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초월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고비고비 넘어 점점 득도의 경계에 이르렀슴을 보는 듯하오

 

아드님이야 훌륭하게 잘컷으니
시집 잘못 온 죄로 생과부 만들어서야 되겠소

 

리얼하게 죽음을 극복한 얘기 직접 들어보세나
오늘 내일중으로 전화주시게

 

================== 원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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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에서 덕유를 잇는 사흘간의 2차 유랑. . . (여원재-육십령)

>

 

>

딱 4주만에 다시 길을 나섰으니, 머리가 나빠도 한참 나쁜 녀석입니다.

>

 

>

8월 초, 천왕봉에서 여원재까지 2박3일에 걸쳐 지리능선을 밟으며,

>

뻔한 체력과 추위로 고통스러워, 다시는 등산하지 않겠다며 공공연히 떠들었었지요.

>

채 한 달도 되지않아 다음 구간을 이어간다고 배낭을 매고 나섰으니,

>

머리가 나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병이 단단히 깊었던 것 같습니다.

>

무슨 병이냐구요? 바로 대간병이지요. . .

>

 

>

 2004. 9. 4(토) – 9. 6(월)

>


 경로

>

 

>

9월 4일(토, 1일차)
여원재(12:10) – 철탑(13:05) – 암릉구간(14:09) - 고남산 정상(14:15/25) – 매요마을(15:58/16:30) – 618봉(17:12) – 사치재 88고속도로(17:35) – 헬기장(18:00) - ?봉(18:37) – 새맥이재(19:00) 야영

>

 

>

9월 5일(일, 2일차)
새맥이재 출발(04:15) – 칼바위 지나 바위봉?(05:45) – 아막산성(05:27) – 임도(06:51) – 복성이재(07:04) - ?봉(07:30) – 봉화산 정상(09:18/30) - ?봉(10:01) – 고개(11:10) - ?봉(11:29) – 고개(11:55) – 월경산 전 갈림길(12:40) – 중재(13:30/14:10) – 백운산 정상(17:15) 야영

>

 

>

9월 6일(월, 3일차)
백운산 출발(05:45) – 무령고개 갈림길(07:02) – 영취산 정상(07:12/25) – 중간지점 이정표(09:36) – 북바위(10:08) – 깃대봉(11:23/40) – 샘(11:54) – 육십령(12:50)

>

 

>

 거리 및 소요시간 : 도상거리 48km, 26시간 5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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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근 및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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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접근시 : 인월까지 승용차로 이동, 인월에서 남원 시내버스로 여원재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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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복귀시 : 육십령에서 거창행 시외버스 타고 안의에서 하차, 안의에서 시내버스

>

       로 함양으로 이동, 함양에서 시외버스로 인월로 이동, 인월에서 승용차로

>

       직장 복귀.

>

 

>

 걸으며

>

 

>

남원시 운봉읍 서쪽끝 장교마을앞, 버스에서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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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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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유랑시, 1 구간을 마치며 “유랑 끝, 고생 끝, 휴~”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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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곳입니다.

>

다시 오지 않으리라 했었는데 결국은 여기 이 자리에 다시서고 말았군요.

>

북쪽으로 오늘 첫번째 목표물인 고남산이 우뚝합니다.

>

마음 굳게 먹고 긴 여정에 듭니다.

>

 

>

<여원재. 우측 숲으로 진입>

>

 

>

<대간은 논밭을 지나고. . . ,  멀리 고남산>

>

>

 

>

대간길은 장교마을을 우측에 두고 서쪽으로 빙 둘러 마을 야산같은 능선과 밭을 타고

>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 올라 갑니다.

>

리번이 보이질 않는 곳이 간간이 있어 처음부터 과외수업을 합니다.

>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한데 날마저 더우니, 길 찾으랴 되돌아오랴

>

처음부터 마음이 바쁘고 온 몸에 땀이 흐릅니다.

>

 

>

백두대간보호법이 제정되면 논밭이 묶여 경제적인 손해가 예상되어

>

대간길 마을 주민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이고

>

일부에서는 동네 근처의 대간 리번들을  수거, 파기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

아닌게 아니라 리번이 꼭 있었을 법한 갈림길에서 흔적조차 없는 경우가 있어

>

길 찾느라 왔다갔다하며 헛힘을 씁니다.

>

 

>

한 시간 가량 지나 철탑 밑에서 처음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봅니다.

>

땀이 비오듯 하고 목이 타는데, 턱밑 주위가 풀에 쓸려서인지 가렵습니다.

>

과외수업을 한 때문인지 한참을 왔는데도 고남산은 아직도 저 멀리 버티고 있으니,

>

무언가 썩 탐탁치 않은 출발입니다.

>

두 무릎도 벌써부터 통증이 느껴져 과연 사흘을 버틸수 있을 지 걱정이 됩니다.

>

살살 달래가며 걸어야겠네요.

>

 

>

밧줄이 매달린 암릉구간 몇 곳을 올라 드디어 고남산 정상입니다.

>

초반에 헤맨 탓에 그리 높지도 않은 곳에 올라 꽤나 기뻐합니다.

>

발아래 운봉 들녁이 그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

지난 번에는 초록빛이었는데, 이제 반쯤 누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

저 누런 빛은, 이 따가운 초가을 볕에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가,

>

곧 농부들의 꿈인 황금색으로 바뀌어가겠지요.

>

바라만 보아도 제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

올 가을엔 그 풍요로움을 농부들이 가득 누리게 되길 바래봅니다.

>

누런 들판 사이사이로 낮은 구릉들이 마치 섬처럼 보입니다.

>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사방 멀리 끝없이 산들이 이어집니다.

>

 

>

<고남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대간길>

>

 

>

<고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운봉 들녁>

>

>

 

>

고남산 정상을 뒤로하고 이어 나타난 중계탑 철조망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내려갑니다.

>

숲길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작은 고개도 몇 개 지납니다.

>

지도를 보아도, 선답자분들의 산행기를 보아도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

그저 눈 크게 뜨고 리본만 찾으며 이어갑니다. 

>

어떻게든 오늘 안에 88고속도로를 건너는 사치재까지는 가야하겠기에

>

그리 어렵지 않은 야산 능선길을 부지런히 가다보니, 어라, 벌써 매요마을입니다.

>

고남산까지는 헤맨데 반하여 매요리까지는 너무 쉽게 도착하였군요.

>

 

>

마을길을 따라 그 유명한 매요휴게실에 들릅니다.

>

할머니가 오수를 즐기시는데, 라면을 끓여달라 부탁하고

>

그 사이 막걸리를 한 통 마십니다.

>

대간하는 분들 대부분이 들르지 않았을까 하는 곳입니다.

>

백두대간보호법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들과 이런 저런 세상사를 주고받으며

>

라면을 맛있게,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십니다.

>

산행시 술을 자제하는 편인데, 모처럼 막걸리 몇 잔을 걸치니 기분이 고조됩니다.

>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길을 이어갑니다.

>

 

>

<매요마을을 떠나며 뒤돌아본. . . >

>

 

>

유치3거리에서 618봉을 단숨에 올라 88고속도로에 내려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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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뜸한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합니다.

>

이정표에 직 복성이재 4.8km, 후 여원재 12.9km라네요.

>

이어지는 능선을 오릅니다. 술기운에 사치재까지는 어렵지 않게 오르내려왔는데,

>

이 오름길은 힘이 듭니다.

>

내일어치 물을 가득 담아서 무게가 느껴집니다.

>

대간 중간중간에 막걸리 가져다 놓는 분 어디 없나요?

>

 

>

<88고속도로 사치재>

>

 

>

오름길에는 소나무들이 시커멓게 서있습니다.

>

10년 전엔가 산불이 났었다는데, 아직도 시커먼 모습으로 앙상하게 팔을 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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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쓰러지지 못한 나신을 보이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듯 합니다.

>

“늬들, 산불내지 마!”

>

 

>

<10년전 산불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

>

 

>

헬기장에 도착하여 주위를 둘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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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발아래 지리산 휴게소가 보입니다.

>

남쪽으로 높은 봉우리가 인월의 덕두봉인가요? 아무튼 조망이 좋은 곳입니다.

>

 

>

이어 키 넘는 억새를 헤치며 전진합니다.

>

오늘 목표가 사치재였는데, 이젠 진도초과입니다.

>

맘이 편안하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

잡목과 억새가 무성한 봉우리 하나를 지나 작은 고개를 횡단합니다.

>

혹시 여기가 새맥이재인가 하고 자료들을 살펴보니 아직 아닌 듯 싶네요.

>

 

>

이윽고 어둠이 내려 더 이상 랜턴 없이는 진행할 수 없는 7시가 되어서

>

다행히 새맥이재에 도착합니다.

>

“새맥이재, 우측 물, 목원대 표언복”이라 쓰여진 낡은 비닐코팅지가 걸려있네요. 참 정성스러운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

 

>

우측 아래에 공터가 보여 어스름 속에 부랴부랴 텐트를 설치합니다.

>

무게를 줄이려고 잔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스스로 감탄한 기막힌 아이디어입니다.

>

이 방법 자체를 특허 내면 안될까요?

>

요즘 비즈니스 모델도 특허를 낸다는데, 이 방법도 꽤 그럴 듯 하거든요.

>

물론 특허를 받더라도 우리 산꾼들에게는 무료입니다.

>

그럴려면 왜 특허를 내냐구요? 글쎄요 . . .  그냥. . .   

>

 

>

아무튼 폴대조차 버리고 왔습니다. 이 걸 위해 스틱을 하나 샀구요.

>

즉 바닥용 비닐, 텐트본체, 팩5개(그나마 두개는 대못으로 대체), 노끈 3개, 스틱 하나가 다 입니다.

>

 

>

자리가 불편해서인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벌레소리를 음악삼아

>

거의 비몽사몽으로 날을 샙니다. 안오는 잠을 어찌할 수도 없네요.

>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게 그럭저럭 첫날 밤을 보냅니다.

>

 

>

3시 45분에 몸을 일으킵니다. 해드랜턴을 켜고 짐과 텐트를 정리하니 4시 15분입니다.

>

하늘엔 둥근 구름이 가득하고 간간이 별들이 빛을 발합니다.

>

밤새 텐트 천장에 어리어 서서히 흐르던 달은 이젠 구름속에 숨어 희미합니다.

>

새맥이재를 출발합니다.

>

 

>

어둠 속에 오로지 랜턴불로 리번을 확인해가며 길을 오릅니다.

>

완만하지만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

작은 봉우리들을 여럿 넘고 헬기장도 지나고 또 봉우리를 넘어 칼바위같은 게 서있는데 리본이 안보입니다.

>

어? 알바?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리번이 보입니다.

>

 

>

바위봉우리에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 어둠이 채 물러서지 않은 새벽바람을 맞으며

>

아침을 듭니다.

>

이 식사도 비즈니스모델 차원에서 특허를 내면 안될지요? 이거 다 말해버리면 안되는데. . . 

>

 

>

밀폐플라스틱용기에 누룽지를 부셔 물을 부어놓는 건데요,

>

서너시간 지나면 적당히 불어, 다른 큰 컵에 덜어 고추장에 비벼먹습니다.

>

반찬용 깻닢, 꽁치 납작캔을 두어개 가져왔는데, 이건 아껴 먹어야 하구요,

>

남는 반찬은 역시 소형 밀폐용기에 담아두면 다음 끼에 먹을 수 있지요.

>

누룽지는 인터넷쇼핑몰에서 구입했는데, 대형할인점에서도 소포장으로 팔더군요.

>

아마 이 방법은 특허를 내도 별로 따라하지 않을 듯 합니다.

>

요새 누가 이렇게 빈한하게, 불쌍하게 먹겠어요?

>

그러나 코펠, 버너, 연료를 생략할 수 있으니 추천할 만 합니다.

>

 

>

아무튼 식사를 하는 20여분 사이에 날이 밝아갑니다.

>

작은 고개를 지나 조금 가니 아막산성터입니다.

>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다던가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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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져내리는 성벽 낡은 돌에서 1500년전 이 땅에서 숨쉬던, 때로는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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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힘겹게 살았을 옛 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


<아막산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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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작은 고개를 두어 개 지나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복성이재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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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로는 장수군 번암면 표지판이 있고, 이정표에는 직 중치 12.1km, 후 사치재 4.8km 라고 하네요.

>

 

>

복성이재를 지나 오른 봉우리는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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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오늘 지나온 시리봉? 아막산성인 듯한 곳이 보이고

>

가야할 방향으로는 봉화산이 보입니다. 저게 봉화산인가?

>

 

>

또 하나의 봉우리에 오르니 키를 넘는 억새가 바람에 물결칩니다.

>

아름답습니다.

>

이제 봉화산이 눈 앞에 다가섭니다. 에고. . . 저걸 어째. . .

>

 

>

봉화산은 만만치 않습니다.

>

무릎통증도 점점 심해집니다.

>

“나에게 대간은 미친 짓”이라는 1차 유랑의 결론을 결국은 반복하여 내립니다.

>

3차는 더 이상 없다! 없어야 한다! 

>

 

>

힘들어하며 간신히 봉화산 정상에 오릅니다.

>

힘들게 오른 만큼 사방 장쾌한 조망입니다.

>

북쪽 멀리까지 보이는데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나 아무튼 눈이 시원~해 집니다.

>

북으로 뻗어간 주능선이 영남알프스 신불능선과도 비슷합니다.

>

키를 넘는 억새 능선길을 진행하다가 잠시 임도로 내려서기도 합니다.

>

 

>

<봉화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능선길>

>

 

>

10시 경에 묘 2기가 있는 이름없는 봉우리에서 또 식사를 합니다.

>

4시경부터 산행을 하였으니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난 셈이지요.

>

저보다 나이도 더 드신 분이 도착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

이분은 새벽 3시 반에 지리산휴게소에서 출발하였다는데,

>

아예 오늘 육십령까지 가버릴까 하는, 정말 강철 체력인가 봅니다.

>

 

>

여러 개의 봉우리와 고개를 건넙니다.

>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갑니다.

>

곧 중재가 나타나겠지 했는데, 이제야 월경산도 못 미쳤으니 기운이 빠지고 풀이 죽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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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큰 배낭을 매고 가는 남진 종주자 2명을 만납니다. 남녀입니다.

>

여자분도 매우 큰 배낭을 지고 갑니다. 우와~ 무서워라. . .

>

 

>

9시간 여가 지나 드디어 중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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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에 중치라고 쓰여있네요. 직 영취산 8.2km, 후 복성이재 12.1km입니다.

>

여기서는 내일어치 물을 구해야만 합니다.

>

 

>

사전 조사한대로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 밭두럭 위 물 있을만한 곳을 살핍니다.

>

으엥? 저보다 더 커다라 보이는 개가 짖습니다.

>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리에 힘이 없고 기둥 뒤로 몸을 숨깁니다.

>

아~ 늙고 병든 개입니다.

>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곁을 조심스레 지나니 개도 가만히 저를 바라다보는 눈치입니다.

>

 

>

밭두럭에 물 나오는 샘이 있는데 위에 무밭이고 농약병이 주위에 있습니다.

>

분명 농약을 친 밭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 찝찝합니다.

>

더 위로 올라가보지만 또랑은 말라 물기조차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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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무밭 아래의 흐르는 물을 페트병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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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 하나는 어제 담은 물이 아직 반쯤 남아있어

>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에 농약섞인 물을 담습니다.

>

 

>

<중재>

>

 

>

<중재 우측 밭또랑물 뜬 곳. 늙고 순한 개 한마리. . . >

>

>

 

>

중재로 다시 돌아와 간식을 하며 쉬었다 다시 출발합니다.

>

이제 여기서 중고개재를 거쳐 백운산까지만 가면 내일이 수월할 거라는 희망이 가득합니다.

>

고도차 650m 정도입니다. 해 보자!

>

 

>

그러나 쉽지 않네요. 저에겐 마의 구간입니다.

>

가도 가도 백운산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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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헐떡이며, 지친 다리를 추스리며 배낭을 집어던지며 수십 번을 쉽니다.

>

빌어먹을 백운산!

>

결국 초라한 자신을 재삼 확인시킵니다.

>

 

>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 밑까지 차며 기운도 맥도 다 빠지게 한 후에야 백운산은 그 정상을 드러냅니다.

>

1278m짜리가 정말 사람 죽입니다.

>

치사한 놈! 아마도 백운산 이름 석자는 제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습니다.

>

 

>

하늘에 해가 지려면 한 시간 여가 남았지만,

>

새벽부터 이어지는 13시간이 넘는 강행군에 몸도 지쳤고,

>

이 정도면 내일 일정에 여유가 있을 듯 하고,

>

백운산 정상의 헬기장이 편편해 야영에 딱이다 싶고,

>

더 가봐야 이런 야영지를 만날지도 불투명하기에 오늘은 여기서 날개를 접습니다.

>

 

>

<백운산 정상의 특급호텔>

>

 

>

텐트를 세우고나니 딱히 할 일도 없어 그대로 텐트에 기어들어갑니다.

>

내일을 위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입맛도 없고 농약섞인 물도 찝찝해서 옷만 한두개 더 걸친 다음에 드러누워버립니다.

>

온 몸이 뻐근합니다. 잠은 오지 않고. . .  무료합니다.

>

먹을 거를 담은 비닐봉지를 뒤적거리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 술 병을 발견합니다.

>

야호!!!  어머니가 담근 매실주입니다.

>

200 cc짜리 납작페트병이라 아껴가며 조금씩 마십니다.

>

설탕을 넣지않아 시큼하지만, 매실 맛이 입안에 가득 남습니다.

>

둘째 날 밤도 이렇게 고요히 지나갔을까요?

>

.

>

.

>

.

>

.

>

.

>

 

>

비몽사몽간에 후두둑하며 텐트를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

곧이어 텐트 천정에서 마치 스프레이뿌리는 것처럼 물방울들이

>

얼굴위로 내려앉습니다.

>

아, 비가 오는구나! 시계를 보니 밤 11시입니다. 비상사태입니다.

>

 

>

무게를 줄이려고 플라이를 빼 놓았는데,

>

얇은 텐트천만으로는 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

물이 줄줄 새기 시작합니다.

>

바람에 텐트가 펄럭거립니다.

>

텐트안에 널부러진 짐들을 정신없이 비닐에 싸 배낭에 넣습니다.

>

여차하면 튀어나갈 수 있게 등산화도 다시 신고,

>

이불삼아 펼친 판초를 다시 지퍼를 올려 비옷으로 덮어입습니다.

>

차라리 진행하는 게 나으려나 싶어 밖으로 나가보지만,

>

빗속에 해드랜턴 불빛은 2~3m도 나가지 못합니다.

>

아마 산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길을 잃기 쉽상입니다.

>

그냥 텐트에서 버텨야겠습니다.

>

 

>

한 시간 가량 내리던 비가 멎습니다.

>

쭈그린 채, 조금씩 젖어드는 옷으로 인해 한기를 느끼며 간신히 버티었는데

>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데,

>

그러나 잠시 후 또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

정말 조난 직전입니다.

>

 

>

1278m인 이 산꼭대기에,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데

>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개죽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저 혼자 좋아서 오른 산인데 누구를 탓 할 수도 없습니다.

>

이를 앙다물고 버티는 수 밖에 없습니다.

>

 

>

가족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냅니다.

>

몸이 떨리면 떨도록 내버려둡니다. 잠시 떨다보면 가라앉더군요.

>

아마도 체온유지를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겠지요.

>

대간길, 여러 번의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야한다고 소리치며 버텼다던

>

불암산님을 떠올립니다.

>

감기에 콧물과 눈물과 빗물이 얼굴을 적십니다.

>

오늘 살아나간다면 이건 정말 값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물론 살아버텨야만하구요.

>

 

>

정말 끔찍한 시간들을 간신히 버티어갑니다.

>

비좁은 텐트에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고 불편한 밤을 보냅니다.

>

3시를 지나, 뭐라도 먹어두어야겠기에 누른밥과 고추장, 깻닢으로 요기를 합니다.

>

키 낮은 텐트라 똑바로 앉지도 못하고 삐딱하게 눕듯이 앉아 먹는군요.

>

기상이 악화되면 여기서 두 시간 거리인 영취산까지 가서

>

좌측 무령고개로 하산하는 방안이 있겠군요.

>

 

>

깜빡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5시 15분입니다.

>

그나마 잠깐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

일단 밤을 무사히 넘겼군요.

>

적당한 시간입니다.

>

 

>

해드랜턴을 켜고 판초를 입은 채 밖으로 나와 텐트를 갭니다.

>

비에 젖어 무겁습니다.

>

비닐이며 팩, 노끈을 잘 정리하여 꾸려넣고 배낭을 다시 매니 5시 45분입니다.

>

이제 사흘째의 여정에 오릅니다.

>

 

>

내리막길은 무릎통증으로 인해 어기적거립니다.

>

키를 넘는 산죽밭이 이어집니다.

>

비를 가득 머금은 산죽을 헤치고 나가니 몇 분도 되지 않아 옷과 신발까지 철벅해집니다.

>

그래도 비가 조금 잦아들어 진행할 만 합니다.

>

남은 구간이 약 7시간 거리인데, 무릎만 버텨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살,

>

그러나 부지런히 진행합니다.

>

 

>

7시가 지나 무령고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너무 기쁩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영취산입니다.

>

 

>

7시 12분, 드디어 영취산 정상입니다.

>

직 육십령 11.8km 이정표가 있습니다.

>

사방은 안개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질 않지만, 이제 드디어 끝이 가늠됩니다.

>

다섯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되겠지. . .

>

 

>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데, 바람은 계속 우측에서 불어대니 오른 귀가 멍멍하고

>

오른 팔이 시려집니다.

>

사방 조망도 전혀 불가능하니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나마 오르내림이 적어 천만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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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정도 지나서 길 바닥에 직 육십령 6.5km, 후 영취산 6.5km라는 표지판이 누워있는 곳을 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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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벌써 중간지점인가? 갑자기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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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봉우리인 깃대봉은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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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표에 의하면 약 200m정도를 채올라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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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오름길이 나타나면 이게 깃대봉인가 하고 힘을 내보지만 잠시 오르다 마는 둥, 깃대봉은 너무 멀리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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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아까 중간지점 표지판은 잘못된 것 같더군요. 그 이후 육십령까지 세시간 반 정도 걸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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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에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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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멀리 봉우리! 저게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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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차 200m라는데 한 4~500m는 됨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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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산꾼의 기를 꺽는 높이입니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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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능선에 들어서니 그제야 햇볕이 들어 판초를 벗어 배낭에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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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풀에 맺힌 이슬에 바지가 다시 철벅해집니다. 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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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낑대고 마지막 힘을 내어 기어오르니 깃대봉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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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할미봉, 서봉, 남덕유산 조망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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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저 멀리 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며 할미봉을 감추었다 말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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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려 잠시 기다리지만 서봉과 남덕유산 정상부는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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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저 곳은 앞으로도 갈 마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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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구간 완료가 눈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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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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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 정상에서, 2차 사흘간 유랑에 찌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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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가린 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산, 가운데는 할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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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려가니 샘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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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몸에 맑은 물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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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의 농약 섞인 물을 버리고 깨끗한 샘물로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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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림길은 너무 편안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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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재에서 여기까지의 구간에서 대간길은 거의 모든 봉우리들을 우회로 없이 고지식하게 타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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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부터의 하산길은 작은 봉우리조차 살짝 우회하여 편안하게 내려서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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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동안 애 많이 쓴 산꾼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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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랬냐는 듯 싶게 날도 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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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내림길에서는 뒤로 걷기도 하며 살살 내려오니 육십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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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차 유랑도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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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 고갯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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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 고개마루의 넓직한 광장에 8각 정자가 세워져있고 만국기가 펄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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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지사가 방문하여 무슨 행사가 있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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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루라 현판이 걸린 2층 누각에 올라 할미봉을 올려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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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들을 굽어봅니다. 장계 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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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 서상 쪽으로 내려가며 덕유산 등산로 초입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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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방향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주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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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세계로의 귀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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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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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길은 반 이상이 너덜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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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은 키를 넘는 억새밭, 산죽이 도처에 기다리고 있어 진행에 애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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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온 후에는 신발까지 철벅해져버리니 발바닥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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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쓸리고 모기에 물려 온 몸에 가려움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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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밑하며 팔이며 손등이며 무릎근처 등 집에 돌아와서도 밤새 긁느라 시간을 보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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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시간만이 해결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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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보호법이 시행되면 마치 그린벨트처럼 대간 주위의 논밭이 묶일 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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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여기저기 걸린 플래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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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두 곳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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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간 산행도 금지된다는 말도 있던데, 보전, 개발, 이용, 보상 등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이익이 되는 현명한 대안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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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가는 방법도 여러가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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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친 남진 종주자 두 분의 경우처럼 어마어마한 짐을 지고가는, 아마도 연속종주일 듯 싶은 분들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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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며칠어치 먹을 거, 잘 거를 매고 가는 경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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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 배낭만 가볍게 지고 멀리 가는 경우도 있을 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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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분도 있고 단체로 이동하는 분들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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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급수가 높고 낮은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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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형편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해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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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산에 드는 것이니 딱히 어느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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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만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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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산길에 짐승을 만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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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삐끗하여 걷지 못할 지경에 처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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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저체온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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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도 되지않는 곳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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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와 비상식량도 챙겨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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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나침반, 랜턴, 예비배터리는 정말 필수적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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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감내할 만한 무게로 경량화해야만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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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정말로 이제 대간은 잊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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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도 같은 산행의 충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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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무릎과 발바닥 통증이 악화되어 자칫하면 심각한 지경에 빠질 우려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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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길을 이어가 미시령을 넘어 진부령까지 가고싶은 갈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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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자료와 파일들을 구하고 정리하고 예습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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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접자니 안타깝기 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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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으로도 살아갈 많은 날들을, 두고두고 산에 들어 사랑하고픈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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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대간을 잊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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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동네 뒷산 오르는 일도 자제해야 할 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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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도, “ㅅ”자도 말고 오로지 평지의 “ㅍ”자만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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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놈에게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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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탈없는, 아름다운 산행 이어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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