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명색이 그래도 우리가 등산객인데 시골샌님 한양나들이하듯 유유자적 할 수 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만 꿈깨고 길 뜨세. 갈 길이 만리구만"

 

괴나리 봇짐보다 더 가벼워진 배낭을 걸치고 아내가 앞장을 선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배낭은 가벼워지고 내 배낭은 마냥 그대로다.
동엽령에서 무룡산구간,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
오르는 길이라면 내려가지나 말지. 죽겠다고 올라가서는 왜 또 내리막 길이란 말인가?

 

도데체 길이란 무엇일까?
맨 처음 누가 이곳에 발자욱을 남겼으며 그리고 또 누가 그 발자욱을 덮으며 길을 냈을까?
혹여 함양 대갓댁 중노미가 청상의 마님을 꿰차고 무주 구천동으로 달아났던 길은 아닐까?
아니면, 속세의 연을 끊지 못한 탁발 행자의 고행의 길이었을까?
길이 너무 폭폭하고 지루해서 쓰잘데기 하나도 없는 생각들을 하며 젖은 낙엽들을 밟아가는데 아내가 기어이 한마디 하고만다.

 

"뭔 지랄났다고, 올라 갈라면 쭉 올라가제, 뭘라고 요렇게 또 내려가는고?"
"이사람아, 아무리 듣는사람 없다고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면 되어?"
"아따, 그냥반.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디 이런 푸념도 못한단 말이오?"
"이사람아, 남편은 지금 길에 대해서 철학적인 연구를 하고 걷는디. 마누라란 사람 입에서 그렇게 험한 말이 나오면 격이 안맞제. 안그려?"
"하이고, 그라요? 그 철학적인 야그 좀 들어봅시다"
"고것은 연구끝나고 집에가서 찬찬히 들려 줄텡게 기달려 보더라고"
"그라요? 그럼 그건 그렇다치고, 현실적인 야그하나 물어봅시다. 아까부터 자꼬 궁금한 것이 있는디....."
"뭘 또?"
"젤 높다는 향적봉은 보았는디 그럼 덕유산은 어딧다요?"
"워메, 이사람. 누가 들을까 무섭네. 이런 저런 봉아리들을 모다 합쳐서 덕유산이라고 하는 것이제"
"그라요? 그럼 재는 무엇이고, 령은 무엇이라요?
"재는 산과 산사이를 넘는 고갯길이고, 령은...... 그러니까 그것이...."
"웅얼거리지 말고 확실허게 말헛시오. 그것이 어쩐다는 것이요"
"젠장, 고것도 고개제!"
"재가 고개라메?"
"그사람 참 별것을 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제."
"한가지만 더 물읍시다. 우리 시집 동네에 보면 수리치라는 고개가 있는디 치는 또 뭐라요?"
개념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그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없어 은근히 부화가 일어
"다 알면서 뭘 물어?"
퉁생이를 줬더니
"그러니께 내 앞에서 철학이 어쩌고 저쩌고 구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허덜 맛시오, 그러니께 내말이 뭔 말이냐허면 현실적으로 눈앞이나 잘 가리라 이 말이오."
돈버는 재주는 잼벵이면서도 풍월이라면 껍벅 죽는 나를 아내는 맹렬히 비꼬고 있는 것이었다.
"두고보더라고!"
이 말은 내 속으로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무령산을 넘으니 삿갓재에 다 온듯한 느낌이다.
내리막길을 걸어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섰다. 어디가 동인지 서인지 분간을 할 수도 없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산행객들이 많지않다. 그런 까닭에 사람소리만 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그다지 사교성이 있다고 볼 수 없는 아내가 먼저 "수고하십니다"하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내 뱉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를 다시 꺼내서 뒤집어썼다. 아내의 우의는 벌써 어깨쭉지가 터져있다.
"이것도 우비라고...."
"뭔 소리여. 이것 아니었으면 어제 비는 어찌게 피했을꼬? 아무리 처음 산행이라지만 여자가 이런 준비성은 있어야제 안 그래?"
아까 내게 건 시비가 괘씸해 핀장(?)을 주었더니
"허긴, 당신이 이번 산행에서 젤 잘한게 천원짜리 우비 산 것이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아내의 속을 알 수가 없다.

 

배낭 젖지 않은것만 다행이었을 뿐, 훔뻑 젖어서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하니 향적봉 대피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안개였다.
도착시간 오후 7시30.
도착지가 영각사가 아닐 뿐이지 처음 계획대로 10시간을 족히 걸었다.

 

 

5.

 

까무러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삿갓재 대피소에서 당연히 여장을 풀 수 밖에 없었다. 삿갓재 대피소는 관리하는 아저씨 빼고는 편의 시설이 제로였다.
샘터라고 써져있는 60m 아래 계단을 내려갔다가 올라오느라고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은 적당히 때우고 말지 샘터로  씻으러 내려 가질 것 같지가 않았다.

 

대충 씻고 비 젖은 옷을 갈아 입으려고 배정된 자리로 올라가니, 40중반으로 보이는 두 부부가 깊은 잠에 빠져있다. 조심조심 까치발을 하고 자리를 찾아 우리는 서로 뒤를 보아주며 뽀송 뽀송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어쪄? 이래도 내가 비 현실적이여? 그깟 우비 뭘라고 사느냐고 했지?"
"그 말 증손자 장개 갈때까지 써먹으시오!"
지기 싫어하는 아내가 자기도 몰래 목소리가 커졌다.
그 소리에 잠자던 부부가 깨어 일어났다.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는데 그 부부가 자세히 우리를 보더니
"아까.... 중봉에서 오이 깎아 자시던 분들 아니세요?"
우리도 자세히 보니 오수자 골로 길을 잘못잡았던 그 부부였다.
"길 잘못들은 그 분들? 언제쯤 도착하셨어요?"
"4시쯤 됐을껄요? 오늘 새벽에 삼공리를 출발 했던터라 여기서 하루 묵을려구요"

 

퀘퀘한 냄세로 어차피 서로 잠들기는 틀려서 우리들은 마당 벤치로 나갔다.
내일 영각사로 내려 간다는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들도 내일 영각사로 내려간다면서 걱정스런 투로 말한다.
"내려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먹을 것이 없으니......."
"아침에 컵라면 하나 먹고, 햇반 한 개씩 싸들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 휴게소는 햇반을 팔지 않아요"
우리 배낭에는 먹을 것이 모두 고갈된 상태였다.
난감해 하는데 두 부부가 귀엣말을 서로 나누더니
"낼 아침에 우리가 여유 쌀로 밥을 해서 나누어 드릴테니, 참치 통조림이나 두어개 사가지고 가시지요"한다.
고맙기는 하지만 생면부지의 분에게 이런 신세를 져도 되는지 망설이는데, 아내가 대뜸
"고맙습니다. 신세좀 지지요"
한다.
아내는 그 부인과 마치 오래된 지기마냥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이는 벤치에 앉아 , 부인의 산행 이야기를 마냥 마냥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덕유산 종주가 세 번째란다.
남자 둘은 앉아서 담배만 꼬실렸다.
"삿갓재의 별은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데 참 아쉽네요."
"아, 그렇습니까?"
두 여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두 남자들의 대화는 이것이 전부였다.
내가 40대 중반으로 보았던 그 부부는 실은 50초반의 부부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인지 우리보다 10년은 젊어 보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읽는 독자들 생각도 해야지. 미주알 고주알.
삿갓대피소의 풍경은 이것으로 접고 하산길 이야기하고 끝을 내야겠다.)

 

날이 밝았음에도 잠에서 깨지 않는 아내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깨웠다.
"호의는 고맙지만 아무래도 내키지 않으니 우리 먼저 떠나세. 설마 죽기야 할라고?. 올라도 왔는데 내려가는 길 쯤이야."
우리 부부는 9시30분경에 출발하자고 한 약속을 어기고 7시 30분에 살며시 길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컵라면을 두 개씩이나, 거기다 아내는 참치캔 한통을 더 먹었다.
체중을 줄인다고 땅뜀을 하는 아내를 볼때마다 나는 그 먹성에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허허.

 

삿갓봉을 치올랐다.
참말로 지랄이다. 먼 놈의 산이 숨돌릴새도 없이 오르기만 하는가?
아내가 우뚝 서더니
"여보야, 우리 황점으로 그냥 내려가자~~"
그 비음(鼻音)에 물렁해서는 안 됀다.
이런때 안내면 언제내리. 단호한 목소리로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똥싸고 뒤 안 닦은 것 맹키로. 찜찜하잖여? 여기까지 왔으니 종주를 끝내야지!"
내가 한번 고집을 세우면 황소도 꽁무니를 뺀다는 것을 잘아는 아내다.
길 돌리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하이고, 잘났소. 젊잖은 냥반이 '똥싸고'가 뭐요?"

금방 되돌려준다. 도데체 지는 법이 없으니...., 앞으로 남은 내 삶이 이 산길보다 못하지않겠다^^


넉넉히 배를 채운다고 컵라면 두 개를 때려 넣었더니 물이 자꾸 멕힌다.
그래도 나는 물을 아껴 먹는데 아내는 막무가내다.

 

"아, 물좀 애껴 먹어!"
"목 마른디?"
"긍께 누가 참치까지 먹으랬어? 사람이 중정이 있어야지!"
"이냥반이 듣자 듣자하니께 너무허네? 그럼 굶어 죽일껴? 황점으로 내려갔으면 이런일 없제!"
툭 쏜다.
일판을 벌이기로 하자면 길에도 누울사람이다. 그리되면 큰 낭패다.

이럴때는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 아내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칙상 바른 판단이다.
"허긴 저쪽 어디 가면 물이 있다고 허더만......."

한발 슬쩍뺐다.

 

0.5ml 피티병 두 개중에서 한병은 진작에 바닥났고 나머지 한병은 반이 못되게 남은 상태로 월성재에 이르렀다.
"샘터가 있긴 있구만"
100m인가 200메터인가 정확지 않으나 물을 떠다가 가장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소. 물 떠 올게!"
샘터로 가는 길이 넝쿨에 가려 험난해 보였다.
"길이 험해 보이는디...."
아내가 걱정스레 말한다.
"걱정마. 어차피 새로 떠 올건데. 이거 마져 마셔 버리소"
꿀꺽 꿀꺽. 마침내 빈병.

 

넝쿨에 긁히며 샘터를 찾아 한참을 내려갔지만 불행이로고!
나는 끝내 샘터에 이르지 못하고 빈 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샘터가 찾아 질 것 같지 않아서다.

독자제현께만 솔직히 밝히자면 햇빛에 반이나 익어버린 팔이 넝쿨에 씻겨 따가와서 더 이상 숲을 헤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샘을 못찾겠어!"
아내는 황당해 했다.
"가세, 가다가 물 있는 사람 있으면 얻어 마시세."

 

아내가 빈 물병을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고 있다. 신경이 쓰였다.
"물병은 왜 부딪치고 그래?"
"물없다는 표시 낼라고~~. 그래야 누가 한 방울이라도 줄 것 아니요?"
"하이고~~"

몇사람의 등산객들을 만났지만 인사만 나눴지 끝내 우리는 물 좀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 한 개 남은 오이를 금쪽같이 쪼개  먹으면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그 부부가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어쩐 일로 그냥 가셨데요?"
신세지기 싫어서 그랬다는 소리는 못하고, 산장지기가 밥을 좀 주어서 컵라면에 말아먹고 올라왔다고 변명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그 분들의 물통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말을 못하고 있는데 위기에 여자는 역시 강했다.
"물 좀 주실래요?"
"물이 떨어 졌어요?"
"네!"
아내는 어쩌면 저렇게 낮짝이 두꺼울까?
허기야 그 두꺼운 낮짝 때문에 소심하고 청백(?)스런 내가 굶지 않고 살아왔겠지만......^^

 

그분들로부터 0.5ml 피티병 한 개에 물을 가득 얻었다.
이제야 살 것 같다.
"먼저 내려가세요. 가시다가 물이 있는 곳 있으면 나뭇가지 꺾어서 표시좀 해주고 가세요"
"그러지요"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
이름은 모르겠고 철계단으로 이어진 아슬아슬한 두 개의 봉우리를 지나 또 아슬아슬한 철계단을 내려 얼마쯤 걸었을까?
산 아래에서
"아주머니!"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우리를 부르는 그 부부들이었다.
참나무 가지를 꺾어서 길에 늘여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놓으셨네?"
"혹시 물 뜨러 간사이에 지나가실는지 몰라서 표시해 놓았습니다. 물병 이리 주세요."
"아니오. 이젠 우리가 뜨러 갈랍니다."

월성재 샘터보다는 샘터길이 훤해서 뜨러 갈만했기때문이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고 나눠 드려도 됩니다"하며
댓병에 가득담긴 피티병에서 우리에게 물을 나누어주고 여분이라면서 빵도 한조각도 나눠준다.
참말로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우리는 단지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씩밖에 대접한게 없는데.....
염치 불구하고 받았다.
그것이 오히려 그분들의 성의에 보답하는 것이란 생각에서.

 

"인연있으면 또 만나요"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영각사에서 오후 2시반경에 서울행 차를 타려던 계획은 이미 글렀다.
뻗정다리가 된 나와 늘어진 팔자걸음이 된 아내가 하모니를 이루며 고로쇠나무 숲, 돌팍계단을 흐느적 하느적 내려오는데 그 시각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한분 있다.
사람본지도 오래여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 시간에 어디로 가세요?"
뻔히 삿갓재로 갈 것을 알면서도.....
"백두대간 종주하려고요."
"예???"
말만들어도 존경의 념이 절로 들어 경탄의 눈으로 잠시 말을 잊고 있는데, 그 산행객이 눈가에 웃음을 띄며 말한다.
"두분 내려오시는 걸 봤는데요. 산을 내려 가실때는 발을 八字로 딛으면서 내려가세요. 그래야 더 편합니다."
고수님 말씀데로 팔자로 딛으면서 걸어봤다. 효험이 없다. 걷던데로 다시 걸었다. 다리가 절로 꺾인다.

 

"어이. 앞에 가는 양반!"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설 힘도 없어 고개만 돌리니
"어디서 곤장 맞고 내려 가는 길이여?"
"뭔 소리?"
"흥부가 매품 팔고 엉기적이며 걷는 것 같어."
이 정황에도 농담이 나온는지.
"그려? 그럼 발 걸음부터 교정하고 가야지!"
마음은 영각사로 가면서 발걸음은 계곡의 물로 향했다. 우선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것이 순서라는 생각에서다.
물속에 발을 담궜다. 5분을 견디지 못하고 발을 뺐다.

갈수기여서인지는 몰라도 수량은 넉넉치 않았지만 물은 차가웠다.

 

영각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약 8산이 소요되었다.
앞으로 갔건 뒤로갔건 어쨌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남부끄러워서 "덕유산 국립공원 탐방로 현황"에 기록된 예정시간표를 여기서 밝히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장하게도(?) 우리 부부는, 백련사에서부터 영각사까지의 종주를 완수했다는 사실이다.

 

산에서 우리 부부는, 산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티격태격 더러 더러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위하고, 이나이에 이런말 하기 정말 남사스럽지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서울행 버스속에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자네 참 장하시" 했더니
"당신도...." 한다.

 

 

산하가족여러분!
인연 있으면 또 뵈요.

 

황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