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


 

             *산행일자:2008. 6. 20일(금)

             *소재지  :충북단양/제천

             *산높이  :금수산1,016m

             *산행코스:상리버스정류장-상학리주차장-남근석공원-금수산정상

                       -900봉-능강천-능강교

             *산행시간:12시10분-18시19분(6시간9분)

             *동행    :나홀로

 


 

  퇴계 이황선생께서 오늘까지 생존해 계셨다면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악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셨을 것입니다. 국어학자 이숭녕선생을 대한산악연맹 회장으로, 또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선생을 한국산악회회장으로 모셨던 것은 두 분 모두 누구 못지않게 산 사랑이 깊었고 학식과 덕망이 높아서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학식과 덕망이 고매하셨으며, 산에 대한 열정 또한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 뜨거웠기에 선생께서 환생만 하신다면 양 산악회를 통합해 회장으로 모신다하여 책들을 일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선생의 산사랑은 산을 그저 바라다만 보았던 다른 선비들과는 달랐습니다.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의 산과 계곡을 두루 다니시며 발자취를 많이 남기신 분이 선생이셨습니다. 경북봉화의 청량산을 오르셔서 청량산가를 지으셨고, 경북문경의 고봉에 대미산의 이름을 손수 지으셨으며, 소백산기슭의 배점리에서 초암사에 이르는 긴 계곡에 죽계구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대다수의 상민들이 제대로 된 이름이 없어 “개똥이”나 “쇠똥이”로 불리던 조선조 때에 당대 최고의 석학이신 선생으로부터 손수 이름을 지어 받은 산들이어서 오늘까지 그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몸가짐에도 각별히 마음을 쓰셨습니다.

주로 재야에 묻혀 연구와 강학에 힘쓰셨던 선생께서 한 때 경북 봉화의 청량산에서 우거했던 송암 권호문에 그의 요산요수론(樂山樂水論)을 다음과 같이 펴셨다 합니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성인의 말씀은 산이 인(仁)이 되고 물이 지(智)라고 한 말이 아니고 다만 인자(仁者)는 산과 비슷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물과 비슷하기 때문에 물을 좋아 하는 것이며, 이 인지(仁智)의 이치는 사람들이 형상을 통하여 근본을 구해서 모범의 극치를 삼게 하려는 것이지 산과 물에서 인과 지를 구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과 지를 이루고자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단순히 산과 물을 보고서는 인과 지의 낙을 구할 수 없다는 선생의 말씀은 산에 몇 번 오르면 인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저같은 산객들에 요긴한 가르침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제는 퇴계 이황선생께서 손수 이름을 고쳐지으셨다는 금수산을 올랐습니다.

충북단양과 제천에 걸터앉은 금수산은 원래 이름이 백암산(白岩山)이었다는데,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 시 가을단풍의 경치가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하여 비단 금(錦)에 수놓을 수(繡) 자를 써 금수산(錦繡山)으로 바꾸었다 합니다.


 

  정오를 조금 넘긴 12시10분에 금수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 청량리역에서 숨 가쁘게 올라 탄 첫차가 정시보다 18분 늦은 10시18분에 단양역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한분과 대학생 한명과 함께 택시에 합승해 단양시내로 옮기고 나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 11시30분에 하진 행 군내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제대 후 복학을 기다리는 한 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젊은이의 국토사랑이 나이든 분들 못지않음을 발견해 가슴 뿌듯했습니다. 단양군 적성면의 상 1리 삼거리에서 하차하여 오른 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상학리로 향했습니다. 하지를 하루 앞둔 한낮에 햇빛을 가릴 수 없는 아스팔트길을 걸어 오르며 길에서 내뿜는 복사열이 여름을 달구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20분 남짓 걸어 다다른 꽤 넓은 상학리주차장에서 15분을 더 걸어 왼쪽 위로 대비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르자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시멘트 길이 시작됐습니다.


 

  13시10분 남근석 공원에서 점심을 들며 15분을 쉬었습니다.

정상을 2.2km 남겨 놓은 대비사 갈림길에서 금수산 정상이 올려다보이는 절골 게곡과 나란한 방향의 시멘트 길을 십 수분 간 똑바로 걸어 오르자 비로소 흙길이 시작되었고 땡볕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남근석공원에 이르기까지 흙길이 꽤 넓었습니다. 여근을 형상화한 조각품과 크고 작은 남근석 4점, 그리고 나무장승 몇 개가 전부인 초라한 쉼터를 공원으로 부르기는 좀 뭣하지만 나무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장승들의 익살스런 얼굴들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 재미는 잘 꾸며진 도시공원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인근 경북예천의 복지회에서 오셨다는 노인 분에게서 몇 분만 정상을 오르셨고 많은 분들이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저도 늙어 정상에 오르는 몇 분에 들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산행을 계속 이어가야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넓은 길을 걸어오른 첫 번째와 두번째 옹달샘 모두 물이 말라 있었습니다.  "금수산0.9Km/상학마을1.4Km"의 이정표를 지나고 20분 가까이 너덜겅 길을 지나서 다다른 세 번째 옹달샘에서 샘물을 떠먹느라 5-6분을 쉰 후 14시20분에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14시55분 해발1,016m의 금수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관중과 원추리 모양의 이름 모르는 넓은 잎 풀, 그리고 낙엽송으로 대표되는 숲속에 자리한 너덜 길이 비알 길이어서 붙잡고 오를 철제가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세 번째 옹달샘에서 20분 을 채 못걸어 안부삼거리인 살개바위고개에 올랐습니다. 양 옆으로 커다란 암봉이 자리하고 있는 고개 마루에서 왼쪽으로 꺾어 계단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자 남서쪽 아래로 충주호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월악산과 소백산이 깨끗하게 보인다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깔끔하지 못해   희미하게 보이는 저 선들이 두 산의 산줄기려니 짐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21년 전 봄에 쌍용제지 사우들과 이 봉우리에 함께 올랐을 때 무엇을 보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암봉에 세워진 정상 석을 배경으로 제 모습을 사진 찍어준 아주머니 한 분이 제 설명을 듣고 용담폭포를 들를 것을 같이온 분들에 제의했으나 나머지 두 분이 그냥 올라온 가까운 길로 되 내려가자고 해 이분들과 정상에서 헤어졌습니다. 산행이 끝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 용담폭포를 들르지 못했음을 알고 나자 이분들이 저를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제 주위를 배회하는 새 한 마리를 카메라에 담은 후 살개바위고개로 되돌아갔습니다. 오른 쪽으로 몇 걸음 내려서서 두 암봉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섰는데 “비탐방로”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이산도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산이다   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끝점인 상천리휴게소에서 저녁6시반에 제천 행 막 버스가 출발하기에 시간이 넉넉했습니다.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해발926m의 망덕봉을 오른 다음 얼음골재로 되내려가 남쪽의 어댕이골을 거쳐 용담폭포를 들러보아도 상천리 휴게소에 6시 반 안에 충분히 다다를 수 있어 주저않고 비탐방로로 들어섰습니다. 비탐방로답게 길도 좁고 희미했으며 표지기도 거의 걸려있지 않아 계속되는 암릉 길을 왼쪽 아래로 우회하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모처럼 우회길이 끝나고 안부로 내려가 숨을 고른 다 했는데 앞에서 동물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와 멧돼지가 나타났다고 직감하고 스틱으로 돌을 쳐 멧돼지가 싫어한다는 쇠소리를 냈습니다. 그래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나 소리 나는 곳을 올려다보고 나서야 안도했습니다. 눈앞에 보인 동물은 멧돼지가 아니고 개보다 훨씬 큰 햐얀 짐승 두 마리였습니다. 다리는 보통의 백구보다 훨씬 길었고 꼬리는 오히려 짧아 큰 개는 아니고 산양이 아닌가 싶은데 제가 헛기침소리를 내고 스틱으로 돌을 쳐도 멀리 도망가지를 않고 오히려 제게 한두 번 꼬리를 치고 나서 나뭇잎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얼떨결에 찍은 사진이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어 유감입니다만, 제게 꼬리를 쳐 안심시킨 그 동물의 모습은 마냥 선해 보였습니다.

 

  며칠 전에 구입한 순토벡터의 성능도 테스트 할 겸 진행방향을 체크해보니 살개바위고개를 출발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서진 길이 나타나지 않고 여전히 북진 길이어서 일말의 불안감도 들었습니다만 정상에서 눈여겨본 망덕봉이 눈앞에 보여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16시2분에 오른 봉우리가 제가 오르고자 했던 망덕봉이 아니고 신선봉과 갑오고개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봉우리 900봉임을 안 것은 산행을 끝내고 어디서 길을 잘 못 들었나를 곰곰이 따져본 후였습니다. 살개바위고개에서 북진해 조금 가다가 서쪽으로 향하는 늘등을 탔어야 했는데 그대로 북진해 갑오고개쪽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망덕봉에서 되 내려간 얼음고개는 사거리 능선 길인데 북쪽아래 얼음골로 내려가는 길이 안보여 이상하다 하면서 남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북쪽 아래로 갈라진 길이 보이지 않은 것은 제가 올라선 봉우리가 망덕봉이 아니고 900봉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내림 길이 이어졌고 10분 후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을 건넜습니다. 조금 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이내 물소리가 커져 제딴에는 어댕이골로 잘 내려섰다 했습니다. 낙엽송림을 지나고 딱 벌어진 관중을 사진 찍으며 천천히 하산해 16시42분에 합수점에 내려섰습니다.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얼음골0.2Km”의 판대기를 보고 능선건너편의 얼음골을 다 안내하나 싶어 최근 국립공원이 몰라보게 친절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지점이 바로 얼음골과 능강천이 만나는 합수점이었습니다.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저는 생각지도 않게 금수산  최고의 계곡인 능강계곡으로 내려서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물론 이 행운을 제대로 안 것은 훨씬 뒤의 일이지만 이 계곡의 경관은 과연 명불허전이었습니다. 또 하나 이 계곡의 독특한 점은 한동안 흐르던 물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7-8분간 건천이 계속되다가 다시 물이 흐른다는 점입니다. 건천을 지날 때 물소리가 뚝 그쳐 한 순간 산속이 적막 속에 빠지자 이 산이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것이 아닌가하는 섬뜩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새삼 물소리가 그리워졌고 때맞추어 노래하는 새소리가 고마웠습니다. 한두 번 계곡을 건너 만난 학생 둘이 얼음골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와 얼음골은 저 능선 너머에 있다고 답해주었습니다. 저 밑에서 1시간을 걸어 올라오며 제가 물어본 용담폭포는 보지 못했으며 이제 얼음골은 포기해야겠다며 저를 앞질러 쏜살같이 내려갔습니다.


 

  18시18분 긴 계곡을 빠져나와 다리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개념도에는 얼음골재에서 55분만 걸으면 용담폭포에 다다르는 것으로 적혀 있는데 시간 반을 넘게 걸었어도 보이지가 않아 꺼림직 했습니다. 마침 만난 가족 팀에 물어보았지만 그들도 처음이라서 잘 모른다고 해 계곡이 끝나는 데까지 내려가 보기로 하고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금수산얼음골 지도판이 몇 곳에 세워져 있었지만 18시 반에 떠나는 막차를 타기 위해 그냥 지나쳤습니다. 18시2분에 왼쪽으로 금수암 길이 갈리는 돌탑 길을 지났습니다. 얼마 후 철다리를 건너 10분 가까이 더 내려가자 시멘트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 골짜기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그 일행들을 만났습니다만 이들중 어느 누구도 상천리휴게소가 어디 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워 물어본 즉 그 분이 이 다리가 능강리의 능강교이고 상천리에서 6시반에 출발하니 머지않아 버스가 지날 것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지도를 꺼내 능강교의 위치를 확인하고서야 이제껏 제가 내려온 계곡이 어댕이골과 용추계곡이 아니고 금수산에서 제일 운치가 좋다는 능강골로 내려왔음을 알았습니다. 진행방향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않고 너무도 길이 빤하다 싶어 지도를 꺼내보지 않은 것이 알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 긴 계곡을 2시간 안에 빠져나와 18시30분에 상천리를 출발한 제천행 마지막 버스에 올라탄 것이 그나마 큰 다행이었습니다.


 

  명산100산을 오르내릴 때는 길이 잘 나있고 곳곳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아무래도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정맥을 종주할 때보다 긴장이 풀리게 되는데 이 때 너무 많이 풀리면 어김없이 큰 알바를 맞게 됩니다. 이번에도 그러했습니다. 오래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두 번째 산행인데다 국립공원 안의 산이어서 마음을 너무 놓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산 좀 다녔다고 깝죽대다가 좋은 꼴 만났다 싶었습니다. 


 

  이번 금수산을 오르내리며 저는 인자(仁子)도 지자(智子)도 모두 아니었습니다.

저의 어질기는 능선에서 만난 산양(?)보다 못했습니다. 그 동물은 꼬리를 쳐 적의가 없음을 알려주었는데 저는 스틱으로 돌을 두드리며 길을 비키라고 욱질렀습니다. 저의 산길지식은 계곡에서 만난 학생들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얼음골이 어디인가를 묻는 학생들에 잘 못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몰랐지만 저는 잘 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성인의 말씀은 산이 인(仁)이 되고 물이 지(智)라고 한 말이 아니다”라는 퇴계 이황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 것이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수확으로 생각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