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백두산

 

(퍼온 사진임)

 

1. 산행지 : 백두산 종주(서백두~북백두)

2. 언   제 : 2004. 7. 20 ~ 27 (7박 8일)

3. 날   씨 : 20-21(맑음), 22(비), 23-24(맑음), 25(비), 26-27(맑음)

4. 산행전 : 7. 20 창원시청(06:40)-마산역-서마산IC-속초국제여객터미널(15:00)출항

                7. 21 러시아(자루비노항:15:15도착)-중국(훈춘)-이도백하(23:50)저녁식사 후 백운봉산장

                   으로 이동

                7. 22 백운산장(05:20도착)-청석봉 아래 산행기점(06:35)

5. 산행자 : 산과하늘바다외 14명

6. 산행일시 : 2004. 7. 22  06:40 ~ 16:00

7. 산행코스 : 5호경계비(06:40)-청석봉-백운봉-녹명봉-차일봉-천지-장백폭포로 하산(16:00)-13km

8. 산행후 : ☞7. 22 두만강발원지(17:50)-김일성낚시터(18:10)-광평휴가촌투숙(18:30)

                ☞7. 23 북한양강도세관(07:50)-일송정(11:50)-대성중학교(12:40)-곰사육장(13:15)-동방불

                           고기(12:20)-도문두만강보트놀이(17:10)-금강산식당(20:50)-백회호텔투숙(21:50)

                ☞7. 24 사만자단교(10:25)-밀강민속촌(13:30/20:00)-길성호텔투숙(21:10)

                ☞7. 25 권하대교(10:25)-안중근의사 유적지(10:45)-통나무집점심(11:30)길성호텔휴식

                           (12:50/19:30)- 금강산식당(20:30)-길성호텔투숙(21:30)

                ☞7. 26 조선족 민가방문(08:10)-특산물 및 한약방(09:10)-훈춘냉면(10:50) -장영자세관

                           (11:20)-자루비노항(16:35)-속초로 이동

                ☞7. 27 속초항(12:50)-창원(22:00)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한민족에 태어났다면 생전에 한번은 가보고 싶은 산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산의 뿌리가 백두산에 있고 우리나라의 산으로 백두산과

연결되지 않은 산이 없기 때문이다.

  

부연해서 말하자면 단순한 산이라기 보다 민족이 탄생한 산, 민족의 시원이 열려지기 시작한 백두산은

산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관계없이 그 품안에 안겨보고 싶은 산이다.

 

하늘에 가깝다는 단순한 의미에서도 산의 정상은 신성한 곳이다. 그러나 백두산은 그 높이와 산정에 이

루어진 천지라는 아름다운 호수와  넓디넓은 하늘의 정원으로서 우선 성스러운 빛을 가득히 풍기는 산

이다. 우리가 바로 그곳을 향하고 있다.!!!!!!!!!

20일 오후 3시에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항으로 출항을 합니다. 우리 일행은 백두산 트레킹의 부푼 가

슴을 안고 시원한 선상에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나눠 먹으로 백두산 이야기로 꽃피운다. 

동해 공해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켜고, 붉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내 부푼 가슴 때문일까?

근데 동춘호의 엔진고장으로 러시아 자루비노항에 6시간 연착하여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중국 훈춘

장영자세관에 수속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점심식사(통나집:18:30)를 하고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이도

백하에 도착하니 21일 자정이 다된 시간 이었다. 여기서 저녁식사를 하고 백운봉 산장으로 쉼 없이 달린

다.

22일 새벽5시20분에 우리들의 숙소인 백운봉산장에 도착했다. 도착 하자마자 바로 산행을 한다는 가이

드의 말씀에 산행 준비에 분주하다. 개별 도시락을 받아 베낭에 넣고 짚차와 봉고차에 나눠타고 서백두

산문(매표소)앞에 도착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구름인가 안개인가 자욱하다.  

서백두 산문을 출발 50분후에 청석봉아래 산행기점에 도착하니 주위는 온통 안개비로 5m밖이 보이질

않는다. 안개비와 세찬 바람이 얼굴을 갈기니 모두들 우의를 덮혀 입고 산행(1386의 돌계단)을 시작한

다. 출발한지 불과 30분만에 천지라는 곳에 도착한다. 모두들 야!!!!!!!!천지다!!!!함성이 터져나온다.

  

5호경계비는 중국과북한을 나누는 비로 양쪽면에(중국:붉은글, 조선:푸른글)로 구분되어 세겨져 있다.

중국과 북한을 나누는 경계비는 5호~21호까지 있다고 한다.  

천지가 우리에게  그 관문을 열지 않아  설레임인 더해가고.......5호경계비에서 왼쪽으로 마천우를 지나 

청석봉을 향했다. 경사지를 오르는데 세찬 비바람이 우리를 천지로 몰아 넣을 기세다.  

 

청석봉(2,664m)은 다섯 봉우리가 푸른암석으로 되어있어 붙은 이름이라한다. 별칭으로 꼭대기에 오형

제처럼 다섯봉우리가 뭉쳐선 것이 마치 하늘이 무너지면 버티고 있을 듯하여 "백두의 옥기둥"이란 이름

이 붙엇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봉우리가 다섯인지 여섯인지 알수가 없다. 여전히 강한 비바람과 싸우

기에 급급하다.  

백운봉 앞에서는 우회를 해야했다. 한허계곡으로 내려가니 천지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개울을 만들

었고 우리는 그계곡에서 (09:30) 추위에 떨며 늦은 아침을 먹는다. 그러나 모두들 표정은 밝다. 이 개울

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한모금 물맛을 보며 다시금 급경사를 오른다.     

백운봉으로 오르는 급경사에 가픈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 보니 온갖 꽃들이 형형색색을 뽑내며 우

리들을 반긴다. 오르는길 중간중간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다.호수의 뚝처럼, 물고기의 비늘처럼 말이

다..   

여러 봉우리들이 다 얼굴을 내밀어도 이 백운봉 만큼은 흰 구름에서 가려져 있다고 하여 붙은 백운봉 정

상(2,691m)에 도착하여 "동해물가 백두산이~♬~ ♪ 하느님이 보우하사 리나라 만세" 애국가를 마치

고 "만세 삼창"과 함께 희미한 백운봉을 뒤로하고 녹명봉으로 향한다.  

이젠 비는 거치고 짙은 안개만이 우리를 애태운다. 여기서 1시간만 기다려 보자는 얘기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베낭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천지가 우리앞에 모습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표정들이 진지하다.  천지를 볼수 있다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차일봉으로

향한다

넓디넓은 백두의 외륜능선에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앞쪽에는 차일봉(용문봉)이 우뚝 솟아 있다.

천지로 내려가지 않고 능선을 타고 소천지로 내려 가려고 하는데 구름 속에서 해가 천지를 비추는게 아

닌가! 백두산 트레이킹을 시작한지 약7시간 만에 천지가 얼굴을 내민다. 천지를 안보고 갈 이가 있겠는

가? 우리 일행은 달문으로 하산한다.

금방이라도 넘어 올 듯한 절벽! 급경사 하산 길에 오금이 저려온다. 아니나 다를까?조금 내려 오는데 위

에서 돌이야! 큰소리가 들려온다. 돌맹이 하나가 굴러 내려 온다.  뒤 돌아 보자 얼굴 옆으로 휙 날아가

는데 온몸이 오싹해진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잠시 후 또다시 돌이야! 하는데 뒤 돌아 보니 이젠 2개의 돌이 날아온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멍청이 바라볼 뿐이다. 어떻게 사람을 빗겨 갔기에 망정이지..휴~~~

우리 일행은 천지에 도착했다. 손을 담그며 깜짝 놀란다. 이렇게 차가운 수가 있을까? 여기에 산천어 살

고있다?  파도가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을 할수 없을 정도다.  이런 백두산 천지를 보았다. 이제서야 텅

 빈 내 가슴에 조금씩 채워지는 듯 하다.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천지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은 눈으로 가슴으로  채우고 다시 장백폭포를 향했다. 

천지에서 하산하는 통로(터널)옆으로 장백폭포가 눈앞에 들어온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북쪽 천할봉과 용문봉 사이의 달문에서 흘러 낙차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룬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흰 물보라를 흩날려 공중에 칠색무지개와 백룡이 날아 내리듯한 절경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장백폭포이다.

장백폭포는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고 한다. 북방의 모든 폭포는 봄부터 가을까지 물이 있어 장관을 이루

지만 겨울이면 물이 얼어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장백폭포 만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계속 흐른다고 한

다.   

 

드디어 백두산 서파에서 북파까지 9시간20분의 종주를 마치고 장백산호텔로 내려와(16:00)온천욕과 점

심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남은 일정을 위해 버스에 승차했다.  

 

산행을 마치고 두만강 발원지(21호 경계)를 거쳐 김일성 낚시터을 구경하고(여기는 촬영금지) 오늘 저

녁 휴식처인 광평 휴가촌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다.

중국측 고성리 변방 파출소와 두만강을 지나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북한측 세관이 바라보인다. 다리 너

머 북한군이 지키고있는 것이 바로 눈앞이다. 여름이면 이곳 두만강에서 북한, 중국어린이가 헤엄치며

놀고 강을 넘나든다고 한다.

"선구자"

일송정 푸른 솔은 홀로 늙어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시인 윤해영의 노래말로 알려진 이「선구자」는 원래는「용정의 노래」였다고 한다. 작사 윤해영은 용

정 출신으로 나라잃은 슬픔에 망연자실하던 중에 심기일전의 자세로 나날이 꺼져가는 동포들의 저항심

을 회생시켜 보려고 이 가사를 썼다고 한다.

  

어느 해 겨울 작곡자인 조두남선생에게 몹시 병약해 보이는 젊은 윤해영이 찾아와서 자신이 쓴「용정의

노래」가사에 곡을 붙여주기를 부탁해 놓고 갔는데 그 후 그 청년은 여러 해가 지나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해방이 된 후에도 조두남선생은 끝내 그 청년(윤해영)을 보지 못하고 만주 땅을 떠나

게 된 것. 남한에 정착하게 된 선생은 행여나 하고 그 청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무소식이어서 뒤늦게나마 원작제목 "용정의 노래"를 "선구자"로 고쳐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용정을 무대로 한 이 노래 속에는 황금보다도 값지고 귀한 민족정

기와 정신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고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민족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

생각된다.

일송정에서 내려다본 해란강의 전경.....선구자의 노래가 ~~한줄기 해란강천년두고`~흐른다`~~지

난날`~강가에서 말달리던~선구자♬~♪

  

용정시에 위치한 윤동주님의 시비가 있는 대성중학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에서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

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 앞에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

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 시「서시」전문이 새겨져 있는 시비에서......

도문 가는길에 곰사육장을 들렀다. 세계 최대의 곰사육장 이란다. 사람을 위한 곰들의 처절한 현장 이었

다. 도문에 도착하여 두만강 보트 유람선을 타고서 타는 뜻한 더위를 식혀본다.

백회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저녁식사를 금강산식당(북한운영)에 한식으로 예약 되어 있었다. 식

사도중에 북한 접대부들이 상냥한 목소리와 가무로 우리들을  반긴다. 동포애를  강하게 느끼면서 노래

도 함께부르며 흥겹게 지내는 동안 통일된 기분을 느낀다. 

  

사만자단교에서 저멀리 북한 인민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동춘호의 고장으로 귀국일자가 늘어나자

오늘 일정은 밀강의 민속촌에서 소 한마리를 요리하여 이웃한 일행 30여명과 포식을 하고 우리의 숙소

인 길성호텔에 투숙했다

  

 "안중근의사 유적지"

안중근은 1879년 7월 16일 황해도 해주부수양산에서 출생 1907년에 의병에 참가하여 여러차례 조선의

경흥.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크라스키노를 경유하면서 항일활동을 전개. 그 기간 안중근은 7차례나 훈

춘 일대에 와서 학교운영. 항일선전. 민족독립을 선양. 1908년 4월~6월 사이에안중근은 6차례나 훈춘경

신의 대두천. 구사평. 방천. 권하등 지역에 류숙하면서 엄홍섭등 의병장령들과 작전방안을 연구 1909년

1월 안중근은 훈춘. 크라스키노에가서. 12명의 동지들과 동맹을 결성하고 혈서도 맹세. 당년 9월 이등방

문이 할빈에 온다는 것을 알고 10월 26일 할빈 기차역에 잠입하여 이등방문을 격사. 이듬해 3월 26일 려

순에서 영용히 희생.  그때 나이 겨우32세 안중근의 의거는 중국에서 커다란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청년

대의 주은래와 등영초도 일찍(안중근)을 출연 하였다. 주은래는(중.일 갑오전쟁 후 조.인민은 일본제

국주의 침략을 반대하였는 바 본 세기초 안중근이 할빈에서 이등방문을 격사 한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안중근의사 유적지 표지판 인용"

조선족 민가에 들려 찰떡 빚는 것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 귀국길에 앞서 중국특산품가게

및 약방에 들려 구경을 하다.

중국 장영자세관에서 수속을  마치고 러시아 자루비노항 동춘호에 승선하다.  

속초항에 도착하여 해안도로 횟짐에서 오징어 덮밥과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고 버스로 창원에 오후10시

에 도착하여 여행계획을 이틀 초과한 7박8일간의 여행을 마치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백두산이 였고 우리의 꿈은 천지를 만나 가슴 가득히 담아 오는 것이였다. 그러나

못다채운 가슴은 차쯤차쯤 채우기로하고 채워진 만큼의 기쁨을 안고 다음 백두산 오를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