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린시절엔 집뒤에 산에  갈뀌들고 소나무잎을 모으러 다녔던곳.

학교생활때에는 그저 발당구고 물장구치던 내장산의 계곡들.
아가씨 시절엔 그냥 산아래만 둘러보기.

결혼후  남편 등쌀에 팔공산을 안방처럼 다니면서  건강을 생각해야했던시절.
그러나 지금은 산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슬픔의연속이었을까?

아님 세상사는 맛이 없었을까?
아직도 답은 찾지못했다.

건강이 최고로 알고 살았던 지난 50년세월이
하루아침에 슬픔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산이있어 오늘도 부품꿈 과 희망에 산다.

수술후 낮은 산부터 서서히 진행하다가 강도 높여 오르기를 시도한후에
무박산행에  도전장을 냈다.

그것도 북공파선을 이용하는 코스로.

전날 부터 설레임과 기대함과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를 보낸후
자정을 기해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싫었다.

밤새 눈만 감은채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용대리를 거쳐 미시령 옛고개로 차는 오른다.
안개속을 뚫고......

짙은안개속에 38선을 무장공비들은 넘었다.
국공파에게 잡히면 거금이 기다린다.

그랬다.
그래도 지키는 자를 속이도 38선을 넘어 룰라 룰라 오름길을 오르지만
가슴에서 벌렁거리며 심호흡을 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2001년11월에 대간을 한답시고 그날도 04시에 이길을 걸었었다.
참으로 마음이 묘했다.

앞서가던 이들은 벌써 꼬리도 안보인다.
이제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나자신과의싸움.

물론  뒤에서 지키고 오시는 벨님이 계시지만 순수하게 내몸과 정신으로 가야한다.
어느덧 집채만한 너덜길에 다다랐다.

이슬이 가끔 발목을 미끄럼 타게 만들지만 그래도 좋았다.
살아있다는 행복함일까?

한발 한발 디딤돌을 딛으며 오르다보니 엉덩이와무릎은 아마도 기스가 났을거라 예상한다.
역시나 그랬다 .파랗게 멍들은 허벅지와무릎들
아주 예쁘게 수를 놓았다.

바람도  불어주니 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머리에서 눈으로 땀은 비가되어 내린다.
갑자기 힘이드니 제일먼저 딸래미 얼굴이 떠오른다.

한발 한발 마음은 새가되어
무겁게 걷는 몸둥아리는 날 후회하게도 잠시했다.

왜 ?
왔을까?
그러나 선택의여지가없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난 여기서 이겨야한다 .
그래야만 내몸에 전새얻어 살고있는 병을 이길수가 있는것이다.

함박꽃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여기저기 이름모를 꽃들이 저마다의자태를 뽐내며 향기까지 뿜어내고있다.

드디어  마등봉에 올랐다.
눈을 감고 벅찬나머지 얼굴엔 최악의상태로 일그러져있다.
그모습이 좋아보인다며 산친구는 사진을 찍는다.

마등령에 다다르니 많은 산님들이 식사들을 하신다.
앞서가신 일행을 찾아가니 회장님이 박수를 쳐주신다. 부끄럽다 ,하지만 가슴이 용강로처럼 끓고있다.

유부초밥에 청량고추5개 이게 오늘 나에게 힘을 주는 에너지이다.
가난한 밥상이지만 너무 행복하다.
행복 바이러스로 인해  소갈비를 뜯고있는 밥상과도 비교가안된다.

오세암을 들려 자주 걷던 길로 유유히 걸어보니
아~살았군아.
이젠 걱정이 없다 무엇이든지 할수있다는걸 느꼈다.

산행후 5일동안 식당에서 힘든 써빙을 하고있다.
시동생의장인어른이 별세하셔서...

그러나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부자다.
무박으로 다녀온 22키로정도의 산행이 이렇게 행복바이러스를 주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