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 14/15                            맑음


 


 


 


연일 봄같은 날씨, 계속되는 맑은 날씨에 이번은 산행구간마져 두어시간이나 짧아졌으니


산행준비하는 마음이 모처럼 가볍다. 거기다가 시산제를 올린다고하니까 마누라가 고작 싸준


먹걸이가 쑥갈랭이떡 몇개에 김치뿐이다. 너무 단촐했나..? 


차에서 주섬주섬 짚어보니 배낭은 변함없이 빵빵한데 핸드폰도 없고 수건도 없이, 이것저것


있어야 것들이 줄줄이 행방불명이다. 날이 풀렸다고 이렇게 맥이 빠져서야 에그그  


 


 


4:45 무령고개


지지난주에 왔던 무령고개가 오늘도 들머리라 왔다.  아직도 쌓인 눈이 깊은 겨울잠이라도


자는듯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차들이 지나간 흔적도 별로 없다. 멀쩡한 도로가 얄팍한 눈에 꼼짝


못하고 폐쇄어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덕에 지난번 보다도 훨씬 거리를 행군


해서 진입로에 닿았다.


 


칠흑 같은 밤의 적막을 깨고 쩌벅쩌벅 지축을 흔드는 무리의 발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누구의 명령이 없어도 경쾌한 리듬을 스스로 조율해가며, 이따금씩 대초원의 누우떼 속에서 들리는


같은, 호흡을 다듬는 숨소리가 오늘은 백두대간을 향하는 우리들의 숨소리였습니다. 


30여년만에 다시 들어보는 힘찬 소리에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 음력 정월 스무닷새 )


 


영취산 자락에 걸린 쪼각달이 유난히 초롱초롱해 보였고 별들도 숨을 죽이고 우리들의 진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했다. 영취산에 오르니 우리장모님 눈매닮은 쪼각달은 밝아보였고 주위엔


어느새 사위가 밝아오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서 달과 별을 보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즐거움에


무엇을 더하리


 


지난번과는 반대방향으로 지체없이 들어서서 육십령으로 향했다. 만만하게 보았던 날씨가


영취산에는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이 넘나들고 잔잔하던 눈길도 갑짜기 깊이를 없을 정도로


쌓여있다. 아이젠을 안하고 버틴다는 것이 무모한 만용이 아닐까 하면서도 단지 귀찮다는 이유와


그놈의 안전불감증때문에 그냥 대열속에 꿰어 걷는다.


 


간간히 쌓인 눈이 제법 깊어 양태산님 한쪽다리가 빠졌던 자리에서 심대장은 목까지 홈빡 빠졌다가


나와 눈을 털어내며 엄살스런 표정을 짖는다. 럿셀하며 나가는 심대장이 수난이 많다했더니


이심전심이던가 임무교대지시가 무전으로 내려지고 후미에서 시골님이 비호처럼 달려와 앞을


가로채며 선두를 대신한다. 상황에 따른 유기적인 움직임이 듬직해서 좋았다.


나야 좋아하는 애들마냥 미끄럼타고 내려가는 재미로 날이 밝는 줄도 모르고 가고있지만


때아닌 눈길이 여간 신경쓰이지 않는 모냥이다.


고라니도 대간길을 가는 중인지 우리가 길을 계속 앞질러 갔다.


 


 


942봉인가 손바닥만한 이름모를 봉우리에 잠시 모여 목도 축이고 걸음도 점검한다.


잘룩한 영취산에서부터 뻗어온 대간길을 비켜서서 북으로 갈길을 가는듯이 뻗어간 금북호남정


맥능선이 훌륭한 열두폭 병풍이요, 멋진 파노라마 감이다.


 


    


  


 


 


남덕유와 서봉도 나란히 서서 아침햇살을 받으려는 참이다. 어명속에서 일출이 임박해짐에 카메라


준비하고 나뭇가지를 벗어나려고 한발 한발 간다는 것이 그만 해가 뼘이나 솟아올라


사진찍을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애꿎은 카메라만 콕콕 쥐어박는다.


 


늘상 보는 일출이지만 언제나 솟는 해를 보면 나는 술에 취한 잔잔한 흥분이 일기시작하면서


지친 몸에 생기가 돌고 마음속에 태평성대를 이룬다. 이런 다른 포만감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애써 여유도 부리고 사진도 찍고 없는 나그네처럼 하냥 서서 떠날 줄을


모르곤 한다.


 


태양은 생명과 빛을 가지고 있다지요. 사람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것은


받아먹는 여린 싹처럼 너무 강열하지않은 태양으로부터 부족한 뭔가를 얻고자하는 인간의 본능


적인 행위가 아닐까 싶다.


양태산님도 뒤에 오시면서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같다고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주문을


외신다. 무슨 일이 있을 이라고!! 


  


  


  


  


이미 잠에서 깨어 시원스레 윤곽을 드러낸


호남정맥능선과 남덕유형제가 우리을 상면하고는


그리 멀리 있지 아니하니 천천히 내품으로 오라는 한다.


 


남덕유형제는 험상하지만 낯설지않고


둘이 마주하고있으니 언제나 외롭지않아 보인다.


형제들은 바람타고 인사를 하시는가 구름타고 왕래를 하시는가


 


서봉만 다녀가면 남덕유가 뭐랄 것이고


서봉을 비켜 남덕유에 가기에는 인간이 치사해지는 같다.


지난번에 남덕유에서 영각사로 내려온 일을 이제와서 어떻게 고할까?


 


때로는 대간길을 막고서서 혹독한 시련을 주기도하고


애써 찾아온 이들에겐 기쁨주기를 마다하지 않던가


 


덮어쓴 고봉의 모습도 위엄있어 좋고


아침햇쌀 받은 모습도 포근하고 섬세해서 좋다


오늘은 청명한 하늘아래 속살까지 드러내며 우리를 반기는 같다.


 


 


눈길을 푹푹 빠져 걷노라니 어린시절 추억들이 아른거린다. 바지갈랭이가 눈에 흠뻑 젖었다고


못마땅해하셨던 어머니가 오늘 이런 눈에 범벅된 몰골을 보시면 뭐라 하실려는지. 


아직도 철없는 애비라고 면박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소리 들으며 한번 같이 걷고 뒹구르며


놀다가고 싶다.


 


눈과 씨름하며 질퍽대다가 졸레졸레 뛰어내려와 육십령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 백두대간에 대한


당찬 꿈을 갖고 넘었던 곳인데 꿈이 여물어 이렇게 대간길을 따라 다시 왔으니 고향 찾아온듯이


반갑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다.


 


마침 덕유산구간이 밀린 숙제로 남아있어 육십령에서 빼재로 가야할지 아니면 빼재에서 육십령


으로 가야할지 두런두런 생각중이다. 심설도 좋고 원추리 비비추가 천상화원을 가꿀때 단숨에


달려가는 것도 생각해보니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오늘은  우리 자유인클럽 시산제 지내는 날이다. 백두대간 무사종주 기원이라고 쓰려던 소원을


한대장님이 대신 써주셨으니 이하 동문하고  六十嶺 忠英塔아래 마련된 제단에서 육십령신령님께


재배올리며 읊조렸다.


 


어느날 육십령에서 빼재가는 열어주시고 보살펴주십사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