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화엄사~대원사)구간 1일 종주길 속으로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 산중에 명산은 안산 즐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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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산청군(山淸郡)·하동군(河東郡)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915m.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산청군(山淸郡)·하동군(河東郡)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915m. 두류산(頭流山)·방장산(方丈山)·지리산(地理山)이라고도 한다. 소백산맥 남단에 속하는 고산으로 산역의 둘레가 320여㎞에 달하며, 서남서∼동북동 방향으로 주능선이 이어져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칠선봉(七仙峰)·덕평봉(德坪峰)·명선봉(明善峰)·토끼봉·반야봉(般若峰)·노고단(老姑壇) 등과 동쪽으로 중봉·하봉·써리봉 등의 능선이 이어지고 여기에 많은 고봉·준령들이 다기다양(多岐多樣)하게 어우러져 웅대한 산악군을 형성하고 있다.

 

지형은 융기작용 및 침식·삭박에 의해 산간분지와 고원·평탄면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어 있다. 최고봉은 섬록암(閃綠岩)으로 되어 있고 주변은 화강암·화강편마암의 지질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신산(神山)의 하나로 수려하고 중후한 산악미를 지녔다. 화엄사(華嚴寺)·쌍계사(雙磎寺) 등의 유서깊은 사찰과 천연의 동·식물 및 국보·보물 등의 문화재가 많으며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3개도(경상남도, 전라남·북도), 1개시, 4개군, 15개 읍·면의 행정구역이 속해 있으며, 그 면적이 471.758㎢로서 20개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산(智異山)을 글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이라 한다. 이 때문인지 지리산은 여느 산보다 많은 은자(隱者)들이 도를 닦으며 정진하여 왔으며 지리산 골짜기에 꼭꼭 숨어든 은자(隱者)는 그 수를 추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민족적 숭앙을 받아 온 민족 신앙의 영지(靈地)였다. 지리산의 영봉인 천왕봉에는 1,000여년 전에 성모사란 사당이 세워져 성모석상이 봉안되었으며, 노고단에는 신라시대부터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반야봉, 종석대, 영신대, 노고단과 같은 이름들도 신앙을 상징한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고봉 준령마다 영기가 서리고, 계곡은 웅장하면서도 유현(幽玄)함을 잃지 않는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 능선의 거리가 25.5km로 60여리가 되고, 둘레는 320여 km로 800리쯤 된다. 지리산의 너른 품안에는 1,500m가 넘는 20여개의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개의 긴 능선이 있고 그 품속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뱀사골 등 큰 계곡이 있으며, 아직도 이름을 얻지 못한 봉우리나 계곡이 많다.

이렇게 넉넉한 지리산의 웅장하고 아늑한 산세는 영·호남의 지붕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며, 생명의 산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지리산의 북쪽으로는 만수천-임천-엄천강-경호강-남강-낙동강이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생명수를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천왕봉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는 천왕샘을 비롯하여 주능선 곳곳에서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강은 사람을 모은다."고 했다.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이렇게 3도 1시 4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풍부한 동·식물만큼 그 문화는 동서간을 이질적이면서도 다양한 문화권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지리산은 단지 크고, 깊고, 넓은 것만으로 설명이 안되는 다른 매력이 있는 산이다.
 

  

  

  산행일시  : 2006년  월  일 (수요일)

  산  행 지 : 2006년 10 월 26 일 ~ 27일 (목 ~ 금요일)

   산행코스 : 화엄사 - 노고단 - 삼도봉 - 토끼봉 - 형제봉 - 벽소령 - 덕평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 촛대봉 - 연하봉 - 제석봉 -

                        천왕봉 - 중봉 - 서래봉 - 치밭목대피소 - 유평 - 대원사

   산행인원 : 9명(연산님,연산동님,청파,대바우님,청송 홍승윤님,착한님,뭐야님,참이슬님,낮은울타리님(여성) + 1명 (만우님)

  산행시간 : 선두그릅 20시간 50분 ~ 후미 6학년 엉아들 22시간 25분

  

 

일행들이 지나온 코스의 이정목들

 

       

 

 

       

 

 

    

 

 

     

 

 

    

 

 

    

 

 

      

 

 

       

 

 

    

 

 

    

 

 

   

 

 

   

  

  

산행기

내가 산행을 처음 시작 하던해가 1997년 그러니 벌써 어영부영 10여년이 흘렀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은 벌써부터 등산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나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며 사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본 이웃 사는 친구가 거의 반 강재로 나를 산으로 끓고 가기 위하여 배낭과 스카프를 챙겨 주며 나를 산악회에 가입을 시켜주며 처녀 산행지로 나를 유명산엘 델구 갔었다

 

내가 속한 산악회는 부평지역에 꽤나 역사가 오래되어 대한 산악연맹 산하 단체로 나름대로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을때였다 그러나 창립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창립멤버 회원님들께서 이미 70~80대 연세에 드신 분들과 함께 산행을 하게되고 보니 내가 비록 처음 산행을 시작 했는데도 나름대로 그다지 힘든줄 모르고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그후 한 달에 두번 정도씩은 꼭 산행길 참여를 하였는데 그 당시에 산악회원님들이 100회 산행 기념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부러워 한지가 엇그제 같은데,

 

언제 부터인가 산악회의 연중 산행 계획표를 살펴보면 대 부분 고도 800m 이하의 산들로 일년 산행 계획이 짜여져 있고 그러다 보니 그동안 산행을 하면서 탄력이 붙은 나는 이러한 산행길 동행이 별로 마음에 당기지를 않아 한 번 두 번 타 안내 산악회 산행길 참여를 하게되고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쓰기 시작하며 열심히 댓글과 답글을 주고 받으며 공감대가 형성된 산하의 아름다운 산님들을 만나 나름대로 종주 산행이다 이벤트 산행이다 꽤나 여러번 이어갔지요

 

그러다 보니 차츰 장거리 산행이다 바위만 만나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오금져려 하던 내가 나름대로 산행길 경륜도 생기고 또한 기술도 전수를 받게되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 어떤 조건의 산행이든 해낼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고 용기도 생겨 이제 어떤때는 내 자신을 망각 한것처럼 나이도 잃어 버린듯 푼수도 모르고 마치 천둥에 개 뛰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조금은 경거망동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모한 산행을 감행 하기도 하였지요 그럴때 마다 나를 돌아보며 내가 자숙을 하여야 하는데 ...

 

아마 벌써 수십번 수백번도 더 다짐을 하며 나를 고쳐 보려고 무진장 애를 써 보았지만 그넘의 타고난 성격은 아마도 버리지를 아니 버릴 수 가 없는가 보네요 때문에 때론 젊은 산님들에게 눈치도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도 그넘의 승질을 못고치며 산행을 하고 있네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도 했지요 올해면 내가 6학년 3반 졸업을 하고 이 헌 년이 가고 새 년이 오면 내가 또 한 학년 진급을 하여 6학년 4반이 되는데 꼭 올해가 가기전 꼭 하고 싶은 산행길 한 자락이 소원처럼 남아 나를 꿈틀거리게 하네요

 

그래서 늘 나와 함께 하는 우리산내음 수요산행팀 6학년 엉아들에게 은연중 운을 띄웠지요 올해가가기전 꼭 화엄사 ~ 대원사 구간 1일 종주를 하여 보구 싶다고 ~~~ 그랬더니 다행이도 연산님(6학년 5반) 연산동님 (6학년 1반) 학상들이 모두다 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여 사실은 지난 5월 그 6학년들끼리 지리산 종주를 나섰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때 마춰 몰아닥친 집중 호우로 인하여 연하천 대피소에서 눔물을 머금고 음정으로 하산을 한 아픈 경험이 있어 울덜 셋만 모이면 늘 지리산 패잔병이란 이름으로 이를 갈고 낫을 갈고 칼을 갈고 있었지요

 

그리곤 차일피일 미루며 기회를 엿 보았지요 그러다 드뎌 10월 26일을 D - day 정하고 우리들끼리 또 다시 지리산 화엄사 ~ 대원사 구간 1일종주 산행을 떠나려 실천에 옮기려 스케쥴을 짜고 있는데 이를 눈치챈 수요산행팀 젊은 산님들이 극구 사양을 하여도 이번에는 자신들이 울 6학년 엉아들을 보호하면서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고 자청을 하고 나서니 6학년 엉아들 입장에서 안된다고 할 수 없지요 오히려 인간적인 마음으로 다가오는 후배 산님들의 그 마음에 감사를 해야지 우리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혹자들은 무모한짓 그것은 진정한 산행의 진수를 모르는 허영된 사람들이 공명심에 나서는 산행길이라 혹평을 하실 수 도 있을 줄 알지요 하지만 그런 평가를 하시는 분들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를 하면서도 제가 이번 지리산 화엄사 ~ 대운사 구간 1일 종주에 도전을 하려는것은 나에겐 이제 여러분들처럼 세월을 노래하며 산을 이야기 하며 즐기는 산행을 하며 쉬엄쉬엄 산행을 하기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이제 나는 해를 거듭할 수 록 나의 건강은 쇠퇴할것이 뻔하기에 그것을 알고 있는 도영이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오늘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는 그런 성격이 아니기에 그동안 내가 나름대로 체험을 한 장거리 산행길 종주 경험들을 거울 삼아 도전을 하는것이기에 물론 나를 염려 하여 주시는 의견들이시겠지만 그 의견에 따라 내가 하려던 계획을 포기 할 수 는 없었어요 그것은 아마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 험한 장거리 구간을 달리고 또 달리는 그런 심정과 같은 것이지요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에 대한 도전이지요 그리고 그 도전을 이루었을때 얻는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2003년 5월 31일 ~ 6월 1일 1박 2일로 지리산 성삼재 ~ 중산리 구간 종주를 시작하여 마쳤을때 그때 난 마치 내가 엄청난 일이라도 해낸듯 기뻐 했었지 그후 2004년 대원사 ~ 화엄사 구간 1박 종주를 한바 있고 또한 작년 6월에는 통영의 이수영님과 성삼재 ~ 경상남도 청소년 수련원 구간 1일 종주를 경험 한 바도 있지요

 

2003년 처음 지리 종주를 할 당시 지리산을 1일 종주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내 생각엔 마치 그 사람들이 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며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였었는데 작년도에 내가 그 지리산 1일 종주 경험을 하고 보니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나에게 또 다른 욕심이 생겼지요 그래 나도 할 수 있을꺼야 이번엔 정말로 화엄사 ~ 대원사 구간의 진정한 1일 종주를 해보는거야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다 나의 의견에 흔쾌히 승락을 하신 연산님 연산동님들은 나 보다는 산행길 인생에 다양한 경험을 오랜 세월 하신 분들이니 나야 사실 오직 의욕 하나뿐 내 세울것이 없는 사람인데 그런 나에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듯 날개를 단 기분이지요 그런데다 젊은 산님들이 동행을 자처하여 주신다니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요? 이렇게 시작되 지리산 화엄사 ~ 대원사 구간 1일 종주길은 2006년 10월 26일 영등포에서 구례구역행 무궁화호 열차를 12시 57분 승차를 하며 시작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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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6일 늦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구례구역을 나섰어요

  

그리고 우리들은 일단 구례구역 전주식당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지요 그 사이 인근에 있는 슈퍼에 달려가 패드를 달라하니 주인이란 총각인듯한 청년 어리부리 해 가지고 패드를 내주는데 흐미 겨우 손바닥 반만도 못한것이 한 셋트 40개라네요 그러니 그걸 뭘에 쓰나요 해서 다시 또 인근 슈퍼로 달려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아줌마 패드 좀 주세요 하니 아줌마 아니 아저씨가 패드는 뭘해요?ㅋㅋㅋ 그러니 어쩌겠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논설이 길어질것 같고 갈길은 바쁘고 일단 임기 응변으로 아줌마 우리 도영이 할마이가 그거가 부정기적이 되어서 그래요 그라믄서 얼릉얼릉 주기나 혀요 ㅋㅋㅋ 글구 어이 총무 계산해 ~~~

  

패드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와 일행들에게 두개씩 나누어 주니 아니 이게 뭐냐고 의아한 눈치지요 그래서 일단 등산화를 모두 풀고 깔창을 빼세요 그리고 나는 패드 봉지를 뜯어 깔창에 차근 차근 붙이며 일행들에게 따라 하라 하지요 그랬더니 아니 이게 뭔일이냐고 궁금해서 난리들을 치지요 하지만 그 답은 나중에 산행을 하게되면 알게돼 하고 더 이상 언급을 헤피 했지요 그러니 일행들은 더더욱 그 사연이 알고 싶은것은 당연 하지요

 

모르겠습니다 혹자들은 저 도영이 할아부지 증말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별 요상한 짓거리 다 한다구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요 하지만 지두 이미 7년여전 지리산 종주를 처음 시작했을때 경험을 했걸랑요 여성용 패드를 깔창에 깔고 장거리 산행을 하면 하루 이틀 사흘내내 산행을 하여도 정말 신기할정도로 발이 보송보송하고 폭신 폭신 편안하고 무엇 보다도 사흘뒤에 등산화를 벗어도 일체 냄새하나 안나고 오히려 가벼운 향내가 풍기지요 그러니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장비가 또 어디 있나요?

  

ㅋㅋㅋ 근디 웃기는것은 산행 들머리를 조금지나 일행들의 화대종주구간 산행길 임시총무를 맡은 뭐야님 ㅋㅋㅋ 계속 웃어 대네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내가 물으니 아 글씨 이 패드산것 지출명세서를 깔창으로 써야하나 패드로 써야하나 골치를 썩이고 있다구 하네요 ㅋㅋㅋ 그래 이 도영할아바이 에이 이 사람아 아니 그거이 여성들에겐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디 그걸 깔창리라구 쓰냐 그건 여성모독에 해당되니 걍 패드라 쓰라 했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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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화엄사 사찰 정문앞에 일행들이 화대종주에 들기전 기념촬영을 해 두지요 화엄사 구간을 비를 맞으며 질척줄질척 오직 숨소리만 쉭쉭 거리며 가고 있는데 이 칠흑같이 어두운밤 화엄사 경내에에서 뒹 ~ 뒹 ~ 뒹 ~ 근엄한 종소리가 울리네요 그래서 일행중 가장 장형이신 밤안개님 부군이신 연산 형님에게 형님 화엄사에서 지금 이 시각 와 타 종을 울리는걸까요? 하고 해답은 뻔할것 같은 예감을 하면서 걍 입다물고 식식거리고 가면 뭘하나요?

 

우스게 소리라도 하면서 가야죠 그랬더니 연산형님 하시는말 응 저거 화엄사 주지 스님을 내가 알기때문에 우리들 화대종주길 서종을 울려 주능거야 하며 능청스러울 정도로 뻔뻔 하시게 말씀을 하시네요 그래 내가 아니 그럼 화엄사 주지 스님을 형님 위신으론 알리가 없고 밤안개님과 주지 스님이 아시는 사이야요? 하고 뒈 물으니 아니 청판 맨날 내가 뭐라면 와 밤안개 타령이냐구 하면서 아주 쬐께는 씁쓸한듯한 뉘앙스를 풍기시네요 ㅋㅋㅋ 그라니 명사 부인들과 사는 부군님들 고초를 연산형님을 뵈면서 지가 아주 쬐께는 이해를 하게 되지요

 

그라믄서 당신은 오늘같은 날이 생일날이라네요 그래 와 그래요 하고 또 물으니 맨날같이 집에서 빨래 아니면 밥만 해대며 식모살이 하다가 모처럼 이렇게 청파를 만나 일행들과 산행을 함께 하니 완전히 자유부인이라네요 그래 나가 또 어케 가만히 있나요 아니 그럼 형님 집 나올때 빨래는 다 해놓고 나왔냐구 또 물으니 걍 왔다네요 그래 아니 그럼 그건 결국은 할일을 팽게치고 나온것이지 완전 탈피는 아니지 않느냐고 어차피 화대종주 하고 돌아가 형님이 할일 아니냐고 재차 캐 물으니 연산 형님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시네요 ㅋㅋㅋ

 

그래 내가 말했지요 형님 그러게 아주 가끔은 형님도 뻐티세요 너무 말을 잘들으니 밤안개님이 만만하게 보고 그러신다구 일러 드렸지요 ㅋㅋㅋ 증말 이 시대를 사는 울 6학년들 이렇게 압박과 설음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 하다니요? 증말 밤안개님 형님 빨래 좀 그만 시키세요 ㅋㅋㅋ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말없는 사나이 대바우님 하는말 이이는 이날 일행중 4번째 꼰댕이(고참)이지요 이이 하는말 고랑건 아무것도 아니라네요 자기는 밥하고 빨래 하는것은 기본이구 요즘 시상에 양말 떨어진것 전구를 대고 꼬매 신는다고 하며 증말 신물이나서 몬살겠다구 하소연을 하며 자기만 그런줄 알고 여지껏 꼬리 내리고 살았는데 여기에 오니 애처가 동창생들이 많아서 증말 사람사는것 같다고 앞으로 청파님 열심이 나오겠습니다 하고 치사를 하네요

 

또 어디 그뿐인가요? 부산에서 오신 홍일점 낮은 울타리님 한 구간 허벌나게 식식 거리며 산행을 하다 잠시 휴식 시간에 어이 총무 낮은 울타리님에게 그거 드려 하고 명령조로 지시를 하니 총무 조금은 검연쩍어 하면서 낮은 울타리님에게 패드를 내 놓으니 낮은 울타리님 기겁을 하면서 무안해 하시네요 그러니 울 일행들 너도 나도 나서서 낮은 울타리님 등산화를 벗겨 깔창을 빼내어 패드를 붙여 주는 호의를 표하네요 하여간 그눔의 남정네들 심리는 내 꺼나 남의꺼나 여성들 앞에 아부하는 기질은 알아 주어야 하지요 ㅋㅋㅋ

 

패드를 등산화에 부착을 하고 신어보신 낮은 울타리님에게 이거 절대로 사용후 버리지 마시고 꼭 재 활용을 하셔야 한다고 훈수를 하니 낮은 울타리님 배를 잡고 알았다고 더 이상 하지 말라고 나에게 손짓을 하시네요 ㅋㅋㅋ 그래 또 내친김에 일행들에게도 잘들 알아두라고 당부를 혔지요 당신들도 절대로 버리지 말고 아줌니들에게 재활용 하시게 하라 하니 ㅋㅋㅋ

 

어랍쇼 또 6학년 연산동님 자기는 잘 됬다고 넙적다리를 치네요 그래 와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집에 돌아가 깔창을 꺼네 깍뚜기 국물 좀 떨어트려 둘둘 말아 슬쩍 거실 바닥에 던져 놓고 아줌니에게 아니 여자가 이런것을 함부로 내 굴리고 챙피스럽게 집안 망신 당할 뻔 했다구 아줌니 닥달을 하겠다네요 그라믄 몇 일은 순한 양이 된다나 어쩐다나요 ㅋㅋㅋ으이그 증말 이 넘의 6학년 엉아들(연산님 연산동님 청파)만 만나면 맨날 요상스런 이야기로 배꼽을 빼고 있으니 증말 누가 울덜 좀 떼 놀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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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야심한 밤 노고단 대피소 식당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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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 ㅋㅋㅋ 꼭 아오지 탄광 광부 같지요 ㅋㅋㅋ

 

노고단을 지나 돼지령을 향하는 길엔 가랑비로 내리던 빗줄기 제법 굵게 내리고 있네요 그러니 그렇치 않아도 몇 년간 줄기차게 애용 하여 온 나의 디카가 습기로 인하여 아예 줌이 나오지를 않네요 그러니 구간 요소 요소에 흔적 사진이라도 찍어 두려던 나의 계획은 소포로 돌아가고 질척이며 비도 내리고 마음도 우수에 젖네요 하지만 일행들과의 팀웍 산행길이니 괜스리 나로 인하여 분위기 저하될까 내색도 하지 못하고 고난의 산행이 지속되고 있지요

 

 

임걸령 샘터에서 (착한님 제공 사진)

 

 

나의 지리 화대종주길 광부 동기들과 함께...

 

 

삼도봉에서

 

 

 

 

지난 5월 화대종주 실패시 이곳에서 부산의 사니조아님께서는 뱀사골로 향하시고 우리들은 연하천으로 진행하다 결국은 집중폭우로 포기를 하고 음정으로 하산을 하였는데 이날도 계속하여 비가 내리고 있으니 우리들 가는 화대종주길에 암흑이 드리운 느낌을 나 혼자 곱씹으며 또 한 편 마음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꼭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두지요 사니조아님 그날의 만남이 그립습니다 늘 즐산 이어 가세요

 

 

선비샘에서 갈증을 달래기 위하여 물을 받아 배낭을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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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봉까지 비를 맞으며 도착을 하니 드디어 새벽 천왕봉쪽 하늘이 열리는듯 붉게 물들고 내리던 비가 멈추게 되니 우리들은 마치 사막 여행길에 오아시스를 만난듯 일행들 모두 얼싸앉고 기뻐서 화이팅을 외치지요 드디어 우리를 지리의 품이 버리지 않으셨다는 기쁨에 울컥 햇살을 바라보며 목이메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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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젖어 몸은 개떨리듯 떨리지요 증말 도영 할아부지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요 아마 모르긴

해도 울 도영할마이 이 모습 보면 싸다 싸 하고 말할것 뻔하지요 그래도 와 보고자프건지요?

 

 

영신봉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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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에 햇살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어요

 

 

칠선봉도 지나고

 

 

오! 찬란한 태양이여 ~~~

 

 

드디어 세석대피소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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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지치고 게다가 디카까지 오작동으로 사진을 못찍게되니 청파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지요 먹는것도 귀찮고 세상 모두가 싫다는 생각 뿐 하지만 그 힘든 역경속에서도 후배님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기에 난 얼른 열일 제처두고 디카를 버너의 열기에 굽고 말았지요 얼마나 따겁게 구웠을까 디카 파워를 누르니 드디어 줌이 조금 움직이기에 그동안의 경험으로 줌을 손으로 당기니 OK 드디어 디카가 정상 작동을 하네요 그러니 금새 청파의 사기기 중천을 하지요 그러니 덩달아 일행들이 더 좋아 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진한 감동을 생각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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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아 잘있거라 ! 이제 가면 또 언제나 다시 오게 될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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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을 향하여 오름길에 만나 저 찬란한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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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 오름길에 만난 운해의 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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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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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드디어 멀리 천왕봉 정상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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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중 6학년 1반 연산동님에 다리에 근육통이 시작되셨네요 갈길은 멀고 걱정이 태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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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 대피소를 향하여 천근 만근의 다리를 터덜 터덜 가고  있는데 시상에 우리 일행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2일전 지리품에 안긴 만우 아우가 형님 소리를 하며 달려와 날 얼싸 앉고 한참동안 목메인 해우를 하지요 증말 마누우 아운 바본가봐 넘넘 우직하고 곰같네요 나 같이 약삭 빠르게만 살아온 사람을 위하여 천왕봉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우리 일행들에게 용기를 줄 생각을 하다니 ~~~ 만우 아우 고마워 내 이 한 몸 다 하는 그날까지 아우의 그 진한 山 우정을 영원히 잊지 못할껴 아니 안 잊을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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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 가는길에 고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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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터목 대피소가 보이네요 일행들이 이곳에서 잠시 대열을 재 정비를 할겸 10분간 휴식을 취한후 또 누구랄것도 없이 당연히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들처럼 연하봉을 향하여 힘겨운 발걸음을 가고 있지요 하지만 누구 한 사람도 아직은 힘든 내색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을 보며 정말 대단한 끈기를 지닌 일행들이라 생각을 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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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제석봉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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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은 쉼없이 오가는데... 나도 구름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훨훨 훠이 훠이 날아 천왕봉을 넘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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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을 지나고 이제 천왕봉이 0.5킬로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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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라 했던가요? 드디어 코 앞에 천왕봉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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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들 수요산행팀 9명 + 만우 10명은 천와봉 정상에 우리산내음 깃발을 휘날리며 화대종주의 성공 여부를 반쯤은 예감할 수 있는 기쁨 감격에 얼싸앉고 서로를 위로 격려하며 또 다시 가야할 마의 후반구간 대원사 구간 산행을 위하여 가볍게 정상주 한 잔에 우리 일행들이 떠나기전 이날 화대종주 산행길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업무로 불참하게되신 거시기님께서 손수 장만하여 주신 오리로스구이를 안주로 영양 보충을 하고선 또 다시 곧바로 중봉을 향하여 걸망을 짊어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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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가야할 중봉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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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지나온 천왕봉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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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방금 지나온 중봉 방향은 온통 구름속에 ~~~

 

앗! 그런데 천왕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급격하게 쏟아지듯 내려서는 하산길에 왜 일까요? 나의 오른쪽 단지 뒤 근육이 띵 하는 기분이더니 한 발 한 발을 내딧을 때마다 마치 살이 마르듯 새큰 새큰 거리는데 이 넘의 일을 어케 하나요 앞으로 5시간이면 내가 그렇게도 숙원하던 지리의 화대종주구간을 1일종주를 마칠 수 있는데~~~

 

인내를 갖고 참는데 까지 참으며 가보자 이를 악물고 가지요 그러니 자연적으로 생전 산행하며 뒤 처지지 않던 나의 산행길이 점차적으로 후미로 처지기 시작을 하고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그 살을 에이듯 아픈 통증속에 와 하필이면 그리도 잠이 쏟아져 오는지요 게다가 계속되는 가파른 오름길 너덜겅 후엔 얄짤없이 이어지는 급하강 너덜구간으로 지속되다 보니

 

다리가 휘청휘청 자칫 잠으로 인하여 거의 다 된밥에 초를 칠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나의 뒤에는 그림자처럼 3명의 후배산님(착한님,뭐야님,참이슬님)이 따르고 있는데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하고 몸둘바를 모르겠더라구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우리는 공동으로 풍랑을 만난 한 배에 탄 일행들인걸 ...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고

 

나는 더 이상 도저히 산행 진행을 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무조건 털썩 주저 앉으며 후배 산님들에게 난 도저히 그냥은 갈 수 없으니 15분만 자고 가겠다고 의견을 전하니 후배 산님들 청파님 그러세요 하면서 자신들도 그 가던길에 드러누워 버렸지요 그렇게 아마 한 10분 이상은 족히 곤한 잠에 떨어지고 나니 다행 스럽게도 그 아픔 통증 보다도 더 무서운 졸음을 쫓고 보니

 

한결 산행을 하기가 여유롭더라구요 그래서 아무래도 안되겠다 나름대로 가속을 붙여 아래로 아래로 하산을 서둘러 서래봉을 지나고 또 얼마를 지났을까 정말 사람 진을 말리는 듯한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산행이 지속되다 보니 드디어 치밭목 대피소가 보이고 멀리서 바라보니 선두 일행들이 그곳에서 점심겸 라면을 끓이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찌나 그들의 모습이 반갑고 기쁘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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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밭목 대피소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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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라면을 끓여 청파님 드시라고 하는데 배곱음 같은것은 참을 수 가 있는데 걱정은 아직도 9킬로나 남은 마의 구간을 과연 어떻게 통과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먹는것도 귀찮지만 후배 산님들의 정성이 고마워 몇 젓가락의 라면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나는 또 다시 먼저 걸망을 짊어지고 대원사 구간으로 하산을 서두르지요

 

그랬더니 나 보다 먼저 와 기다리고 계시던 연산동님 당신도 근육통으로 나를 따라 먼저 자리를 일어서 이때부턴 6학년 엉아들 세 사람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하며 격려를 하며 하산을고 있지요 그리고 얼마쯤을 내려 갔을까요 후배 산님들이 라면을 먹고 곧바로 우리 6학년 엉아들 꼬리를 잡으려 하고 있네요

 

그래서 우리 6학년 엉아들 용기를 냈지요 나머지 구간은 우리 셋이서 꼭 스크람을 짜고서라도 하산을 무사히 마칠터이니 걱정을 하지 말고 먼저들 내려가 유평에서 합류하여 다시 화엄사 구간은 편안하게 가자고 그랬더니 후배님들 한참을 망서리다가 우리들이 간청하다 시피 먼저 하산을 하라 재청을 하니 못잊은척 우리들 앞서 유평으로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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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화이팅! 6학년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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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리산 종주길 이정목에 표시된 거리 표시(킬로) 이것은 무엇에 기준을 두고 세운것인지요? 내 경험으로 지리산 구간 1킬로는 아마 평균 2킬로는 족히 넘을것 같은 느낌인데 증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실측거리는 분명이 아니고 아마도 지도상 거리를 타타낸것 같은데 차라리 이렇게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혼돈을 주는 이정목 거리 표시판 보다는 그 옆에 실측거리를 함께 표시를 하면 안될런지 지리산에 세워진 이정목 거리표시기를 다른곳 산행길 표시와 비교를 하면 지리의 표시는 너무도 멀고먼 딴 나라 딴 시상 사람들의 표시기란 생각이 드는것이 유독 나만 느껴지는 착각일까요? 거리표시 믿고 산행길 나섰다 지친 산님들은 아마 실망이 자칫 큰 사고를 부르기 딱 참한 이정표라는 생각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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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퍼질러 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은데도 그래도 살아서 돌아 가야 한다 가서 언제나 울 할아버지 오실까 기다리고 있는 손자 넘 도영이를 만나야 한다 글구 늘 산으로 바람이 나 들고 나는 것을 못 마땅해 하는 도영이 할마이도 보구 싶구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니 와 이리 옛날 울고 싶어라를 부른 가수 이장희의 노래가 생각이나며 증말로 두눈에 눔물이 내 뺨을 타고 흐르네요 그리고 그 눔물이 와 그리 찝찔한지요 울 도영이 말처럼 간이 간간하네요 ㅋㅋㅋ

 

그러나 그 아픔 고통중에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것은 올 가을 전국적인 가믐으로 단풍같지 않게 지나 아쉬었는데 다행이도 지리의 대원사 무재치기폭포 구간 등로 주변은 몇일전 내린 비와 어제밤 내린비로 아직 고사되지않은 나무들에 나름대로 끝물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어요 그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면 위로를 삼으며 우리 6학년 엉아들 삼총사는 스크람은 아니어도 서로를 위로하며 아래로 아래로 쉬지도 못하고 하산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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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갈길은 멀고

얼마쯤 너덜겅 구간 하산을 하였을까요 아주 모처럼 육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나타나고 아주 멀리에 유평마을이 보이는듯 하여 2004년 대원사 ~ 화엄사 구간 종주를 할때 기억을 뒈살려 이제 곧 유평에 도착을 하고 다시 포장도로를 걸으면 대원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제는 우리 엄마 젓먹던 힘까지 모두 동원하여 우리 6학년들 당당하게 대원사에 골인하자 생각을 했는데...

 

와 ~~~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 기대였을뿐 빤한길 같았는데 하늘도 보이지 않는 수목 터널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네요 그러니 차라리 기대나 하지말것을 괜스리 지래짐작 기대를 하여 더 지친몸에 피로가 몰려오는듯 하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벌써 지리 유평계곡 등로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을 하는데 ~~~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늘이여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지리의 어머니 품이시여 이 못난 6학년 삼총사를 버리지 말고 도와 주세요 예수님 부처님 그 어느분도 믿지 않는 나의 입에서 연방 하느님 부처님을 부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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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끝 / 이 문이 나에겐 마치 지옥문 같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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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살아난 6학년 엉아들 지옥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박아두지요

 

치밭목 대피소구간을 하산할땐 정말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왜 그렇게도 굴뚝같이 들었는지요? 근육통 아픔도 아픔이지만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를 당하기 안성마춤인 너덜겅 구간길에 와 그리 잠은 쏟아져 눈이 감기며 휘청 거리는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석고가 된다 하더라도 그리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젊은 대원들을 먼저 유평 대원사로 하산을 시키고 터덜터덜 너덜겅을 내려오는길 우리들 6학년 엉아들 3인의 모습은 마치6.25당시 피아골에 남았던  패잔병 모습 같기도 하고 전장에 핀 꽃 전우에 같은 진한 감동도 느꼈답니다

 

그리고 먼저 유평에 내려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후배 산님들이 연거푸 몇 잔 따라주는 이슬이 잔을 받아 마시고 다시 용기를 내어 유평에서 다시 대원사 포장도로길을 걸어 대원사 앞 인근에 정해놓은 식당에서 구수한 된장찌게에 소주를 나누어 마시고 승합차를 대절하여 진주까지 이동 진주에서 우등고속을타고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새벽 12시반인데 걍 헤어지기 아쉬워 시간이 있으면 이별주라도 한 잔 나누고 헤어지고 싶지만

 

각자 의정부로 인천으로 서울로 경기도로 갈길들이 바뻐 잠시 이별의 악수를 나누고 있는데 시상에 맙소사 이 야심한 밤중에 가수 김수희씨를 영락없이 닮은 은영님께서 우리 일행들 수고 하였다고 따끈따끈한 커피를 포트에 끓여 오셔서 일행들에게 나누어 차 한 잔씩 대접을 하시네요 세상에 이렇게 눔물겹도록 고마운 산 우정 앞에 난 또 울컥 했지요 그리고 우리 일행중 최고 엉아 6학년 5반 연산님을 모시고 자택까지 태워다 드리겠다고 붕 달려 가시고 난 작은 아들이 나름대로 애비를 생각하여 차를 몰고와 일행 4사람을 태우고 달려 집에 도착을 하니 새벽 2시가 가까워 오고 있네요

 

그리고 잠을 청해 보지만 너무나 피곤하기 때문인가요? 그렇게 산행길 내내 졸음과의 전쟁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잠은 커녕 점점 더 또랑또랑 해지는것 있지요 그래서 내가 걸어온 지리의 화대종주길을 다시 한번 반성을 했지요 내가 생각을 하여도 정말 주책없는 낡은이가 의욕만 앞서서 감히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무모한 산행길에 도전을 하였다는것이 기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주책이고 망녕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런가 하면 내 주위에 또 누가 화대 구간 1일 종주를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난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이지 그 길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어요 차라리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행하는 어쩌면 무모한 산행길이란것을 알려 주고 싶었어요 결국 6학년 엉아들이 의욕을 갖고 행하여 얻은 22시간 지리 화대구간 1일 종주길이 과연 우리에게 남은것은 무엇이고 그리고 얻은것은 무엇이고 또 잃은것은 무엇일까요?

 

다만 한 가지 긍지를 갖는다는것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 6학년 세대들은 유달리도 운덜이 없어 일제때 어린 아이때 배 굶주리며 살았고 이어서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으로 고생들 지지리도 오래했고 1.21 사태니 월남 파병이니 결국은 우리 몫이 아닌데도 우리들은 그렇게 희생을 하며 살아 왔지요 그러니까 이 시대의 격동기에 용케도 살아남아 또 이어지는 첨단의 시대에 우리들 세대는 또 격세지감을 느끼며

 

자칫 고개숙인 남자들이 되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그러다 보니 왜 그렇게도 내 살아온 인생길이 분하고 원통한지요 그래서 한 바탕 속 시원하게 어디다 퍼질러 해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아마 그런 내 모습 보면 또 한 소릴 듣게 되겠지요 으이그 이 낡은이야 늙을려면 곱게 늙어라 하고 말이지요 그라니 나인 비록 6학년이라지만 아직도 가슴에 끓는 피는 젊음 시절 그대로인데 울덜은 그 한 풀이 어디다 하며 살아야 하나요?

 

걍 내 복이다 내 운명이다 생각하며 숨죽이며 살기엔 너무도 울컥거리는 욕망이 아직 뛰고 있었어요 그래서 감행을 하였지요 6학년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6학년도 고개숙이고 풀죽은 남자들로 전락하여 버리기엔 너무도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아쉽고 할일이 있다는것을 나를 이해을 하는 많은 분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울덜 6학년 엉아들은 해내고 말았어요 이런 나의 지리 화대 종주길 계획을 처음부터 시종일관 지켜보며 산행길 내내 많은 격려와 멧시지 그리고 메일로 당신들을 대신하여 청파가 꼭 성공하여 달라고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비록 고생은 하였지만 이 값진 인고의 결과에 만족을 전 합니다 그리고 산행길 내내 다소 고생을 하였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모든 아픔은 사라지고 지금은 서부전선 이상무 / 다음 수요산행때 뵙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끝으로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 사과를 드립니다 사실은 우리나라 국립공원구간에선 야간산행이 금지된것을 알면서도 노욕으로 야간 산행을 감행 하게 되었음을 깊이 머리숙여 사과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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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에 웃으며 찐한 우정의 한잔을 나누는 6학년 엉아들!

 

화엄사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서쪽에 있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0년(신라 문무왕 10)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庵)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1630년(인조 8)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대원사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때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948년 여순반란 사건때 소실된 것을 1959년에 김법일스님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이사찰 경내에는 보물 제1112호인 조선초기의 다층석탑과 대웅전, 사리전, 종각 등의 건물로 배치되어 있고 비구니의 수도장으로 알려진 국내의 명찰이다. 대원사 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약 2㎞에 이르는 이 계곡은 산이 높고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바위틈 사이로 뿜어내는 물과 괴암은 절경이다. 계곡의 명소마다 전설이 있다.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했다는 용소, 가락국 마지막 구형왕이 이곳으로 와서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고 하는 소막골, 왕이 넘었다는 왕산과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도장굴 등으로 불리는 옛 지명이 현재까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대원사 계곡에서 지리산의 무재치기 폭포, 치발목산장, 써리봉, 중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은 지리산의 최고 명소라 할 수 있다.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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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마음이 흔들렸다고 마음이 없는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