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俗離山) 1,057.7m
위 치 : 충북 보은 내속리면, 경북 상주 화북면
산행코스 : 법주사 – 문장대 – 신선대 – 입석대 – 천황봉 - 법주사

산행일자 : 2004년 2월 24일/우리부부

풍기출발05:24 - 상주06:31 - 법주사주차장07:30
주차장07:55 - 매표소08:02 - 세심정08:46 - 보현재휴게소09:15 - 문장대10:20/10:40 –
신선대11:15/11:22 - 입석대11:41/11:50 - 천황봉12:45/13:15 - 상환석문13:58 –
세심정14:25 - 법주사15:00/15:20 - 주차장15:45
법주사주차장15:50 - 풍기도착18:00

◈ 봄과 겨울의 길목 속리산 산행
지난 토요일(21일) 풍기에서 5시에 출발하여 도착한 주왕산국립공원은 봄철 산불방지기간(2.16~5.31)임을 알리는 매표소 유리창의 공고문 하나로 아쉬움의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분명 국립공원관리공단 사이트에는 아직까지도 3.2 ~ 5.31 까지 15개 국립공원(주왕산포함)의 탐방로 일부에 대해서 출입을 통제한다고 되어 있어서 통제되기 전에 다녀오리라 서둘렀는데 유독 주왕산국립공원만 별도의 날짜를 정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해 놓은 줄이야….

씁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하루종일 홈페이지를 뒤지며 직접전화로 확인도 해가며 산불방지로 통제하는 구간이 있는지, 기간은 언제부터인지 일일이 확인을 해보고, 이왕이면 통제하는 곳을 먼저 다녀오리란 생각 끝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는 속리산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학창시절 처음간 속리산은 과하게 먹은 술로 산행자체를 포기해야만 하였고 재작년 가을 다녀온 속리산은 종주는 하였지만 궂은 날씨와 안개로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여 가슴 한켠에 진한 여운이 남아있는 산이기 때문입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게으른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집사람과 도착한 주차장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텅텅 비어있어 썰렁한 느낌입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법주사로 향하는 아름드리 송림길….
진한 솔향이 싱그러운 봄바람에 실려 온몸을 휘감으니 상쾌한 이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요?
법주사를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진한 황토색의 넓은 비포장길은 포근하게 딛는 걸음 걸음마다 풋풋한 흙내음이 묻어납니다.

아직 봄이라 하기엔 꽝꽝얼어 붙은 저수지와 하얗게 서리 내린 비탈진 밭이 민망하지만 두꺼운 얼음 밑으로도 봄은 이미 흐르고 있고 개울가 나무줄기에도 봄은 짙게 배어나오고 있으니 아니라 할수도 없습니다.
하루종일 걸어도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은 정감 있는 길을 호젓하게 집사람과 단둘이 걸으니 넘쳐 나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요?
너무 좋은 기분은 얼마 못 가서 깨져 버립니다.
평상시 잘 걷던 집사람이 얼마 걷지도 않았고 험하지도 않은 평범한 길에서 오른쪽 다리의 아픔을 얘기합니다.
여태 이런 일이 없었는데 다리까지 쩔룩거리면서 말입니다.
걷기는 걸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주왕산에 이어서 또 산행을 포기 해야 하나?
아님 기다리라 하고 혼자 다녀올까?
온갖 잡생각이 들지만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세심정에 도착하니 평탄한 길은 끝이 나고 이제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픈 다리로 걷는 게 힘이 들 텐데도 문장대 까지는 꼭 가보겠답니다.
지난날 비경을 못 본 아쉬움 때문일 겁니다.
스틱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차에 놔두고 왔으니…
쓸만한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찾다 보니 누군가 쓰다 버린 나무지팡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얼른 주워 갖다 주니 얼마나 좋아 하는지요…

용바위 휴게소를 지나고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계단을 한발로만 집고 올라서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고…
특별히 도울 방법도 없으니 애만 끓이며 묵묵히 뒤따라 갑니다.

보현재휴게소를 얼마 안남기고 VJ특공대에 소개된 적이 있다는 짐꾼을 만납니다.
막걸리를 말통으로 3통씩이나 지게에 지고 한발 한발 힘들게 올라서고 있는…
너무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집사람 걱정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다른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맴돕니다.
저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막걸리가 넘어 갈까?
산 속에서 꼭 막걸리를 먹어야 하나?
힘들어 하시는 분과 인사를 하고 보현재 휴게소까지 온갖 망상에 휩쓸려 올라갑니다.

휴게소를 조금지나서 집사람이 쉬어가자는 말에 겨우 망상에서 벗어납니다.
조용한 산중에 지친 몸이 쉬는 곳엔 비록 귤 하나 사과 한 쪽씩 이지만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잠시 마음속에 행복을 느끼고 이제 또 걸음을 옮겨 봅니다.

문장대가 보이니 힘이 나는지 쩔뚝거리던 다리도 괜찮아 보이고 집사람 걷는 속도가 빨라 집니다.
잠시 쉬고 나니 이상하게 다리가 괜찮다고 환하게 웃습니다.
모처럼 웃는 모습을 보니 여태 애만 끓이던 마음도 다 풀리고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도 생생히 다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응달진 등산로엔 눈도 제법이고 봄과 겨울이 교차하는 그런 길들이 반복됩니다.
한 구비 돌면 초봄인가 싶고 또 한 구비 돌면 늦은 겨울입니다.
하지만 상큼한 봄바람 맛을 본 나의 몸과 마음은 꾸물거리는 겨울에게 거부의 몸짓을 보냅니다.

봄이 오는 길을 따라 큰 힘 들이지 않고 가볍게 올라선 문장대엔 제법 세찬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리까지 동원해서 위협을 합니다.
하지만 바람덕분인지 너무도 맑은 날씨 덕에 사방의 조망이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묘봉, 관음봉, 도명산, 낙영산으로 길게 이어 달리는 수려한 산세도 그저 그만이고, 오늘 가야 할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절경의 능선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번갈아가며 문장대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아직도 눈이 제법인 신선대 등산로로 들어섭니다.
눈이 있다고는 하나 제법 따사로운 햇살에 못 이겨 푸석푸석해진 탓으로 한겨울처럼 미끄럽진 않습니다.
무명의 암봉들이 저마다의 멋을 부리며 연이어 웅장하게 서있는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그런 재미난 길을 걷습니다.
신선이 머물렀음직한 전망좋은 신선대를 지나고 입석대 가는 길은 녹은 눈으로 질퍽한 진흙탕길이 내딛는 걸음을 방해합니다.
차라리 미끄럽더라도 눈길이 훨씬 더 좋은걸…

문장대를 출발한지 한시간만에 입석대에 도착합니다.
거대한 조형물을 세워 놓은 듯 웅장하면서도 반듯한 입석대의 모습엔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습니다.
너무 높아 카메라에도 잘 잡히지 않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웅장한 모습을 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등산로엔 거대한 바위가 길을 딱 막고 누워있습니다.
밑으로 조그마한 통로만 열어 놓은체…

집사람이 먼저 무릎을 굽힌체 옆으로 서서 좁은 통로를 겨우 겨우 빠져 나가더니 어떻게 나올거냐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냥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봅니다.
돌아갈만한 길도 없고 할 수 없이 집사람이 한 폼 그대로 시도 해보니 당치도 않습니다.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깔깔 웃는 집사람의 놀림을 받으며 이번엔 두손 두발로 질퍽한 땅위를 엉금엉금 기어 겨우 빠져나가니 등에선 땀이 줄 줄 흐릅니다.
에구 에구 이놈의 살이 웬수지…

입석대를 지나 천황봉으로 가는길…
전에 왔을 때 유심히 보아둔 석이버섯이 자라고 있는 바위를 용케도 찾아냅니다.
물줄기를 따라 암벽에 자란 석이버섯은 꽤 큰 것도 보이지만 채취하기엔 위험하기도 하고 그양도 많지않음에 참고 그냥 부지런히 천황봉으로 가기로 합니다.

천황봉을 오르는 길엔 그 높이 때문인지 다른 곳 보다 등로에 눈도 많고 눈꽃을 나무 가득 피우고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길가에 죽 늘어선 산죽은 아직 고운 겨울 옷을 입은 체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아름다워 보여 그모습을 카메라에 연신 담아봅니다.
아마도 작은 키 탓에 나무에 가려서 저기 저만큼 성큼성큼 오고있는 봄을 아직 못 본 모양입니다.

남들은 볼품도 없고 키만 큰 천황봉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멋있는 바위들은 키낮은 동생들에게 모두 내어주고 은근한 미소를 띄우며 그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듬직한 맏형의 모습입니다.
걸어온길 되돌아 보니 수많은 봉우리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서있고 앞쪽으론 피앗재를 거쳐 형제봉으로 흐르는 장쾌한 백두대간이 끝없이 펼쳐져있습니다.
언젠가는 종주를 해야 할 가슴 설레는 백두대간이 말입니다.

아름다운 속리산 줄기를 눈으로 가슴으로 오래오래 새겨 넣고 훨씬 가벼워진 걸음을 옮겨 봅니다.
한발 한발 내려서면 내려설수록 더욱 진하게 묻어나는 봄내음을 맡으며 상환석문을 거쳐 세심정에 도착하니 계곡에서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아직 남은 겨울의 낡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습니다.


문장대


아직 겨울옷을 곱게 입고 있는 산죽


신선대 가는 길에 바라본 문장대


마치 조형물을 세워 놓은듯! 웅장한 입석대


입석대 옆 바위모습


천황봉 가는 길


천황봉에서 문장대쪽으로 바라본 암봉들(제일 왼쪽이 문장대)


법주사 청동미륵 대불


▣ 산초스 - 문장대에서 천황봉까지 속리산 주능선 정말 예쁘고 멋진 경관입니다. 산불방지로 입산통제되는 곳이 많아 5월까지는 신중하게 선택하여 산행을 하여야 할 것같습니다. 수고하셨고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 김정길 - 소백산 산지기께서 사모님과 함께 속리산으로 원정산행을 하셨군요, 축하합니다. 근데, 사모님이 놀리실 정도로 살이 왠수라 하신걸 보니 체격이 더욱 궁금해지는군요, (나랑 비슷하려나요? 나도 살 때문에 고민스러운데, 의 정 반대입니다.) 속리산 주능선 산죽잎에 내려앉은 눈이 특히 상쾌하고 좋습니다. 일전의 소식 감사합니다. 늘 무탈하고 즐거운 부부산행 하시기를...
▣ 김사웅 - 힘든산행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 주왕 - 속리산 다녀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기억이 생생합니다.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 북한산은 오실계획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