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사패산 종주기

 

                                                       *산행일자: 2004. 9. 4일
                                                       *소재지  : 서울/경기 의정부
                                                       *산높이  : 도봉산 740미터/사패산 552미터
                                                       *산행코스: 우이동-우이암-자운봉-포대능선-사패산-회룡역
                                                       *산행시간: 11시-18시50분(7시간 50분)

 

 

끝 더위의  마지막 저항이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를 이틀 남긴 초가을의 수은주를 한껏 높여 놓은 어제, 저는 서울시민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켜온 근교의 명산들을 찾아 올랐습니다. 제대로 된 산행기를 한번 써 보고자 지난 4월 북한산에서 시작하여 어제

도봉산에서 마무리 진 서울 근교 5대 명산의 종주는 제게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이 아름다운 수도

서울을 감싸고 있는 북한, 청계, 관악, 수락과 도봉의 5대 명산을  앞으로는 서울을 지키는 5대 수호산으로  부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제 도봉산과 사패산을 연이어 올라 5대 수호산의 종주를 모두 마친 저는 이 아름다운 산들을 외곽으로 하고 한강이 그 중심부를

관통하여 도도하게 흐르는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여 개경에서 천도한 태조 이성계의 혜안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수도가 이리도 아름답고 건강한 산들을 수호산으로 삼고 있는가를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북으로는 북한, 동으로는 도봉과

수락, 남으로는 관악의 암릉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외적의 막아내고, 서로는 한강이 차단해주었기에 한양이 오백 년 도읍지로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의 청계산과 함께 서울시민의 젖줄기인 한강을 보다 맑고 건강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자 저절로 이 산들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오전 11시 우이동을 출발하여 우이암으로 향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늦은 시간이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등산로가 제법 붐볐습니다. 8월초 우이암을 거쳐 솔고개로 산행할 때와 똑 같이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진 종일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12시 정각 원통사를 조금 벗어난 널 다란 바위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옛날에는 한강이 조망되는 원통사는 도봉산 최고의 수행기도처로 자리잡았다는데 이제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쉬었다 가느라

북적대어 기도처로서 옛날의 그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래도 주위를 압도하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많은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해 시끄러움은 면한 듯 싶어 다행이었습니다.

13시5분 만장봉을 1키로 남짓 앞에 둔 능선에서 조금 비껴나 점심을 들었습니다.
우이암에서 시작되는 도봉주능선을 40분 동안 밟아 다다른 이곳에서 떡을 꺼내 들고 잠시 바위에 기대어 눈을 붙였습니다. 미풍이

살갗을 달래주어서 인지 어느새 잠이 들어 7-8분간 단잠을 즐겼습니다. 정말 얼마 만에 산 속에서 가지는 여유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한북정맥을 저 혼자 종주하느라 산행 중 손톱만치도 여유가 없었는데 서울근교 산행은 길을 잃을

염려가 없어 마음이 놓였기에 잠시나마 잠이 들었나 봅니다.


이번 산행 중에는 내내 날씨가 쾌청하여 도봉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눈에 들어 온 오봉의 다섯 봉우리를 먼발치서 지켜보며 도봉주능선을 탔습니다.

13시 57분 주봉에 조금 못 미친 안부에서 K-크랙을 힘들여 타고 있는 한 여성 크라이머의 바위 오름을 안스럽게 지켜보았습니다.

수직의 크랙을 오르려면 크랙의 한 면에 발을 대고 손으로 크랙을 잡아야 하기에 자연 몸 모양새가 K자형을 이루게 되어 K크랙으로 명명

되었다는데 저도 1970년 선배들과 함께 K-크랙을 올랐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4시17분 도봉산 정상인 해발 740미터의 자운봉에 올라섰습니다.
지난 7월 울대고개-우이암의 한북정맥 종주시에는 비바람이 드세어 저도 모르게 자운봉을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수많은 인파로 발 딛을 틈이 없어 사진 한방 찍지 못하고 바로 하산해야 했습니다. 맞은 편의 만장봉에서

자일을 타고 바위를 내려오는 한 크라이머에 많은 분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크라이머가 바위를 등지고 하강을 해 선배

들로부터 바위를 안고 하강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 온 제게는 그리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14시25분 포대능선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지난 7월에는 때마침 쏟아진 폭우로 포대능선을 우회했는데, 이번에는 쾌청한 날씨의 도움으로 포대능선을 제대로 탔습니다. 그러고

보니 포대능선을 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경사가 급하고 바위 길이어서 쇠줄을 잡고 오르내리기가 어려웠지만 길이 좁아

반대편의 등산객들이 다 지나가기를 마냥 기다려야 했기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곳곳에 포대를 보관해둠 직한 참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14시 49분 포대능선 밑에서 반대편의 많은 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주위의 암벽들의 자태가 정말 절경

이었습니다. 이 절경은 포대능선을 타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것이기에 카메라에 모두 옮겨 실었습니다.15시23분 헬기장을 조금 지나

짐을 풀어놓고 남겨 놓은 떡을 들어 요기를 한 후 20분 가까이 포대능선을 오르내려 망월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포대능선이 끝나고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사패능선이 시작됩니다. 갈림길에서 사패산까지 거리가 2.2키로여서 1시간

남짓 걸으면 사패산에 다다를 것 같습니다.

 

15시52분 산불감시초소를 들러 맞은편의 수락산을 조감하고 주능선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곧이어 나무계단의 하산 길을 7-8분 걸었는데 나뭇잎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고즈넉한 계단길을 비추고 있는 저녁 햇살이 운치를 더

해주었습니다. 16시17분 회룡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 부지런히 사패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사패산까지 1.2키로가 남아 있어

서둘러야 어둡기 전에 이 산을 빠져나갈 것 같아 쉬지 않고 계속 걸었습니다. 사패능선은 포대능선과는 달리 비교적 평탄한 길이기에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16시45분 해발 552미터의 사패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지난 7월에는 비가 내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북정맥 종주시에 밟았던 한강봉과 첼봉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와

모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한강봉에서 고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도 함께 담았습니다. 사패산 바위에서 아주 짧은 슬라브

코스를 오르내리는 어린애들을 지켜보며 꿈나무를 보는 듯해 기뻤습니다. 요즈음은 대학의 산악부에서 장학금을 준다 해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가 힘들다는데 저 애들이  어서 커서 이 나라의  산악운동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16시 51분 사패산을 출발하여 회룡매표소 갈림길로 향했습니다.
그 30분 후 갈림길로 되돌아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지나 회룡계곡으로 내려서자 편안한 철계단이 이어졌습니다. 이 철계단과

잘 어울리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내려와 회룡골 계곡에서 발을 닦았습니다. 이 또한 오랜만에 가져본 탁족의 기쁨이었습니다.

회룡골 계곡에는 돌탑이 많이 세워져 눈길을 끌었는데, 제가 앞서가자 한 청년이 돌팔매질을 해 잘 올려진 돌탑을  무너트렸습니다.

돌팔매질 재주를 같이 온 친구에 뽐내고자 별 생각 없이 한 것 같지만 정성스레 돌탑을 쌓아올린 어느 분의 염원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행위는 자제되었을 것입니다.

 

회룡사의 노스님이 입적을 하셨나 봅니다.
많은 신도분들로 절이 붐볐고 노스님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근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18시13분 회룡사를 지나자 계곡에

본격적으로 물이 흘렀지만 낭간을 세워 출입을 막고 있기에 명경지수의 계곡이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극심한 반대로 중단되었던 사패산을 관통하는 도시외곽순환도로의 터널공사가 얼마 전에 재개되었는데

계곡에는 공사를 반대하는 불교신자들의 플래카드가 여전히 걸려 있었습니다. 개발과 환경보존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난제

입니다. 천성산을 지나는 고속전철공사가 다시 중단된 사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환경보존의 절대성을

고집하는 시민단체들에 항상 의견을 같이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동안 환경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인 당국의

잘못이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거의 모든 국가적인 대사업에 환경보존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시켜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킨 시민단체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반드시 진실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란서의 기소르망이 지은 "진보와 그의 적들"이나 덴마크의 비외론 롬보르의 저서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그

분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8시35분 매표소를 지났습니다.
아파트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 18시 50분 회룡역에 도착, 우이동을 출발한지 7시간 50분만에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어제로  지난

4월 시작한 서울의 5대 수호산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년에는 가을과 겨울철에 이 수호산 들을 다시 올라 또 다른 관점에서

산행기를 써 볼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