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채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2004.09.05. 14:24>











'등잔 밑이 어둡다.' 라는 말처럼 부산이 처가인데 금정산은 처음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막연히(왠지) 도시 속의 산이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던 금정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산하에 등장하는 여러분들의 금정산 산행기를 본 후,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만나고 보니 과연 금정산은 아름다웠고, 산보나 하는 그런 시시한 산으로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알게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외송마을-장군봉-고당봉-북문-동문-남문-상계봉-파리봉-공해마을▷


 




일시: 2004.09.05 (일요일)

날씨: 오전은 흐림, 북문 지나서는 맑아짐.

산행자: 영원한 산친구 그리고 나

車의 길: 경남 통영시-부산 妻家

산행코스: 양산시 동면 외송마을-(1시간 43분동안 생고생)-장군봉지난, 바위가 있는 능선-마애여래입상-고당봉-금샘-북문-원효봉-의상봉-부채바위-동문-산성고개-남문-수박샘-상계봉-파리봉(파류봉)-가나안교회-공해마을

산행시각

2004.09.04. 19:07 통영출발
2004.09.04. 21:20 부산도착 (일박)
2004.09.05. 08:52 양산시 동면초등학교 앞

09:04 산행초입인 마지막 외딴집 <산행시작>
09:32 길을 잃다. ( 너덜길 )
10:30 바위릿지하고 올라선 어느 전망봉우리
11:05 악전고투끝에 올라온 정상등로 (바위가 있는 능선)
11:26 샘터
11:56 마애불로 내려가는 갈림길
12:01 가산리 마애여래 입상
12:26-12:38 고당봉 (금정산 정상 801.5m) 빵으로 중식
13:10 금샘 (찾느라 헤맴)
13:34 북문
13:55 원효봉
14:12 제4망루
14:30 부채바위 --파노라마사진 촬영
14:59 동문
15:33 남문
15:38 수박샘
16:11 상계봉 정상 (640.2m)
16:41 파리봉 (파류봉 600m)--파리봉 못가 전망봉에서 파노라마사진 촬영
17:05 가나안교회(집단시설)--사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17:12 공해마을 <산행 끝>--사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17:26-18:59 저녁식사 (합천집)
20:58-22:25 통영 도착

■ 산행 거리 약 15km
■ 산행 시간 약 8시간
■ 나의 만보계 30,758步

산의내력

▲금정산

金井山
→위치 : 釜山廣域市 金井區, 北區, 梁山市
금정산은 백두대간의 덕항산 다음 피재(삼수령)에서 동해안을 따라 갈라진 낙동정맥이 통고산.사룡산.가지산.취서산.정족산을 거쳐 부산에 이르러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는 명산이다.

무한의 보고인 바다와 더불어 산자락은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부산의 母山이기도 하다. 산세는 능선이 완만하게 뻗어내려 요란스러움이 없고 고담봉을 비롯하여 부채바위. 나비바위. 대륙봉 등 암장이 있으며, 능선 언저리에는 곳곳에 억새밭이 있고 날등 어디서 보나 낙동강과 부산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어 가슴이 후련하다.

고당봉. 의상봉. 상계봉. 서문을 연결한 날등에는 외침을 대비한 국내 최대규모의 금정산성(17,337m)이 자연석으로 축조되어 있고, 동쪽 산록에는 대찰 범어사(梵魚寺)와 많은 암자가 있다.


 

-한국400산행기(김형수)에서 발췌-



금정산 (click here)

참고 산행기 1. [기사-월간 마운틴] 100명산을 가다, 금정산-종주산행

참고 산행기 2.오르고 싶은 산, 타고 싶은 그 능선




▲ 산행기 ▲

오늘 (일요일) 이 장모님 생신날이므로 어제(토요일) 저녁 업무를 마치고 처가인 부산으로 향했다. 그동안 처가에 가면 주로 손아래 동서랑 술 먹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어 산행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어제는 예외였다. 이번은 장모님 생신을 빙자한 나의 금정산 산행이 예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언젠가 손아래 동서가 금정산 이야기를 했을 때, 나의 반응은 ‘시큰둥’ 그 자체였다. 지레짐작이랄까 금정산하면 부산시내에 있는 작은 공원 정도쯤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산에 실린 여러 산님들의 산행기를 읽고 금정산이 내가 상상했던 작은 공원이 아닌 명산 중에 명산임을 깨달고 꼭 산행하여 나도 멋진 금정산 산행기 한편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갑자기 생겨났던 것이다.

이번 금정산 산행은 저번 주 (포항.내연산)같이 무리하지않고 트래킹하는 기분으로 단산 즐산하려고 작심한다. 산행에 앞서 새한솔산악회 이두영회장님께 금정산 산행코스에 대해 문의하니, 범어사를 출발하여 4대문을 거쳐 금강공원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가르쳐주셨다. 나중에 우리가 포항 내연산 장거리산행을 하자, 회장님은 좀더 장거리 종주코스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번에는 단산 즐산하려고 회장님이 추천하신 범어사 코스로 가겠다고 사양했었다.

나중에 회장님은 산행코스및, 주의사항을 담은 내용을 팩스로 전송해 주셨는데 팩스내용 인즉,-- 고당봉, 상계봉, 파리봉, 4대문과 반드시 금샘을 보고 올 것을 강조하셨다. 금샘은 한울타리님의 산행기에서 처음 보았었다. 금샘이 바로 金井이 아니던가! 금정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금샘에서 유래한 것이렷다. 고로 금정산의 뿌리, 즉 根源을 보고 오라는 깊은 뜻이 숨어있는 듯하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금샘을 찾음.)

 

▷ 부실한 표지판(양산시 동면초등학교 앞 도로변) <08:52>

▷ 산행초입 (외딴집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두 남자산님들..) <09:04>

내가 부산 금정산을 산행한다고 하자, 부산에 사는 산거북이님은 이 변변치 못한 선배를 위해 길 안내를 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우님께서도 일요일이면 나처럼 산에 가셔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아우님보다 더 맨맨한 손아래 동서가 있어 산거북이 아우님의 호의를 정중히 사양을 했었다.

마침 아침 일찍 서울로 떠나는 작은처남 바람에 아침 일찍 아침밥을 먹게 된다. 안 그래도 가급적 아침밥을 일찍 먹었으면 했는데 자연스럽게 이른 아침밥을 먹고 어제 밤, 쇠주 1병반을 거의 혼자서 마신(다른 날 같으면 나도 그렇게 마셨을 것인데, 오늘의 산행을 위해 나는 반병만 마심.) 손아래동서가 우리를 양산시 동면 들머리까지 데려다 준다.

동면초등학교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부고속도로 굴다리가 나오고 이 굴다리를 지나 조금 더 올라오면 법당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내려 주위를 살피며 올랐어야 했는데, 동서의 과잉친절로 계속 임도 같은 길을 올라오니, 외딴집이 나오고 임도는 끝난다.

이곳이 산행초입인가?? 긴가?? 민가?? 하면서 도로 내려가려는데 남자 산님 두 분이 올라오시는 지라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니 금정산 고당봉을 오른다 한다. 그래서 이 길이 산행 초입이 맞나보다 하고 동서와 처제 그리고 장모님과 이별을 하고 우리도 그 두 분 산님의 뒤를 따라 올라간다.

 

▷ 산행초입 올라가는 길에 핀 미국자리공 <09:07>

▷ 잘못된 등산로를 올라가면서 본 참꿩의다리 <09:23>

산길을 올라가는 밭길에는 야생화들이 많이 피어있다. 어찌 이리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접사사진 한 장을 찍고 천천히 올라가니 조금 전 우리 앞에 올라가던 남자 산님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가 산행초입인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리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약간 오른쪽 편으로 등로가 보인다. 리본이 없어 이상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그 등로로 올라간다.

 

▷ 서서히 나타나는 너덜길.. <09:32>

▷ 그래도 아직까지는 오를만 하다.. <09:51>

한 20여분을 올라오니 점차 등로가 이상해진다. 희미해지고 너덜이 나타나고 무엇보다도 이상한건 분명 아까 남자 산님 두 분이 먼저 통과했으면 거미줄이 제거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내 머리에 거미줄이 감키는 것이 이상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결국 한 10분 후, 정상등로가 아닌 줄 알았지만, 다시 내려가 되 올라오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 온 것 같다. 그래서 그대로 오르기로 작심한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런대로 오를 만 했으니까..

 

▷ 생고생길의 험한 비탈길 <10:13>

▷ 바위릿지를 하고 오른 전망봉에서 바라본 암벽 <10:30>

그런데 오르면 오를수록 등로는 험해진다. 아까는 없었던 거대한 암릉들이 앞을 가로막고 경사는 심해, 치고 올라가기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아~~내연산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아 시껍을 싸고 이곳에 와서는 길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다니..”
그리고 보니 해명을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두영회장님이 장거리코스를 바꿔준다고 할때는 단산 즐산 하겠다며, 범어사에서부터 오르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자고나니 누구 말대로 똥누고 나니 마음이 바뀐다더니 또 마음이 바뀌어 이렇게 사서 생고생을 하는 것이다.

아마 오늘 금정산 산행하는 사람 중에 가장 힘들게 산행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일 것이다.
뱀도 두 마리나 보았다. 한 마리는 내가 다가가자 바위 속으로 도망치는 놈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나도 모르게 놈을 지나쳤는데 아내가 뒤에 따라오면서 소리를 쳐서 알았다. 도망가지 않고 꼿꼿이 머리를 세우더니 잠시 후 줄행랑을 친다. 이곳의 흙과 돌과 나무는 모두 부서지기 쉬운 상태였고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일쑤다.

어쨌든 큰 암릉은 에돌아가고 작은 암릉은 그대로 릿지하며 올라갈 수밖에 없다. 되도록 나침반을 보며 진행하되 좌측 방향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가면 혹, 등로가 있을까? 싶어 죽으라 능선에 올라도 등로는 없었다. 우측에 보이는 암벽은 도저히 오르지 못하고 좌측으로 에돌아 어느 능선에 올라와서 바라보니 거대한 단애였다. 저 암릉을 어찌 오를 것 인가! 좌측으로 우회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 생고생 후, 오른 정상등로 (장군봉을 지난 어느 능선에 있는 바위) <11:05>

▷ 비단결 같은 정상등로를 내려가는 산님들 (개스가 자욱하다.) <11:05>

내 손목에 고도계가 있으므로 고도를 보니 고도 500~700지점이 제일 고생한 지점이었다. 고도 700을 넘어 거의 정상에 다다른 무렵은 주위가 개스로 자욱하다. 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이곳에는 얼마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지 뚫고 나오기 무척 성가시다. 빽빽한 나무를 뚫고 나오니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밭인데 보통 때라면 뱀이 겁이 날 법도한데 오늘은 그럴 경황도 없다.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까..

눈앞에 물개(?) 같이 생긴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아래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아!~~찾았다. 정상등로를 찾았다.” 바위 아래에는 남자 산님 한 분이 사과를 깎아먹고 계셨고 그 와중에도 이곳의 위치를 물어보니 장군봉을 지난 능선이었다. 내가 계획했던 은동굴(금륜사)은 물론, 장군봉도 못 보고 지나친 것이다. 오히려 아내가 장군봉으로 가자고 했지만 이미 많은 체력을 소진한 우리에게 Back은 가당치 않는 일이다.

 

▷ 뒤돌아본 장군봉쪽 풍경 <11:15>

▷ 샘터(한 바가지 마신 후, 시커멓게된 수건과 얼굴을 씻음).. <11:26>

아까 우리가 올라온 길에 비하면 이 길은 탄탄대로 비단길이다. 이렇게 좋은 길이 있는 것을 모르고 그 험한 길로 올라오다니..역시 산행이나 인생이나 첫 단추를 잘 뀌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장군봉쪽은 개스로 인해 봉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등로로 내려오는 산님들이 많이 보인다. 그동안 사람이 없어 무척 외롭고 적적했는데, 산님들을 보니 너무 반갑다. 역시 사람이란 사람들 틈에 살아야하는 동물인가 보다. 한 20분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오니 샘터가 나온다. 험한 사면을 치고 올라올 때 얼마나 손으로 사물을 많이 잡았던지 수건이 다 시커멓게 변했다.



▷ 장군봉지나 고당봉으로 가는 등로에 핀 둥근이질풀 <11:17>





▷ 장군봉지나 고당봉으로 가는 등로에 핀 등갈퀴나물 <11:25>



 

▷ 만든지 24년이나 된 낡은 마애여래입상 설명판 <11:56>

▷ 100m쯤 내려가면 만나는 마애여래입상 <12:01>

전혀 헷갈리지 않는 탄탄대로 등로를 샘터에서 약 30여분 걸어오니,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길이다. 이미 인터넷으로부터 마애여래입상까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기에 배낭을 아내에게 맡기고 마애불을 보기위해 오른쪽 길로 내려간다.

마애불 보러가는 등로에는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조금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 길로 내려오니 마애불이 나왔다. 왼쪽 설명판에서 밝혔듯이 충북 법주사 마애여래입상(13m) 다음가는 크기로 거대한 암석에 음각(陰刻)되어있다.



▷ 북쪽 등로에서 바라본 멋진 고당봉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12:10>


다시 삼거리로 올라와 얼린 식혜 한 모금 마시고 조금 걸어가니 전방에 아름다운 고당봉이 보인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남자 산님에게 한눈에도 특이하게 생긴 바위에 대해 물어보니 머뭇거리며 말하는데 거북바위라 한다. 만약 틀렸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당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릿지를 해야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격훈련을 받은 내공이 쌓인 우리에겐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 많은 산님들이 있는 정상 <12:26>

▷ 매우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 정상 <12:28>

부산제일의 명산답게 고당봉정상에는 많은 산님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모자가 날아갈 지경이라 모자를 벗고 정상석으로 향한다. 정상석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가 왔던 장군봉쪽을 바라보니 아쉽게도 운무가 밀려와 계명봉, 장군봉, 다방봉을 덮고 있다. (사진 포기함.) 정상에는 몇몇 산님들이 점심을 자시고 있는지라, 우리도 준비한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姑 堂 峰

金井山의 主峰으로서 고당봉, 고담봉, 혹은 고단봉이라 한다. 그런데 이 이름의 한자표기가 정확하게 무엇인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지금까지 제시되고 있는 한자 표기는 姑堂峰 姑黨峰 高幢峰 高堂峰 高潭峰 高壇峰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姑堂峰과 高幢峰을 두고 논란이 많이 되어 왔다. 姑堂峰이라 할 때 姑는 보통 시어머니라는 뜻으로 쓰이고, 堂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姑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여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전에는 우리 풍속에 여신을 산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여신의 집이 있는 봉우리란 뜻이다. 한편 高幢峰의 高는 높다는 뜻이고 幢은 깃발이란 뜻이다. 그래서 고당이라 하면 깃발을 높이 세운다는 말인데 고당봉의 주변에 범어사와 여러 암자들이 있어서 佛法의 깃발을 높이 세운다는 뜻으로 본 것이다. 이 두 가지 설 가운데 금정구청에서는 1994년 8월에 姑堂峰을 공식적인 이름으로 확정짓고 표석까지 세웠다.


 

▷ 남쪽 북문쪽에서 정상으로 올라오시는 산님들.. <12:30>

▷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보기싫은 고모영신당 <12:39>

이곳에서 보니 대부분의 산님들이 배낭 없이 맨몸으로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내가 먹고 있던 빵을 손으로 떼어주니 어느 남자 산님 고맙다며 넙죽 받는다. 아마 배가 무척 고팠나보다. 사람들이 무척 많아 오르내릴 때 조금 불편하다. 조금 내려오니 기도처 같은 곳이 있는데 ‘고모영신당’이라 적혀있다. 내가 보기에도 미관상 좋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다들 흉물같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보통 일치하는가 보다.



▷ 부부산님이 앉아있는 신비의 샘, 금샘(金井) <13:10>


이제 이두영회장님이 꼭 보아야한다는 금샘을 찾을 차례다. 올라오는 나이 드신 산님에게 물어보니 마침 잘 아시는 것 같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설명을 하셨는데, 막상 힘들게 금샘을 찾았을 때 보니 그분이 설명한 그 큰 바위는 아니었다. 잠시 후, 샘물(고당샘)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금샘까지는 500m라 적혀있다.

샘물(고당샘)에서 손수건만 적시고 곧바로 금샘으로 향하는데, 잠시 후, 어느 부부 산님이 보이기에 금샘 가는 길을 물어보니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 든 남자(부부)분도 금샘을 찾으러 가는데 모르기는 매일반이다. 그분들을 추월해 아까 나이 드신 산님이 가르쳐 주신 암릉으로 가 보았지만 금샘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바위 꼭대기 부분이 금샘 인줄 알고 기를 쓰며 올라가려고 했지만 위험했고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다른 바위로 이동을 한다.

또 다른 거대한 바위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는 않는 금샘, 대체 금샘은 어디에 있는 걸까? 잠시 후, 젊은 남자 산님 한 분이 나 보다 높은 바위에서 주위를 관망하다가 고함을 지른다. "찾았다. 저기 금샘이 보인다."(젊은 부부산님) --금샘을 찾으려면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하며 아무 바위에서나 내려다본다고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후, 우리 눈앞에 나타나시는 신비의 샘 금샘.. 그리 크지도 않은 바위 구멍인데, 다른 바위에 있는 구멍은 모두 메말라 있었지만 신묘하기도 금샘은 물이 가득 있었다. 한울타리님이 쓰신 산행기 중에서 나오는 범어사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금샘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금샘(金井)

금샘은 바위 위의 금빛나는 우물을 말하는데 범어사 창건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금정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유서깊은 바위이다. 금샘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지난 1991년 5월이다. 그 이유는 그 동안 스님들이 비밀로 숨겨왔기 때문이다. 북문산장에서 고당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고당샘이 있다. 이 샘터에서 동쪽으로 500m 가량 떨어진 금정암 정수리에 바로 금샘이 있다. 해발 600m에 위치한 암군의 동남단에 돌출한 높이 10m, 둘레 7m의 화강암바위 꼭대기에 전설의 그 절묘한 샘이 있는 것이다.

금샘은 둘레 3m, 깊이 20cm 규모로 형성된 샘으로, 그 둘레의 곡선이 물결의 파장을 이루는 광경은 불심의 오묘한 영검 끝에 빚은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금샘은 땅에서 물이 솟아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빗물이 고여 생긴 것인데, 이것은 낙동강에서 올라온 안개로 인해 주변의 공기 자체가 수분이 많은 탓이라 생각된다. 또 밤이면 낮의 햇빛 열기로 데워진 바위가 주위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작용으로 샘물이 차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 지난 2003년 11월 중순 환경단체에서 천성산, 금정산 고속철 통과 반대집회 때 세운 솟대 <13:33>



 

▷ 울릉도 호박엿장수가 있는 북문 <13:34>

▷ 이정표 ( 북문~동문까지 4km) <13:36>

초행이지만 비교적 쉽게 금샘을 찾아 즐거운 기분으로 북문으로 내려오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엿장수도 있고 아이스케키와 음료를 파는 장수도 있고..이곳에 오니 천성산, 금정산 고속철 통과 반대집회 때 세운 솟대가 눈에 띄는데 사진에서 보듯, 무척 아름답다.

이곳에는 수도꼭지가 여러 개 있는 샘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물도 마시고 세수도 한다. 물을 충분히 가져온 우리는 이곳에서 얼굴만 씻는다. 또한 이정표를 보니 동문까지 4km라고 적혀있다. 여기 등로는 거의 평지나 다름이 없으므로 북문에서 동문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모될 것이다.



▷ 원효봉 지나 성벽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뾰족한 의상봉이 보이고 좌측 암릉은 무명바위) <14:01>


북문에서 원효봉으로 가는 길은 약간 경사진 언덕 같은 길, 드디어 꿈결 같은 금정산성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산성의 아름다움이란 어느 아름다운 비경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듯하다. 성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은 아름다운 그림의 한 장면이다. 일 주일 마다 남편을 잘못 만난 죄로 생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내만큼 행복한 여인도 없어 보인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 제4망루에서 뒤돌아본 풍경 <14:13>

金井山城

부산 금정구·부산진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산성.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7 m, 면적 21만 6429평.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표고 801.5 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 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산성의 위치·규모로 보아, 신라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증보문헌비고》와 《동래읍지》에는 1703년(숙종 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석축으로 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수축하였고, 1808년(순조 8)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東門)을 신축하고 성을 보수하였으며, 24년 부사 이규현(李奎鉉)이 성내에 건물을 짓고 진장(鎭將)을 배치하였다. 1970년에 4 개 성문 중 동·서·남문이 복원되었다.

면적 : 사적 215호(1971. 2. 9) 길이 17,377m, 성벽높이 : 1.5m~3m, 성내의 총면적은 약 2,512,000평(약 8.213k㎡) 가량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참조-




▷ 부채바위가 보이는 풍경 <14:16>


4망루와 3망루의 중간에 있는데, 마치 부채를 펼친 모양과 같다 하여 부채바위라고 한다. 부채바위는 직벽에 가까운 암괴로 되어 있어 록클라이머들의 암벽등반 연습 포인트이기도 하다. 부채바위를 향하여 내려가는 산님들의 발걸음은 나비처럼 가벼워 보인다.



▷ 억새가 은빛으로 빛나는풍경 <14:21>





▷ 부채바위 (뒤에서 바라본 풍경) <14:32>


부채바위의 상단을 약간 남서쪽에서 바라 본 모습, 바위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고고하게 지조를 지키는 선비를 연상시킨다. 금정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원효봉에서 부채바위까지의 구간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나의 전매특허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다. (2부 찍음.)

 

▷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등로 (이 길로 내려오는 바람에 나비바위를 보지못함.ㅠㅠ) <14:54>

▷ 석빙고 아이스케키를 사먹은 동문 <14:59>

이제 제3 망루를 향해 내려간다. 그런데 산행코스를 꼼꼼하게 연구했던 나에게도 허점이 있었으니, 바로 평탄한 등로로 무심코 내려왔던 것인데, 이 평탄한 등로로 내려오면 제3 망루를 보지 못한다. 물론 나비바위도 보지 못함은 물론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고..

잠시 후, 나타나는 동문 입구에는 얼음과자랑 생수, 얼음 팥죽을 팔고있는 장수가 보인다. 날씨도 덥고 해서 아이스케키 하나씩 입에 물고 산성고개를 향하여 올라간다.

 

▷ 산성고개 (신작로) <15:09>

▷ 남문 <15:33>

산성고개는 신작로 길이었다. 신작로를 건너니 남문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성고개에서 남문까지 올라가는데 좀 지루한 길이다. (20여분 치고 올라가야 함.) 하지만 최근에 체력단련을 열심히 하였으므로 여러 산님들을 추월하며 씩씩하게 남문을 향하여 올라간다. 궁금했던 대륙봉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고 한참을 올라가니 좌측으로 케이블카 타는 곳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남문은 직진) 잠시 후, 남문이 나타난다.

남문에서 이두영회장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수박샘이 적힌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니 잠시 후, 샘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모자를 씻고 있으니 뒤에서 따라온 나이 드신 산님께서 본인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올라오는데 그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소음수준) 산에 오셔서 한잔하신 모양인데 나이 값을 못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이 드신 분에게 한마디 할 수도 없고 해서 얼른 샘터를 빠져 나온다. 중간에 막걸리 파는 곳이 여러 곳 있었지만 눈 딱 감고 상계봉을 향하여 약간 된비알의 등로를 올라간다.



▷ 전망능선에서 바라본 상계봉 (사진속의 산님들은 모르는 사람들..) <15:47>


숨을 헐떡거리며 전망능선에 올라서니 위 사진에 나오는 세 분의 산님이 계시기에 상계봉을 물어보니 전방에 보이는 침봉으로 된 봉우리를 가리킨다. 여기서 조금 올라온 지점에서 바라보니 고당봉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걸었던 모든 봉우리가 조망된다. 잠시 앉아서 배 하나를 깎아 아내랑 반씩 나누어 먹는다. 아~ 달다..

 

▷ 닭의 벼슬같이 생긴 침봉의 상계봉 <16:09>

▷ 상계봉정상석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어느 여성분은 이 비를 향해 합장을 함.) <16:11>

능선에서 조금 올라오니 제1망루가 보인다. 처음에는 모르고 직진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그 길이 아니라며 제지를 한다. 어! 그리고 보니 아내의 말이 맞다.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빨간색 '산불조심'이란 글이 적힌 거대한 바위를 지나니 상계봉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상계봉은 날카로운 침봉으로 된 봉우리였다.

상계봉(上鷄峰)

금정산의 금정봉(金井峰)은 높이 약 400m 이며, 불웅령(佛熊嶺)은 약 340m이나 상계봉(上鷄峰)은 하늘을 향하여 송곳처럼 솟아오른 높이 628m의 영봉(靈峰)이다. 상계봉(上鷄峰)은 학(鶴)의 모습을 하였다 하여 상학봉(上鶴峰)이라고도 불리우며 콩등바위, 베틀굴, 영감바위, 할멈바위 등의 여러 바위가 있어 많은 전설을 안고 있다.


 

▷ 상계봉 정상에서 바라본 백양산과 그너머 구덕산 <16:12>

▷ 돌담만 있는 제1 망루 <16:21>

침봉을 건너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남쪽을 조망하니 백양산이 바로 앞산이고 그 뒷산은 집에 와서 동서에게 물어보니 구덕산이라 한다. 이제 정상석을 떠나는데 웬 여성 산님 한 분이 다가와 정상석을 향하여 합장을 하시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산 정상석에다가 합장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 이상하고 신기해 야릇한 느낌 마저 든다.

다시 제1망루로 돌아온다. 제1망루는 웬일인지 망루는 보이지 않고 돌담만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까닭을 알기위해 산마루님의 산행기를 뒤적이니 이유가 있었다. ---"2002년도의 강한 태풍으로 제1망루의 누각이 완전히 주저 앉아 망루의 처마가 담장에 걸쳐 있어서 담장 밖에서 지붕의 끝을 잡고 기록을 남기기 위한 촬영도 했었는 데 1년 여가 지나서 와 보니 완전히 철거하고 본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이상 산마루님의 산행기 속에서 발췌

이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파리봉(파류봉)을 향하여 잔 발걸음을 옮긴다.


▷ 파리봉(파류봉) 정상의 멋진 암릉 <16:41>


파리봉

우리말 사전에는 파리가 유리·수정(水晶)이라는 뜻도 있으며, 불교에서 이르는 七寶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파리봉은 불교의 칠보 중의 하나인 수정이다. 산정의 바위는 기암괴석이 수정같이 생겨 아침 햇살을 받으면 영롱한 유리알처럼 빛나는 기적을 이룬다. 수정처럼 빛나는 산정의 바위 생김새가 코끼리가 낙동강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산봉우리를 佛名으로 파리봉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는 산성마을 사람들도 그 이름을 거의 모두 '파리봉'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파리봉으로 이름이 굳어진 듯한 이 봉우리의 이름을 유일하게 '파류봉'이라고 기술한 책(《항도부산》제7호, 1969)에는, "죽전마을 전방 산봉이 파류봉이며, 별장(別將)이 파군(派軍)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망미루(望美樓)누각은 없으나 조각기와가 있으며···"라는 이 짧은 기록에서도 우리들은 산성마을 앞산에는 지난날 별장을 파군하였던 망미루가 세워져 있었고, 그 산봉우리의 이름은 별장을 파군하였기 때문에 파류봉이라 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佛名인 파리봉으로 보아야 옳을 것으로 보인다.


-sansung114.com에서 발췌-


 

▷ 파리봉의 멋지고 웅장한 암릉 <16:41>

▷ 로프가 없다면 도저히 건너지 못할 위험한 암릉 (좌측사진의 맨오른쪽 부분) <16:44>

제1망루에서 잔걸음으로 한20분 내려오니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아마도 이 봉우리가 파리봉의 정상 같다. 그러나 파리봉의 정상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멋진 암릉이 더 눈길을 끄는데,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위험한 암릉이다. 아내는 로프를 손에 잡고 좌측 사진의 맨 오른쪽 부분인 암릉을 어렵지 않게 트래버스 하고 있다. 이제 내가 생각해도 아내가 약간 내공이 쌓인 듯 하다.



▷ 가나안교회 (집단시설)가 보이는 사거리에서 올려다 본 파리봉 <17:01>


파리봉 암릉을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잔걸음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동서랑, 처제, 장모님이 서문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잠시 후, 두 갈래 길에서는 약간 왼쪽 길(리본이 있음)을 택해 한 10여분 내려오니 찬송가 소리들이 어디선가 들린다. 내려오고 보니 사거리 안부 격인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선 가까운 좌측 마을로 내려가 본다.

 

▷ 가나안교회 (집단시설) <17:05>

▷ 공해마을 도로 <17:12>

좌측 마을로 내려가니 큰 저수지가 보이고 교회가 나타나는데 ‘가나안교회’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보니 이곳은 다른 가정 주택은 보이지 않고 교회건물과 관련된 건물들만이 보이는 것이 교회관련 집단시설인 듯 보인다. 여기서 서문가는 길을 물어보니 다시 능선을 타고 산길을 내려가라 한다. 공해마을을 물어보니 여기서 걸어가면 5분 거리라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처제 식구와 장모님이 기다리시는데 구태여 서문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만하면 금정산을 종주했다고 해도 무방할 산행거리가 아니었던가.. 또한 그들은 차로 올라오면 되니 공해마을로 올라오라고 전화를 하고 다시 공해마을로 향한다.



▷ 나의 만보계가 30,758보를 가리킨다. <17:12>


공해마을에 도착하니 마치 무슨 관광단지 같다. 대낮인데도 노래방기계인지 노래 소리가 들리고
도로에 도착하니 여기사 산인지 시내한복판인지 모를 정도로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산성막걸리와 산성토종흑염소 구이를 먹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산이란 거대한 도시 속에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빛 금정은

그렇게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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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5 부산의 진산 금정산에 다녀와서..


 




[2004.09.05.16:27]
[ 파리봉 가는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들 ]



 

Cest La Vi -제예(Chyi, Yu)



이수영의 산행이야기



C"est La Vie.

Have your leaves all turned to brown?
Will you scatter them around you?
C"est La Vie.

당신의 잎새들은 모두 갈색으로 물들었는가?
그 잎새들은 머지않아 당신의 발 밑에 떨어지겠지.

Do you love?
And then how am I to know
if you don"t let your love show for me?

당신은 사랑하는가?
당신이 그 마음을 내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당신의 사랑을 알 수 있을까.

Oh~~ C"est La Vie.
Oh~~ C"est La Vie.
Who knows, who cares for me?
C"est La Vie.

오~~ 그것이 인생이겠지.
오~~ 그것이 인생일 거야.
누군가 내게 마음 기울이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In the night, do you light a lover"s fire?
Do the ashes of desire for you remain?
Like the sea, there"s a love too deep to show.
Took the storm b

Took the storm before my love flowed for you.
C"est La Vie.

깊고 어두운 밤, 당신은 사랑의 등불을 켜는가?
타고 남은 재가 아직 남아있는가?
바다처럼 너무 깊어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다네.
당신에게 흐르는 내 앞의 폭풍이 잠들기를 바라네.

Like a song, out of time and out of time,
All I needed was a rhyme for you
C"est La Vie.

노래가 끝이 난 것처럼 이제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지.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한 시와도 같았는데,

Do you give, do you live from day to day?
Is there no song I can play for you.
C"est La Vie.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당신은 그런 사랑을 주고 있는가?
당신을 위해 불러 줄 노래가 나에겐 더 이상 없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