 보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삶 때문에 건강이 유지되고 즐겁다면 그렇게 사는 게 어느것보다 더 낳지 않은가?

 

 요즘 노인들은 눈만 뜨면 어디 아픈데 없나 부러 찾아다니는 세상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픈 것을 숨기고 일했다. 물건 파는 걸 보다보니 대단해보였던 이 노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3. 칠갑산 산행 여정

 

 칠갑산은 561m의 낮은 산이다. 매운 고추로 유명한 충남 청양에 있다. 백제시대에는 사비성의 진산으로 불렸다. 만물의 근원을 일곱 가지(地,水,火,風,空,見,識)로 보아 七이 붙여졌고 싹이 난다는 뜻에서 甲이 붙여졌다고 소개했다. 올라가다보면 정자처럼 생긴 자비성도 있다. 칠갑산에 올랐다가 사찰로를 걸어 장곡사를 거쳐 장곡주차장까지 내려왔다. 총 8.3km 거리다.

 

산행 경로를 자세히 열거하면 이렇다.

 

1. 서울돈암동출발(06:00) - 성신여대환승 -충무로 환승 - 남부고속터미널(06:37)

 

2. 남부고속터미널출발(07:00) - 청양도착(09:37) - 대전행 - 칠갑산주차장(10:00)

 

3. 칠갑산주차장입구 - 칠갑산광장(면암최익현선생동상) - 자비성 - 칠갑산(12:00)

 

4. 칠갑산 - 사찰로 -장곡사 -장곡주차장(1:00) - 청양행버스(15:30 - 강남고속터미널(1

6:10) - 충무로 환승 - 성신여대환승 


 

4. 청양행 시내버스

 

 일행이 없으면 생각을 많이 한다. 일정에 쫓길 일도 없다. 단독여행의 장점이다. 요즘 들어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누가 왜 사는가 묻는다면 좋은 계획을 세우기 위해 산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삶이 새롭다.  좋은 계획을 세우는 동안은 꿈꾸는 것 같다.

 

 며칠 전 ‘마지막 강의’를 사서 읽게 된 것도 내 고객이 될 뻔한 사람이 권해서다. 시한부 인생이 쓴 자서전이다. 사람들은 건강에 이상이 생길 때 비로소 무언가 남기고 싶어 한다. ‘마지막 강의’를 읽도록 권한 사람은 모친의 자서전을 너뎃달 안에 남기려고 했지만 모친의 병이 악화돼 병원에서 먼저 데려갔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그러나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그날 바로 사서 읽는다. 재미없는 책은 독자를 고문하는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5. 서울로

 

 이날 나처럼 단독 여행하는 젊은 여자를 보았다. 명랑하고 야무져보였다. 이야기도 잘하고 뭔가 통할 것 같았다. 오디세이기인가. 서울행 버스를 함께 탔다면 많이 떠들었을 거다. 그 점이 아쉬웠다. 나는 명함을 주면서 연락하라고 말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이별의 아픔이 오가는 것 같다. 그 여자는 대천인가 보령행 시내버스표를 샀다. 비교적 수월한 산행을 끝냈다.

 

o.08.9.27. 네이버 블로그 ‘정갑용의 직업여행’; http://blog.naver.com/doloomul/

 

o.08.9.27. 다음 블로그 ‘GRM’ http://blog.daum.net/cnilter/

 

o.08.9.27. 한국의 산하.http://www.koreasanh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