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04년 2월 8일, 일요일

2. 코스 : 향적봉-국사봉-깃대봉-함지봉-연산

3. 산행기록 :


정역의 고향 향적봉(香積峰)

계룡산의 줄기가 다하는 곳은 어디일까?
산지사방으로 뻗어있는 용을 모다 불러 모으기가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보고자 한다.
오늘은 `향적봉`에서 `국사봉`을 지나 `황산벌`이 있는 `함지봉`까지의 여정이다.
`맨재소류지` 앞에 자리한 "무상사"앞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 무상사 ]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無常"일까? 모든 집착을 끊어버린 공(空)인 "無相"인가?
아니면 일체의 상념(想念)이 없음을 뜻하는 "無想"인지 아님 세가지를 모다 포함하였을까?
이조차 부질없는 일이지만 우리말의 말뜻이란 놀랍다.
'국제선원'이라고 들었던 이곳은 여늬 절집과는 다르게 3층 건물로 되어있어 추녀에 매달린 풍경이 높다랗다.

굿당에 물건을 조달하기 위해 만든듯한 널따란 임도를 따라 오른다.
한 굽이를 돌 때쯤이면 '거북암'이란 이정표는 왼쪽골로 향하고 길은 오른쪽으로 열려있다.
물론 `거북암`에 들렀다가 그 뒤쪽의 산을 치고 올라도 막 바로 `향적봉`에 닿기도 한다.
두 굽이 째의 산중턱에는 제법 너른 터를 닦아 놓은 `귀룡정사`가 아늑하게 들어서 있다.


[ 귀룡정사 ]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 임도는 끝이나고 작은 사립문이 길을 막아서며 건물이 몇 개 보인다.
`산제당`.


[ 정역을 연구하던 곳 ]

굿도 열리지만 이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정역(正易)이 연구된 곳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뜻으로 사는 선천시대의 돌아가는 이치가 주역(周易)이라면 인간의 뜻으로 세상이 이루어지는 후천세계의 경전은 정역(正易)이라 한다.
복잡하게 따져보지 않아도 세상은 많이도 달라졌고 물질보다는 정신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작금.

새 시대에 맞는 정역이 탄생한 이곳에는 그것의 상징물인`거북바위`와 `용바위`가 있다.
`용바위`는 길 오른쪽 아래로 50m 정도 내려가야 볼 수 있는데 바위 밑엔 제단처럼 터를 닦아 놓았다.


[ 용바위 ]

`거북바위` 밑은 치성 드릴만한 공간이 있으며 위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자리잡고 있어 더욱 신비함을 자아내고 있다.



[ 거북바위 ]


[ 거북바위 밑의 치성공간 ]


더구나 세상엔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 없다지만 후천세계를 준비하는 이런 자연의 조형물이 계룡산중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이재호씨 초당이 있고 약숫물이 시원하고 맛나다.
약수를 마시고 오르는 참에 산에서 내려오는 벽안의 스님과 마주쳤고 비알길을 잠시 오르면 헬기장에 닿게된다.
왼쪽의 사면에 난 길은 채 녹지않은 눈이 얼어붙어 매우 미끄러웠고 두 여성분을 지나쳐 오른 `향적봉`.


[ 천황봉으로 향하는 용줄기 ]


[ 천지창운비와 엄사지구 ]


[ 상월벌에 드리운 향적봉 그림자 ]

얼마 전에 `대충산사`의 시산제를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의 다짐들은 모다 계룡산신께 전해졌으며 마음속에 늘 자리하므로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시산제가 이상없이 시행되었음을 확인하고는 남쪽의 능선을 향해 내려선다.




잃어버린 천마의 꿈

잠시 잡목 숲을 진행하다가 `깃대봉(531m)`을 지나면 조금씩 주위가 터지고 `향적봉`이 올려다 보이며 곧 바위지대를 지나게 된다.
이 바위는 멀리서 보면 장롱처럼 보여서 `농바위`라고 하였는가!
바위에 올라서면 향한리쪽으로 절벽이 아찔하지만 길은 오른쪽 아래로 우회하게 되어있고 계속해서 작은 암릉 구간을 지난다.


[ 향적봉 ]


[ 농바위와 가야할 능선 ]

눈을 들어 왼쪽을 보면 지금 가고있는 줄기와 나란히 `양정고개`를 거쳐 `천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줄달음 치는게 보인다.
`구례들`로 향하는 갈림길도 보이고 오른쪽으로 계속 능선을 이으면 자그마한 봉들을 넘는다.
정상에 잦아드는 무덤이 있는 이곳이 `갈미봉`쯤 일텐데 지도가 없어 갑갑하다.

옛날 이성계가 신도내를 바라보며 국사(國事)를 논(論)했다는 `국사봉`은 잡목이 정상을 가린데다가 등로마저 오른쪽 8부 능선을 가로지르게 되어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 옛 대궐터로 예정되었던 대궐평 ]

국사봉 오른쪽으로 잠시 휘어져 내리다 묘지앞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가는데 곧 사거리 안부가 나온다.
`윗산명재`인데 우측엔 저수지가 슬며시 보이고 왼쪽은 잡목숲으로 나있는 하산길이 희미하다.
벌써 절기가 봄이라선지 날이 따뜻하고 좋아 산행에는 더없이 쾌적하며 거의 사람흔적이 없는 길을 가게된다.
작은 봉을 두 개쯤 넘어서고 문득 오늘 화성탐사에 나서는 홍수염 형님께 가지못하여 서운한 마음을 전한다.

다시 봉우리를 넘자 내림길 오른쪽으로 송전탑이 버티고 서있으며 `아랫산명재` 잘록이 왼쪽 도곡리 방향으로는 강산에 표지기가 매있다.
직진하여 제법 가파르게 올라서면서 뚜벅이 표지기가 보이고 봉에 오르자 이내 능선이 순해지면서 길이 다시 편안해진다.
곧 삼각점이 있는 367봉에 오르게 되는데 아래쪽에 자리한 `배울`엔 천마와 관련된 슬픈 전설이 있다.


[ 뒤돌아 본 국사봉과 굴바우산 ]

『`천마산`에서 수련하던 한 장수가 말에게 `배울`쪽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 내가 화살을 저기로 쏠 것인즉, 만일 네가 화살보다 빠르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장수는 화살을 날렸고 말은 바람처럼 열심히 뛰었다.
산기슭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 본 장수는 늦은 것으로 오해하고는 화가 나서 단칼에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휙 소리와 함께 화살이 땅에 꽂히는게 아닌가!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장수는 말을 묻어주고 그 옆에 채찍을 꽂아 놓았다.
얼마 후 무덤에서 자라난 나무가 크더니 꼭 말채같이 퍼져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말채나무`라 불렀다 한다.』


아! 아!! 황산벌아...

줄창 나란히 달리던 `금남정맥`의 능선이 연산에 이르러서는 어깨가 더욱 높아지고 그 사이로 언뜻 `대둔산`의 모습도 조망된다.
앞쪽의 봉우리 왼쪽에 임도가 보이고 기계톱 소리가 들리더니 꼭대기에 올라서니 `깃대봉`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 깃대봉 ]

하지만 620m라고 표기된 이곳은 GPS로 확인을 계속해도 404m를 넘지 않으니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인데 표시된 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표지판 쪽은 임도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여야 하는데 잠시 내려서 조망이 트이는 바위지대를 지나 무심코 가다보니 아무래도 이어지는 능선길이 아닌 듯하다.

다시 거슬러 오르니 산허리를 왼쪽으로 감돌아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가파르게 내려가니 제 길을 찾은 마음은 비로소 안심이 된다.
오른쪽으론 `황산벌`이 너르게 펼쳐져 있고 산줄기 또한 평야를 향해 몸을 낮춘다.
`약수암`쪽에서 올라온다는 세 사람과 마주치고는 곧 통나무계단을 오르자 평범한 봉우리였고 `함지봉`은 조금 더가서야 머리에 작은 돌무지를 이고 반긴다.


[ 함지봉에서 바라보는 깃대봉(우측)과 무명봉 ]


야산이지만 옛 `황산벌`인 연산일대가 잘 내려다보이고 편안한 길 따라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잡풀 사이로 충남 기념물 56호인 `황산성`이 있다.
옛날 신라의 군사들을 막기위해 둘레 50리에 걸쳐 쌓아졌다던 성벽은 허물어져 겨우 돌무더기 조금으로 성터의 맥을 잇고 있는데 패자의 역사는 항상 이런 것일까?

또한 후백제의 신검이 이 벌판에서 왕건에게 항복한 곳이기도 하니 백제로서는 천추의 한이 담긴 땅이 `황산벌` 아니겠는가!
저물어 가는 나라의 국운을 걸고 이 자리에 섰을 계백과 백제군사들 그리고 대치하던 신라군과 화랑 관창의 함성이 들리는 듯 하다.


[ 연산(連山)이란 무엇인가? ]


[ 대둔산이 보인다 ]

『황산벌
백제의 운명을 건 마지막 싸움이 있던 곳으로 영화 `황산벌`에서 희화 되기도 하였다.
`기벌포`에서 `사비`로 상륙한 당의 군사와 `탄현`을 넘어온 신라의 대군을 막기 위해 계백은 결사대 5,000명을 거느리고 `황산벌`에 진을 치고 신라군을 맞았다.
출전에 앞서 계백은 "살아서 적의 노비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하여 자기의 처자를 모두 죽이고 싸움에 임하였고, 모두들 죽기를 각오한 터라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신라군은 번번이 패하게 된다.
그러나 나라의 운이 다하면 개인의 운명도 거기에 묻혀버리는 것일까?
신라의 화랑인 관창(官昌)과 반굴(盤屈)이 용감히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가 전사함으로써 전세가 역전되고 계백과 결사대는 결국 최후를 맞게 된다.』


[ 황산벌 ]

산성을 내려서면 곧 포장된 임도가 나오고 그 한쪽에 자리한 `약사암`에 들러본다.
유서 깊다는 `약사암`은 현재 컨테이너 같은 건물외벽에 붙인 주련만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계룡산의 끝자락에서 부처님을 뵈옵는 인연을 맺고 방을 수리하고 계시던 스님께 우유도 공양 받았다.
전에는 무당들이 기거하고 했지만 스님이 온 뒤 많이 정화되었으나 정리할 일들은 아직도 많은 것 같았다.

다음 인연을 기대하며 절 앞의 길 너머 전봇대 사이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내리고 곧 밭 가장자리로 내려선다.
옆으론 `대성전`이란 현판이 붙은 건물과 부속채들이 보이는 문화재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는 `연산향교`.


[ 연산향교의 대성전 ]


[ 연산향교 ]


[ 부드러운 담장 ]


하마비를 지나고 길 따라 딸기 시설하우스가 논에 들어선 관동리 들판을 걷다가 지나는 트럭에 편승을 하여 `양촌삼거리`까지 덕분에 고맙고 편안하게 왔다.
마침 오늘이 장날이었는데 스쳐 지날 때 연산의 특산물인 오골계는 않보이나 대추는 눈에 띈다.
버스가 왕건과의 전설이 담긴 `개태사`를 지나서 `양정고개`에 다다를 즈음 옆의 철도에선 KTX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더니 금새 멀어져간다.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인간의 모든 것이 그것과 비례하여 좋아지지는 않았다.
옛날엔 사람끼리의 전쟁이 일어났지만 현대는 모든 방면에서 전쟁이다.
`이라크 파병`같은 실질적인 전쟁도 있지만 `칠레 FTA` ,`중국의 고구려 역사 찬탈기도`
그리고 늘 되풀이되는 `일본의 독도 망언` 같은 것들이 과거의 전쟁보다 더욱 처참한 전쟁이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주체성을 가지고 내실을 기한다면 곧 시기가 무르익으리라.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얼어붙은 대지가 풀리듯 우리 맘속의 앙금 또한 저절로 없어지리라.
옛 역사의 격전장에서 또 다시 변화의 중심이 될 충청이 고속철도 KTX보다 빠르게 발전하리라 기대하면서...




[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낙수 ]


▣ 산그림자 - 안녕하세요.. 산그림자 입니다.. 님의 자세하고 사려깊은 계룡산의 산사랑을 헤아려 보며 긴긴 걸음하시며 간결한 글로 써 읽는 사람들에게 자상함을 보여주시니 감사히 읽었습니다.. 언제나 힘찬 발걸음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김정길 - 윤기웅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향적봉 정상에서 보는 계룡산이 너무도 우람하고 아름답습니다. 1년 전 쯤 향적봉 정상에서 사각 비석에 파서 새겨진 향적봉이라는 글짜가 같은 회색이라서 잘 보이지 않아 제가 글자 주변에 검정색 메직을 칠했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그랬더니 향적봉이라는 글자가 훨씬 잘 나타나 보이더군요, 메직이라서 지금은 사라졌겠지 만요. 앞으로는 자주 봅시다. 안전산행 하시고요.
▣ 김정길 - 저는 011-319-0900 입니다. 님의 휴대전화번호를 메시지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