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23

智異山의 四界

 

 

 

 

  오랜만에 지리산 품에 안긴다.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복받쳐 오른다. 뜻하지 않는 일들이 자꾸만 겹쳐 잠시 접어두고 지내온 시간들이 꽤나 흘러버렸기에, 잡초에 뒤덮인 묵은 밭을 일구는 심정으로 그 품에 안기려고 숨 가쁘게 달려간다.

  

  지리산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애틋한 심정이다. 사랑할 때는 잠시만 떨어져있어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이 그리움이다. 그런 연정(戀情)의 대상이 바로 지리산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을 사모하듯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코에서 단내가 나고 다리가 뻐근하도록 원 없이 지리산 자락을 헤매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여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다시 그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펴오른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지리산에 너무 깊이 빠진 것이 아닐까?

  

  이처럼 그리움을 가득안고 고단한 삶의 씨줄과 날줄을 일상(日常)의 이름으로 엮어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진한 모념(慕念)의 앙금이 가슴 언저리에 묻어나 한스러움으로 바뀌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그 품에 안기련다. 때늦게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는 일이 아니던가.
 

  지리산은 꿈이다. 꿈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꿈이 없다면 진정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나간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이렇게 발버둥칠 것이다. 이것이 삶의 본질이다. 꿈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나날이 너무 길었기에 꽉 잠가버린 마음의 빗장을 풀고 오래도록 간직될 소중한 꿈을 꾸련다.
 

  지리산에 안기면 마치 꿈속을 헤매는 기분에 휩싸인다. 수려한 자태와 함께 빚어낸 장엄한 대자연의 향연에 매료되어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지리산을 섭렵하는 시간은 꿈꾸는 시간이기에 행복하다. 그 품에 안기면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자아내고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기에 몸도 마음도 상쾌하기 그지없다. 
 

  시간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배분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모두 자신에게 있다. 자신에게 할애된 시간을 아무런 의미 없이 소진해버리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목표가 없으면 꿈도 없다. "나이 듦이 늙은 것이 아니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그 자체가 늙어가는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은 얼굴에 주름살을 긋지만, 상실감에 빠져버리면 영혼마저 주름지게 한다." 그렇기에 확실한 목표를 향해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채득해야 진솔한 꿈을 이룰 수 있다. 
 

  지리산은 학습의 장이다. 꾸준하게 배움의 자세를 견지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지리산만큼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산도 그리 흔치 않다. 마음의 상흔을 치유하려고 찾아오고, 한번쯤 나태해진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고 싶어서 종주하고, 수많은 사연들을 가득안고 그 품에 안기고 또 안긴다. 이처럼 자의식(自意識)을 새롭게 연마하기 위해 담금질하는 곳이 지리산이다.
 

  언제 오르더라도 가파른 길을 안간힘을 다해 올라서면 또다시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능선. 어쩌면 우리들의 삶과 그리 흡사할까? 산마루에 올라설 때마다 새삼스레 느껴진다. 이처럼 산행은 고달픈 여정(旅程)을 반추(反芻)하는 시간이며, 건강한 삶을 지탱하는 힘을 길러내는 원천(源泉)이기에 끝임 없는 고행을 통해 겸손을 배운다.
 

  겸손은 자신을 낮출 때 자연스럽게 싹트는 미덕이다. 자신을 낮춘다고 결코 인격이 실추되지 않는다. 오만함에 젖어 자신이 서있는 곳을 분간하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매사를 자신의 의지대로 처리하려는 일방적인 자세를 불식하지 않고서는 겸손함이 우러나오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망우초(忘憂草)는 노란 꽃을 소담스럽게 피어냈다. 잠시 가쁜 숨을 고르면서, 내 자신이 지금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지 가늠해본다. 이처럼 지리산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인생의 길라잡이요, 자신의 모습을 훤히 비춰볼 수 있는 진실의 거울이다. 그러므로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자아내 언제 찾아와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지리산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본향(本鄕)이며 안식처다. 어머니는 인은(仁恩)하시고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다. 항상 자애로울 것만 같지만 자식들이 곁눈질하거나 다른 길로 들어서면 그대로 보고만 계시지 않는다. 정도(正道)를 벗어나면 매정하게 돌아서서 지엄하게 꾸짖고 채찍질하신다.
 

  지나친 이기심과 영웅심에 사로잡혀 어머니 품에 안긴다는 철부지한 마음으로 다가섰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한낱 미물이 자신의 분수를 모른 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울 줄 모르고 덤벙대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팍팍한 삶의 벽을 넘지 못하고 뒤처진 초라한 모습을 바라볼 때면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다. 어머니 치마폭 같은 기득권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그 자리만을 맴돌았기에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조급증에서 벗어나 자연인을 견지해 나가리라.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며 비움의 자세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련다.
 

  세상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다.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인(自然人)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인의 본성은 "기자불입(企者不立), 과자불행(跨者不行)"이다. 즉 까치발로는 오래 서있지 못하고,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 우리들의 근본임에도 어찌하여 여전히 까치발로 서 있으려고 발버둥칠까?
 

  어느 날 불현듯 텅 빈 내 마음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사는 게 뭘까?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자신에게 묻고 싶어질 때면 주저하지 않고 포근한 어머니 품인 지리산에 안기리라. 사랑하는 연인과 만나 정담을 나누듯 지리산 연가를 부르면서 소박한 꿈을 이뤄가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