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의 시



질주하는 차량들이 흩어놓은 봄 햇살에 남해 고속 국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

28일, 순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고흥 팔영산을 찾는 일은 2번과 17번 여수, 벌교 방면의 국도를 오르면서 기대를 부풀린다.

낙안 민속 마을쪽의 벌교 2번 국도 좌 우 들판은, 갈아엎듯 쏟아지는 햇빛에 나신을 드러내면서 애타게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벌교읍의 벌교 대교를 막 지나 장파 교차로에서 보성 방향을 버리고 15번과 27번 77번 국도 고흥 방면으로 접어든다.

10 여 분 질주 과역 이정표를 보고 고흥쪽을 버리고 연봉 교차로 밑을 빠져나온 후 능가사로 진입하며 쳐다 본 팔영산은, 굽다 만 질그릇을 엎어 놓은것 같은 모습으로 소복히 까탈스럽다.

볼 수록 억장 무너짐 어쩌랴, 오르기 전인데도 뭉게 구름 피어나듯 기암 봉우리들을 피워 올리는 서슬에 목울대는 신음으로 매여 진다.

8개의 봉우리 저마다 날렵한 형상으로 침을 삼키게하며, 얼어붙어 버린 눈빛을 남의 일인 양 아랑곳하지않는 능청에 야속함마저 느끼게 한다.

수없이 새겨 닳기야 하겠냐만 애타는 심정은 무심코 너에게 달려든다.

12시 45분, 능가사 옆 담장을 끼고 산행은 시작 되었다.

눈길은 님들의 품으로 파고들어 드 날숨 거칠어지고 절골의 맑은 물에 귀를 잃어도 아는체않는 심사에 더욱 열기를 받는다.

공간 가득 메운 햇살을, 영글기 시작하는 연초록 참나무 잎들이 놓칠새라 아우성이다.

너덜길 좋아라 도마뱀 꼬리 감추고, 속 드러낸 골짜기 맑은 물에는 8형제의 숨결이 흐른다.

숲머리 가려 당신을 볼 수 없어도 발길은 어서오르고 파 쫓긴듯 들뜬다.

그나마 골짜기 저 편 솟은 기암 절벽이 한사코 달랜다.

들숨에 삼켜질까 날숨에 숨어 버릴까, 애지중지 네 형상이 사랑스러워 차마 걸음 옮기지 못하겠구나, 오랜 나날 기이함을 비경으로 나래 펴, 수많은 이들에게 정 주는 당신이 한없이 부럽다.

날개 접은 산새의 애절한 노래 숲가득 멍들게하고, 팔벌린 굴참나무는 연두색 구름 쓸어 버렸다.

걸을 수록 더욱 눈은 검어지며 품은 양껏 열린다.

13시 20분, 흔들바위를 지나 유영봉(1봉)으로 오른다.

많은 등산인들의 사랑을 간직한 흔적이 숲길에 뉘어져 있다.

자벌레 휜 몸으로 팔영 기슭을 두드리고 호랑나비 날개짓은 형제들의 노래가 선율되어
춤추는구나, 이 순간을 아낄 수 있다면 산산히 흩어지더라도 버리지 않으리다.

유영봉으로 오르며 뒤 펼쳐지는 순천만이 애살스럽게 자태를 여민다.

기암을 깎은 신선대 눈물 짓게하고 강산 폭포는 그이 밑으로 숨어들어 환청으로 살아난다.

육중한 몸으로 앞을 막아선 유영봉이 밉지 않는것은, 모서리 마다 눈길 끈 절묘한 절승을 달고 있기때문 아니겠는가.

13시 50분, 유영봉에 올랐다.

신선대 너머 여자만이 사랑스럽다.

은쟁반 위 구슬같은 섬들이 파돗살에 쫓겨 다니고있다.

부딧혀 멍들어도 깔깔거리고, 서로 속삭이다가 짓쳐 들어오며 훼방놓는 또래의 앙탈을
받아주는 모습이 무척 앙증스럽구나, 그들은 벗이었고 가족 이었다.

세월을 삭일 줄 알았으며 아름다운 맘을 나눌 줄도 알고 있었다.

다도해 넓은 바다를 훑어보는 눈엔, 티없이 맑은 공간을 뚫고 정지 해 버린것 같은 영상과 그들의 사랑 노름을 주워 담으며 넋을 심는다.

잠시 후, 5 ~ 60 여 명 앉을 수 있는 너럭 바위 인 유영봉을 두고 성주봉(2봉)으로 오른다.

험상궂고 괴팍스럽게 생긴 성주봉이 쇠사슬을 늘여놓아 공포에 떨게 한다.

은빛으로 차갑게 번쩍이는 사슬이 위압감을 더 해도 이녁에 갇혀버린 미련은 떨칠 수 없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킨다.

14시 45분, 성주봉을 두고 생황봉(3봉)으로 오른다.

성주봉을 화환으로 장식한 철쭉이 연분홍 아리따운 봄을 손질하고 있다.

오르고 내리는 암릉길의 아기자기한 맛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으며 왔던길 되돌아 또
걷고픈 마음까지 일어난다.

절경에 취한 상태라 시간 잊은지 오래, 일행들의 얼굴엔 철쭉보다 더 붉은 기쁨으로 물들었다.

생황봉 위에서 내려 본 사방골은 녹색 양탄자를 펼쳐 놓은듯하여 무작정 뛰어 들고프며, 사자봉(4봉) 두류봉(6봉)의 근엄한 자태에 정신을 빼앗긴다.

오로봉(5봉) 아래로 깊이 헤쳐 내려간 안양동계곡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몸을 끌어 당긴다.

이들은 바다를 멀리한 내륙의 산과 달리 많은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매몰찬 해풍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넘기고, 부딪혀 깨어 흩어지는 흰빛 물가루에 애살스러운 정을 흐르게하는 마음 또 한 부럽다.

끌려들어간 가슴 쉬 내칠 수 없는것은 더할나위없이 야위어져 있기때문 아니겠는가, 그들의 변치않음이 숙명인데도 걷잡을 수 없는 애증이 안타까움으로 신음되어 흐른다.

두류봉으로 오르는 길이 허리 안고 돌아 춤추며, 천년송 발길 묶어 눈길 잡는다.

그 품 그냥 스쳐지나기 서러워 눈살은 천 만번 버티고, 님의 향기는 속절없는 기약에
묻어 상처로 새겨 둔다.

마치 뭉게구름 위를 걷듯 암릉길을 걷는 몸은 황홀한 무아 속으로 빠져들어, 또다른 세상이 펼쳐 져 있음 알지못한 스스로가 미워 걸어온 길 돌아보며 눈을 감는다.

15시 30분, 제풀에 취해 오른 두류봉을 지나 칠성봉(7봉)으로 걷는다.

당신의 일부가 되어 속을 열고 좋아라 달려 든다.

이미, 당신의 너그러움 보았기에 온몸은 풀어져 버렸고, 속삭임 향기 되었기에 머리 속까지 비었다.

이 자리에 있는것 조차 잊어버린 자신을 탓할 수 없는것은 속속들이 당신을 읽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내 칠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고깝게 여기지도 않음 대견스러워 응석 부린다.

사방골이 유선형을 그리며 녹색 대군을 밀어 올린다.

두류봉에서 칠성봉으로 오르기 전 통천문 까지 100 여 미터 완만한 등성의 참나무 숲을 걷는다.

칠성봉에서 내려 본 사방댐이 반쯤 혀를 깨물고 있다.

남도 바다의 비릿한 향기를 물고 이 이를 돌아쳐 뭍으로 달아나는 4월의 끝자락은, 이녁의 치마 샅을 초록으로 범벅 지어놓고 유유히 사라진다.

초록은 8형제를 받들어 하늘로 띄웠고 쪽빛 바다 끌어당겨 살찌웠으며, 운람산에 의해 가장자리가 뜯긴 보성만은 수줍어 살포시 눈을 감는다.

날카로운 공룡 등비늘 같은 암릉길을 타고 오른 16시, 591 미터 적취봉(8봉)에 오른다.

이 이는 전남 고흥군 점암면과 영남면을 발아래 펼쳐 놓고, 억센 해풍과 남도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가며 동생들을 다독인다.

좌 우로 순천만과 보성만, 남으로 해창만을 두고 많은 섬들을 두팔 벌려 끌어안고 있으며, 호남의 4대 사찰(화엄사, 송광사, 대흥사) 중 능가사를 보유하고 있다.

8개 봉을 취한 상태로 오르니 가슴에는 아리도록 애정이 쌓였고, 그래서 낙심한 두 다리는 속으로만 삭여져 억누른 감정에 굴절 된 네 모습이 사랑으로 남겨졌다.

내림길은 적취봉을 지나 깃대봉으로 향하다 탑재 방향으로 접어든다.

숨가쁜 너를 흔적으로 만 남겨 잊기라도할 양 두 마음 상처받지 않을까 두렵다.

다 할때까지 간직하고 픈데 모자란 부끄러움 어찌하랴, 그러나 지나고 또 지나 자취 만이라도 남겨져 있다면 그것으로도 님이라 생각 하련다.




_ 안 녕 _

- 2004, 04, 28. -


- eaolaji -


▣ 은잠 - ♡ 저도 지난 3월10일 팔영산에 다녀왔습니다.잔잔하게 추억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표현력이 놀랍습니다.
▣ 김성기 - 3월30일 나녀왔는데 푸른바다와 녹색향연! 정말 멋진 산행 하셨습니다.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늘 즐산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