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야간산행


 




일시: 2004년 1월 17일 (음력 2003년 12월 26일)


 


코스: 집(21:45)- 조대부고(21:55) - 깃대봉(22:10) - 팔각정입구(22:40) - 운림동(23:10)-   집 (23:25) : 총 100분 소요


        이 코스는 광주 조선대학교 뒤편에 위치한 산으로 무등산 줄기에 해당하는 산자락임.


   


날씨: 맑음. 음력 26일인지라 달은 아직 뜨지 않음. 산 속은 암흑 그 자체임. 월출은 밤 01시에 예정.  온도는 영하 3-4도 정도 약간 차게 느껴짐. 바람은 약간 불어옴.






     


A. 야간산행 도전의 배경






1. 나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준 어떤 산악인에 대하여....






1) 싸이트(한국의 산하 http://www.koreasanha.net/)에서 산행후기를 읽는 것이 나의 취미다. 우연히 재미있는 글을 발견하게 되는데


 


2) 내용인즉 어떤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있는 산악인이 어떤 사료의 문헌에서 6.25당시의 글을 읽었다. 당시에 인민군이 전라북도 무진-진안-장수로 이어지는 능선 40km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 한 모금, 밥 한끼를 먹지 않고 도주하여 달아났다는 실화가 기록되었다.


 


3) 따라서 이 산악인은 그 사실이 신기하여 인간이 과연 그렇게 할 수가 있는지를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자 하였다.  꼭두 새벽녘에 산행을 시작하여 일몰시까지 그 구간을 그대로 달려보았다. 그는 이 코스를 입에 거품을 물면서 해냈다. 먹을 것은 물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며 중간에 우물이 있었으나 그 유혹을 견디며 종주를 마쳤다.


 


4) 그리고 하산 길의 마을에서 구멍가게에 들러서 콜라를 한 병 사서 마시는데 그런 콜라 맛은 세상에서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길 이런 경험은 절대로 따라서 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인간의 한계를 느꼈는지 짐작이 간다.


5)나는 이 사람에 대하여 대단한 용기를 지녔다고 우러러 보게된다. 더욱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인터넷에 산행후기의 글을 남긴 점에서 높이 평가를 한다.






2. 야간산행에 호기심






1) 나는 평소에 일요일이면 산악회를 따라서 명산을 찾고는 하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에 약간은 도취된 것 같다. 그런데 항시 의문을 가진 것이 하나 있는데 과연 내가 밤에도 이 아름다운 산을 올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사랑하는 산을 밤에는 올 수가 없는 것인가? 나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호기심이 평소에 들었다. 그리고 자꾸만 그분의 용기가 생각이 났다. 용기가 없으면 세상에 이룰 것이 하나도 없다.


 


2) 우리는 흔히 유령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흔히 그것은 무덤과 관련을 맺는다. 과연 야밤에 산 속의 무덤에서 귀신은 나타날까? 나의 믿음은 귀신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귀신이 출현하고 귀신을 이길 자신이 잇는 자에게는 귀신은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령이 존재한다면 꼭 확인을 해보고자하는 호기심이 든다.


 


3) 밤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하나의 스릴을 만끽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도전하지 않는 것은 두렵지만 막상 성취하고 나면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왕이면 그 과정을 즐겨보자는 것이다.


 


4) 막상 실현하려니 자꾸만 좌절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둘이 가면 무섭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둘이 하면 진정한 도전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만이 정답이며 그것도 만월이 아닌 그믐달이 최적의 조건이라고 믿게되었다. 또한 많은 무덤이 산재하는 곳이라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밤의 공포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야간산행의 첫 경험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12월 어느 날 하교 길에 봉선동을 들르게 되는데 봉선동 동아여고 뒷산에 등산로에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 호기심에 정상까지 올라갔다. 산책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었으며 중간에 50대 후반의 아저씨를 만났는데 내가 물었다. 밤에 사람들이 자주 오냐고. 그분 말씀이 거의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오던 길로 되돌려서 다시 하산하려다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조명이 끊기는 방향으로 계속 전진하였다. 조금 더 가니까 공동묘지가 나온다. 아무도 없고 적막감과 공포가 돌았으나 물러 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달빛이 길을 밝게 비추고 있었으므로 계속해서 전진하였다. 그리고 약 30분 정도를 더 가니 산길이 끝나고 지원동에 이르렀다. 달빛만이 나를 안내하던 공포감의 30분이었으나 내 자신을 격려하면서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아내에게 그 과정을 이야기 해주니 아내는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로.










B. 코스와 시기의 선택






1. 구간선택과 달빛이 전혀 없는 시기의 선택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욕구불만이 생겼다. 그 날은 달빛이 밝아서 그리고 코스가 짧아서 진정한 스릴을 즐기는 진정한 의미가 될 수가 없었으며 진정한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게된다.


 


1) 코스 정하기: 1차 대상으로  OK자동차 학원- 금당산-옥녀봉- 원광대 한방병원의 코스(약 60분 거리)를 생각해 보았지만 주능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원시림이 없어서 공포감을 자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대신에 선택한 것이 어느 정도 원시림에 우거진 그리고 많은 무덤이 산재한 무등산의 입구에 해당하는 조대부고- 깃대봉-팔각정- 운림동의 구간(약 90분 소요)을 선택하게된다. 완성맞춤의 코스다.


 


2) 월출시각: 그리고 달빛이 전혀 없는 시기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정월 초하루 설을 4일 남긴 오늘은 그믐에 가깝다. 월출 예정시각이 새벽 1시경이이다. 암흑의 조명에는 맞춤이다.  달이 뜨기전에는 산행을 마칠 것이다.


 


3) 무덤의 선택: 참고로 무등산의 코스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곳에는 도립공원이라 무덤들이 없다. 스릴이 없어진다. 그리고 야간에 산길은 모르는 길로 접어들면 위험하다. 평소에 아는 길을 꼭 선택해야만 한다.






2. 야간산행의 목적


 


이번 야간산행의 목적은 밤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을 깨자는 것이다.


야간에 공동묘를 지나면 과연 귀신이 나오는지를 내가 확인을 꼭 해고자 했다.


야간에 산 속의 공기는 어떠하며 짐승들은 고이 잠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진정한 공포를 즐겨보고자 했다(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3. 코스에 대한 소개


 


조선대학교 뒤편에 위치한 산이며 이산은 체육시설이 질 갖추어져 있다.


이산은 조대부고- 골프장- 깃대봉-팔각정-지산유원지- 바람재 -무등산으로 연결이 된다. 무등산의 한 줄기에 속하는 셈이다. 원시림이 상당히 우거져 있으며 특히 키 큰 소나무가 군락을 이울고 있다. 공동묘지를 비롯한 무수한 묘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다. 팔각정 부근에 이르면 광주시의 야경은 대단히 아름답다. 참고로 경사는 오르락 내리락 자꾸 반복이 된다. 그리고 무등산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으면 운림동 아파트단지로 하산을 하게된다.










C. 야간산행의 도전 (시간대별로)






참고사항 :


 혹시의 사태에 대비하여 랜턴을 준비하였으나 비상시가 아니면 쓰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실제로 사용할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간에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인데 나의 위치를 노출시키면 위험하다. 따라서 군대생활에서도 야간에 병력의 이동시는 불빛에 자신을 절대로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시계는 준비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필요도 없다. 아래의 시간은 집에서 산까지의 거리가 5분정도 거리이므로 미리서 시계를 보고 간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다니던 길이고  꼭 시간을 계산해온 버릇이 있었다. 따라서 추정이지만 거의 확실하다.






(21:55-22:00)


 머리끝이 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막상 오늘은 실제로 나의 신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남을 발견하였다. 조대부고를 지나고 골프장의 찬란한 불빛에 반사되어 등산로로 진입한다. 덕분에 공포감은 어느 정도 들었지만 극심하지는 않았다.  조명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는 산 속의 완전한 암흑 속으로 진입한다.  산 속의 어두움에 너무도 두려움이 앞선다. 주간에 보던 산과는 180도가 다르다. 암흑 속에 스산한 바람마저 불어온다.


 


 바로 눈앞 50미터 전방의 등산로 한가운데 묘가 오똑 솟아 있다.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두피가 단단히 굳어지고 머리털은 직각으로 섬을 명백히 느껴본다. 그리고 이마에 약간의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더워서 흘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22:00-22:10)


 나의 좌우로 둘러싸인 높은 소나무 군락,  아스레하게 펼쳐지는 그리고 갈수록 좁아지는 등산로, 그리고 언 듯 언 듯 좌우로 나타나는 무덤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혹시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내 몸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면서 머리끝이 서는 것을 느낀다.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따라 오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걸었다.


 


  앞 100m 전방에 뭔가 하얀 물체가 보였다. 깜짝 놀라서 선체로 자세히 관찰하였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도시의 빛이 창공에 반사되어서 들어오는 것이다. 주변이 칠흑처럼 어둡다 보니 생긴 일종의 명암대비 현상이다. 상당히 놀랐다. 그 후로는 그런 현상에 대하여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편해 졌으며 머리털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22:10-22:20)


 조금 더 가니 마침내 깃대봉이 나온다. 여기저기 체조시설의 철제 구조물들이 시내 불빛에 반사되어 암흑과 대비를 이루니 이는 마치 형광 물질을 발라 놓은 것 같다. 기분 나쁜 반사작용이다. 다시 능선을 5분 정도 가면 이제는 하산길이 나온다. 이제부터는 다시 머리가 선다. 방금 전 깃대봉에서는 시내의 불빛이 조명이 되어 공포감이 사라졌으나 이제는 다시 암흑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급경사라서 혹시 넘어지면 무척이나 기분이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길옆 파헤쳐진 무덤을 보니 영 그렇다.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간첩들은 산 속에서 도망치다가 이런데서 나뭇잎을 깔고 하루 밤을 보낸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그 정도는 못 할 것 같다.  제발 묘를 이장하면 흙 좀 덮고 갔으면 좋겠다. 


 


 조금 더 내려가니 평지가 나오고 정자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천막을 드리워 놓았다. 낯에는 천막을 본적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혹시 이 밤에 여기서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 사람을 날 적으로 간주 할 것이고, 그러면 나도 방어를 해야만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소리를 죽이면서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없었다. 안심하고 다시 지난다. 예감이 이상해서 잠시 후에 다시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다시 능선을 오른다. 시내의 야경이 능선에 반사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머리털은 다시 내려온다. 좌우로 무덤들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이제는 이런 무덤들은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무덤들은 멀리서도 그냥 알 수가 있었는데 눈이 녹지 않고서 묘의 봉오리에 남아서 유난히 하얗기 때문이다. TV에서 납량특집으로 무덤에서 귀신이나 죽은 영혼이 나오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혹 그런 일이 내 앞에서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내가 긴장한 나머지 그 같은 환상을 볼 수도 있지 않는가. 만일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기절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스릴을 즐기기로 결심한 이상 그 귀신이 나타나면 그 정체를 꼭 밝혀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본다.






(22:20-22:40)


조금 더 올라가니 여기저기 밴치가 서너개 나오는데 이것들이 형광 빛을 발하고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매우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이상하다. 긴장을 해온 탓으로 소변이 마렵다. 시원하게 일을 본 후에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내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너무도 아름답다. 하늘을 보니 도시 속에서도 은하수를 볼 수가 있다. 야간산행의 특권이다. 산 속의 공기는 이렇게도 맑은가보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북극의 찬 바람을 이 산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이제 다시 하산길이다.


 


 좌우의 원시림 속의 소나무들이 나를 압도하면서 다시 암흑은 날 기다리고 있다. 별수 있나 통과해야지. 조금 더 내려가니 다시 체육시설물들이 나타나고 역시 형광 빛은 기분 나쁘다. 그리고 바로 앞에 나타나는 30m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은 이 밤에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 다시 능선이 나타난다. 능선은 도시의 빛에 반사되어서 한결 마음이 편하다. 가파른 경사 길을 한참동안 올라가니 드디어 팔각정이 눈앞에 나타난다.






(22:40-23:10)


 여기까지는 잘 왔는데 이제부터가 진짜다. 운림동까지 30분 정도를 하산해야 하는데 앞을 보니 아찔하다, 하지만 오늘은 좀 더 스릴을 즐기자. 내리막 경사가 심해지고 돌부리가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넘어져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늘 해본다. 넘어지면 몹시 기분이 나쁠 것이다. 혹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길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지나던 묘 아래에서 등산화 끈을 꼭 조이게 다시 묶었다. 묶는 동안에 누군가가 내 등을 금방이라도 뒤에서 때릴 것 같다. 다시 출발. 등산화를 꼭 조이니 마음이 더욱 든든하다.


 


 하지만 머리끝은 다시 선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이어지는 울창한 숲, 아까보다는 더 무수히 나타나는 무덤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산길이고 방향도 반대이므로 도시에서 창공에 비춰주는 반사조명은 기대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포의 체감도는 약 세배정도 높아간다.  그리고 혹 야간이라 길을 잘 못 들어서 곤경에 처하지 안을까하는 불안감도 있다.


 


불안감 중에서도 첫째는 내려가는 도중 혹시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 두 번째는 확률은 거의 없지만 혹시 짐승 특히 멧돼지라도 나타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다. 실제로 내가 무등산 자락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본적이 있다. 세 번째는 내가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실수로 환상을 보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스릴을 즐기자.


 


 한참을 내려가니 이제 더욱 울창한 소나무 군락사이로 길이 좁아지니 공포는 극에 달하고 뒤로 갈 수도 그렇다고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지경이다. 내가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를 한 것 같다. 앞을 보면 무섭지만 발길 아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조심조심 길을 걷노라면 공포는 줄어든다. 돌부리가 여기저기 있어서 어느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 질지도 모른다. 그저 흰색이면 돌로 보고 피해간다. 하지만 앞을 보면 칡흑같은 어두움이 나를 다시금 압도한다. 그리고 뒤를 반사적으로 한번씩 보게된다. 안 보아야 되는데 가끔씩 꼭 확인을 하면서 내려간다. 혹시 유령이라도 따라온다면 랜턴을 켜고 꼭 확인을 하자. 그리고 대화를 나누자. 기왕에 나타난다면 처녀귀신이라면 더욱 좋겠다.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은 드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길은 이어지고 에정된 운림동은 나타나지 않는다. 갑자기 길을 잘 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간에 그토록 익숙한 길을 긴장 속에서 걷다보니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이다. 할 수가 없다.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하지만 방향감각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방향감각까지도 잃으면 더욱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예상했던 방향과는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결국은 좀 더 먼 곳으로 하산하는 꼴이 되었다.


 


 이제 아래에서 훤한 조명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개는 나의 발자국을 멀리서도 알아채고는 맹렬히 짖어댄다. 잠시 후에는 모든 개들이 다 같이 짖어댄다. 이제 공포감은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앞으로도 5분 정도는 더가야 되는데 개들은 너무도 빨리 알아차린다. 나는 개들을 사랑하지만 오늘은 이놈들이 환장을 했다. 내가 무슨 야밤의 도둑이냐 ?  하기는 밤 11시에 이상한 사람이 산 속에서 내려오니 개들도 본능적으로 심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이해한다. 이제 마음이 너무도 평화롭다. 그리고 아파트촌에 내려오니 이 곳이 바로 사람이 사는 곳이요. 방금 전 그곳은 귀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23:10-23:25)


 약 15분 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들어온다. 너무도 상쾌한 걸음. 너무도 다정해 보이는 집들, 내가 평소에 증오했던 도시의 모습은 잠시 사랑으로 바뀐다. 그리고 지난 60분 동안의 섬듯섬듯한 기억이 마치 테이프처럼 생생히 되돌아간다. 하지만 오늘은 의미 있는 일을 한가지 해냈다. 평소에 꼭 이루고자 했던 일이다. 이제 속이 다 후련하다. 이제 남은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비 내리는 날, 특히 소나기가 내리는 날 그 길을 다시 한번 더 갈 수는 있을까 ?  현재로는 어려 울 것 같다. 혹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생생한 무용담을 한 번 듣고 싶다. 내 능력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사실은 아내가 잠든 사이에 몰래 빠져나가서 산행을 마쳤다. 사실대로 말하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잠에 깨어있었다. 본능적으로 직감을 했는지 어디를 다녀왔냐고 묻는다.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아내는 거의 실신 단계다. 그러면서 조대부고 뒷산에서 어느 죽은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문이 아닌 실화였다. 다시 공포가 맴돌았다. 그 장소를 내가 방금 스쳤다니....... 차라리 모르고 그 곳을 스쳤기에 망정이지 알았더라면 아예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엎치락 뒷치락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속이 좀 안 좋아서 대변을 보니 설사를 한다. 긴장했던 지난밤 내 몸 속에서 지나친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균형이 흐트러졌음을 알았다. 내 스스로 다짐한다. 이제 그런 모험은 이것으로 정말 끝이다.









▣ 배병만 - 혼자하는 야간 산행은 섬짓 하죠....그러나 기분은 좋습니다.
▣ 산꾼 - ㅎㅎㅎ렌턴없는 야간산행의 묘미군요^^저도 그 구간 자주가는데 방갑습니다..오목조목한 글 잘읽었습니다
▣ 유종선 - 자정 무렵의 공동묘지 정말 무섭지요. 게다가 뒤에서 뭔가(나뭇가지이겠지만) 잡아당기기라도 한다면, @@@. 쉽지 않은 고행길, 수고많으셨습니다.
▣ 권경선 - 박세리 담력훈련 하는 듯 느껴지는군요. 홀로하는 야간산행 호젓하고 좋긴 하지만 혹여 사고라도 당하시면 속수무책 아닐까요? 저도 어두워질 무렵에 공동묘지를 통과하여 보았는데 이곳저곳 무너진 봉분에 자꾸 눈길이 가고 등에선 식은땀이 나더군요. 안전한 산행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