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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에서 헤엄치던 날(오대산 1563.4m)

◈날짜: 05년 2월 20일 일요일(맑음)

◈코스:상원사- 사자암(중대)- 적멸보궁- 비로봉- 상왕봉- 미륵암(북대)-상원사

올겨울은 수도권에 눈다운 눈이 내리질 않아 제데로된 눈구경을 할 수 없었고 애써 선택한 산행지마다 눈이 흔치않아 이제 막바지인 이 계절이 웬지 서운했었습니다
동네 강아지마냥 뛰놀 나이도 아니고 영화 '러브스토리'에서처럼 연인과 눈싸움 해 볼 처지도 아니면서....

늘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도 이야깃거리가 한정되있고 어설픈 감성을 드러내면 "철들려면 멀었군"이란 말뿐이 들을말이 없을 이웃친구앞에선
"눈오면 뭐가 좋아? 길 미끄럽지 녹을때 질척거려 지저분하지.."라며 나를 숨기면서도 가슴한켠엔 눈조차 반기지않는 여자가 되는게 싫습니다 눈과는 어울리지 않을 이 나이도 버겁고...
그러니 엎어져도 자빠져도 크게 흉될게 없는 하얀산이 그리웠었죠 각설하고...^^*

어제 오대산엘 갔었습니다 폭설이 내린 뒤끝이니 눈구경하러요
한파주의보까지 내린터라 걱정도 들었는데 차에서 내리니 정말 추위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월정사를 지나며 시작되는 비포장도로는 흰눈으로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어요
월정사주변 전나무가지에 미처 녹지못한 눈들이 소담스럽게 뭉쳐있는것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건 시작이었고 멀리 보이는 주능은 우리 일행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었습니다 겨울산행시 늘 꿈꾸던 모습이었니까요

상원사를 거쳐 사자암(중대),적멸보궁을 지나는 오름길에서 바라보이는 주능선엔 설화가 만발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어요(사진을 본 아들표현은 모르도르로 가는 설산의 모습이랍니다 세대차이 나네요^^*)
추운날씨임에도 등로를 오르내리는 산님들도 참 많았구요
오름길에서 허우적거린 이야기는 안적겠습니다 늘 그 모양 그 꼴이니..^^*
가파른 오름이 시작될 즈음부턴 주변 나뭇가지마다 환상적인 설화를 피워 시선 둘 곳을 찾지못할 정도였습니다
잔가지에 조금 붙은 눈꽃은 이른 봄 매화나 겹벗꽃 같았고.상록수잎에 엉긴 눈들은 솜사탕같았습니다 다른 감탄사를 찾지 못하고 그저 "우와!" 라는 말만 겨우 뱉으며 정상을 향한 길을 줄여갔었죠

예상대로 비로봉은 칼바람이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트인 조망이야 더할나위없이 좋았지만 살을 에이는 바람속에서 오래 지체할수없어 많은 산님들이 북적이는 정상석을 차례기다려 차지해 증명사진(?)찍고 부지런히 상왕봉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눈이 다져진 좁은길이 어쩜 그리 좋던지요 스틱을 넣어 눈높이도 가늠해보며 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에 신음같은 탄성을 보내며 걸을때까진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노래가 흥얼흥얼 나올만큼요

그런데 가다보니 길흔적이 점점 없어지더군요
상왕봉으로 향하는 초입엔 분명한 눈길이 나있었는데... 이상스럽게 많은분들이 비로봉에서 곧바로 상원사로 하산을 하더니만 아뿔싸...
물론 아는길이었으니 크게 겁날건 없었지만 눈보라속에 파묻혀가며 희미해지던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가노라니 겨울산행시 이래서 길잃고 목숨을 잃는구나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오래 걸어 체력을 소진한 상태라면,눈보라에 길흔적이 아에 감춰진 초행길에서 어둠을 맞는다면,이런 추위에 길을 잃고 너무 오래 방치된다면....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겠지요
잘못밟으면 허벅지까지 푹 빠지는 눈길을 삭풍에 날리는 눈보라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걷다 나뭇가지에 얼굴까지 긁혀가며 상왕봉을 향해갔습니다
상왕봉을 지나 북대사로 가는 길은 더더욱 눈길이 제데로 나있지 않았습니다
잘못딛은 발을 쉽게 빼내지도 못할만큼...
그저 살겠다고(?) 바둥거리며 앞사람을 쫒는 형국이었죠
명개리로 넘어가는 그 비포장도로를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 길이라고 눈이 안쌓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로라는데 안도감이 들더군요 ㅎㅎ

도로를 따라 내려가도 되는데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그 곳은 한 술 더 뜨더군요 누군가 겨우 흔적만 내놓은 길이었지요
그 흔적에 발을 넣으면 저 같이 짧은사람(?)은 묻히는 형국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다행인것은 습설이 아니라 젖어들지 않았고 눈이 완충역활을 해주니 넘어져도 별로 아프지도 않더라는거였죠
그 길을 내려오며 꼬마때도 안해본 온갖 놀이를 다해봤습니다
내동댕이쳐진 개구리자세로 눈속에서 헤엄치기,미끄러진김에 눈위에 누워보기,비료부대없이 미끄럼타기등등...그 길엔 우리팀밖에 없었고 저는 늘 꼴찌니까요^^*
암튼 다시 그 도로를 만났는데 걸음이 휘청휘청,눈앞이 어질어질 하더군요
너무 심하게 놀아서..ㅎㅎㅎ
원도 한도 없이 제 생애 제일많은 눈밭에서 놀던 날이었습니다
철분이 부족해 눈타령이나 해대던 제게
'그래 어디 맛 좀 봐라' 보여준 강원도 힘!! 아휴~ 항복입니다 ㅎㅎ

 

 

 





멀리 용평스키장

 




상왕봉으로 향하는 길

 

되돌아본 비로봉

 

 

 

 

 

 

 

명개리로 넘어가는 도로에서 바라 본 주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