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30일
내소사-관음봉 삼거리-재백이 고개-직소폭포-자연보호헌장탑-월명암-남여치매표소
산거북이 부부
-사진1-
<내소사>
우리와 같은 시간에 도착하여 관광버스에서 내린 단체 관광객은 유난히 아이
들이 많아 일주문 앞이 소란스러워 절 입구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차라리 근
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난 후 천천히 내소사로 들자하였으니 이른 아침의
고요적적한 사찰분위기에 흠씬 젖고 싶어서이다.
내소사(來蘇寺)라... 유난히 생소한 이 어감(語感). 아내가 한자를 보더니 농담
조로 소련군이 왔었나하고 중얼거린다. 어? 바로 맞혔다고 반색을 하니 더 의
아해한다. 당나라 소정방의 방문과 시주를 기념하여 내소라 한다더라..... 사실
이라면 역사의 질곡이 흉터처럼 남은 거지.....
연꽃..... 요즘은 조주선의 ꡐ연꽃 피어 오르리ꡑ 노래를 즐겨 들으니 연못을
만나 마침 시간 때울 곳을 찾는다.(사진1) 짙은 농무는 과연 걷혀 줄까... 오
후에 남부 지방은 비가 온다하였으니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 짙은
습기는 그대로 비가 될 것 같다.
-사진2-
고색창연한 대웅전으로 다가가 한 컷을 담을려고 하니 젊은 아가씨가 ꡒ꽃무
늬 문살ꡓ을 사진에 담을려고 꼼짝않고 붙어있다. 워낙 유명짜하니 이곳 내소
사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발걸음이 잦을 것이다.(사진2)
-사진3-, -사진4-, 사진5-
종무소의 단아함, 단정한 절뜨락을 담고 나니, 관음봉 삼거리부근의 산정이
언뜻 비치는 산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산에 오를 때가 되었나보
다.(사진 3,4,5)
<관음봉 삼거리까지>
8시 15분. 안개. 운무.. 농무... 비구름.... 어떤 것으로도 표현되기 적절치 않
는 기상상태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사이에는 전나무 숲길과 단풍나무 길이
이어져 있고 전나무 숲길 중간 쯤으로 다시 나와 산길로 접어들었다.(사진6)
부산에서 와서 새벽 3시 반쯤에 남여치에서 출발해서 이곳에 다다른 단체
산행객을 만나니 무척 반갑다. 밤길과 아침 안개 속에서 고생깨나 한 모습
들이다. 초입 경사부터 후텁지근한 날씨에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 별로 힘
들지도 않는데 땀이 쏟아진다. 바야흐로 육수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6-
얼마지 않아 시야가 틔이는 암반경사에 도달한다. 아래로 희끄므레하게 내
소사 경내가 보이고 관음봉 능선이 절 뒤로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한순간
엷은 햇빛이 드는가 했더니 운무가 걷힌다.(사진7)
-사진7-
관음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관음봉-세봉 길이 열려있다. 세봉까지는 1.2 km.
지도상에는 관음봉은 삼거리에서 바짝 붙어있어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거
라 생각하고 되돌아 와야겠다고 내려서는데..... 어렵쇼. 길은 자꾸만 내려가
고 거대한 암봉은 이상스레 멀게 느껴진다. 마침내 머춰 서서 어쩔까 망설
이는데 일단의 유산객들이 이리로 내려온다.
염치불구 질문을 올리는데 한 아주머니의 자신 있는 대답인즉, 저거는 세봉
이라요! 관음봉이 뒤에 있는 저거라요~. 내 뒤의 작은 봉우리를 가르킨다. 긴
가민가 다시 돌아와 입구를 찾아보니 목책이 끝나는 부위에 오르는 흔적이
보인다. 유명한 관음봉의 입구가 이렇게 초라해서야.. 원. 바위를 기어올라 소
나무 아래까지 올라보니 에게게??!! 고도계는 350m 를 넘지 않는다. 멀리 우
리가 가야할 주황색 철사다리가 보이고 암반 위에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사진 8)
-사진8-
<관음봉을 놓치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냉커피를 마시며 그늘 아래서 지도를 보며 길게 쉬었다.
서해바다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고.... 가만! 관음봉 삼거리에서는 세봉을
아예 볼 수 없는 각도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다. 큰 암봉이 역시 관음봉이
고 삼거리 곁에 붙은, 내가 오른 봉우리는 ꡒ착각봉ꡓ에 불과했다. 삼거리와
관음봉이 너무 가깝다고 생각한 선입견이 민망한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다음에 산우들과 함께 올 기회가 있다면, 아예 내소사에서 세봉 쪽으로 올라
세봉을 되내려오고 관음봉이어 신선봉-낙조대로 능선산행을 하는 것도 좋겠
다. 철계단을 지나 암반 위에 오르니 관음봉과 착각봉이 명료하다.
관! 관음봉(觀!觀音峯).(사진9)
-사진9-
<직소폭포-선녀탕-직소담>
재백이 고개(고도 180 m)를 지나 직소폭포까지는 아기자기한 숲 속 오솔길
이다. 공기는 촉촉하고 상큼한데 계곡의 물은 맑지가 않다. 비도 적게 오지
않았는데 물바닥은 우중충한 물이끼로 가득하고 낙엽이나 잔가지들이 삭는
속도도 더딘 것 같이 보인다. 물흐름의 속도의 차이인가보다. 마치 습지대
의 고인 물 같이 보인다. 계곡의 적당한 유속은 청정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
다. 만물의 이치가 그러한가보다.
한가로운 물흐름을 일깨우듯, 30 미터에 이르는 직소폭포의 위용이 드러나는
곳에 이르러서야 봉래구곡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눈 맛과 사진
맛을 즐기는데 아무래도 한바탕 비가 내릴 듯하다. 선녀탕으로 내려서니 과
연 소나기가 뿌리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우중산행인가..... 체념적으로 받아들
이고 아내가 받쳐든 우산 아래서 몇 컷을 담고 과일 간식으로 배를 불린다.
지나가는 비인 양 잠시후 그친다. (사진10, 11, 12)
직소폭포를 완전히 벗어나니 평지이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이곳 직소담에
서 가두어 진다. 한창 가물었던 때의 직소담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진
에 비해 잘도 생겼다. 멀리 관음봉 그림자가 물에 비칠 듯하다.(사진 13)
-사진10, 11, 12, 13-
<월명암에서 낙조대를 지나고 쌍선봉도 못오르다.>
평탄한 길은 이윽고 잘 가꾼 정원 길로 들어 선 느낌이다. 엉? 우리가 오늘
산에 온 거 맞나?? 라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자연보호 헌장탑 삼거리다.
잘 닦여진 길로 직진하면 내변산 매표소까지 1.2 km 이다. 왼쪽으로 접어드
는 길이 월명암 길. 갑자기 가팔라지기 시작하며 땀이 흐른다.
오늘 산행은 초입 1.2 km와 이곳의 경사 뿐인 거 같다. 그 외는 잔잔하게 오
르락 내리락 했을 뿐이다. 평지 타령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듯 무더운 습기
속에서 땀이 비 오듯 한다. 와중에 길 가운데 드러누운 뱀도 한 마리 밟아 사
고를 칠 뻔하여 가슴을 쓸어 내렸다. 배낭 안에 넣어온 두터운 4장의 스패츠는
그저 정신요법에 불과했던 것이다.
앙징 맞은 암릉이 소나무와 어울린 곳에 오르니 제법 조망이 된다. 단체 산행
객이 많다. 이제사 느끼는 것은, 남여치->내소사 방향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역방향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늘 생각키로, 사찰은 이른 아침에 들어야 맛
스럽다고 생각해서 주 사찰방향을 초입으로 잡는데 산행의 즐거움으로 치자면
이 방향이 더 나은가 보다.(사진14)
-사진14-
월명암 못가서 낙조대 입구가 있으니 주의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정보에 기대
어 눈을 부릅뜨고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니 과연 짐작되는 입구가 보인다. 하
지만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가로막혀 있어 한순간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조망이 없는 흐린 날씨에 애닲을 것이 없다.
월명암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공부하는 스님들의 열기는 느껴지나 고찰의 품
새는 없고 유산객만 소란타. 빈 뜨락에 홀로 서서 흐릿한 먼 조망을 상념하
니 갑자기 며칠 전의 짜안한 생각이 솟아오른다..
수재로서 촉망되는 젊은 날,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결행하여 15년 인고의
수행 끝에 육신의 병이 드러난 스님. 유전적 소인은 의학도 어쩔 수 없는 업.
그 몸 버리고 다시 인연 지어 용맹정진할 수 있는 건강한 몸 받으시기를....
아니아니... 그 동안의 공력으로도 얼마든지 쾌차할 수 있을 것인데.... 부디
건강 회복하소서.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는 다름없이
아픈 사람이 아닌가한다.(사진15)
-사진15-
다시 내려서 길을 떠나니 말로만 듣던 관음 약수터에 이른다. 아차! 그러면
이미 쌍선봉은 놓쳤구나. 조금 전, 갈림길을 막고 미주알고주알 뭔가 써 두
었더니 그게 쌍선봉 이르는 길목인 모양이다. 참 순순히도 탐방로를 따라왔
다.^^
관음 약수터의 물을 먹을려니 독의 밑바닥이 긁힌다. 그러면 당연히 다른 이
들을 위해 물이 고일 때까지 안 먹어야 옳으나 원거리 산행기념으로 아예 긁
어 파 먹다시피한다. 아내는 안쓰런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캬~! 물맛 한번 조오타!”
겨우 한모금 남짓 마시고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을 뱉고 난 잠시 후..... 기어드
는 목소리다.
“.....도가지를 긁어 묵으니 뒷맛이 좀... 이상타...”
서쪽으로 운산리가 바라 뵈는 사면길을 찰랑찰랑 걷는데 갑자기 서쪽이 밝아
지면서 운무가 가라앉는다. 아~! 내변산이 작별인사를 하는고나. 이런 고마
울데가 있나...... 오늘 처음으로 멀리까지 구름이 가라앉는 모습을 잠시 보여준
다.(사진16)
-사진16-
<남여치 매표소로>
운산리 방향 조망을 즐기며 냉커피와 과일을 마저 먹고, 물병에 남은 남은
식수로 세수까지 하고 나니 기분이 더욱 상쾌하다. 물을 많이 챙겨오니 이
런 호사도 한다. 개인택시로 전화를 하여 남여치에서 만나자고 하고 하산
을 서둘러 도착을 하니 1시를 막 넘긴다. 다시 내소사로 오는 길은 어찌나
시원한 지 산 속의 후텁지근함은 오간 곳이 없다.
오간길 : 부산-남해안고속도로-광주-호남고속도로-정읍IC-고부-줄포-곰소
-격포 바닷가-짦은 잠-내소사-내변산 탐승-남여치-다시 내소사-줄포-고창
군 흥덕-정읍IC-부산(총 27시간)
탐승시간 : 내소사 : 8시 15분 ---> 남여치 : 1시 05분
오래 전부터 비오는 날 내소사의 아침을 맞고 싶었다. 5월 8일 밤. 내소사
로 향하던 우리 차는 엄청난 빗길에 경남 사천에서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
날 못 이룬 소망을 오늘 다시 이루었으나 이리도 먼 길은 언제한번 다시 가
보나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