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수락 계곡
일시: 2004년 3월 13일
어디로: 수락주차장--광장(승전탑)--선녀폭포--수락 폭포--군자계곡--220계단--마천대 (정상)--장군절터--석천암--수락 폭포--광장--수락 주차장(3시간 30분)
누구랑: 산사랑회 회원들과 행방 친구들

대둔산개요
웅장한 산세는 남으로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서북방향으로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동쪽으로는 금산군 진산면으로 지칠줄 모르고 뻗어나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능선을 따라 기암괴석이 즐비, 대둔산의 최고 비경지대로 꼽히는 곳이 완주방면 등반로. 임금바위 입석대 마왕문 신선바위 넓적바위 장군봉 동심바위 형제봉 금강봉 칠성대 낙조대 등 기암괴석의 암봉군들이 말그대로 금강이다.

경부를 지나고
호남으로 들어선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었다.
서울 촌놈에게 몸을 쉽사리 몸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대둔산의 몸부림이라 생가 됐다.
논산 톨게이트에서 차를 세워 놓고 길을 물었다.
인심이 후한 고장인지라 세세하게 가르쳐 주는 길을 따라 차는 달렸다.


1)수락계곡 가는 길

수락계곡 가는 길은
감나무들이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100년만의 폭설로 인한 설흔(雪痕)에 농토는
아직도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늘도 무심허이
하늘도 무심허이
땀흘리며 살아가는 농촌이 무슨 죄가 있다고
무너진 비닐하우스 위로 햇살만 무심하게 졸고 있었다.
끈질기게 생명을 부지하려는 잔설이
무너진 비닐 하우스 쇠파이프에 눌러 아우성이다.

희망마져 눈속에 묻혀 버린 탓일까?
인적이 끊어져버린 풍요의 땅에는
마른 가지 흔드는 바람만 길손을 맞이했다.
그래 이놈아 잘났어.
너도 농부의 아들이면서 어떻게 못 본 척 지나가니
시린 가슴을 채찍으로 후려치다 보니
수락 주차장 차는 멈추고
가슴은 퍼렇게 멍이 들었다.

2)멀리 대둔산을 보며
차에서 내렸다
수락 계곡 주차장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입었던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모인 산사랑회 친구들과 행지모 친구들의 반가운 인사가 나눠지고
이내 산의 품안에서 한가족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니 계곡의 물흐르는 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3)선녀폭포
두 줄기 떨어지는 물 줄기는
어느 선녀의 옷고름인지
하얀 속살을 거친 바위에 문지러고
긴밤 홀로 지샌 여인네의 애듯한 절규가
봄을 안고 떨어지고 있었다.

4)군자계곡
뚝 자른 바위를 양쪽에 세워놓고
들어오라 들어오라 손짓하는데
총각이 처녀의 옥문으로 들어서듯
얼마나 떨리는지
천하의 절경 앞에 눈마져 아파왔다.

5)220계단
천상으로 오르는 길일까?
깍아지듯 세워두고
한발짝 한발짝 받아들어
거친 숨소리마져 끌어안고
108번뇌보다 더 많은 220번뇌를
모두 풀어놓고 오르라 한다.

6)마천대 가는 길
능선위에 몸 숨기고
주단대신 바위깔아 곳곳에 소나무를 심어두어
멋지다고 멋지다고 연신 머리 조아리게 만들고
시샘하는 산죽은 사랑한다 말 대신에
옷깃만 스치면서 쓰삭 쓰삮 몸을 비며댄다.

7)마천대(878M)에 올라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 무거운 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지
왜 하필 이곳에다 흉측한 인간의 이기를 심었는지
차라리 돌무덤하나 만들어 놓고
정상이라 새겼으면 좋으련만
다행히도 주위의 암봉들이 앞 다투어 얼굴을 내민다.
그리운 마음하나
애듯한 눈(目)길 한줌 바위마다 던져놓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촌부의 마음 또한 애절하다

8)하산
시산재를 지낸다고 3시까지 하산하라는 말에 낙조대 가는 길도 잘라먹고 안부에서 너들길 따라 장군절터와 석천암을 거쳐내려 왔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천하절경이라는데 아쉬운 발길을 돌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사랑했기에 또 오라는 약조로 알고 발길을 접어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수락폭포에서 폭포수 한모금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