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7. 5일

                                *소재지   :충북 영동

                                *산높이   :천태산715m/대성산705m        

                                *산행코스:누리교버스정류장-천태산매표소-영국사-천태산-서대산갈림길-

                                                 -대성산-꼬부랑재-대성산기도원 정문

                                *산행시간:9시50분-18시30분(8시간40분)

                                *동행      :나홀로

 

       
 

  생각지도 않았던 낙상으로 무릎이 많이 까지고 몇 군데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천태산에서 대성산으로 가는 길에 작은 바위 위를 지나다가 발을 헛디뎌 왼쪽으로 1m 가까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낙상을 입었음을 기록하는 것은 크게 다쳐서가 아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입니다. 날카롭거나 위험한 구석은 손 틈만치도 없는 누구라도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는 안전한 바위 길에서 밑으로 떨어진 것은 수영선수가 목욕탕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이상으로 발생확률이 거의 없는, 필시 딴 생각을 하다가 일어난 심히 부끄러운 사고로 누구를 탓하거나 억울해 할 일도 못됩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그 유명한 호메로스도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었다는데 이제껏 크고 작은 사고가 한번도 없었던 제가 좀 실수를 했기로서니 뭐 그리 대수이겠냐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홀로 산행” 중에 부주의로 사고를 낸 것도 또 사고 발생시에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구급약품키트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도 모두 산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번 사고로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옛 이야기대로 불의의 사고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준비하라는 산신령의 가르침을 헤아릴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4년 전에 과천시산악연맹 회원들과 함께 오른 충북 영동의 천태산을 다시 찾은 것은 그 때는 폭우로 제대로 보지 못한 이 산의 속살들을 찬찬히 들여다본 후 산림청 선정 100대명산의 76번째 탐방기를 써보고 싶었고 또 인근 대성산과 장룡산을 연계해서 장거리 산행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충북의 설악산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이어서 산림청에서 명산 100산의 하나로 선정했다는 천태산을 아무려면 설악산에 비견할 수 있겠는 가만은 배상우님이 개척해 놓은 몇 곳의 암릉길 전망바위에서 이 산의 암봉과 숲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 저는 좋아합니다. 천태산 가는 길은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기차로 옥천까지 가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양산행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옥천 출발 반시간이 조금 지나  영동의 누교리에서 하차하여 오른 쪽의 천태산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잘 자란 벼들이 논을 덮은 초록의 논 뜰에 눈길을 주며 전형적인 시골 찻길을 20분 가까이 걸어 천태산 입구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아침9시50분 천태산매표소에서 명산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표를 파는 할아버지로부터 전단을 받아들고 매표소를 출발해 단풍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넓은 길을 지나 계곡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계곡물소리 못지않게 올 들어 갓 선을 보인 매미들의 울음소리도 컸습니다. 이 산의 명소인 삼신바위와 용추폭포로 불렸던 삼단폭포를 지나 둔덕에 오르자 수많은 표지기들이 걸려있어 마치 표지기전시장을 온 것 같았습니다. 천태산의 위용에 압도되는 둔덕에서 영국사까지는 지척의 거리로 거목의 은행나무 뒤에 들어앉은 이 절이 참으로 고즈넉해 보였습니다.


 

  10시18분 천년 가람 영국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경내라고 일컫기가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은 영국사는 고려 말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절로 내려와 국태민안을 빌었다 해서 이름을 얻은 절로 정문 앞의 500살 먹은 은행나무로 더욱 유명해진 천년 고찰입니다. 고즈넉한 영국사 경내로 들어가 대웅전과 삼층석타 및 원각국사비를 둘러본 후 절을 나와 거대한 고목인 은행나무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영국사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가 정상을 1,370m 남겨 놓은 A코스 들머리로 올라서자 맨 땅이 드러난 솔밭길이 시작됐습니다. 2백 미터를 채 못 걸어 첫 번째 로프가 걸린 암릉 길에 발을 들였습니다. 언제고 그렇듯이 설렘과 두려움 속에 암릉 길에 오르며 코스가 쉬워 공연히 호들갑을 떨었다 했는데 정작 어려운 코스는 두 곳이 남아 있었습니다. 


 

  11시6분 마지막 암릉 길인 70m 대 슬라브 코스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두 번째 암릉 코스의 안전우회로가 왼쪽으로 나있어 이상하다 했는데 4년 전에 미끄러워 오르지를 못하고 오른 쪽으로 우회했던 암릉길은 이 길이 아니고 다음의 세 번째 코스였습니다. 두 번째 암릉 길을 로프를 붙잡고 오른 후 얼마고 더 걸어 지나온 두 암릉 길보다 경사가 훨씬 급한 마지막 바위길을 만났습니다. 과체중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우회로로 돌아갈까 잠시 고심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 바위 면이 미끄럽지 않은데다 일반 등산화보다 접지력이 좋은 릿지화를 신고서도 남들이 다하는 이 코스를 피해간다면 저 스스로에도 부끄러운 일이어서 심호흡을 한 다음 로프를 잡았습니다. 70도는 넘을 법한 가파른 바위를 올라서자 그 다음 코스는 자신이 생겨 별 어려움 없이 해냈습니다. 슬라브코스를 마치고 상단의 바위에 오르자 그 때서야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 팔에서 힘이 많이 빠졌음이 느껴졌습니다.


 

  11시48분 해발715m의 천태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슬라브 코스를 마치고 7-8분을 더 올라 전망바위에서 목을 축인 후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남쪽 지능선의 죽은 소나무들이 추해보였지만 높다란 암봉과 푸르른 나무숲이 접하는 경계선이 마치 생명과 비생명이 만나 교유하는 통섭의 접점처럼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 영국사에서 A코스로 오르는 큰 길을 지나던 산객 중 한분은 어느새 제가 쉬고 있는 바위에 올라 인사를 건네 와 그의 빠른 걸음에 놀랐습니다. 누리교 차도 건너 동쪽으로 해발 640m의  마니산이 꽤 높게 보였습니다. 다시 20분여 힘들게 올라 능선삼거리에 닿았고 오른 쪽으로 꺾어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표지석과 표지봉이 함께 세워진 정상에 서있는 저의 모습을 어느 한분의 도움으로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날이 흐리고 나무들이 가려 전망이 그리 좋지 않아 정상에 오르면 보인다는 민주지산도 서대산도 헤아리지 못하고 포항에서 오셨다는 여러 노인 분들로 시끌벅적해진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대성산으로 향하는 경사가 가파른 내림 길이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13시35분 서대산 갈림길 전방 2-3백미터 전방에서 점심을 들며 20분을 쉬었습니다.

천태산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지나 안부에 내려섰다 다시 무명봉에 올라 가쁜 숨을 진정시켰는데 더 가파르고 긴 본격적인 내리막길은 이 봉우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엄청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무척 조심을 한 결과 시간은 걸렸어도 궁둥이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잘 내려섰는데 지금껏 우회한 우람한 암봉 밑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암봉 하단에서 신안사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 오른 쪽으로 난 희미한 흔적을 찾아내어 이 발자국을 쫓아 능선으로 향했습니다. 용케도 길을 잃지 않고 능선에 올라서서 “천태산0.8Km/절터가는길1.8Km” 표지목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방금 우회한 거암을 뒤로하고 서대산 갈림길을 향해 전진하는 중 제 앞을 스르르 지나는 커다란  초록색 뱀을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 길가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한 무더기의 뱀 떼를 만나 소스라치게 놀랐었는데 요즈음은 깊은 산 속에서도 만나보기가 쉽지 않을 만큼 뱀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뱀을 만나는 일이 반갑거나 즐겁지 않은 것은 에덴의 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한 뱀의 세치 혀가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잔 소나무가 능선을 지키는 토사 길을 지나 감투봉에 이르는 데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오르내림은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간헐적으로 등 뒤를 내리쬐는 한 낮의 햇빛이 부담스러웠고 배가 고파서 감투봉을 조금 지나 서대산갈림길의 봉우리삼거리를 바로 앞에 둔 무명봉에서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15시12분 좌측 사면에 아주 작은 너덜겅이 있는 무명봉에서 잠시 쉬면서 어처구니없이 당한 사고를 되새겨보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5분도 못 걸어 서대산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대성산으로 이어지는 오른 쪽 경사 길로 내려서다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안부에 내려서자 골바람이 불어 시원했습니다. 직등 길을 오르며 샛노란 버섯을 만나 요즈음이 바로 장마철임이 생각났습니다. 천태산3.6km로 쓰인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와 거의 안부에 다다를 즈음 높이가 1m도 안되는 바위 위를 지나다가 발을 헛디디어 왼쪽으로 넘어져 떨어지는 바람에 왼쪽 무릎이 심하게 까지고 다리와 옆구리가 바위와 부딪힌 충격으로 결리고 쑤셨습니다. 응급처치용 구급약품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아 당황했는데 이내 일어나 산행을 계속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10분을 넘게 걸어 능선에 오르자 골바람이 불어와 머리가 시원했습니다. 사고 장소로 되돌아가 두고 온 모자를 찾아 쓰느라 반시간 가까이 늦어졌지만 작은 나무가 쓰러진 사고 현장을 보고 매사에 조심하고 구급약품을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결의를 다질 수 있어서 늦어진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개심저수지로 내려서는 모래등날 시작점을 훨씬 지나고 암봉을 지나서 무명봉에 이르러 13분을 쉬면서 장룡산까지 진행하겠다는 이번 산행을 시간이 없어 대성산에서 마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무명봉에서 내려와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비교적 넓은 숲길을 20여분 걷는 중 비로소 더 큰 사고를 막아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고 마음의 평화도 느껴졌습니다.


 

  16시55분 삼각점과 정상석이 서있는 해발705m의 대성산에 올라섰습니다.

평화가 깃든 숲길을 지나 오른 무명봉에서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대성산/개심저수지 갈림길의 작은 팻말이 걸려있는 무명봉을 16시 정각에 올랐습니다. 때죽나무(?)의 푸른 잎이 유난히도 넓게 보이는 낙엽 깔린 길을 따라 한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돈 후 한참을 더 걸어 송전탑을 지나자 오른 쪽으로 개심지 저수지가 보였습니다. 능선 길 상공을 가로 지르는 전선 밑의 풀숲 길을 지나느라 가시들에 많이 찔렸습니다. 풀 숲길을 지나 꼬부랑재로 향하는 중 라디오를 들으며 하산하는 한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부산에 살면서 잠시 당진에 머물며 일을 본다는 이 분은 김태선님으로 차를 밑에 주차시켰다며 기다릴 터이니 서둘러 대성산을 다녀오라고 해 고마웠습니다. 꼬부랑재를 지나 정상에 올랐지만 전망은 별로였습니다. 곧바로 꼬부랑재로 되내려와 오른쪽으로 내리뻗은 지능선을 탔습니다.


 

  18시30분 대성산본향기도소 정문 앞을 조금 지나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꼬부랑재에서 의평으로 내려가는 능선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흐릿했지만 외길이어서 길 찾는 데는 별반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능선 길을 40분 가까이 걸어 왼쪽으로 의평 가는 큰 길이 나있는 능선사거리에 내려섰습니다. 김태선님과 만나기로 한 개심저수지 쪽의 사슴농장이 능선 오른 쪽 아래에 있어 지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17분을 내려서서 승지골을 만났습니다. 다시 15분간 네댓 번 물길을 건너며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장애골과 만나는 합수점에 조금 못 가 비닐하우스가 있는 큰 길로 빠져나왔습니다. 길가 계곡물로 간단히 얼굴만 닦은 후  몇 걸음을 옮겨 대성산본향기도원 정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김태선님에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사슴목장을 향해 부지런히 내달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중 나온 이분을 만나 승용차에 올라 옥천읍내로 이동했습니다. 이분 덕분에 저녁 7시12분에 옥천역을 지나는 서울행 기차를 탈 수 있어 집에 돌아가는 길이 편했습니다. 어진 이들이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이분께 감사말씀 올립니다. 


 

  천안에서 산본가는 전철로 갈아타기 전에 약국에 들러 소독을 한 후 연고를 발랐습니다. 통증이 더 심했지만 상처부위에 약을 바르고 나자 마음이 놓여 몸 동아리 상처를 치유하는 약처럼 가슴 속 깊은 곳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도 함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있다면 아마도 그 약은 사랑을 원료로 해 만들었을 것입니다. 자비도 평화도 원료의 한 성분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 것들만으로 치유가 안 된다면 별 수 없이 이 약에 세월을 가미해야 할 것입니다. 이토록 우리 몸의 상처보다 훨씬 치유가 힘든 것이 마음의 상처이기에 이 상처를 남에게 주지도 말고 또 남들로부터 받지도 않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생각이 들어 이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