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내4산 (內四山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돌기 

 

서울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에서 서울의 조산(祖山)인 삼각산  (뒤 좌측으로부터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 앞중앙 사자능선, 앞우측 형제봉) 

 

서울산의 지세(地勢)

백두대간상의 함경도 철령(鐵嶺)에서 나온 한북정맥이 남쪽으로 가다 양주(楊州)에 와서 자잘한 산으로 되었다가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돌면서 솟아나 도봉산(道峰山)의 만장봉(萬丈峰)이 되었다. 여기에서 동남방을 향해 가면서 끊어진듯 하다가 다시 우뚝 솟아 삼각산의 백운대(白雲臺)가 되었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서 만경대(萬景臺)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한가지는 서남쪽으로 뻗어갔고, 또 한가지는 남쪽으로 뻗어서 백악산(白岳山 북악산)이 되었다.

백악산(북악산)은 형세(形勢)가 하늘을 꿰뚫는 목성(木星)의 형국(形局)으로 궁성(宮城)의 주산(主山)이라고 한다.

 

서울은 원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었는데, 백제가 취하여 370년(백제 13대 근초고왕 25)에 이곳 한산(漢山 서울)으로 수도를 옮기었고, 474년(백제 21대 개로왕20)에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다시 취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552년(신라 24대 진흥왕13)에 신라가 획득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라 하였다.

신라와 고려때에도 현재의 수도 서울은 북한산주,한양군,양주등의 이름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태조는 새로운 국도(國都)로 현재의 서울을 택하고 태조3년(1394)에 개성에서 천도하였다.

천도당시의 서울은 도성안을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으로 백악산(342m), 동쪽에 낙산(125m), 남쪽에 목멱산(265m), 서쪽에 인왕산(338m)의 이른바 내4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이다.

이 산들을 연결하는 능선에 따라 서울의 옛성곽이 축조되었다. 산능선에서 좀 낮아진 안부(鞍部)에 사대문을 만들어 외부와의 교통로로 하였다.

 

국도풍수(國都風水)의 입장에서 서울의 산수를 보면 진산(鎭山)으로서의 삼각산(서울의 조산祖山 할아버지산)과 조산(朝山)으로서의 관악산(조공朝貢 하는산)과 사신사산(백악산,낙산,목멱산,인왕산)으로 본다

조산(祖山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에서 주산(主山)인 백악산(북악산)에 연결되며 낙산(타락산)이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서산)이 우백호(右白虎)에 해당되고, 목멱산(남산)은 안산(案山)에 해당한다.

 

서울분지는 크게 안쪽4개산과 바깥쪽4개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내사산(안쪽4개)은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북현무 주산), 동쪽의 낙산(타락산 좌청룡), 남쪽의 목면산(남산 남주작 안산) 서쪽의 인왕산(서산 우백호)을 일컫는다.

내사산은 천도당시의 서울로 광화문 비각을 중심으로 반경 약 2㎞ 이내의 지역으로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약 500만평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외사산(바깥쪽4개)은 북쪽의 고양시와 경계에 삼각산(북한산836m) 동쪽의 구리시와 경계에 용마산(348m 아차산), 남쪽의 과천시,안양시와 경계에 관악산(629m), 서쪽의 고양시,김포시와 경계에 덕양산(125m 행주산성)을 말한다.

외산산은 오늘의 서울로 광화문 비각을 중심으로 반경 약 8㎞ 이내의 지역으로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약 627㎢의 넓은 지역을 말한다 ---출처 서울시청

 

내사산 백악산 낙산 목멱산 인왕산

⌾북쪽의 백악산(白岳山 북악산北岳山 주산(主山) 북현무(北玄武)

       ○높이 342m

       ○위치 종로구

       ○특징 화강암산. 북한산의 남쪽지맥의 한봉우리다

       ○볼거리 북악팔각정

       ○주변명소 창의문(자하문), 삼청공원, 경복궁

       O대중교통:지하철/버스

            전철 4호선 한성대역7번-삼선중교-북악산길

                 3호선 경복궁역3번-자하문4거리-북악산길 

⌾동쪽의 낙산(駱山 낙타산 타락산 좌청룡左靑龍 낙산공원)

     ○높이 125m

     ○위치 종로구, 성북구

     ○특징 화강암이 노출해 있는 주위의 네산 중 가장 낮은 산이다

     ○볼거리 서울성곽

     ○주변명소 동대문(보물 1호), 서울성곽(사적 10호), 비우당(庇雨堂), 이화장(梨花莊:서울기념물 6호), 마로니에공원,

     ○대중교통:지하철/버스

          전철  4호선혜화역2번-마로니에공원 

                1,4호선동대문역1번-낙산정

⌾남쪽의 목멱산(木覓山 남산南山 남주작南朱雀 남산공원) 

     ○높이 262m

     ○위치 중구, 용산구

     ○특징 경관이 수려하다

     ○볼거리 서울타워, 분수광장, 남산케이불카, 안중근의사 기념관

     ○주변명소 장충단공원, 남산골한옥마을(3,4호선충무로역3번출구)

     ○대중교통:지하철/버스

           전철  4호선회현역4번-분수광장 

                 3호선동대입구역 6번-장충단공원

                 3,4호선충무로역3번출구-한옥마을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서산 우백호右白虎)

       ○높이 338m

       ○위치 서대문구    

       ○특징 화강암산, 특이한 형태의 암석과 암벽이 웅대하다,

       ○유래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 하다가 세종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 한다. 또는 인왕사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볼거리 선바위. 치마바위

       ○주변명소 사직공원, 창의문, 북악스카이웨이, 경복궁

       O대중교통:지하철/버스

            전철 3호선 경복궁역1번-사직공원

                 3호선 독립문역2번-인왕사

                 3호선 무악재역1번-범바위


 

산행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

산행일 2일(2회) 1일 2007.3.20.맑음.  2일 2007.3.23.종일안개.

산행로 1일 경복궁역-경복궁-사직공원-인왕산-자하문-세검정로타리-북악산-한성대입구역

           2일 한성대입구역-혜화문-마로니에공원-낙산-동대문-광희문-장충단공원-남산골한옥마

                 을-남산-남대문-서울시청-시청역

 

산행기

전철3호선 경복궁역 5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경복궁이다

경복궁 (출처 문화재청)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正宮)이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태조 3년(1394)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왕궁을 창건하기 시작하였다.

태조 3년 12월 4일 개토(開土)를 시작하여 태조 4년(1395) 9월 경복궁이 조성되었다.

 

경복궁 근정전 (출처 문화재청)

 

♠경복궁근정전(景福宮勤政殿) 국보 제223호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景福宮>의 정전<正殿>으로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조하<朝賀>를 비롯한 국가<國家> 의식<儀式>을 거행<擧行>하고 외국<外國> 사신<使臣>을 접견<接見>하던 곳이다.

태조<太祖> 3년(1394)에 건축<建築>하였으며 근정<勤政>이라는 이름은 천하<天下>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意味>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鄭道傳>이 지었다.

 

경복궁역 1번출구로 나와 서쪽으로 가다 육교를 지나 3거리의 사직동사무소옆의 사직공원에 도착하다

 

사직단 사적 제 121호 동쪽에서

 

♠서울 사직단(社稷壇)  사적 제121호 사직공원(社稷公園)에 있는 조선시대의 단지(壇址).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한 조선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경복궁 동쪽에 종묘(宗廟),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에는 1년에 네차례의 대사(大祀)와 선농(先農),선잠(先蠶),우단(雩壇)을 제사지내는 중사(中祀), 그 밖에 기곡제(祈穀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사직공원 서쪽에는 신사임당상과 이율곡동상이 있다

사직단 서쪽에 있는 단군성전으로 가다

 

단군성전 사직단서쪽 

 

♠단군성전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을 모신 사당이다

단군의 표준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삼국의 초대왕들의 신위도 있다

 

단군성전에서 북쪽의 황학정으로 가다(6분)

 

황학정 궁술연마장 

 

♠황학정 [黃鶴亭]  서울유형문화재 제25호 무인의 궁술연마장

조선시대 서울에는 궁술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 다섯군데 있었는데, 필운동(弼雲洞)의 등과정(登科亭), 옥동(玉洞)의 등룡정(登龍亭), 삼청동(三淸洞)의 운룡정(雲龍亭), 사직동(社稷洞)의 대송정(大松亭), 누상동(樓上洞)의 풍소정(風嘯亭) 등으로 이를 서촌오사정(西村五射亭)이라고 하였다.

지금 황학정이 세워져 있는 곳은 오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이다.

 

황학정에서 우측능선으로 올라 인왕배드민턴클럽을 지나 초소3거리에서 서쪽의 독립문쪽으로 가다(초소3거리의 안내목 ←독립문공원1.4 →자하문1.8 ↓사직공원0.8)

성곽옆 철문초소에서 나무계단으로 성곽능선을 따라 올라가다(안내목 ↑독립문공원1.2 →정상0.9 ↓인왕산스카이웨이0.2)

 

성곽 도로 철문초소밖에서 위로 

 

♠서울성곽(도성都城) 사적 제10호

조선 이태조는 1395년 북으로 북악, 동으로 낙산, 남으로 남산과 서쪽으로 인왕산의 정상을 연결하는 약 18킬로미터의 성곽을 쌓은 것이다.

인왕산 정상 못미처에서 북쪽으로 곧장 뻗은 능선이 있다. 이곳부터가 탕춘대성의 기점이다. 탕춘대성은 북한산성 축성 이후 세검정 일대를 보호하기 위하여 숙종 44년에 만든 성이다.

 

능선봉에서 선바위와 작은범바위 

 

능선봉에서 좌측의 부처님바위(또는 얼굴바위, 아슬바위). 중앙의 모자바위군-좌측의 모자바위(또는 얼굴바위), 중앙의 달팽이바위(또는 손가락바위, 달팽이바위의 등은 말안장바위), 우측의 돼지코바위.  우측뒤의 범바위 

 

성곽능선초소 못미처에서 성곽을 넘어 왼쪽의 모자바위밑을 지나 작은범바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선바위다

 

석불각의 선바위

 

♠선바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4호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 하여 선(禪)바위라 불렀다고 전해오나, 원래는 제사터라는 뜻의 선(土單)바위로 이곳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위해서 기도한 장소에서 연유했기 때문에 선(禪)바위로 이름되었다는 것이다.

무학대사의 1백일기도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이은 성공적인 조선건국이 이루어졌다 하여, 선바위는 한가지 소원을 지성을 다하여 빌면 성취되는 장소로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임신하기를 바라는 여성들이 기도를 드리는 일이 많아 기자암(祈子岩)이라고도 불린다.

 

석불각밑에는 국사당이 있다

 

국사당 인왕사위

 

♠국사당 중요민속자료 28호

국사당(목멱신사木覓神祠)은 남산꼭대기(팔각정자리)에 있었는데 19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무신들이 내림굿 치병굿 재수굿등을 행한다

국사당에는 태조와 왕비 강씨부인상을 비롯해서 무학대사, 나옹, 최영장군, 민중전상과 산신, 용왕신, 칠성신, 삼불제석도등 중요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된 무신도들이 모셔져 있다. 

 

다시 성곽능선으로 와 범바위에 오르다

 

범바위에서 인왕산 정상 

 

범바위북쪽안부에서 범바위



범바위에서 15분을 오르면 인왕산 정상이다

 

인왕산 정상바위(삿갓바위) 385m

 

정상에서 북악산

 

정상에서 낙산 (뒤쪽의 중앙)

 

정상에서 남산

 

정상에서 관악산과 삼성산

 

정상에서 안산

 

정상에서 백련산 

 

인왕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가다 북능초소3거리에서 북쪽의 기차바위능선으로 갔다가 다시 와서 동쪽의 자하문방향으로 내려가다(초소3거리에서 북쪽의 능선을 계속가면 기차바위를 지나 세검정로타리의 홍지문에 이른다)

 

기차바위능선

 

성곽능선에서 치마바위(병풍바위)

 

♠치마바위

중종과 폐위된 신씨(愼氏)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씨는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공신들의 압력으로 폐위되었다가 영조때 복위된 단경왕후이다. 중종은 신씨를 보고 싶을 때면 누각에 올라 신씨의 집 쪽을 바라보곤 했는데, 신씨가 그 사실을 전해듣고 집안 위쪽에 있는 큰 바위에 자신이 궁중에서 입던 분홍색 치마를 눈에 띄게 덮어 놓았다고 한다. 중종은 그 치마를 보며 신씨를 향한 애절한 감정을 삭혔다는 것이다. 

 

성곽능선에서 기차바위 능선

 

산입구철망문에서 나와 동쪽길을 따라가 자하문고개 버스정류장으로 오다

자하문고개에서 북쪽으로 가다 왼쪽의 부암동사무소 우측옆길로 들어가 3거리에서 우측으로 무계정사지로 가다

 

무계정사지 중앙축대위가 무계정사지이고 우측의 바위에 암각문이 있고 축대앞의 공터는 현진건집터이다(뒤의 구한옥은 개인집)

 

♠무계정사(武溪精舍)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호)

조선 제4대 세종대왕의 셋째왕자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의 정자였던 무계정사터로 암벽에 횡으로 무계동武溪洞이란 암각이 있다. 안평대군의 호를 따서 비해당(匪解堂)이라고도 불렀다.

 

무계동 암각문 

 

현진건집터 

 

♠현진건 [玄鎭健, 1900.8.9~1943.4.25] 

호 빙허(憑虛). 사실주의를 개척하고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인 소설가.

작품《빈처》백조》타락자》운수 좋은 날》불》

 

다시 부암동사무로 나와 북쪽으로 가다 자하문터널입구의 좌측 철판펜스뒤에 보이는 석파정앞으로 오다

 

석파정

 

♠석파정(石坡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

당초에 조선 제25대 철종(재위1849-1863)때 영의정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흥선대원군(1820-1898 조선26대 고종의 부) 이하응이 집권한 후 그의 소유가 되어 대원군이 자신의 아호를 '석파'라 하고 정자이름을 석파정이라 하였다.

석파정안에는 안양각, 낙안당, 망원정 등 7채의 건물이 있으며 대원군이 쓴 편액 등이 남아 있다.  

 

석파정에서 계속 북쪽으로 가다 세검정로타리 못미처 좌측의 석파랑식당으로 오다

석파랑식당안의 언덕에 대원군별장이 있고 밑에는 손재형집터다

 

석파랑 언덕위 대원군별장

 

♠대원군별장(大院君別莊) (유형문화재23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의 부속사랑채인데 1958년에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선생이 이곳에 가옥을 지을때 석파정 경내에 있었던 이 별장을 매입하여 현재의 자리(언덕위)로 옮겼다.

1989년 김주원씨가 손재형생가의 일부를 매입하여 석파랑(石坡廊)이란 전통 조선 궁중요리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석파랑안의 손재형가 손재형선생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하였던곳 

 

♠손재형 [孫在馨, 1903~1981] 

자는 명보(明甫), 호는 소전(小田/小筌)이다. 한국의 서예가

1958년 제4대 민의원에,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78년 예술원 종신회원이 되었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모란장을 받았다

 

세검정로타리를 지나 서쪽의 계곡옆에 홍지문으로 가다

 

홍지문 밖에서 

 

♠홍지문[弘智門 북한문北漢門]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3호

조선 19대 숙종 41년(1715)에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위시설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운 탕춘대성의 성문.

 

홍지문북쪽의 탕춘대성 

 

세검정로타리를 지나 동쪽의 계곡에 있는 세검정으로 가다

 

세검정

 

♠세검정 [洗劒亭]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 

연산군(조선 제10대왕 재위 1494-1506)이 수각(水閣 세검정)과 탕춘대(蕩春臺)등을 짓고 놀았다고 하는데, 조선 19대 숙종(재위1674-1720)때에 북한산성·탕춘대성을 쌓고 부근을 서울의 북방관문으로 삼으면서 주둔 군인들의 위락장소로 변하였으며, 시인·묵객 등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세검정옆에 있는 세검정차일암 

 

♠세검정차일암

조선시대 실록편찬을 완료한 다음 사초의 유출을 막아 시비의 소지를 예방하기 위하여 사초나 초고들을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고 종이는 재생 활용하도록 하는 세초장소이다

 

세검정을 지나면 바로 탕춘대터가 있다

 

빌라뒤 바위위의 탕춘대터

 

♠탕춘대터

1506년 연산군(조선 제10대왕 재위 1494-1506)이 계곡옆 바위위에 세운 누대이다

 

바로옆에 있는 세검정우체국옆의 육교앞에서 우측의 홍제천길로 들어가 하천다리앞 4거리에서 골목길로 직진한다(다리앞 전주에 안내문 ↑홍제천4길 혜문사)

혜문사 안내문을 따라 가다 혜문사를 지나 계곡위에 있는 현통사앞에 오다

현통사에서 2분을 계곡을 올라 이항복의 별장터인 백사실에 도착하다

 

백사실 남쪽에서 

 

♠백사실(白沙室). 백사실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조선시대 영의정 이항복의 별장터로 알려져 있다.

 

♠이항복 [李恒福, 1556~1618] 

본관 경주(慶州). 자 자상(子常). 호 백사(白沙)·필운(弼雲)·청화진인(淸化眞人)·동강(東岡)·소운(素雲). 몽량(李夢亮)의 아들이며 권율(權慄)의 사위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고, 오성부원군에 진봉되었다.

훗날 함께 재상이 된 이덕형(李德馨)과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여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의 일화가 오랫동안 전해오게 되었다.

 

백사실계곡에 있는 부암동도롱뇽서식지 설명 

 

백사실 좌측계곡위의 와폭포

 

백사실옆 계곡합수3거리에서 우측계곡으로 올라가다(좌측계곡으로 오르면 백사실약수터를 지나 북악산길로 또는 뒷골을 지나 북악산길로 간다)

바위에 암각된 백석동천을 지나 산입구마을에서 백석동길내리막을 내려가 하림각길건너에서 좌측으로 가 자하문고개로 가다

 

백석동천

 

창의문 밖에서 

 

♠창의문(彰義門 북문北門 자하문紫霞門)

1396년(태조5) 서울성곽을 쌓을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 북한(北漢),양주(楊州)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다

 

♠사소문(四小門) 

1396년(태조5) 도성을 축조할때, 동북쪽에 홍화문(弘化門 동소문東小門 혜화문惠化門), 동남쪽에 광희문(光熙門 수구문水口門), 서남쪽에 소덕문(昭德門 서소문西小門), 서북쪽에 창의문(彰義門 자하문紫霞門)을 세웠다.

동소문은 1511년(중종 6)에 혜화문(惠化門)으로 개칭하였다.

현 한성대입구역 5번에서 혜화동로타리쪽 언덕위

수구문(시구문屍軀門)은 1396년(태조5) 도성을 축조할때 창건되었으며, 1720년에 광희문이라 하였다.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

현 동대문운동장역3번출구 한양공고길건너

서소문(西小門 소덕문昭德門 소의문昭義門)은 1396년(태조5) 9월 다른성문과 함께 지은 서소문동 큰길에 있던 서남간문(西南間門)으로, 1914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되었다.

창의문(북문北門 자하문紫霞門) 1396년(태조5) 서울성곽을 쌓을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 북한(北漢),양주(楊州)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다. 현 자하문고개4거리

 

창의문옆에는 청계천발원지석이 있다

 

청계천발원지

 

♠청계천 발원지(發源地)

이곳에서 북동쪽 북악산 정상쪽으로 약150m지점에 항상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약수터가 있으므로 이를 청계천발원지로 정하였다

 

자하문고개에서 종로구의 북한산길 산책로 가는길로 가다 (안내문 북한산길 산책로 가는길 1.0)

스카이웨이2교를 지나 산책로입구에 도착하다 (스카이웨이2교앞 군부대앞에서 북쪽길로 내려가면 뒷골을 지나 백사실에 이른다)

 

종로구 북악산길산책로입구

 

북악산 산책로길을 따라가다 북악팔각정에 도착하다

 

북악팔각정 동에서

 

♠북악팔각정

북악산 북쪽위에 1998년 12월에 한국 전통미를 살려 준공한 지하1층, 지상2층의 한옥형 정자

남쪽으로는 남산타워, 63빌딩,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 삼각산 봉우리의 수려한 경관을 조망할수 있다.

 

팔각정에서 나와 동쪽으로 22분을 가면 종로구 산책로길이 끝나고 성북구 산책로길이 시작된다

성북구 산책로길에서 조금 내려가다 3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다(직진으로 내려가다 좌측으로 가면 여래사를 지나 삼각산으로 간다 안내목 ↑삼각산여래사0.7 →성북구민회관3.0 ↓성북구산책로종점0.2)

성북구의 스카이웨이 산책로 입구를 나오다

 

성북구스카이웨이산책로 입구 

 

성북구민회관을 지나 한성대입구역에 도착하다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서쪽의 혜화동로타리쪽으로 조금가다 혜화동언덕위의 혜화문에 도착하다(혜화동천주교회 맞은편)

 

혜화문 밖에서 

 

♠혜화문(惠化門 홍화문弘化門 동소문東小門)  혜화동언덕위

1397년(태조 5)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도성의 북동방에 설치한 문(門).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門)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1483년(성종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6) 혜화로 고쳤다

 

혜화문에서 혜화동로터리를 건너 대학로쪽의 동성고교 정문옆에 이르면 일념비가 있다

 

일념비 

 

♠일념비 동성고교 정문

제2차대전 말기(1943-1945) 일제의 우리대한의 전문대학생들의 학도특별지원병 강제입대에 목숨을 걸고 거부한 2,700명의 이름과 함께 당시 입대전 합숙훈련장이었던 동성고교에 세운비

 

혜화역옆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다

 

마로니에공원안의 서울대학교유지기념비 

  

마로니에공원 동쪽길에서 남쪽으로 가다 이화동사무소옆3거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 이화장에 도착하다

 

이화장 

 

♠이화장 [梨花莊]  서울기념물 제6호

조선 중기의 문신 신광한(申光漢)의 집터로 신대(申臺)라 하였는데, 8·15광복직후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박사가 살았고 지금은 ‘이승만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승만 [李承晩, 1875.3.26~1965.7.19] 

본관 전주(全州). 호 우남(雩南). 초명 승룡(承龍).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출생하였다.

한국의 정치가·독립운동가, 초대 대통령. 독립협회, 한성임시정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광복후 우익 민주진영 지도자로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4선후, 4·19혁명으로 사임했다.

 

이화장을 출발하여 다시 마로니에공원으로 와서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다

 

낙산공원 중턱의 홍덕이밭터

 

♠홍덕이밭

병자호란(1936-1637)때 제16대 인조[仁祖1595~1649]가 항복한뒤 효종(당시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때 모시던 나인 홍덕이라는 여인이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서 효종에게 날마다 드렸는데 볼모에서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홍덕이의 김치맛을 잊을수가 없어 낙산중턱의 채소밭을 홍덕이에게 주어 김치를 담가 대게 했다하여 낙산에 홍덕이밭이라는 지명이 전해진다

 

성곽 제2전망광장에서 정상쪽

 

♠서울성곽 사적제10호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2년후인 1396년에 쌓았다

 

낙산 정상의 놀이마당

 

낙산 정상성곽4거리에서 동쪽의 전철6호선 창신역쪽으로 내려가다

쌍룡아파트정문 앞의 길밑에 있는 원각사로 내려가다

원각사옆에는 비우당터와 자주동천이 있다

 

비우당터

 

♠지봉선생 비우당 옛터

자주동샘 바로 옆에는 새롭게 지어놓은 초가삼간이 한 채 있다. 그 옆에는 '지봉선생 비우당 옛터'라는 비석이 하나 서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8)이 그의 저서 '지봉유설'을 지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자주동천 

 

♠자주동샘(紫朱洞泉)

경사진 언덕 아래의 원각사옆에 작은 초가집 한 채와 바위가에 작은 샘터가 있다. 이것은 '자주동샘(紫朱洞泉)'으로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감이 들였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샘이다.

 

자주동천 암각문 

 

다시 명신초등교를 지나 계속 내려가다 청룡사옆의 정업원구기에 도착하다

정업원구기에서 3분을 내려가면 창신역 3번출구이다

 

정업원구기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 전철역3번출구 숭인동방면에서 낙산공원 쪽으로 언덕길

조선조 6대 왕인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1440~1521)가 팔십 평생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 살았던 곳이다.

 

다시 낙산정상 성곽4거리로 올라와 남쪽의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

15분을 내려가니 동대문이다

 

동대문

 

♠흥인지문 (興仁之門 동대문) 보물 제1호

서울성곽은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때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으로,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사대문 [四大門]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정남에 숭례문(崇禮門 현 남대문), 정북에 숙청문(肅淸門  북악산北岳山동쪽 고갯마루), 정동에 흥인문(興仁門 현 동대문), 정서에 돈의문(敦義門 사직동의 동립문쪽 고개)을 세웠다.

숙청문(숙정문,북대문,북문)은 축조한지 18년만인 1413년(태종 13)에 문을 폐쇄하였다

현 북악산동쪽 고개

돈의문(敦義門 서대문西大門)은 도성 축조때에 현재의 사직동에서 독립문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세웠는데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동대문에서 청계천 오간수교를 건너 서울운동장을 지나 동대문운동장역 3번출구 길건너에 있는 광희문으로 가다

 

광희문

 

♠광희문 [光熙門] 

시구문(屍軀門),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720년에 광희문이라 하였다.

 

광희문에서 서쪽의 광희고가차도밑의 광희동4거리에서 남쪽으로 8분을 가니 장충체육관앞 4거리다

4거리의 동대입구역6번출구앞의 장충공원으로 가다

 

공원안의 장충단비

 

♠장충단   

대한제국때 을미사변과 갑신정변 등 때 순절한 홍계훈, 민태호, 이경직 등의 충신, 열사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고종황제의 명을 받들어 1900년에 현재의 장충단공원 자리에 세웠으며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이다. 910년 8월에 일제에 의해 폐사되었다.

그후 6.25전쟁으로 장충단사당과 부속건물은 파손되었으나 현재 장충단비는 남아 있다. 이 비는 원래 영빈관내에 있었으나, 1969년 지금의 수표교 서편 현위치로 옮겨졌다. 비의 "장충단"이란 세글자는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글씨이며, 뒷면에는 민영환이 지은 143자의 찬문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서쪽에 사명대사상 파리장서비 이준열사상 이한웅열사기념비가 모셔져 있고 동쪽에 분수대와 수표교가 있다

 

이준열사상

 

♠이준열사 1858-1907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어 정사 이상설과 이위종과 함께 세계평화회의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고 평화회의장에 한국대표로서 공식적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대표와 영국대표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에 세 특사는 일제의 한국침략을 폭로, 규탄하고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控告詞)를 작성하여 평화회의 의장과 각국 대표에게 보내는 한편, 신문을 통하여 이를 공표하여 국제여론을 환기시켰다.

신문기자들과 언론들은 세 특사의 활동에 호의적이었으나, 열강의 대표들은 냉담하였으므로 이에 격분한 그는 통분을 누르지 못하여 헤이그에서 순국하였다.

 

장충공원 장충체육관쪽의 분수

 

장충공원남쪽 동대정문앞을 지나 남산으로 오르다

최현배동상을 지나 3거리에서 좌측으로 가 석호정으로 가다

 

남산 동북쪽의 석호정

 

 

♠석호정(궁도장)   

장충단 뒷편 산중턱에 오래된 활터가 있었고 민간인들이 주로 찾아 활쏘기를 즐겼던곳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시대는 알수없다

현건물은 1970.9.20 사단법인 대한궁도협회에서 설치

 

석호정에서 장충체육회옆4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서쪽으로 가다 녹색철망3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도시철도공사를 지나 굴통과후 우측의 구름다리를 건너 남산1호터널입구에서 좌로 내려가 남산골한옥마을 입구로 가다

 

한옥마을입구 타임캡슐광장위의 망북루

 

한옥마을 위에 있는 타임캡슐광장의 타임캡슐

 

♠타임캡슐광장의 타임캡슐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1994년 11월 20일 매설

400년 후인 2394년 11월 29일 개봉 예정

서울을 수도로 지정하고 600년이 지난 것을 기념하여 서울의 생활, 풍습, 인물, 문화예술 등을 상징할 수 있는 문물 600점을 캡슐에 담아 400년 후인 서울 정도 1000년에 후손에게 문화유산으로 전하고자 함.

 

남산골한옥마을 광장의 천우각과 연못 

 

이곳에는 순정황후 윤씨친가 해풍부원군 윤택영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도편수 이승엽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 디딜방아가 있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서울시 민속자료 제18호 원래 종로구 관훈동에 있었다

철종의 후궁인 숙의범씨가 낳은 영혜옹주와 그의 남편 부마도위 박영효가 살았던 집이다

 

박영효가옥 방안

 

박영효가옥 부엌 아궁이쪽 

 

한옥마을안의 디딜방아 

 

다시 장충체육회옆 4거리로 와서 우측의계단으로 올라가 성곽3거리에 오다

성곽3거리에서 우측으로 가 남산 정상에 도착하다

 

성곽

 

♠서울성곽 사적제10호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2년후인 1396년에 쌓았다

 

봉수대터 타워동쪽길옆

 

2등삼각점 남산정상에

 

♠이등삼각점  

우리나라 삼각점의 기본점으로 남산의 정상부 (봉수대 옆)에 설치되어있다 

 

남산타위

 

♠남산타워  

건립연도 1975년 7월 30일

기능 방송국 종합송신탑 및 서울시내전망

 

8각정자

 

♠남산 팔각정

1959년에 이승만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우남정을 지은것이다

 

봉수대

 

♠남산봉수대(목멱산木覓山봉수 경봉수京烽燧) 서울기념물 제14호

조선 태조는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후 남산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남산에 설치된 봉수대는 갑오개혁 다음해인 1894년까지 거의 500여년 동안이나 사용되었다.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로서 급조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수단으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웠다. 봉수의 간선은 직봉(直烽)이라하여 동북쪽은 경흥, 동남쪽은 도래, 서북쪽은 2갈래가 있었은데 내륙으로는 강계, 해안지방으로는 의주, 서남쪽은 순천으로 5개처를 기점으로 하여 서울의 목멱산(남산)을 종점으로 했다.  남산 봉수대는 중앙봉수소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5개소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케이불카 

 

♠케이블카 

1962년 5월 12일 설치

시내 타는곳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하차, 퍼시픽호텔쪽으로 나와 리라 초등학교쪽으로 300m정도

 

케이불카에서 내려와 전망대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계단길을 내려와 분수대광장에 도착하다

 

분수대앞에서 타워

 

분수대앞에는 안의사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안중근의사상

 

♠안중근의사 [安重根, 1879~1910.3.26] 

한말의 독립운동가. 삼흥(三興)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썼다.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여 사형되었다.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분수대 남쪽의 남산 도서관 앞에는 정약용선생상과 이황선생상이 있다

안의사 기념관옆에는 225년된 느티나무와 80년된 모감주나무가 있고 기념관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면 광장에 이시영선생상과 김구선생상이 있고 다시 길을 건너면 광장에 김유신장군상이 있다

 

남산을 나와 남산육교를 건너 남대문에 도착하다

 

남대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국보 제1호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남대문에서 북쪽의 서울시청으로 가다

 

시청옆의 대한문

 

♠덕수궁 대한문 [德壽宮大漢門] 

덕수궁의 정문.

 

♠덕수궁 조선시대의 궁궐 사적 제124호

현재의 덕수궁은 본래 세조(世祖)의 큰아들인 도원군(桃源君:暲)의 큰아들, 즉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개인 저택이었다. 도원군은 세자(世子)로 책봉되었으나 18세에 죽었기 때문에 세자빈(世子嬪) 한(韓)씨가 출궁(出宮)하게 되자 나라에서 이 집을 지어주고 두 아들과 함께 살게 하였다. 둘째아들인 자을산군(者乙山君)이 왕(成宗)으로 등극하면서 그의 어머니인 한씨도 입궐하게 되어 월산대군만이 거처하게 되었다.

 

서울시청

  

서울특별시청

서울특별시의 자치행정을 총괄하는 행정기관.

1946년 9월 28일 서울시청으로 출범해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청으로 승격


 

서울시청앞의 분수

 

시청역으로 들어가 전철에 오르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