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칠선계곡의 운해

  

o 산행일시 ; 2008.7.11(금), 7.12(토) 1박2일

o 날씨 : 계속 흐림, 토요일 새벽에 비
o 산행구간 및 산행시간 ;

   1일째 (성삼재-세석대피소, 총 14시간 30분)

 성삼재->노고단고개->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대피소->형제봉->벽소령대피소->선비샘->1475봉(망바위)->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일박)

   2일째(세석대피소-유평마을, 총 12시간 10분)

 세석대피소->삼신봉->연화봉->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대피소->무제치기폭포->용수동 유평마을

o 운행거리 : 약 38㎞
o 교통편 ; 갈 때 용산역에서 구례구역까지 22시 50분발 기차, 택시로 성삼재 이동
올 때 유평마을에서 택시로 원지 버스정류장까지 이동, 서울 남부터미날행 고속버스

  

 

화대종주!  지리산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걷는 백십리(44.2km) 산길은 도보산행객들이 최고의 종주코스로 꼽는 꿈의 여정이며 성지순례의 길이다. 구례~심원간 도로가 개통된 이후로는 대부분 성삼재에서 출발하지만 그래도 고전적인 지리산 종주산행은 화엄사에서 시작해 대원사에서 끝맺는 것을 말한다.

 

거의 한달 가까이 설악산 공룡능선에 갈 요량으로 좋은 날씨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맑은 날이 오지 않아 이번 주말에는 그냥 강행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모임에서 만난 46회 신선배께서 동기들끼리 1박2일 지리산 종주 하려는데 자리가 하나 빈다고 하였다. 화대종주 생각이 나서 설악산은 뒤로 돌리고 지리산부터 먼저 하자 싶어 참가하기로 했다.

 

7월 11일 밤 10시 50분에 출발하는 전라선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 용산역에 세 老益壯과 한 '壯益老'가 모였다. 환상의 4인조! 골프, 테니스, 고스톱, 바둑이 골프, 택시합승 등 많은 경우에 4인조 활동이 가장 효율적이듯이 먼 길 가는 종주산행에서도 4인조가 최적 조합이다.

 

두 시간여 억지로 눈을 붙이고 새벽 3시 23분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구례터미날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우리가 예약한 택시도 나와 있다. 성삼재까지 구례구역에서는 3만원, 터미날에서는 2만 5천원이나 기획, 홍보담당 권선배께서 2만 5천원에 예약해 놓았다. '환상의 4인조'가 만들어내는 효율성의 일면이다.

 

터미날에 들러 조식으로 먹을 김밥 여섯줄을 산 다음 택시는 거침없이 산길을 올라 4시에 성삼재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한 팀이 준비하고 있고 입구의 불빛아래 보이는 것은 징그럽게 큰 불나비들 뿐이다. 증명사진 찍고 이런저런 준비하다 보니 4시 25분에 출발! '어머니의 산'으로 비유되는 지리산의 품에 안겨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누리고자 서쪽끝에서 동쪽끝까지 꿈의 순례를 떠난다!

 

산꾼들이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는 노고단대피소에 잠시 들렀다 노고단고개에 도착하니 5시 25분이다. 가야할 방향에 반야봉(1732m)이 장엄하게 솟아 있고 우측 뒤로 멀리 천왕봉(1915m)이 보인다. 지리산 주능선이라 함은 노고단(1507m)에서 천왕봉까지 25.5km를 말하는데 지리산 3대 봉으로 꼽히는 천왕봉, 노고단과 반야봉을 비롯하여 16개의 1500m 이상 봉우리가 수십개의 등산로를 통하여 피아골, 뱀사골, 대성골, 칠선계곡 등 깊고 깊은 골짜기로 이어지고 있다.

 

노고단에는 10시까지 오를 수 없기 때문에 멀리서만 바라보고 편한 길을 따라 임걸령에 도착하니 6시 반이다. 여기서 아침을 먹은 다음 가져온 물 3개를 모두 버리고 맛이 좋은 임걸령 샘물로 바꾸는 호사를 부린 후 반야봉에 오를 요량으로 일행보다 먼저 출발했다. 당일종주의 경우에는 쉽게 갈 수 없지만 1박2일 종주에는 여유가 있어 반야봉에 다녀올 수 있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반야봉까지 1km, 열심히 오르니 30분 정도 걸렸다. 지혜를 얻는다는 뜻의 반야봉에 오르니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지리주능선 파노라마가 완벽하게 드러나고, 성삼재에서 바래봉에 이르는 서북능선 마저 발치 아래로 깔리니 반야봉을 서부 지리산의 맹주로 치는 이유리라. 구름속에 숨어 좀체 모습을드러내지 않는 지리 주능선을 기다리다 보니 30분이 후딱 지나갔다.

 

반야봉에서 20여분 내려오니 삼도봉(날라리봉)이다. 지금까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사잇길을 걸어왔으나 이제부터는 삼각봉(1462m)까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걷게된다. 구름에 가려 가야할 지리주능선도, 걸어온 노고단 방향도, 남쪽으로 뻗은 불무장등(1446m)능선도 보이지 않고 구름이 휘몰아치는 피아골만 적막하다.

 

삼도봉에서 고도 250여m, 약 20분 내려가면 화개재인데 이곳에도 아무도 없다. 뱀사골도 내려다 보고 화개재에서 만나 해산물과 임산물을 사고 팔았던 옛사람들을 상상하기도 하며 잠시 쉬었다. 토끼봉(1534m)까지 200여m를 다시 오르고 명선봉(1586m) 지나 연하천대피소까지 지루한 길을 가니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지난 밤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1박2일을 위해 여러 가지를 채운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내리누른다. 게다가 지리산 산길은 대부분 너덜길이나 돌길이기 때문에 걷기가 힘들어 연하천대피소까지 가는 것이 매우 힘들게 느껴졌다.

 

11시 25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일행들은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원래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대피소가 공사중인데다 구름속에서 삐져나온 햇볕을 피할 곳이 없어 바로 출발, 20분 정도 가다가 시원한 그늘에 자리잡았다. 점심을 먹고 김선배께서 몸이 안 좋다 하여 덕분에 모두 드러누워 30분 정도 눈을 붙였다. 1박2일 종주에서나 누릴 수 있는 사치다!

 

1시 50분에 형제봉(1442m)을 지나고 계속 너덜길을 걸어 벽소령산장에 도착하니 벌써 3시가 다 되어간다. 좀 늦더라도 세석대피소까지 가는 데는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여유있게 충분히 쉬면서 가기로 한다. 점심 먹고 잠시 눈을 붙인 것이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3시 35분 구벽소령을 지나 4시 20분에 선비샘에 도착하니 많은 산꾼들이 쉬고 있다. 우리 모두 선비니까 물을 보충하고 충분히 쉬기로 한다. 방학을 맞아 큰 배낭을 짊어지고 여유롭게 종주를 하는 학생들을 보니 무척 부럽다. 진즉부터 산을 알고 저렇게 다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선비샘에서 50분 가니 사방이 조망되는 1475봉에 이르렀다. 남으로는 대성골과 남부능선이,저 멀리로 억불봉(1008m)과 백운산(1218m), 또아리봉(1127m)까지, 북으로는 삼봉산(1187m)과 법화산(992m) 너머 덕유산군까지 보여야 하나 구름속에 숨어 있다. 동쪽으로는 눈앞에 칠선봉(1576m)과 영신봉(1692m)이 있고 좌측으로 연하봉(1730m)능선을 지나 천왕봉까지 지리주능선이 일망무제로 펼쳐지는데 흘러가는 구름속에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모양새에 홀려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다.

 

1475봉에서 10분 정도 가면 칠선봉이 나오는데 다양한 모습의 일곱 암괴를 선녀로 표현한 듯하다. 칠선봉에서 지루한 나무계단을 포함하여 한 시간 정도 힘들게 오르니 영신봉(1652m)에 이르게 되고 드디어 눈앞에 천상의 화원, 세석평전이 펼쳐졌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7시, 성삼재에서 출발한지 14시간 반이 걸렸다. 지리산 종주 첫날의 여정을 무사히 끝냈다!

 

평일인 탓에 세석산장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을 지어 먹고 9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한 탓에 금방 잠들었으나 중간에 땀이 나고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깨니 겨우 12시다. 애써 잠을 청해보지만 2층인 탓인지 점점 더워져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밖으로 나오니 센 바람에 추위를 느낄 정도인데..... 자고로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했다. 한 시간 정도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보니 매점앞 넓은 마루에서 여러 명이 편히 자고 있다. 담요를 가지고 나와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전반 3시간 더하기 후반 4시간의 꿀잠! 지리산에서 밤은 행복하였다!

 

5시에 모두들 일어나 웅성웅성거린다. 밖을 보니 비가 제법 많이 오고 있다. 어제는 운좋게 비를 피했는데 결국 천왕봉 오르면서 피해 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쉬어버린 떡은 버리고 의외로 많이 남은 행동식으로 아침을 때우고 6시 10분 천왕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우의가 젖어들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촛대봉(1704m)과 삼신봉(1700m)은 그냥 지나치고 연하봉(1721m)권에 들어서니 비로소 비가 잦아들었다. 그 덕분에 아름다운 연하선경의 모습과 연하봉의 기암들, 고사목을 운무와 함께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의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세석을 떠난지 두 시간만인 8시 15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비는 거의 그치고 북쪽 칠선계곡 방향으로 환상적인 운해가 펼쳐져 있다. 10여분 정도 운해에 취해 있다가 마지막 오름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도로는 중봉(1875m)에 이어 지리산의 제3봉인 제석봉(1806m)에 이르니 유명한 고사목지대가 펼쳐진다. 도벌꾼이 도벌을 은폐하기 위해 산불을 내 형성되었다는 고사목지대에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고사목들이 많이 보여 인간의 끝모르는 욕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통천문을 지나서 9시 40분 드디어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곳,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섰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뒤돌아 노고단과 반야봉까지 뻗은 지리 주능선을 찾았으나 제석봉과 연하봉까지 겨우 보일뿐 영신봉부터는 구름속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칠선계곡 방향으로는 신비로운 운해가 낮게 깔려 있고 마야계곡과 중산리계곡에서는 온갖 형태의 구름이 조화를 부리며 천왕봉으로 올라 오니 모든 이가 탄성을 지른다.

 

반야봉을 보기 위해 30여분을 기다렸으나 결국은 보지 못하고 중봉으로 향했다. 20분 걸려 10시 40분 중봉에 도착했으나 운무에 가려 천왕봉이 보이지 않아 바로 마지막 봉우리인 써리봉(1642m)으로 향했다. 오르내림이 심한 길을 운무속에 거의 한 시간 가니 역시 구름속에 싸인 써리봉이 나왔다.

 

써리봉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 1시간 정도 걸려 1시에 도착했다. 예정한 대로 이곳에서 점심을 해먹기로 하고 밥을 앉혔다. 여기에서 모두 생애 최초로 돌과 함께 지은 밥을 먹게 된다. 김이 빠지지 않게 코펠뚜껑에 눌러 놓은 조그만 돌이 밥속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돌과 밥이 같이 익었으니..... 씹히는 흙을 뱉어내면서 거의 다 먹고 누룽지까지 만들어 먹었다.

 

치밭목대피소의 고도가 1425m이다 보니 2시경 최고 온도가 20도에 그쳤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 이틀간 날이 계속 흐린데다 오늘 새벽에는 비까지 오는 바람에 산아래의 찌는 듯한 더위는 완전히 잊고 살았다. 대원사까지 아직 7.8km가 남았으나 왠지 다 내려온 듯한 생각이 들어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2시 반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50분 정도 내려오니 폭 40m, 높이 40m에 이른다는 무제치기폭포에 도착하여 모두 등산화를 벗고 발을 물에 담갔다. 20분 정도 휴식후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용수동 유평마을을 향해 출발하였다. 하산길은 우측에 장당골을 두고 능선허리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너덜길로 지루하게 이어졌다. 내원사계곡으로 이어지는 장당골은 비탐방로이기 때문에 한참을 가다가 좌측 능선을 넘어야 했는데 능선마루에서 유평마을까지 2.6km였으니 지리산은 마지막까지 지친 산꾼들을 호락호락하게 풀어주지 않았다.

 

유평마을 직전에 대원사계곡으로 흘러드는 지계곡에서 이틀간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날머리에 내려서니 6시 18분이다. 갑을식당에서 동동주와 메기탕으로 거나한 끝내기를 한 다음 8시에 택시를 불러 산청군 단성면 원지에 있는 버스승차장에서 남부터미날 가는 고속버스를 타니  3시간 조금 더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참 좋은 세상이다! 12시경 서울에 도착하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성삼재에서 유평마을까지 약 38km 정도 될 터이니 백리는 채 안되는 것 같다. 그 멀고 험한 돌길을 아무 사고 없이, 하다 못해 발바닥도 부르트지 않고 넘어온 세 노익장께는 그저 경의를 표할 뿐이다. 아울러 백십리 화대종주길을 하루에 주파하겠다고 새벽길을 나서는 산꾼들에게는 그 놀라운 체력과 정신력에 대하여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고 무사 산행을 기원한다.

  
Dana Winner, Stay with me tilll the morning
  
성삼재 출발
노고단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 가운데 반야봉, 우측 멀리 천왕봉
피아골
임걸령 샘터
노루목
반야봉
반야봉에서 본 노고단
반야봉에서 본 천왕봉
삼도봉(날라리봉)
화개재
연하천 대피소
너덜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1475봉에서 본 천왕봉은 구름속에 숨바꼭질하고
대성골에서 피어오르는 운무
1475봉에서 본 칠선봉과 영신봉, 영신봉 우측에 촛대봉이 살짝 보이고 좌측으로 연하봉 능선이 이어진다.
천왕봉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린 초암능선
세석평전과 세석대피소
연하선경
고사목과 범꼬리
장터목 대피소
칠선계곡의 운해
제석봉의 고사목
중산리계곡
통천문
그리고 천왕봉
백두대간의 출발선에 서다!
제석봉방향, 좌측에 촛대봉
운해에 잠긴 칠선계곡
마야계곡
중봉
써리봉
써리봉의 돌양지꽃

치밭목 대피소
무제치기폭포
장당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