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산


 

              *산행일자:2008. 7. 13일(일)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1,267m

              *산행코스:익근리주차장-명지폭포-명지4봉-명지산

                              -명지4봉-명지폭포-익근리주차장

              *산행시간:9시31분-17시21분(7시간50분)

              *동행    :경동고 24기 14명

 

               


 

 어제는 고교동기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明智山)을 올랐습니다.

2006년 가을 설악산을 시작으로 매 분기 명산100산 중 한산씩 골라 오르는 저희들이 이번 3/4분기에 찾아 오른 명산은 청정계곡으로 이름난 명지산입니다.


 

 가평 땅은 조선 조 태종 때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된 후 경기도 최고의 산지(山地)로 자리를 굳혀왔습니다.  경기 제1고봉인 화악산, 제2고봉인 명지산, 그리고 세 번째로 높은 국망봉이 모두 가평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했습니다. 가평 땅 고산들이 만든 깊은 골짜기의 물을 받아 북한강으로 넘겨주는 하천이 옛날에 거림천(巨林川)으로 불렸던 가평천(加平川)입니다. 북한강의 제1지류이자 한강의 제2지류인 이 가평천에 직접적으로 물을 대는 지천만도 도마천, 조무락골천, 백둔천, 명지천, 화악천, 개곡천, 승안천등 모두 7군데나 됩니다. 어제는 하산 길에 명지산과 그 좌우의 백둔봉 및 사향산 사이의 익근리계곡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명지천(明智川)을 들러 땀 흘린 몸과 세속에 찌든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냈습니다. 몇 해 전 한북정맥에 발을 들인 후 능선 종주를 주로 하는 제게는 이처럼 계곡을 들러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기회를 잡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고교동기들과 함께 나서는 명산탐방 때에 웬만하면 유명사찰과 계곡을 탐방코스에 넣어 함께 들러 왔습니다.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없었더라도 명산을 오르다보면 산은 참 어질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나무들, 짐승들,  야생화 및 조류들과 곤충들이 산에 의지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모질기도 하고 매몰차게 대하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산은 수많은 생명체에 삶의 터전을 제공할 만큼 어집니다. 그러나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볼 때는 어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물이 정녕 어질다면 우선 그 형체만이라도 산봉우리처럼 믿음이 갈 정도로 의젓하고 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형체가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면 그것은 이미 물이 아닙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 그 형체를 달리하는 것은 물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이 물을 담는 계곡의 모양새가 다양하기에 그 위를 흐르는 물도 자연 변형에 능해야 합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면 물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유자재로 모양새를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산속 발원지에서 강 하구까지 옮겨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계곡으로 흐르는 것이 형체가 변하지 않는 고체라면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없어졌을 것인데 물은 그때그때 형체를 달리하기에 별 탈 없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어찌 물이 지혜롭다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장애물이 많은 계곡을 흐르는 물은 그렇지 않은 강물보다 더욱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냥 지(智)가 아니고 명지(明智)인 것입니다. 명지산(明智山)에서 발원한 지천이 명지천(明智川)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해발1,267m의 고산에 자리한 깊숙한 계곡을 흘러서일 것입니다. 


 

  오전9시30분 익근리주차장에서 명지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1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예상보다 20분 이상 빠른 8시6분에 가평에 도착했습니다. 가평정류장에서 50분 넘게 기다려 9시에 출발하는 용수리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목동삼거리를 지나 익근리 주차장에서 하차해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인당1,600원의 싸지 않은 입장료가 청정계곡을 지키는데 쓰이기를 바라면서 명지산으로 향했습니다. 20분을 채 못 걸어 1970년대에 지어진 승천사에 다다랐습니다. 2년 전 겨울 바쁘게 내려가느라 흘깃 올려다 본 석불을 자세히 뜯어보니 귀가 참 커보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도 중생들로부터 많은 소리를 들으시려면 귀도 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난국은 난국인가 봅니다. 반대자들로부터 충분히 경청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듣는 최고위정치인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큰소리를 내는 분들에 다름 아닌 스님들도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석불처럼 큰 귀를 가진 스님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일부 신부님들도 나서는데 그만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인지 세속의 목소리를 세속인보다 더 크게 내는 스님들도 언젠가는 귀를 더 크게 열 날이 있을 것이고 보면 그 날이 바로 온 세상이 평화로운 날이기에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11시2분 갈림길 다리 앞에 다다랐습니다.

승천사에서 반시간 넘게 걸어 명지폭포로 내려가는 길에 이르렀습니다. 길에서 60m를 내려가 계곡에 이르자 폭포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계곡에 물이 불어 폭포가까이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이규성 교수와 함께 이 폭포를 본 것이 어언 10년 전의 일이어서 폭포의 형상이 머리에 확실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나는 것으로 보아 낙차 폭도 크고 그 아래 소도 깊겠다 싶은데 보이지가 않아 답답했습니다. 다시 길로 올라서자 등 뒤로 땀이 흥건히 흘렀습니다. 차라리 적당히 비가 내려주면 찜통더위는 면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염원이 간절한 멀쩡한 날씨를 두고 비가 올 것이라 예단하고 일찌감치 산행을 포기한 한 친구는 지금쯤 무릎을 치며 아쉬워하겠다 싶었습니다. 오른 쪽 지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도 그 양이 꽤 많았습니다. 하늘이 열린 개활지만 지나지 않는다면 아직은 지열이 없는데다 시원하게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이정도 더위는 견딜 만 했습니다. 산행시작 시간 반 만에 다다른 갈림길의 나무다리 앞에서 10년 전에 오른 길로 직진하지 않고 오른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 명지천과 헤어졌습니다. 오른쪽 산골짜기에서 흐리기 시작한 지계곡을 따라 얼마간 오른 후 물이 불은 지계곡을 건너다가 구두를 조금 적셨습니다.


 

  12시53분 해발1,079m의 명지4봉을 지났습니다.

지계곡을 건넌 후 오래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은 지계곡 끝점에 올라서자 된비알 길이 시작됐습니다. 한 여름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저 같은 사람들은 중력에 반하여 된비알 길을 오르는 것이 정말 고역입니다. 그러기에 산행 전날 과음하는 것을 극력 피하고 있습니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데 무더운 여름 날 과음한 채로 산을 오르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명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식들의 경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들었다는 한 대원이 된비알 오름 길에서 고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도상거리가 1.3Km 밖에 안 되는 오름길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두 번을 쉬느라 무려 1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청초한 야생화들이 곳곳에서 저희들을 반기지 않았다면 모두들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오르기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13시28분 해발1,267m의 명지산 정상에 맨 마지막으로 올랐습니다.

명지4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능선 길을 걷는 동안 잠시 몇 분간은 참으로 편안했습니다. 불그스레한 수피가 인상적인 거제수나무도 몇 그루 보였습니다. 마지막 나무계단을 올라 명지산 정상에 올라서자 정남쪽의 명지2봉이 운무에 가려 꼭대기만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지난 2월 한북정맥을 종주하며 명지산을 바라다본 9명의 대원들은 이번에는 서쪽의 한북정맥을 한 눈에 조망하고 싶었을 텐데 그리하지 못해 더 많이 아쉬웠을 것입니다.  정상 조금 아래에 자리 잡아 점심을 함께 든 시간이 최고의 휴식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14시 10분에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명지2봉을 거쳐 고개사거리에서 익근리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포기하고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가기로 한 것은 알탕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산 시에 마치 절벽을 내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려갈 때가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경사감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파른 길을 어떻게 올라갔냐며 스스로들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15시41분 갈림길 다리에 되돌아왔습니다.

내림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계곡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잠시 숨을 돌리자 했는데 후미의 두 친구들을 기다리느라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산등성에 빽빽이 들어선 활엽수들의 푸른 잎들이 비로소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지계곡을 건너며 잠시 쉬어 가자는 욕망을 잠재우고 바로 하산했는데도 정상에서 갈림길로 내려서는데 시간 반이 걸려 오를 때의 1시간50분 보다 20분밖에 줄이지 못했습니다. 다시 해가 들기 시작하자 하늘이 열린 길을 지날 때마다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힘 드는 길은 다 지나왔다는 안도감에 올라갈 때보다 물소리가 더욱 시원하게 들렸습니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하산 길에서 속도를 냈습니다. 어느새 명지폭포를 지나 승천사가 가깝다 했습니다.


 

  16시30분 계곡으로 내려가 알탕을 즐겼습니다.

구두를 샌들로 바꿔 신고 웃옷만 벗고 바지를 입은 채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수온이 낮지 않아 얼마고 물속에서 견딜 만 했습니다. 2년 가까이 함께 산행하면서 알탕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모두가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여 여름산행의 별미는 역시 알탕임을 입증했습니다. 명지천의 계곡물로 땀만 씻어 낸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산을 오르겠다는 산 욕심을 빼고는 나머지 세속의 욕심도 모두 같이 씻어냈습니다. 어질게 보이는 고산도 오르고 지혜로워 보이는 계곡 물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으니 이름그대로 명지(明智)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옷을 갈아입고 하산을 마무리 졌습니다. 반 나신의 사진만으로 누가 더 많이 땀과 욕심을 씻어냈는지를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더 세속의 옷을 과감히 벗어던졌는가는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17시21분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저녁 6시에 이곳을 지나는 가평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동문이 쏜 캔 맥주로 성공적인 산행을 자축했습니다. 가평으로 옮겨 닭찜으로 저녁을 든 후 8시36분 발 청량리 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두 번이나 스틱을 찾아 나선  친구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기차는 부지런히 달려 9시57분에 청량리에 도착해 해산했습니다.


 

  일단 바다로 흘러간 물이 발원지인 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다로 들어간 물은 바다환경에 적응해 짠맛을 내는 일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흘러들어오는 계곡물로부터 산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친정나들이가 그렇게 절실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향소식이 궁금해 가만있지를 못하고 증발해 상공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구름이 되어 육지로 자리를 옮깁니다. 계곡물의 순환은 구름이 비가 되어 산을 다시 찾아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켜온 산은 비가 되어 돌아온 계곡물을 서운한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토록 어진 산이 있기에 물은 마음 편히 순환을 하며 바다를 오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오가는 순환을 통해 익힌 물의 지혜는 결국 어진 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도 윤회를 한다면 순환하는 물 이상으로 지혜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진 것은 타고난 것일지 모르지만 지혜는 시간함수이다 싶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