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봉산 산행기

● 종주일자 : 2004년 1월 25(일요일)

● 종주구간 : 팔당댐→273.3m봉→470m봉→견우봉(590m)→직녀봉(590m)→율리고개→율리봉(587m)→예봉산(683.2m)→철문봉(630m)→하팔당 마을

● 산행시간 : 2시간 51분

교통편

* 166-2번 시내버스(청량리 경동시장 또는 미주상가 A동 맞은편에서 승차)

. 05:30-24:00(7-8분 간격 운행)

* 166번 시내버스(위생병원-상봉전철역-돌다리 경유)

* 이외에도 전철 5호선 광나루 역이나 2호선 강변역에서 덕소행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할 수가 있음


 

● 산행후기

한남정맥을 마친 후, 가칭 '금북기맥'이라고 하는 산줄기를 답사하기 위해 준비를 해두었지만 일주일 전부터 줄기차게 눈이 내리고 있어 잠시 미뤘다. 혼자 눈밭을 뚫고 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눈이 그친 다음에나 산행에 나설 요량이다. 하지만 산행을 못한지가 10여일을 넘고 있어 서서히 지치기 시작한다. 해서 몸도 풀고 마음도 달래기 위해 예봉산을 찾았다.

  

6번 국도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다 보면 팔당댐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예봉산이다. 예봉산의 본래 이름은 운길산(지금의 운길산은 조곡산이었다고 함)이었다 하며 영월, 정선, 단양, 춘천 등을 오고가는 길손들이 한양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임금에게 예(禮)를 갖췄다고 해서 예빈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제 산정에 있는 안내판에는 예빈산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예봉산의 뿌리는 한북정맥 상의 서파고개다. 서파고개에서 가지를 친 마루금이 주금산과 철마산, 천마산, 백봉, 갑산, 적갑산을 거쳐 이 예봉산으로 이어지는데, 서울 근교에 자리하고 있는 산인만큼 산행 기점은 열 군데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산꾼들의 손길을 많이 타는 곳이 하팔당과 상팔당 조개울과 팔당댐 등이다. 교통이 편리한 까닭에 마음만 먹으면 다녀 올 수 있는 산이 예봉산이기도 하다. 아울러 겨울철에 이 예봉산을 산행할 요량이면 아이젠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올라가면서 바라 본 팔당 댐>


 

 

<공원묘지에서 바라 본 양수리와 한강기맥의 산줄기>

 

가져간 차량을 팔당댐 부근에 주차해 두고 '전주집'이라고 하는 식당을 지나 공원묘지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도로가 끝나는 곳에 철조망이 보이고 철조망 직전에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나타났다. 이 등로를 이용하여 공원묘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가자 다시 도로가 나타나고, 차단기를 지나자 본격적인 등로가 펼쳐졌다.

 

오르막길의 경사가 제법 가파르고 등뒤로 햇살이 내리쬐는 탓에 벌써부터 콧잔등을 타고 땀이 흐른다. 그런 오르막길을 따라 힘겹게 올라가자 경사가 잠시 주춤하더니 전방 좋은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아래에는 팔당댐에서 흘러내린 한강물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건너편에는 검단산이 흰눈을 짊어지고 서있다. 겨울 산의 조망이 기가 막히다.

 

바위를 지나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자 등로가 잠시 가라 않는 듯 하더니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지면서 견우봉이 다가왔다. 여기서 좌측에 보이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성암과 예봉산장을 거쳐 조개울로 내려갈 수가 있다고 한다. 정상에는 이정표(직녀봉 0.24km, 승원봉 0.54km, 도정암 0.45km)가 있다.

 

견우봉을 지나자 잠시 바위 능선이 나타났다. 눈이 쌓여 있는 한 겨울이라 조심스럽다. 지나다닌 사람들의 흔적이 많다 보니 등로가 더 미끄럽다. 겨우 바위지대를 지나 다시 올라가자 이번에는 직녀봉이 그 자태를 뽐내며 다가 왔다. 이곳에도 이정표(조개울 분기점 0.42km, 오성암 0.90km, 견우봉 0.24km, 예봉산 1.94km, 능내리 2.00km)가 있고 예빈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이곳 예빈산은 검단산(동악 숭산)과 함께 한성 백제의 강역을 수비하던 외오성 산이었고 조선조엔 나라굿 기우제를 봉행하던 명산이다. 산이름은 대동여지도, 청구도, 해동지도, 경기 38관도 등에 보이고 유협 등의 묵객들이 예빈산을 소재로 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년 시절 산책하며 기상을 키운 곳이며 화성 선사는 항일의병을 도모하다 한때 견우봉 아래 도정암에서 피신하기도 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 또한 봉안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으며 견우봉 아래 천연 암굴에서 피신했던 역사의 향기가 서린 곳이다』

  

직녀봉을 지나 내려가는 내리막길도 경사가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하산로(좌측)가 있는 능선을 지나 잠시 더 미끄럼 타듯이 내려가자 율리고개가 나왔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상팔당의 굴다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조안리의 조동마을이 나온다고 한다. 율리봉은 고개를 지나 한 차례 더 땀을 흘린 후에야 나타났다. 이곳에도 이정표와 율리봉의 유래를 적어 놓은 안내판이 있었다.

 

『이곳 율리봉은 정화성 선사께서 지은 '강역산수기'에 밤이 많은 산마을에 있는 산이라 하여 명명한 것이다. 화성의 속명은 申成인데 다산의 학문과 도를 따라 세상을 밝히고자 스스로 호를 喆文이라 하고 다산의 후학을 자처하여 항일 의병을 주도하다 익산 용화산 신용사에서 사별하였다. 다산의 형제들 또한 이 산에서 웅지를 키웠다』

  

공원묘지부터 가끔씩 보이던 산행객들이 율리봉을 지나자 수시로 스쳐갔다. 혹은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혹은 그냥 지나치기도 했지만 사람 없는 산 속만 헤매다 이렇게 사람 많은 산 속에 있으니 오히려 낯설다. 예봉산 정상에는 북한산이나 도봉산만큼이나 사람들이 북적댄다. 견우봉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이정표가 이곳에도 보이고, 등산로를 그려 놓은 안내판도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냥 지나쳤다.


 

정상을 지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자 능선이 갈라지는 철문봉이 나왔다. 작은 공터에는 이정표와 등산로 안내도 및 철문봉의 유래를 적어 놓은 안내판이 보였다. 『이곳은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에서 집 뒤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 하여 철문봉이란 명산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직진하면 적갑산을 지나 운길산까지 갈 수가 있고, 적갑산을 지나면 주금산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능선이 나타난다. 언젠가는 그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해 볼 요량이다. 운길산으로 향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자 작은 갈림길들이 수시로 나타났다.


발길 닿는 대로 내려가도 상관이 없겠으나 굳이 하팔당 마을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하팔당으로 내려가는 것이 교통이 편리해서였다. 하지만 모처럼의 연휴를 즐기려는 산행객들로 인해 가는 길마다 체증이 일어난다.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