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3

인생은 우왕좌왕인가!

 

 

 

 그동안 별 탈 없이 1년여 간의 연수를 마치고 원대복귀를 기다리면서 하루 쉬고 하루 놀고먹는 멍한 일상이 폭이 점점 길어질수록 훨훨 날 수 없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새장에 갇혀버린 새처럼,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암울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듯 혼란스러움에 휩싸이고 반복되는 Sisyphus의 몽상에서 뒤척거리다가 그래도 내가 힘차게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간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또 다른 삶의 방식을 터득하려면 산에 오르고 또 올랐기 때문이다. 
 

 촉촉하게 배어나는 땀방울과 비릿한 땀 냄새가 언제나 싫지 않고 친밀하게 느껴지고 내리막의 편안함보다는 오르막의 고통스러움을 먼저 생각하면서 힘든 육체적 고통을 감내한 뒤에 오는 짜릿한 정신적 쾌락, Mountain orgasm을 맛보려고 오늘도 어두운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산은 이 세상 온갖 것들을 어우르는 화합과 용서의 공간이고 포근하고 편안한 안식을 주는 쉼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서슴없이 그 품에 안기고 또 안긴다. 마치 피로를 풀기 위해 뜨뜻한 욕조에 삶에 찌든 고단한 몸뚱이를 밀어 넣는 기분으로 그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산 속으로 내 몸을 서서히 밀어 넣는다. 
 

 다사다난했던 2003년 한해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저물어갔다. 무엇 하나 반듯하게 이루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세월은 덧없이 흘러 진한 아쉬움을 남긴 체 또 한해가 훌쩍 지나가버린다. 
 

 대학교수들의 설문조사에서 2003년의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四字成語로 “우왕좌왕右往左往”을 뽑았다고 한다. 지난해는 이익집단의 욕구가 일시에 분출되었으나 원활한 개혁시스템이 적절하게 작동되지 않아 모든 것이 뒤죽박죽 갈팡질팡한 것 같아 그런대로 공감이 간다. 
 

특히 도덕불감증에 사로잡힌 부패한 일부 정치인과 기업인들, 끝이 보이지 않는 실업문제 등 사회 전반에 팽배한 계층간 , 세대간의 갈등의 폭은 그 골이 더욱 깊어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힘의 원리로 밀어붙이려는 사회현상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만 한다. 
 

 가슴이 뻥 뚫리게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고 그저 답답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다보니 이제는 도덕불감증에 중독되어 쇼킹한 뉴스가 없으면 오히려 왠지 초조해지는 것은 너무나 한심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일이나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가 우왕좌왕의 사전적 의미다. 지금 우리 앞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산적해있는데 왜 이처럼 우리 사회가 나아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만 있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추악하고 낡은 과거의 그림들을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새로운 창조적인 밑그림을 그려야할 중요한 시점에 우리들이 서있는 것이다. 지나가버린 과거 속에는 새로운 도약의 그 어떤 에너지나 이미지들이 잠재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기에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甲申年 새해에는 과거의 추억 속에 사로잡힌 인식의 대전환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져 희망을 꿈꾸는 한해가 되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살아서 헤엄치는 물고기만이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를 수 있듯 과거를 꿈꾸는 사람은 절대로 가치 있는 삶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산행에 있어서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걸어야한다. 자신의 체력과 안배하지 않고 지나치게 과욕을 부리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남들이 해맞이를 보러간다고 하니까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따라나섰다가 궁상스럽게 추위에 떨고 서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준비 없이 신기루를 쫒아 무작정 자신의 괘도를 일탈하였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반드시 가치 있는 삶을 엮어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하여 자기를 변화시키고 발전을 시도하여 자기향상을 이루어야한다. 무사안일과 현실 안주에 길들여지면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지극히 보편적인 삶의 이치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안일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길들여진 사람은 결코 시대를 변화시키거나 이끌어갈 수 있는 큰 그릇이 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한 점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짧디 짧은 찰나의 생을 허망하게 마감하고 말 것이다.  반복되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은 그 어떤 삶보다 너무나 아름답고 진중(珍重)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의 삶의 여정은 하찮은 자신의 지난 일들을 뽐내기에는 너무나 짧고 소중하고 또 귀중한 시간의 연속임에도 그저 물 쓰듯 허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므로 별로 보잘 것 없는 자랑거리에 눈과를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한 갈음 한 걸음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산행과 같은 자세로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불거져 나오는 삶의 불만과 욕구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간다면 진정 창조적인 삶을 이루어갈 것이다.
 

 산길을 걸어가다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일까 알아야하듯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서있는 현재의 위치와 주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한다. 그럼으로써 올바른 시간의 축을 꽉 움켜잡고 의미 있는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듯 우왕좌왕한다면 훗날 회한의 눈물을 흐릴 것은 자명한 삶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