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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산행을 예상했다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리산 가족산행을 시도하였습니다. 종주에서 세석산장 숙박으로 다음에는 뱀사골 산장 산행으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첫  두가지는 여름 휴가철에 맞추어 산장 숙박을 하지 못해 취소하였고, 겨우 뱀사골 산장에 숙박에 가능해져서 숙박 가능한 코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혼자라면 침낭으로 비박을 하면 되겠지만 가족 모두가 산장 예약없이 출발하기에는 불안감이 너무 심하더군요.

 

< 코스 및 시간 >

1. 21일; 성삼재 휴게소 - 노고단 - 임걸영 샘터 - 화개재 - 뱀사골 산장 ; 9.2km ; 5시간

2. 22일; 뱀사골 산장 - 뱀사골 계곡 - 반선; 9.2km ; 3시간 30분

 

< 준비물 >

 

1. 기본 준비물

   (1) 배낭 30L, 60L 각각 하나씩(60L는 내것); 아이들은 배낭을 메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2) 스틱 2개, 버너, 가스 2개, 코펠, 헤드랜턴 한개와 소형 랜턴 한개

   (3) 스포츠용 수건 2개, 땀흡수용 헤드밴드 한개, 모자 4개, 휴대용 베개 2개

   (4) 등산용 물통 한개(1L), 500ml 생수 2개, 소금 한통

   (5) 디지털카메라

  

2. 주식 및 간식

    ; 밥 4인분 도시락, 포장 김치 4개(볶은 김치, 그냥 김치 각각 2개씩), 포장김 5개, 라면 5개, 고추장, 가는 멸치조림, 참지캔 한개, 인스턴트 미소국과 북어국 2인분씩, 쌀, 영양갱 3개, 스낵류 4개, 사탕 한봉지, 초코파이 4개, 양주 넣은 작은 술통 하나

 

3. 옷가지

   ; 각자 잠바 하나씩, 추가 양말 4개, 일회용 우의 2개, 등산용 겨울내복 윗옷 한개

 

 

< 산행기 >

 

 

( 출발에서 - 뱀사골 산장 )

 

작년 홀로 지리산종주 후 아이들과 세석산장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올 겨울 가족과 함께 오를 수 있는 거림 코스를 한번 다녀오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산장을 예약하는 시스템에 익숙치 못하여 세석에는 예약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가능한 코스이기도 하고 마침 자리가 빈 뱀사골로 변경을 하였습니다.

 

뱀사골 계곡은 직접 답사 경험이 없어 산행 게시판에 문의를 해보니 힘든 코스라는 답변을 받아, 성삼재 - 뱀사골 산장으로 해서 숙박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상황을 보고 뱀사골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힘든 코스라는 답변에 출발 전 원점회귀 코스로 많이 기우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보다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야간 산행을 한시간 즐기다, 지리산 일출과 다시 못볼 운무를 보여주고 싶어 능선산행인 원점회귀 코스를 내심 정해놓았습니다.

 

지리산 가기 전날을 항상 술자리 기회가 생기는지, 2년 만에 귀국한 후배와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깨운치 못한 몸으로 준비를 하고 출발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늦은 10시에 성삼재 휴게소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화원매표소 못미쳐서 부터 막내(초등 1학년)가 머리가 아프다며 증상을 호소하더군요. 매표소를 지나 살펴보아도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책보지 말고 잠을 자라는 엉뚱한 처방을 한 채 출발하였습니다만, 갈수록 호소가 심해져 어쩔 수 없이 거창 시내 약국에 들어 해열제를 구입해 복용시키고 중식으로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 이러다보니 이미 예상에도 없던 시간이 1시간여를 더 소모해버렸습니다. 혹 산장 도착이 늦어 예약이 취소될까, 야간 산행이 되면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리산 산자락을 굽이굽이 휘돌아오르는 곡선도로에서 얌전히 잠자는 줄 알았던 아이엄마가 그만 차멀미를 시작하였습니다.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 비닐봉투에 토하더니 도착하고 나서도 영 힘을 쓰질 못하였습니다.

 

9시 출발하여 12시경에 휴게소 그리고 산장은 6시 도착으로 예정된 계획이 성삼재 휴게소 도착이 2시로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추어버린 상태로 막내는 두통, 아이엄마는 차멀리로 최악의 상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아이는 약이 효과있었는지 아니면 짬봉이 도움이 되었는지 도착 무렵에는 팔팔한 원모습이 되어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시 토하기도 하고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나서 신발끈을 조이고 드디어 출발하였습니다.

 

그때 내 심정을 암담한 그 자체였습니다. 7시를 넘어가면 예약이 자동취소가 되니 그 전에 도착을 해야하는데 아이들을 동행한 산행을 초행일뿐만 아니라 아이엄마의 몸상태가 최악이라 시간적 제약과 함께 도착이 가능할런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나 또한 처음으로 60L 배낭을 메어보니 그 무게가 만만찮더군요. 마침 아이들이 재미있는지 엄마 배낭을 서로 매겠다고 다툰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징조였다고나 할까요?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첫 걸음. 막내가 배낭을 매고, 뒤편의 아이엄마는 어디라도 누울 자리만 찾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노고단까지는 2.5km로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탄한 길입니다. 중간 즈음에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지름길이 나타나는데 막내가 기여코 돌계단을 고집하여 울쌍인 아이엄마가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계단을 오르면 바로 노고단 대피소가 나타납니다. 쉬엄쉬엄 오른다고 오른 것이 꽤 이른 시간이 도착하였습니다. 40여분 걸렸을 겁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이엄마는 눕고만 쉽다하였고, 이때는 큰 아이가 배낭을 메고 있습니다)

 

잠시 휴식 후 바로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노고단은 두번 오른 적이 있어 돌탑에는 가지 않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는 능선길을 감싸고 있는 운무를 감탄하다 주능선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노고단에서. 아이들 뒤편으로 주능선 산행로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앞으로 달려가기만 했고, 아이엄마는 어정쩡한 자세로 힘겨운 걸음을 계속하였습니다. 비가 자주 왔는지 자주 물웅덩이와 진흙탕길이 있었고, 바위는 물기로 미끄러워 쉽지 않은 산행을 예고하는 듯 하였습니다.

 

다시 1시간 정도 나아갔을 때 즈음 아이엄마는 이제서야 몸이 풀리고 차멀리 후유증이 사라진 듯 하다며, 운무에 쌓인 산행이 멋지다는 말을 하더군요. 가족 전체 산행 시간을 적절히 조절만 하면 무사히 도착할 것 같은 징조가 또 나타났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적당히 피로할 즈음에 임걸영 샘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운무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아무도 인적이 없어 샘터는 심산유곡의 옹달샘처럼 느껴졌습니다. 목을 축이고 물을 채우고 잠시 더위를 식혔습니다.

 

(임걸영 샘터 입구에서. 아이들 뒤편이 샘터입니다)

 

임걸영 샘터에서 노루목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아이들도 어느듯 지치는 듯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몸이 깨어난 아이엄마가 잘 지탱해주어 다행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노루목 가기 전 휴식 시간에 . . . . .)

 

 

 

노루목을 지나서인지 상도봉을 지난 시점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뱀사골 산장 가기 전에 엄청나게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 지점에 도착할 즈음에는 지쳐갈 무렵이라 나무계단을 내려다가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거나 끝없는 다리일 것만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거의 끝무렵이 아니고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힘들다고는 하지만 "끝없는 계단"이란 별명을 붙이고 곧잘 달려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삼도봉입니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삼도봉에서 . . . . .)

 

삼도봉 정상에서 스낵류를 먹었습니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들 피로가 몰려왔다는 뜻일 겁니다. 안개가 더욱 깊게 내려왔고 어둠이 서서히 시작될 무렵이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런 시점이었습니다. 삼도봉에서 얼마 가지않아 뱀사골 산장으로 내려가는 좌측 하산길을 만납니다. 정확히 200미터인데 그 길 또한 나무계단이라 막내는 "아빠, 다리가 후들거려!"를 외쳐되며 아이엄마와 함께 비틀거리 듯이 내려왔습니다.

 

뱀사골 산장 도착이 7시 직전으로 산장 숙박예약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막내와 아이엄마는 여자방 1층 침상, 큰아이와 나는 남자방 2층 침상을 배당받고 침낭을 하나씩 받았습니다. 이미 어둡이 깊게 깔려 랜턴을 사용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식당에서 음식 준비를 시작하다 마당의 빈식탁을 차지하고 자리를 옮겨 불을 지피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빗방울이 험난한 다음날을 예상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출발 전날과 당일 아침에 지리산 날씨를 살펴보았지만 오후에 60%, 다음날을 예보가 없어 산장에서 비를 감상할 기회가 되겠다는 긍정적인 해석을 하고 출발하였으니 저녁 식사를 잠시 방해하는 지나가는 비쯤으로 생각하고 허기진 몸을 달래기 위해 다시 취사장으로 옮겨 저녁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는 '참치국, 준비한 도시락 밥, 라면 3개 + 김치, 밑반찬'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복잡한 취사장에 서서 밥먹는 것이 아무래도 안서러워 잠깐 비가 멈추는 동안 마당 식탁에서 근사하게 차린 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가져가 양주를 반주로 곁들여 말입니다. 운치가 있는 저녁식사였습니다.

 

(뱀사골 산장에서 저녁식사. 의자가 비에 젖어 라면 봉지를 뜯어 응급 깔개로 사용하였습니다. 식탁 앞에 작은 양주통이 보이죠!)

 

식사 후 아이들과 함께 설거지를 마치고 침상에 몸을 뒤였을 때가 9시 즈음이었을 겁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피곤한 엄마와 신난 아이들이 대조적입니다)

 

 

아이들은 내일 새벽 야간산행 때 마음놓고 랜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로 새벽 일찍 일어나겠다고 성화였습니다. 큰아이와 내 자리가 가운데 침상이다보니 양측에서 밀려 자리에 올랐을 땐 한명반이 누울 자리만 남아있더군요. 고통스런 하루밤을 각오하게 되더군요. 큰 아이 옆자리 아저씨는 "아이구 이놈! 용케도 이곳까지 왔네? 오늘밤 나하고 자리를 잘 나누어 사용해보자!"는 따듯한 말을 해주었지만, 밤새도록 평소 듣기 힘든 크기에 코골이를 하는 바람에 고통에 고통을 더해주었습니다.

 

잠든 듯 만듯 시간을 보내다 칼잠과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의 시끄러움에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와보니 그때가 저녁 11시였습니다. 추적추적 비는 말없이 캄캄한 뱀사골 산장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춥다는 아이를 따라 다시 잠을 청해보았습니다.

 

( 다음날 - 뱀사골 계곡 - 반선까지 )

 

아이는 "아저씨 소리가 너무 커"라며 불평하더니 어느새 쌕쌕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깐씩 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새벽 3시, 다시 잠들지 못하여 담배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뚫어진 듯 비가 쏟아붓고, 캄캄한 산 저너에 번개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산장 처마밑에는 비박을 하는 산행인이 몇분있었습니다.

 

걱정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설마 날이 밝으면 비가 그칠거라는 마음 속 위안을 다잡고 자리에 누웠지만 비소리는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는 동안 비가 그치지 않으면 어느 코스를 이용해야 할 것인지 계산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정보가 없는 마당에 해답이 있을리 만무하였습니다. 간혹 들락이는 사람들 틈에 들리는 장대한 비소리는 가족만 아니라면 雨中산장의 정취를 더해주었을 텐데 그때는 시름만 앞서게 하였습니다.

 

새벽 6시. 여전히 하늘을 비를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마침 산장지기가 있어 . . . . .

 

"기상예보가 뭐 있나요?"라고 가볍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 . . . .

"내일, 모래까지 폭우가 온다고 합니다"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럼 하산을 할 수 있는지요?"

"하산. 힘들겠지요? 저체온증이 더 무섭다는 말을 아시죠?"라고 되물어 아는척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 . . . .

 

"만약 하산한다면 성삼재가 나을까요? 아니면 뱀사골 계곡? 아이들과 함께 말입니다."

"당연히 성삼재가 낫죠. 뱀사골 계곡은 바위가 많아 위험합니다"

 

눈앞의 엄청난 폭우에 기가 꺽인 상태였지만 마음 속으로 성삼재 산행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우중의 복잡할 취사장을 예상하고 일찍들 일어난 아이들과 함께 이른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추가로 일회용 우의를 2개 주문하고 식사 준비에 나섰습니다.

 

아침식사는 '쌀밥 짓기, 김, 미소국과 북어국 2인분씩, 라면 한개"로 해결하였습니다. 라면은 아이들 차지였습니다.

 

(우의 입은 채로 아침 식사 준비 중)

 

식사 준비하는 동안 하산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 매점에서 비닐마대 1미터와 비닐봉투 여러개를 구입하였습니다. 내 큰 배낭의 물건을 모두 꺼내고 비닐마대 한쪽 끝을 묶고 가방안에 넣어 비닐 속에 모든 물건을 넣었습니다. 아이엄마 배낭 물건들은 비닐봉투 여러개에 나누어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잘 묶어 정리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주도 가족모임이 있는지라 아이엄마는 앞뒤없이 내려갈 생각이 앞서고, 아이들은 야간산행의 설레임 때문에 "아빠 언제 내려가"를 연신 외쳤대었습니다. 내 혼자라면 이런 장대한 비속이라면 일부러라도 나섰겠지만, 가족을 데리고 출발하려니 혹 바위에 누구 한명이라도 미끄러진다면 . . . . . 우중산행의 최대 단점이 산행 중 휴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인데 아이 중 누구라도 체력이 떨어진다면 . . . . . 우의를 입은 채로 걷는 것은 몇배나 힘들텐데 견뎌낼 수 있는지 . . . . . 걱정이 한두개가 아니다보니 막상 출발을 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지루한 산장에 아무 하는 일없이 있을 수도 없고 . . . . . 마침 가족들이 산행의 신이 나 있을 때 나서는 것이 그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출발을 하였습니다. 막상 출발을 하려는 순간 아이엄마가 매점의 산장지기에게 시간을 물어보는데 아니 글쎄 성삼재 코스가 폭우로 폐쇄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꼭 하산하려면 뱀사골로 내려가야 합니다"

 

평소라면 능선길 9.2km보다는 하산길 9.2km을 갈등없이 택했겠지만, 이미 힘들다는 인상을 받은 계곡 하산길만 남았다는 말을 듣고는 순간 살아서 내려갈 수 있을까 . . . . . 심장이 답답하다는 말이 실감되는 그런 잠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능선으로 오르는 계단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고함을 쳐 아이들과 함께 뱀사골 계곡 하산을 결심하고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 전 산장 안에서 밖으로 촬영. 사진에는 그 무서웠던 폭우가 나오지 않는군요.)

 

 

얼마 내려가지 않아 폭우로 산행로가 모두 냇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산길 반 정도는 바위를 밟고 내려가야 하는 길인데 그 길이 대부분 냇가로 바뀌다보니 시냇물 속에서 수 km을 걸어야 하는 첩첩산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발을 첨벙거리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무언가를 조잘대었습니다. 순간순간 혹 아이들이 미끄러질까 잠시도 신경을 놓을 수 없는 나만의 고민까지 배낭 위에 엊고 내려갔지만 긴장 탓인지 하산 내내 배낭 무게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씩씩하게만 내려왔습니다.

 

계곡물이 넘쳐 건널 수 없는 곳에는 큰 다리가 있어 폭우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가능하였습니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부터 계곡은 거의 10미터 정도로 넓어져 하산 내내 엄청난 폭포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에는 뚫어진 듯 쏟아대는 빗줄기, 옆은 엄청난 계곡물, 발밑은 시냇가 . . . . . 이런 분위기를 다시 어디서 만날 수 있을런지 싶었지만, 당장 생존이 문제다보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주 아이들 손을 잡아주는데 더욱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3-4km을 내려왔을 즈음, 막내가 아이엄마 말에 화가 나 얼마나 빨리 내려가는지 모두들 따라가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놈이 화가 풀릴 무렵 안내판에 목표가 3.4km 남았다는 기록을 보았으니 1km 이상이나 화난 막내 덕택에 손쉽게 내려왔습니다. 중간중간에 사탕 한두개로 피로를 달래었고, 큰 아이는 초코파이를 원했지만 막내는 사탕 한개 외에는 더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탕 두개 먹었습니다.

 

막내 화가 풀린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투정부리지 않고 아래에 도착하면 무조건 원하는 것 2개씩 사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약간씩 피로를 느낄 수 있어서 reward라기 보다는 아이들이 무사히 하산만 한다면 열개로도 사주겠다는 그런 절박한 마음이 앞서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다시 내려가다보니, 2km를 남겨두고 넓은 편한 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하지만 평탄한 길이라 걸을 더 빨리할 수 있었습니다. 반선 매표소에 다달았을 때 모두들 발걸음이 무거워 힘겨운 한발한발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매표소를 꽤 내려간 도로 건너편에 식당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중 마침 한쪽 문을 밖으로 열어놓은 곳이 있어 그냥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썩 반기지 않는 태도로 맞아주었지만 알고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던지 몇개의 상점 중 꼭 필요한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남겨두고 주인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성삼재 휴게소까지 차량편을 부탁하였습니다. 좀 무뚝한한 태도로 흔쾌히 승낙해주었습니다.

 

이 코스의 안타까운 점은 폭우 탓으로 사진촬영을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으나, 9.2km를 쉬지않고 폭우 속을 3시간 30분에 주파한 아이들의 대견스러움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차량 회수에서 대구 도착까지 )

 

아저씨의 차를 타고 반선에서 성삼재 휴게소로 꼬불꼬불 오르는 도로를 달려갔습니다. 이곳 출신으로 일반 산행로는 다니지 않고 약초를 캐러 인적없는 산행로를 자주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지리산은 어디서라도 하산할 수 있다니 초보자인 나로서는 누구나 다니는 산행로라도 모두 답습할수나 있을려나 싶었습니다.

 

"평소 뱀사골 수량이 오늘만 같으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겠던데요?"라고 이날 산행의 감흥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비안개가 자욱히 끼어있었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아마 산장지기의 조언을 듣지 못하고 성삼재 능선코스를 선택했다면 시간도 더 걸렸을 뿐만 아니라 바람에 체온이 떨어지는 큰 낭패를 당할뻔 했었다는 것이 실감되었고, 입산통제가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차문을 열려는 순간 아! 글쎄 키를 가져오지 않았으니 그때 심정은 다된 밥에 재뿌린 멍청한 사람이 폭우와 강풍이 몰아대는 1000미터 고지에 홀로 서있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급히 휴게소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두개 모두 고장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습니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기념품 판매 여종업원 두명에게 물어보았지만 공중전화는 고장이며 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안타까운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 . . . .

 

"급한 사정이 있어 그런데 일하는 분들 중에 휴대폰이 있다면 좀 빌려쓸 순 없나요?"

" . . . . . ."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 . . . . . . 무슨 급한 사정이 . . . . ." 이미 한 여종업원을 자리를 피해서 남은 한 아가씨에게 매달렸습니다. 사정을 간략히 설명하고 휴대폰이 있다면 한통만 사용하자고 통사정하여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엄마 휴대폰을 울렸지만 타인이 나왔습니다. 전화번호가 잘못되었다나요? 정신이 오락가락했는지 매번 전화하는 아이엄마 휴대폰 번호가 머리에 가물거리기만 했습니다. 문득 상점 이름이 기억나 114에 연락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가씨! 미안합니다만, 114에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 . . ."

"114가 보통 비싼 것이 아닌데 . . . . ."

"내 사정이 급해서 그러니, 앞으로 몇통을 더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 아가씨가 옆에서 보고 원하는 사용료를 달라는대로 내가 드릴께요. 그 대신 연락닿을 때까지만 사용합시다."

"어떻게 그렇게  . . . . . ."라며 마지못해 전화기를 전해주었습니다.

 

114에 문의하여 식당집 아이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아이엄마에게 말을 전하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더군요. 나중에 들어보니 전화를 끊는 순간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서더랍니다. 민망함은 서로간에 말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연락을 마치고 3000원을 전해주니 고맙게도 착한 아가씨는 1000원을 돌려주었습니다. 이러면 안된다면서 말입니다. 급한 순간이 되자 급한대로 해결은 되는 모양입니다.

 

차량이 종종 들락거려 바람이 몰아치는 휴계소 입구에 서 있자 한참이나 지나 도착하였습니다. 아무런 말이 없이 키만 전해주더군요. 가게로 들어서자 산장매점에 있던 분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후에 통성명을 하니 특전사 하사관 출신으로 뱀사골산장지기와 의형제를 맺은 분으로 지리산만 500번 이상을 산행하였고, 지리산에는 없는 것이 없는 천국이라며 지리산에 푹빠진 분이었습니다.

 

"어이 이 사람! 산에서 나에게 몇번이나 꼼꼼히 물어 나는 차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영 어리한 사람이네!"

" . . 하. . 하 . ..간혹 정신을 빼놓고 다니곤 하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뭐 하는 분이신가요?"

"정신을 빼놓지 않으려고 000을 하고 있지요!???"

 

나에게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위안의 말로 들렸습니다. 떠나면서 산에서 땄다며 잣열매를 두개 주었습니다. 소주에 담가놓으면 그 향이 잣술 이상 가는 것이 없다며 말입니다. 초보 산사나이지만 그 마음이 더욱 고마웠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계산할 때 두번 차량 운행비를 드리겠다고 하였지만 미소만 지으면 받지 않아도 된다며 사양하였습니다. 산장매점에 있던 분이 이 집만 유일하게 차량을 운행해줄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며, 모르고 왔다면 운이 매우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 필요한 분들을 위해 정보를 남깁니다.

 

일출산채식당; 063-626-5071/011-651-5077

 

대구로 돌아오는 길은 어느새 비가 개여 너무나 선명한 경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가조온천에 들어 몸을 따뜻히 하고, 대구 도착 후 이마트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양손에 쥐여주고 무사히 귀가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 . . . .

 

"오늘 잘 내려와서 아빠가 고맙게 생각하는데 . . . . . 다음에 지리산 온다면 또 올거냐?"

"응! 재미있어 또 올래!"

 

아이들은 그냥 재미만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막내가 잠들었다 한시간 후 나오길래,

 

"왜 나왔어?"

"슬픈 꿈 꾸었어?"

"무슨 꿈?"

"아빠, 엄마, 오빠는 모두 다 남아있는데, 내만 강물에 떠내려는 꿈꿨어. 무서워"

"그럼 오늘 저녁은 같이 잘까?"

"응! 좋아"

 

그 한마디에 침대에 눕자 바로 잠에 빠져들어갔습니다. 막내가 어느 계곡 다리를 건너다 계곡 물을 보고 무섭다고 하는 것을 가볍게 지나갔더니 어느새 꿈으로 나타났나 봅니다. 계곡 물의 무서움이 막내의 꿈에는 부모와의 이별, 즉 분리에 대한 무서움으로 대치되듯이, 아이들의 고통은 항상 부모와의 분리라는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좋은 실례를 보게해준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