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봉산(524m)
【전북 완주·소양】


 

 

◈ 산소개〔위봉산은....〕
▶ 높이는 524m이다. 추줄산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를 이루었고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구분 짓는 학풍적 경계를 이루었던 곳이다. 위봉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소양천과 합류하여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지류를 이룬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동상저수지·대부산·학동산, 동쪽으로 연석산·주줄산, 남쪽으로 청량산(원등산)·마이산·만덕산, 서쪽으로 종남산·서방산 등이 보인다. 전주 8경의 하나로 조선시대에 축조된 위봉산성(威鳳山城: 전북기념물 제17호)이 있다. 성안에는 위봉사가 있고 그곳에서 100m 떨어진 북방수구처에 높이 60m의 위봉폭포(일명 형제폭포)가 있다.

☞ 일  시 : 2004년 9월 27일 (월요일)
☞ 날  씨 : 맑음
☞ 같이 오른 사람 : 단독산행

  

☞ 산행지 교통이용편【자가용 이용】
 ▶ 갈 때 : 전주에서 26번 국도를 따라서 진안방면으로 진행 - 소양 황운교차로에서 송광사방면으로 진입 - 오성리 삼거리 - 위봉산성
 
올 때 : 갈때의 역순
 
주요 산행 코스 : 위봉산성 서문 - 위봉산성 - 전망바위 - 되실봉 - 너널지대 - 안부 - 위봉사

 

산행 소요 시간 : 3시간(11:30 ∼ 14:30)
※ 중식 및 휴식시간 포함
☞ 산행 총 거리 : ㎞

  

-   10:30  전주출발
-   11:20  위봉산성 도착
-   11:30  산행시작(위봉산성 서문)
-   12:30  전망바위(위봉사 보임)
-   12:50  되실봉
 ※ 되실봉에서 위봉산으로 갈려면 되돌아나가 급경사의 너덜지대를 따라서 가면된다.
-   12:50 ~ 13:45 중식
-   14:30  위봉사(산행완료)
 
참고사항
 - 산행은 위봉산성을(산성 서문) 기점으로 하는 코스가 4개정도 있으며, 2∼4시간 걸리는데 코스가 험하지 않아 가족단위 산행으로 적당하다. 찾아가려면 전주에서 진안 방면으로 26번국도를 이용하여 소양 황운교차로 들어선 뒤 위봉산성으로 가면 되고, 대중교통은 전주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위봉산성에서 내린다. 한때 오지로 알려졌던 주변 지역의 도로가 크게 개선되고 부근 대아댐과 종남산 송광사(松廣寺)의 경관이 뛰어나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다


대중교통 시간표

- 전주대→앞멀[전주대-이동교-안행교-서부시장-완산동-시립도서관-전동-팔달로-모래내-기린사거리-안덕교-성당묘지-웃삼거리-소양-송광사-위봉사(일부 학동경유)-앞멀] : 08:15, 11:05, 14:05, 17:08, 20:10
- 앞멀→전주 : 06:30, 09:40, 12:45, 15:40, 18:50, 21:40

 


♬ 위봉산 나들이 ♬


♠ 햇볕이 따갑다.
하늘을 혼자 처다 보기에는 너무도 아깝고
가을하늘이라 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아무리 자연이라 하지만 어떻게 저런 색깔이 나올까
잡고 싶다.
붙들어 메고 싶다.

 

산성의 돌들이 정겹다
오랜 세월동안 눈 비 다 맞았을 터인데
돌의 빗깔이 참으로 곱다.
색깔의 변화가 참으로 좋다.
내 발걸음이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떨어진 산밤은 꾀 맛이 좋으며,
굉장히 통통한 뱀도 보았다.
자주 가는 위봉사에
몇 일 밤 푹 쉬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지방기념물 제17호인 위봉산성 - 현재 보수 작업중이다.

  

  

* 위봉산성 서문 - 산행길은 여기서부터

  

  

* 무너진 위봉산성

  

  

* 산성에서 바라본 귀뜰봉

  

  

* 산성에서 바라본 종남산

  

  

* 산성길과 임도길이 만나는 지점

  

  

* 산성에서 바라본 연석산과 운장산

  

  

*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위봉사

  

  

* 무너진 산성을 누군가 쌓아 놓았습니다.

  

  

* 위봉산성의 일부

 

  

* 위봉사와 위봉산

▶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04년(백제 무왕 5)에 서암(瑞巖)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에 전설적인 설화가 실려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신라 말기, 한 서민 출신의 최용각(崔龍角)이 말을 타고 전국 산천을 유람할 때, 봉산(鳳山) 남쪽에 이르러 등나무 덩굴을 잡고 겨우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어떤 풀섶에서 상서로운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세 마리 봉황새가 날고 있어 그는 여기에 절을 짓고 위봉사(圍鳳寺)라고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