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발 전날

500ml물병 2개 를 포함한 배낭을 저울에 올려놓았더니, 11Kg
과일이라고는 오이 한개도 없으니....아무래도 안되겠다.


근처에있는 E마트에 가서 제일크고 당도높은 사과 10개를 사갖고, 넣으니,
40리터 배낭 덮개가 안 닫혀, 부피가 큰 라면을 모두 빼고


위/아래로 내려치고, 좌우로 흔들어대니 겨우 닫힌다.
다시, 저울에 배낭을 올려놓으니 14kg !!!!!!


마눌은
지리산에 사과 팔러가여? 짐에 눌려서 가지도 못할걸.
산행은 배낭이 가벼워야 되는거여. 얘들 소풍가는것두 아니고. 쯧쯔.....한참 몰라.


2. 첫날 2004. 9. 5일 05:00 성삼재출발 - 13:52 연하천 도착(8시간52분)

소식 체질인지라
구례터미널에서 밥 반공기에, 우거지국물 몇모금 뜨고는 김밥 두줄을 샀다.


화엄사에서 부부1팀, 나홀로 2팀이 내리고
05:00 칠흙같은 어둠속의 성삼재도착.


긴장해서인지,
헤드랜턴 건전지 인써트를 끼우는데 맞지않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럴줄 알고, 집에서 몇번 연습했는데,
성삼재에는 가로등이 있을꺼라는 생각으로 눈감고 연습을 빼먹었더니만....


겨우 불을 켰을때
30여명의 산꾼들은 모두가 어디로 가 버렸는지, 랜턴 불빛조차 보이지를 않는다.


날쌘돌이로군,
나하군 게임이 안돼, 순간에 기가 팍 꺽여버린다.



베낭을 어깨에 짊어지니, 에구야................. 걸어가면서, 배낭끈을 아무리 달래줘도 어깨가 한사코 배낭을 거부한다.


베낭무게에 짓눌리고, 발목에는 모래주머니를 달았는지
치질걸린 모양새로 어그적 어그적 걸음을 뗀다.


5분도 안되어 ...

어둠이 두렵고 이 컨디션으로 2박3일 지리산행이라,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날이새면 포기하기로 맘먹고 더 더...천천히 걷는다.

뭐라고 변명하나...

마눌은 이 세상 하직할때까지 궁지에 몰릴때마다 비장의 무기로 써먹을테고.
직장동료...친구들... 거봐, 그 나이에 뭔 지리산이야.

에구 쪽 팔려
..............................

어둠이 걷히니, 이왕이면
노고단 대피소 구경이나하고, 라면이나 끓여먹고 하산하지, 언제 또 대피소 구경하겠남?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06:30분.
식욕을 못느껴 그대로 통과한다.

오늘 목적지는 연하천.
도착예정시간은 17:00. 12시간 산행 계획이다.

그토록 어깨가 배낭을 거부하고,
발길에 모랫주머니를 달아주고 앙탈을 부렸지만

어느새 배낭은 등짝에 착 기대어 내 몸의 일부가 되었고
발걸음은 새털모양 가벼워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제서야 시동이 걸린 모양이다.

반야봉도 생략한 12시간 연하천 산행이라
남는게 시간이요, 남는게 먹는거요. 남는게 쉬는거다.

이번 산행주제는
종주도 아니요, 탐방도 아니요. 그저 유람이다.
힘들면 그대로 하산이다.

임걸령 샘가에서
차디찬 김밥 한점을 입에무니 목이 콱 멕힌다.
반줄도 먹지 못하고 사과를 씹어댄다. 벌써 두개째니 배가 부르다.

화개재 공터에서
점심으로 김밥 반줄도 못먹고, 사과로 대신한다.

마침,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명의 배낭이 가벼워 보여,
점심준비가 있느냐 물어보니, 준비 못했다해서 김밥 한줄을 나누어 주었다.
맛있게 먹어주는걸 보니, 내가 먹은양 내 배가 더 부른것 같다.

콧노래를 계속 흘러대며 산행하니
추월하거나, 마주치는 산객들은 저마다 웃어준다.

 



어느새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13:52분.
성삼재에서 여기까지 8시간 52분.

종주꾼들은 천왕봉을 넘어 로타리대피소에 있을 시간이다.

체력은 충분히 남아있어
예약은 안했지만, 내친김에 벽소령으로 내뺄까 하다가, 비박준비도 안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이리 시간이 널널한줄 알았으면, 반야봉에 둘를걸...후회스럽다.

낮에 찬 김밥을 먹은게 탈이났는지, 소화가 안돼 훼스탈 두알에 도움을 청하고
식욕이 없어, 저녁으로는 대피소에서 더운물 넣어주는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관악산 팔봉을 즐겨 타고, 지리산행 4번째인데, 이번엔 꼭 일출을 ... 40대초반의 산꾼.
도봉산을 매일 오른다는 70대 초반의 홀로 산꾼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분다, 내게 지리산 겨울산행을 권한다.
그분들의 배낭이 예사롭지 않아보여, 체면불구 가격을 물어보니,

에구야 내머리 터진다. 마눌에게 얘기했다가는 그날로 노숙자 신세가 될게 뻔하다.

자기가 필요한 기능의 장비를 구하다 보면, 비싼값을 치룰수밖에 없다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왁자지껄, 앞마당이 소란스럽다.
8명의 20대 산객들이 하의는 내복바람에, 스키화에, 묘하게 생긴 배낭을 메고 들이 닥친다.

흠...돈좀 치발렀구만.
야...K2 원정대 저리 가라구만...다들 한마디씩 한다.

오늘의 산행로는
관악산 연무암 오르는 너덜지대에 비하면 훨씬 편했고
화개재 550여 계단 역시 청계산 700여개 계단에 비하면 편한 길이었다.


3. 둘쨋날 9. 6일 07:20분 - 16:37분 장터목 도착(9시간 17분)

눈을뜨 06:00경이다. 계획은 출발시간인데.

푸욱 숙면을 취하고 보니, 기분이 매우 상쾌하고 몸이 아주 가볍다.
5분여 맨손체조로 몸을풀고

밥 반공기분에, 대피소에서 미리사둔 컵라면을 풀어
라면밥으로 식사를 마친후 07:20에 출발했다.

안개가 자욱하여 보이는건 산길 좌우의 나무와 발밑의 돌뿐이다.
이따금 가랑비도 내리고,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주어 산행에는 최고의 날씨인것 같다.

이 바람이 태풍의 전주곡으로 끝내 천왕봉을 오르지 못하고, 백무동으로 하산하게 될 줄이야.

마치 에어컨을 달고 산행하는 기분이 들어,
장터목에 도달할때까지 땀도 거의 흘리지 않코, 아주 편안한 산행을 할수 있었다.

벽소령을 지나는데
아저씨!. 20대 아가씨 3명이 아는체를 한다. 연하천 산객이었다.

얘가 다리가 아픈데 어쩌면 좋치요. 태풍도 온다는데.
웬 태풍? 뉴스에서 들었단다.

지나던 산객은 원래 지리산은 그러니, 갈때까지 가보라고 한다.

허지만
나는 그들에게, 친구가 다쳤으니 여기서 음정으로 천천히 하산하기를 권유했더니
그들도 수긍하여 음정쪽으로 하산하는것을 보고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태풍이라....일출은 날샜구먼.

세석의 원두커피맛이 일품이라해서
커피한잔 먹으려했더니 매점은 굳게 자물쇄로 채워져있고
대피소는 보수 공사중이어서 산만한 기분이다.

에이스 비스켓 10조각과 오늘 세번째 사과 한개를 씹는것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리 좋타는 세석평전은 안개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코,....황당하다.



세석에서 장터목에이르는 산행로는 좌우가 트여서 경치가 볼만한데....
보이는건 안개와 주변의 정원석(?)과 어우러진 나무들...발밑의 돌뿐이다.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고, 오밀조밀 꾸며논 모양새가 개인 정원을 산책을 하는 기분이다.

건포도 한봉지를 꺼내, 몇개씩 계속 털어 넣으면서,

 



이바위에도 앉아보고, 저바위에도 앉아보고 아기자기하고 오붓한 산행을 하다보니
16:37분 어느덧 장터목 대피소에 이르게 되었다.

일기 덕분으로
오늘 산행도 최고의 컨디션으로 일요일 관악산을 다녀온 기분이다.


태풍의 영향탓인지 바람이 장난아니다.

밥하기 싫은데, 대피소 매점에서 햇반을 렌지로 뎁혀준다기에 얼른사들고
맨밥에 멸치볶음과 고추장으로 대충 저녁을 때웠다.

20:00쯤 대피소 직원이 지금부터 개인행동 금하고
내일 산행은 대피소 지시에 따라 하산해야한다고 안내한다.

일출은 커녕 천왕봉도 물건너갔으니...맥이 빠져버린다.

백무동 급경사 하신길뿐인데....
거기다 지리산은 비오는게 아니라,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다는데.....

남아있는 식량은 사과3개, 쌀 2끼분, 비상식/행동식 각1끼분 이걸로 충분하니

매점에 들러 내일아침 먹을 라면한개 준비해 놓코.
이젠 남은건 내일 1등으로 일어나 1등으로 아침해 먹고, 보따리 단단히 싸두고 준비하는것뿐.

그럼, 지금 할 일은 뭔가...... 그건 바로 잠이 보약이다.


4. 셋쨋날 07:30 - 10:45 백무동 매표소 도착(3시간 15분)

05:00경 일어나 코펠과 식수병을 들고 강풍의 비바람을 헤치고 20여미터 아래로 내려가
식수와 코펠에 물을 채우고 취사장에서 라면밥을 해치우고
제자리로 돌아와 짐정리를 단단히 해 두었다.


무릎/발목/발바닥/남아있는 체력은 평상시와 다를게 없는 A급이다.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지금부터 역종주도 충분히 할 만하다.

완전무장하고 대기중에있다가
07:30 대피소 지시에따라 1진으로 출발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을 못 먹은것 같다.

빗길 위험한 너덜지대 하산길을 왜 그리들 서두는지....
10분이 안되어 제1진 팀은 멀리 앞서가 보이지 않코.

나는 안전 최 우선으로 더 더 천천히 하산길로 접어든다.
여기서 만에 하나 발목이 접힌다면(비상시 착용할 발목보호대 준비되었음) 고생길이다.

주위 산객들중에 무릎부상, 발목 접힌사람들 6명을 직접 목격했으니...

장기산행에는
무릎보호대/발목보호대/접지력이 우수한 등산화/바닥 특수깔창/쌍스틱은 필수이다.

산행시작전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하산이 끝나야만 보호대를 벗는게 습관화 되어있다.
물론 쉴때마다 보호대 접착대를 풀러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주는것은 당근이고.

등산화 바닥에 깔창은 떼버리고,
벌집형 국산 젤깔창과 모 외국산 깔창을 번갈아 시험해본 결과
외산 깔창의 성능이 우수하여 이번 산행길에 택했고,

90%이상이 바윗길인 이번 산행길에서

이 깔창이야 말로,
마치 우레탄트랙을 걷는것 처럼 발바닥을 편안하게 해 주었음은 물론
장딴지.허리와 무릎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1등 공신이었다.

거기다가 쌍스틱은 두발로 걷는 인간을 네발로 걷게하므로서 체력소모를 덜어주었고
두 무릎에 가하는 하중을 분산시키고
너덜지대를 네발로 안전하게 통과할수 있어 미끄러지거나,
밥목이 접힐뻔한 위험을 사전에 제거해주었다.

제2진 팀이 나를 앞질러 간다.

이때 한명이 나를 보고, 뒤로 빠지더니 기다리고 서있다. 화엄사 산꾼 청년이다.
이제부터 자기가 뒤따르겠다고 앞장 서라 한다. 그러면서 1진을.....나무란다.

태풍이 지나간것 같고, 비도 그쳤고
뒤에서 누가 뒤따르면 불안해서 산행을 못하는 체질이니
염려말고 앞서가라 해도 한사코 안된다고 한다.

더 이상 호의를 마다할수도 없어,
뒤를 의식하지 않코 내 페이스대로 안전위주로 하산을 하다보니

제2진에서 청년 1명이 무릎부상으로 뒤쳐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쯧쯔....

이젠 오히려 화엄사꾼과 같이 그를 보호하며 천천히 하산하게되는데
내가 스틱을 주어도 한사코 거부한다. 아마 내 나이가 있는지라 부담이 가나보다.

중간에 배낭을 열어 남은 사과 3개를 꺼내 한개씩 나누어 주니
꽤나 맛있게 먹는걸 보고, 마음이 흡족하다.

3일동안 과일 구경도 못했다고 한다.

 

출발한지 3시간여만에 백무동매표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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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천천히 백무동 계곡 구경하다가 갈테니
먼저들 가세요.

하산주, 산채비빔밥 값은 모두 계산 끝냈으니.......
선배님 고맙습니다.

무릎손상으로 하산이 힘들었던 30대청년도 무사히 하산하여 더욱 기뻣다.

산행에서 계속 앞서거니 뒷서거니 마주쳤던
30대, 40대 2팀, 20대청년1팀, 30대부부1팀이
30년을 살아온 내고향 인천이었고,
거기다 화엄사 코스를 택한 40대는 대학 16년 후배였다.

그들은 모두 11:30분 동서울행 버스로 떠나고.

 



혼자 남아 비오는 백무동 계곡 주변을 한시간여 거닐다가
가게로 돌아오니,

그제서야
주인부부가 맛있는 점심을 드시는데, 찌게 냄새가 예사롭지 않다.

계곡에서 지렁이 낚시로 잡아올린 산메기 매운탕인데.
어서 올라 오라고 한다.

민물매운탕을 유독 좋아하기에, 체면불구 맛있게 한그릇을 비웠다.
그래 바로 이맛이야!

토종꿀을 땃다면서 꿀을 채로 내리면서
벌집채 칼로 썰어 몇점을 주길래 염치불구 얻어먹는다.

이게 백화점에서 지리산 상표 붙으면 한상자에 10만원이 넘는거요.
여기서는 주문받으면 바로 35,000원에 배송해준다고 한다.

장터목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여, 식욕도 별로 없고.
도토리묵 몇점에 하산주 석잔으로 끝내렸는데....

부른배에, 자판기 커피 한잔 빼들고, 13:30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가를 스쳐지나가는 주변 산세는 왜 이리도 어름다울까?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거림-세석-장터목-천왕봉-중산리 산행을 계획한다.
집에 도착하니 9달된 요키 "이브"가 강중강중 뛰어대며 좋아 난리부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