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1. 2(일)
ㅇ 위치 : 충북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높이 876m)
ㅇ 코스 : 적암마을-절터-안부-853고지-정상-기지국하산길-적암마을(9.5km. 3시간30분)


   새해 첫 산행지는 구병산이다. 충북 보은에 있는 산이다. '구'자가 들어가 있는 대부분의 산들이, 9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구병산도 예외는 아니다. 암봉이 9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고만고만한 암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직은 속리산의 이름에 가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산이고, 표지판과 등산로 등 개발하여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지만, 산이 가지고 있는 매력만큼은 그 어느 산에도 뒤지지 않는 산인 것 같다. 

 

   10시 10분 대전을 출발. 옥천 I.C를 빠져 나와 보은 방면으로 달린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대청호반과 봄이면 벚꽃이 그 어느 곳보다 흐드러지게 피는 이 길은 언제 달려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약 20여분 그 길을 따라 달리자 정방4거리가 나온다. 직진은 보은 방면, 우측은 보은군 삼승면 방면. 어느 쪽으로 가나 구병산을 찾아가는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초행일 경우에는 우측 삼승면 방면으로 가는 것이 거리도 짧고 길 안내도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삼승면 방향으로 접어들어 다시 20여분을 달리자 구병산 입구 적암마을에 도착한다.

  

   적암마을에 도착하자 구병산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암봉들이 보기 좋은 기세로 늘어서 있다. 산을 본 대부분 사람들의 첫 일성이 '아 산 멋지다' 일 것이란 생각이다. 그만큼 어서 산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일으키는 풍경이 적암마을 뒤쪽으로 펼쳐져 있다.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끝낸 후 바로 산행 길로 접어든다.

  

   적암마을을 지나고 절터를 지나 오름질을 계속하는데 몸이 많이 피곤하다. 며칠 간의 무리한 산행 탓인지 몸이 평소 같지가 않다. 간간이 짧게 짧게 휴식을 취하면서 오름질을 계속하다보니 길이 상당히 가파르단 느낌을 받는다. 능선 바로 밑부분에서는 경사도가 거의 70도를 넘는 느낌이다. 이런 비탈길을 단독 산행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오르다 보니 초반에 많은 무리가 왔었는가 보다. 1시간 10여분밖에 되지 않는 오름질이었지만 무척 힘들다는 느낌을 받으며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자 암벽으로 이루어진 깊고 큰 단애가 한꺼번에 시선을 빼앗아 간다. 밑에서 보았던 암봉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아무리 카메라에 담으려해도 한 컷에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만큼 절벽이 깊고 암봉들이 높다. 이렇게 좋은 산이 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한참 동안 풍경을 구경하고, 땀을 식힌 후, 천천히 능선 길로 들어선다.

 

    능선 길로 들어서자 길이 약간 험하다. 곳곳에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하는 부분도 나오고, 절벽을 구경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할 구간도 종종 나온다. 어쩌면 이런 험한 길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능선 길을 40여분 정도 더 타다, 신선대가 바로 보이는 기슭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라면과 찬밥 한덩어리로 점심을 먹으며, 신선대와 지나온 암봉의 절벽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진다. 전화를 걸자 반갑게 맞아주는 아내. 이곳의 풍경을 간단하게 전하고 통화를 마쳤지만 아내하고 통화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영원히 아내의 얼굴이기를----새해 첫산행, 구병산에서 빌어 본다.

 

    점심을 먹고 20여분 정도 능선 길을 더 타자 정상에 도착한다. 처음 능선에 올라섰을 때와 비슷한 절벽이 정상 아래로 펼쳐진다. 볼수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좌측과 우측에 펼쳐져 있는 암봉의 줄기들 또한 시간과 여건만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걸어보고 싶게 만든다. 날씨가 약간 흐려 속리산의 줄기들은 희미하지만 충북알프스의 능선이 어느 곳인지 어렴풋이 가늠도 해보게 한다. 구병산 정상에 서서 한참 동안 사방을 둘러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산하가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름이 알려져 있건, 알려지지 않았건, 산을 찾아다닐수록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들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놀란다. 처음 산에 다니기 전에는 우리나라 산들? 몇 몇 개 빼면 산다운 산이 어디 있어? 하며 비하하곤 하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건방진 생각이었는지를 산에 다닐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정상에 서서 새해에 대한 희망과 다짐을 찬바람 속에 새겨보며 천천히 이제 하산 길로 접어든다.

 

     비탈진 길은 하산 길에도 계속하여 이어진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발걸음을 간신히 바로 잡는다. 그런 길을 어느 정도 내려 왔을까, 커다란 암벽 아래로 허물어진 토담집이 보인다. 약간 이상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불을 지폈던 자리도 있고, 동물을 키웠던 흔적도 보인다. 이런 산골에 누군가의 삶이 한때 머무르고 있었다니---아련한 낭만과 수상쩍은 사연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날에는 나도 한때 저런 삶을 꿈꾼 적이 있었는데---엄청난 낭만주의자이었거나, 철이 없어도 한참 없었거나, 둘 중의 하나였던 그 어느 한 때---지금은 법정스님의 전언으로 그런 삶에 대한 행적을 어렴풋이 더듬어 보지만, 막상 그런 삶의 흔적을 가까이서 접하고 보니 잠시 묘한 흥분이  울렁이다 사라진다.

 

    이제 기지국 부근의 평탄한 농로들 지나 적암마을로 원점 회귀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을 내려와 구병산을 다시 둘러보자 산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느 낯설었던 땅도 이렇게 한번 발디디고 나면, 정 들고 푸근해 지는 것이 우리의 산하 아닐런지----  

      
 
(적암 마을 구병산 산행도)


 

(적암마을에서 본 구병산)


 

(오름길에 본 구병산)


 

(능선에서 본 암봉)


 

(능선에서 본 절벽)


 

(능선에서 본 절벽)


 

(능선에서 본 신선대)


 

(능선에서 본 구병산 정상)


  

(정상에서 본 우측 능선)


 

(정상에서 본 좌측 능선)


 

(하산길에 본 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