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이야기(19) - 향적산(香積山)

정역(正易)의 흔적을 찾아, 향적산 일출
 

 
 
▲ 향적산 일출(07:53)

 

 
 
▲ 향적산에서 일출을 배경으로(07:57)

  


   향적
(香積山, 해발574m)은 풍수상으로 계룡산에서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에서 동쪽으로는 암용추, 서쪽으로는 신원사, 남쪽으로는 숫용추를 남기고 계속 남으로 달려 두마면 향한리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향적산 향적봉이다. 산정에는 TBC중계탑이 있지만 조망은 매우 좋다. 북으로는  멘제 능선의 513고지를 거쳐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계룡산의 웅장한 산세와 다시 천황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연천봉, 오른쪽으로 황적봉, 치개봉, 밀목재, 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서쪽의 논산시 상월면·공주시 계룡면 들판, 남쪽으로는 국사봉과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격전지 황산벌이 어림되고, 동쪽 가까이로는 계룡시 두마면과 신도안이 내려다보이며 멀리 대전시가지도 한 눈에 들어온다.

 

   정감록(鄭鑑錄)에서는 '신도(新都)는 산천이 풍부하고 조야(朝野)가 넓고 백성을 다스림에 모두 순하여 8백년 도읍의 땅이다'라고 예언했다. 약 600여년 전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땅. 충남 논산시 상월면과 공주시 계룡면지역은 계룡산과 향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사이에 두고 신도안(新都內)과  등을 맞대고 있다. 신도안은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을 답사한 후 새 도읍지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한데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씨를 가진 왕조가 집권하면 좋을 땅’이라는 도참설과 뱃길, 교통이 불편해 도읍으로 부적합하고 물이 부족하다는 무학대사의 말에 따라 결국 한양에 도읍를 정했다고 한다. 근래에도 이 부근이 신행정수도 후보지에 오른 것을 보면 ‘명당’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산정에는 1948년에 세웠다는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와 "오행비(五行碑)"가 서 있고, 지금도 무속인들의 기도터로 이용된다. 이곳에서 매일 기도하던 조씨 할머니께서 묘향산과 구월산에 산재하던 단군의 넋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신격화하면서 기도터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정확히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의 사후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공덕을 기리는 목적으로 탑을 세웠는데  그 비(碑)안에는 "우리나라가 천년이상 동방예의지국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단군 성조의 깊은 뜻을 담았다"고 한다.  동쪽에는『天鷄黃地』 서쪽에는『佛』 남쪽에는『南斗六星』 북쪽에는『北斗七星』이라는 글이 음각 되어 있다. (참고 ☞ 계룡시 홈페이지)

 


   등산 코스는  ① 엄사리(청송약수, 만운사) 코스 ② 향한리로 오르는 코스 ③ 연산면 황산성으로 오르는 코스 ④ 상월면으로 오르는 코스 등으로 다양하다.

 

 

▲ 등산지도

일 시

2005년 1월 1일(토) 05:20 - 10:00 (4시간40분, 휴식 시간 포함)

동 행

반려와 나

날 씨

맑음

코 스

집출발(05:20)
청송약수
(05:36)
헬기장1
(06:19)
헬기장2
(06:32)
싸리골
(06:38)
능선전망바위
(06:55-07:10)
헬기장
(07:18)
정상(07:28-08:05)
향적산방
(08:30-40)
무상사
(09:13)
향한교회
(09:32)
엄사중학교
(09:55)
집도착(10:00)
 

향적산으로 가는길

 

   매일 떠오르는 해 이지만 2005년 새해 첫날의 일출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곳을 생각하다가 결국 마을 뒷산인 가까운 향적산으로 정한다. 늘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소홀하기 쉬운데 산행지를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새해에는 계룡산과 향적산의 골짜기와 능선들을 자주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룡산 천황봉에서 남으로 달려 우뚝 솟은 봉우리, 향적산을 오르다.

 

   을유년 신새벽은 닭의 예지를 상징하듯 차가움으로 시작되었다.  영하 7-8도쯤이나 될까. 싸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청송약수를 지나 등로로 접어든다. 음력 11월 21일. 맑은 하늘아래 바로 머리위에 떠 있는 하현달은 비교적 밝아 걷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주로 왕복 1-2시간 사이의 거리를 걷는 편안한 등산로이다. 청송약수에서 10 여분 오르면 금남정맥 갈림길을 만나고, 철탑 사거리를 지나고, 어둠속에 두어 번의 오름을 반복하여 헬기장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인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든다. 또 한번의 오름 후에 싸리골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능선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구간으로 이 마을 사람들은 '깔딱고개'라고 부른다. 4분정도 오르면 향적산과 513고지 갈림길을 만난다. 향적산 이정표를 따라 가면 편안하게 산허리를 따라 이재호씨댁을 경유하여 헬기장을 지나 향적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513고지 방향으로 가면 일단 능선 전망 바위에 올라, 능선을 따라 4단 포겜바위, 헬기장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우리는 513고지 방향으로 10여분 정도 힘들게 올라 전망바위에 섰다. 언제 보아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멘제 능선을 따라 오늘 충남도의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천황봉을 조망해 본다. 천황봉엔 통신탑의 불빛만 희미하게 빛날뿐 조용하다. 허기가 느껴져 간식을 하지만 바람이 몹시 차다.

 

   능선을 따라 걸어서 4단 포겜바위와 헬기장을 지나고, 계속 능선길로 정상에 오른다. 이미 정상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명 와 있다. 산정에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서서 일출을 기다린다. 기다리던 을유년 첫 햇님은 붉은 기둥을 새우며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고, 우리는 조용히 소망을 기원한다. '새해에도 건강한 한해가 되게 해 주십시요.....' 정상에는 추운 날씨와 바람으로 오래 머물기가 어렵다. 오행비와 천지창운비를 기념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에서 헬기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바라보는 멘제-천황봉 능선은 오늘따라 더욱 웅장한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 들머리(청송약수 입구)(05:38) ▲ 청송약수(05:41)

 

 

 

 

▲ 금남정맥 갈림길(05:56) ▲ 음력 11월21일 하현달(06:25)

 

 

 

▲ 싸리고개와 능선 사이의 향적산 이정표(06:48) ▲ 4단포겜바위(07:18)

 

 
 
▲ 일출을 기다리는 동녁(07:35)

 

 
 
▲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07:36)

 

 
 
▲ 일출(07:49)

 

 
 
▲ 일출(07:50)

 

 

 

▲ 일출(07:51)

 

 
 
▲ 일출(07:52)

 

 
 
▲ 일출(07:53)

 

 
 
▲ 일출 줌인(07:53)

 

 

 

향적산 정상의 오행비와 천지창운비(08:02). 오행비에는 오(五) 화(火) 취(娶) 일(一)등의 네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천지창운비는 높이 2m정도로 동서남북 네면에 「천계황지(天鷄黃地)」「불(佛)」「남두육성(南斗六星)」「북두칠성(北斗七星)」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1948년 조이양 할머니의 며느리 손씨부인이 조할머니 공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 향적산 정상에서 일출을 배경으로(08:03)

 

 

 

▲ 향적산 정상에서 헬기장, 멘제 능선과 계룡산 천황봉 조망(08:06)

 

 정역의 흔적을 찾아.....

 


  
일부 김항」 선생(1826∼1898)은 충남 논산군 양촌면 남산리에서 탄생하셨다. 일부 선생은 손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학체(鶴體)의 풍모를 지니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부 선생은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18여 년 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실로 황홀하기 그지없는 우주대개벽의 신비경을 『정역(正易)』으로 체계화시켜 놓았는데, 이 정역의 핵심 내용은 ‘구원의 절대자께서 후천 가을개벽의 정역 시간대 기운을 타고 이 조선 땅에 강림하신다’는 것이라고 한다.(참고 ☞ 종교신문)

 

   헬기장에서 10여분 내려오면 치성 기도처가 있는 이재호씨 댁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왼쪽 산허리길로 가면 싸리골을 지나 엄사리 능선길로 갈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조금 더 내려가, 근대 한국 신흥종교의 '후천개벽'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조선후기 역학자 一夫 김항 선생께서 정역을 저술한 후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향적산방에 이른다. 그곳에서 어떤 등산객으로부터 옛날 일부 선생께서 제자들과 공부했던 집과 거북바위, 용바위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또 지금은 관리인 한 분이 계신다는 것과 아침식사를 하고 가시라는 친절한 인사를 들으며, 10여분간 주위를 둘러보고 내려왔다.

 

   조금 더 내려가 국조선원(거북바위,용바위) 표지판이 서있는 구룡정사를 지나고, 그 아래 굿당인 거북암으로 가는 갈림길도 지나면 무상사에 이른다. 무상사는 외국 스님들이 계시는 곳이다. 무상사 부근과 그 아래 저수지 부근 일대는 향적산 공원인데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는 않았다. 여기를 지나 20분정도 내려오면, 향한교회와 호남선 철길 사이로 새로 개설되는 엄사-향한리 농로 공사길에 이른다. 아직은 포장공사가 되지 않은 공사중인 길을 따라 엄사중학교 앞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2005년 새해 일출 산행을 맺는다.

 
 
▲ 향적산방 바로 옆의 거북바위와 그 아래 치성 공간(08:34)

 

 

 

▲ 향적산방(일부 김항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08:37)

 

 

 

▲ 계룡정사(08:59)

 

 

 

▲ 무상사와 향적봉(09:14)

 

 

 

 

▲ 향한리에서 향적산 조망(09:32) ▲ 향적산 공원 안내도(09:17)

 

 

 

▲ 호남선 KTX와 향적산에서 황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 조망 (09:44)

 

 

 

▲ 향적산 헬기장에서 계룡산 조망(08:14)

 

  흐르는 곡  :  꿈이있는 자유 -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