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리에서 산정호수까지 말굽형 산행

 

o 산행일시 ; 2008.11.23(일), 맑음, 점차 연무 많아짐
o 산행구간 ; 포천시 이동면 도평삼거리->박달산(810m)->자등현->
각흘산(838m)

                   ->약사령->명성산(923m)->산정호수 주차장
o 산행시간 ; 총 10시간(휴식시간 모두 포함), 도상거리 : 약 20㎞
o 교통편 ; 갈 때 의정부역에서 도평리까지 138-5번 좌석버스,

               올 때 산정호수에서 8시발 의정부행 138-6번 좌석버스

 

 

만추초동(晩秋初冬)의 달, 11월이 오면 가평의 몽가북계 억새산행과 화악산의 낙엽송산행을 해마다 거르지 않고 했었는데 올해는 둘다 시기를 놓쳐버렸다. 화려한 단풍의 계절이 끝나고 황홀한 겨울산행이 시작되기 전, 산은 잠시동안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분위기, 색으로 치면 갈색이고 소리로 치면 첼로라고 할텐데 나뭇잎이 떨어진 가지 사이로 산은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11월에 떠나는 긴 산행을 좋아한다. 더구나 여름의 땀도 가을의 번잡함도 겨울의 추위도 모두 피해갈 수 있지 않은가.

당초 의정부역에서 6시 40분에 출발하는 산정호수행 138-6번을 타고 명성산, 약사령, 각흘산, 박달봉을 넘어 포천 이동면 도평리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커피까지 마시며 꾸물댔으니 의정부역에 도착한 시간이 6시 40분, 버스가 기다려줄 리가 있는가? 아쉬운 마음에 의정부 터미날까지 택시로 쫓아가 보지만 버스가 그렇게 천천히 갈 리가 없고 하릴없이 도평리행 138-5번을 기다리니 이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늦은 7시 10분에 도착한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인가? 이렇게 해서 오늘 산행은 당초 계획과는 반대로 도평리에서 출발하여 산정호수로 내려오는 역방향이 되고 말았다. 산에 오르는 사람이 방향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책바위코스로 올라 명성산을 가장 길게 종주할 수 있는데다 도평리에는 교통편이 많고 좋아하는 식당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 시간 반 걸려 도평리에 도착해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도평삼거리에 이르고 우측 백운계곡 가는 316번 지방도로 접어들자마자 휘닉스모텔이 있는데 그 뒤로 박달봉으로 가는 긴 능선이 보인다. 11시 53분 모텔앞에서 출발. 모텔좌측길로 따라가면 군 화생방훈련장이 있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훈련장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붙으니 바로 능선이 나오고 가람산우회의 빨강 리본도 보인다. 긴 여정의 시작이다. 도상거리 약 20km에 주어진 시간은 9시간 정도.

완만하게 올라가는 능선엔 낙엽이 두텁게 깔려 있고 발자국은 약한 편이다. 9시 25분, 전망이 터지는 404봉에 도착하니 푸른 하늘 아래 가야할 각흘산과 명성산이 서쪽으로, 사향산이 남쪽으로, 그리고 한북정맥이 동쪽으로 시원하게 보인다. 9시 48분 백운계곡으로 내려가는 첫째 갈림길 지나고 10시 15분 표지기가 많이 달린 두번째 갈림길을 지나니 발자국 많은 등산로로 바뀐다. 10시 30분 조망이 트이는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멋지게 생긴 쌍바위가 나타나 시선을 빼앗고 앞으로는 박달봉(810m)과 전위봉인 800봉이 나란히 보인다. 바위에서 사방의 조망을 잠시 즐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무가 많이 끼었고 남동쪽으로 화악산과 국망봉을 바라보니 햇빛에 눈이 부시다.

10시 50분 헬기장으로 된 800봉에 이르니 백운계곡 3.14km, 광덕산 3.20km라는 산뜻한 이정목이 반긴다. 수년 전 광덕고개에서 광덕산으로 올라 각흘산으로 갈 때 박달봉에 잠시 들러 간다고 이곳까지 와서 점심을 먹고 되돌아 갔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800봉이 박달봉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지금은 많은 지도가 810봉을 박달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때는 박달봉이 아니라고 아예 810봉은 오르지도 않고 우회했지만 이번엔 두 봉우리 모두 오르기로 했다. 박달봉인 810봉은 지금도 대부분 우회하는지 오르는 길은 희미했고 시야는 나무로 막혀 있었다. 11시 5분. 박달봉을 지나 오늘 처음으로 두 산객을 만났다.

11시 25분 광산골 삼거리인 930봉에 도착했다. 광덕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명성지맥이 북서쪽으로 꺽이며 자등현으로 향하는 지점이다. 이제부터 우측으로는 강원도 철원군 서면이 된다. 연무는 더 심해졌지만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였다. 1시까지 각흘산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지만 희망사항일 듯하다. 사진 찍고 전투식량을 먹으며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서둘러 출발했다. 먼 길 갈 때는 항상 마음이 급하다.

20여 분 능선 따라 내려오니 멋진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각흘산이 한결 가까워졌고 자등현에는 등산객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 몇 대가 보인다. 5분 정도 조망을 즐기다가 바위를 내려서니 잘 만들어진 참호시설과 군작전도로가 곧 나오고 이를 잠시 따라가면 다시 등산로로 접어들어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계인 자등현에 내려섰다. 버스기사들끼리 모여 떠들석할 뿐 이곳 47번국도는 역시 조용한 길이다. 12시 20분.

예전엔 각흘산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던 기억이 있어 1시까지 정상에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바로 산으로 접어든다. 부지런히 걸었지만 한 시간이 더 걸려 주능선에 올라섰다. 12시 32분. 불모지같은 방화선으로 된 북릉 멀리 귀퉁이에서 단체등산객들이 오붓하게 점심을 먹고 있을 뿐 유달리 많은 까마귀들 외에는 아무 것도 소리내지 않고,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각흘산은 참 인상적인 산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능선은 바위가 많고 날카로운데 그나마 있던 억새까지 베어버려 방화선을 황무지처럼 철저하게 청소해 놓았으니 누렇게 드러난 능선이 멀리서 보면 산성의 성곽처럼 보인다. 황량한 능선을 보면 여름에 오기엔 부담스러운 산인데 반해 각흘계곡은 신비한 느낌이 드는 명품 '숨은계곡'인지라 여름엔 꼭 찾고 싶은 곳이다.

큰 까마귀들이 휘휘 날며 기괴하게 울어대는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고 있는데 마침 도착한 거인산악회의 선두팀 덕분에 증명사진을 찍고 명성산을 향하여 남릉으로 내려섰다. 황량한 남릉의 끄트머리에 있는 외로운 소나무에 도착하니 2시가 넘어 각흘봉과 약사령으로 갈라지는 765봉 못 미친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한다.

20분 남짓 점심을 먹고 약사령을 향해 남서쪽으로 내려가니 계속 급경사길이다. 765봉부터 명성산까지는 초행길이지만 정맥꾼들이 많이 다닌 덕에 길은 넓게 패여 있다. 시야가 터지는 헬기장 봉우리를 지나 다시 급하게 내려가니 약사령이 나오고 거인산악회 선두팀을 다시 만났다. 2시 56분. 광덕고개에서 출발한 산행을 약사령에서 끝낸다고 하며 시간이 늦었으니 같이 내려가자고 권유하는데 사양하고 약사령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바로 출발했다. 어두워지기까지 2시간 반 남짓 남았으니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약사령을 지나면 각흘산을 벗어나 명성산으로 접어들게 된다. 20분 정도 급하게 오르니 뾰족한 바위 봉우리가 나오는데 지형도상 약사봉(724m)이다. 1975년 8월 17일, 등산을 좋아했던 장준하 선생이 약사봉에 올랐다가 길이 없는 험로로 내려오던 중 의문의 추락사를 당했다는 곳이라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남쪽으로 약사동계곡이 길게 펼쳐지고 그 우측에 승진사격장이 보이는데 서쪽으론 넓은 억새평원 넘어 명성산이 눈앞에 바짝 다가서 있다.

사방을 조망하며 잠시 상념에 젖어 있다가 억새밭을 가로지르니 용화저수지 3.2km, 명성산 1.7km 이정목이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3시 35분. 쉼없이 명성산을 향해 내달으니 4시 7분, 드디어 삼각봉(910m) 바로 아래 명성산 능선에 올라섰다.

갈림길에서 명성산 정상까지는 300m, 한 걸음에 정상으로 내달리니 묵직한 DSLR 카메라를 멘 두 청년이 있어 석양사진을 찍으러 왔냐 물었더니 오다보니 정상까지 왔단다. 증명사진을 찍고 급히 내려가며 곧 어두워질테니 서두르라 했더니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빠른 젊음이여~

4시 20분 명성산 정상을 출발하여 어차피 늦은 김에 삼각봉에 올라서니  멋진 정상석이 서 있다. 지형도 상으로는 원래 남쪽에 위치한 893봉이 삼각봉인데 포천시에서 910봉을 삼각봉으로 정하고 모든 이정표에 그렇게 표시하고 있다. 높아서 그런가, 생김새가 더 뾰족해서인가?

명성산 정상에서 팔각정에 이르는 능선의 길이는 2km가 넘는데 멀리서 보면 소(牛) 등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여유가 있을 때는 조망을 즐기는 산행이 되지만 오늘처럼 시간에 쫓기는 경우에는 지루할 정도로 먼 길이다. 4시 55분 산안고개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불무산 넘어 석양을 바라보며 원래의 삼각봉인 893봉에 도착하니 5시 9분, 드디어 산정호수가 우측 아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반갑다!

사람들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는 팔각정을 앞에 두고 좌측 억새지구로 내려서니 천년수, 궁예샘이 나타난다. 물맛이 좋다. 5시 30분인데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정목엔 비선폭포까지 3.9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명성산에 오를 때는 항상 산안고개나 자인사코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등룡폭포로 내려가는 것은 처음인데..... 3.9km라니 어이가 없다.

억새지대 우측능선을 따르다가 표지기가 많이 달린 내림길로 들어섰는데 나중에 보니 등룡폭포와 억새지대를 잇는 험로였다. 표지기가 잇달아 있어 길을 벗어날 염려는 적었지만 경사가 매우 심한 너덜길이라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차라리 자인사쪽 너덜길이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면 그렇듯이 전투식량 보급에 소홀했더니 힘까지 달려 가끔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불과 1km의 거리를 40여 분만에 겨우 내려서니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등룡폭포가 나오고 편한 계곡길이 시작되었다. 우측 신장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진다.

앞에 시커멓게 보이는 능선이 비선폭포에서 여우봉 가는 능선일테니 거기까지 가면 다 온 것이리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가는데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등룡폭포에서 30여 분 지루하게 걸어 불빛이 보이는 비선폭포에 이르니 6시 50분이다. 도평삼거리에서 여기까지 정확하게 10시간 걸린 셈이다. 토요일만 해도 손님이 있었을텐데 식당이나 가게들의 문은 닫혀 있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주차장에서 운천행 버스가 막 출발하고 있다. 138-6번 버스는 8시에 출발하는데 그때까지 뭘 해야하나? 들어갈 만한 데가 없어 한참동안 주위를 돌다가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핫도그집에 들어갔더니 가게주인은 식사중이다. 뜨거운 아메리칸 커피와 핫도그, 그리고 명성산을 즐겨 오르는 여주인..... 이색적이지만 좋은 피날레였다.

  

Offenbach, Les Larmes du Jacqueline(쟈클린느의 눈물)

  

도평삼거리 휘닉스모텔 옆으로

화생방훈련장 안으로 들어가 능선으로

404봉에서 본 명성산

각흘산

남쪽으로는 사향산(좌,750m)과 여우봉(우,620m)이 보인다.

멋진 쌍바위

남동쪽으로 보이는 국망봉(1167m)과 우측앞에 가리산(774m)

광산골 삼거리에서 되돌아본 박달봉

가운데 백운산(904m)과 우측의 도마치봉(937m)

각흘산과 좌측 뒤 명성산

 각흘산과 우측 아래 자등현

 자등현

 

 우측 광덕산(1046m)과 좌측 상해봉(1010m)

 대성산(1175m)과 복계산(1057m)에서 뻗어내린 한북정맥

 각흘산 정상

 황량한 각흘산 북릉

 각흘산 남릉뒤로 보이는 명성산

 각흘계곡과 각흘봉(670m)

용화저수지와 그 뒤로 보이는 철원평야

 외로운 소나무에서 되돌아본 각흘산

 약사동계곡

 약사령

 장준하 선생이 생애 마지막으로 올랐던 약사봉

 약사봉에서 내려다본 약사동계곡, 멀리 화악산(가운데)과 국망봉(우)

 약사봉에서 보이는 승진사격장

 억새밭 위로 보이는 명성산

 용화저수지 갈림길

 아직도 억새가 빛난다.

 각흘산에서 걸어온 능선길

 드디어 명성산 능선에!

 명성산 정상에서 남쪽방향 

 정상에서 본 삼각봉(910m)

 명성산(중), 삼각봉(우), 궁예의 침전이 있는 870봉(좌)

 불무산(669m) 뒤로 석양

산안고개 갈림길 

 산정호수

 몽베르CC의 불빛

 천년수, 궁예샘

억새지대에서 아직도 3.9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