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탐사대 : 일지 : 등반



  • 정왕동에서 노고단까지
    2004/07/31-05:00 일어나기, 준비물 점검
    2004/07/31-05:21 탐사대 출동
    2004/07/31-05:46 정왕역 도착
    2004/07/31-05:50 전철 승차
    2004/07/31-06:25 금정역 도착
    2004/07/31-06:44 수원역 도착
    2004/07/31-07:18 무궁화열차 승차
    2004/07/31-11:49 구례구역 도착
    2004/07/31-12:00 점심식사 (역앞 전주식당)
    2004/07/31-12:20 구례버스터미널행 택시
    2004/07/31-12:30 성삼재행 버스 승차
    2004/07/31-13:15 성삼재 도착
    2004/07/31-13:30 노고단으로 출발
    2004/07/31-14:16 명칭모름(노1.5)
    2004/07/31-14:35 노고단 대피소 도착
    2004/07/31-15:40 노고단 탐방로 입구 (정상탐방예약확인)
    2004/07/31-16:00 노고단 정상 탐방
    2004/07/31-17:20 노고단 대피소 (대피소 자리배정)
    2004/07/31-18:30 저녁식사(밥짓기/3끼분량)
    2004/07/31-20:00 잠잘 준비(마른씻기, 담요, 인사)
    2004/07/31-20:30 슬라이드 상영 시작
    2004/07/31-21:30 슬라이드 상영 끝
    2004/07/31-22:00 잠자기(리산 복통호소)
    2004/07/31-24:00 복통 (5시이후 복통이 계속되면 산행 포기)

  • 노고단에서 벽소령까지
    2004/08/01-04:30 일어나기
    2004/08/01-05:00 아침식사(눌은밥)
    2004/08/01-05:45 마른 설겆이
    2004/08/01-06:00 연하천으로 출발
    2004/08/01-06:14 노고단 탐방로 입구 (천 25.5)
    2004/08/01-07:06 피아골 삼거리 (천 22.3)
    2004/08/01-07:14 임걸령 샘터 (노 3.2)
    2004/08/01-07:54 노루목 (노 4.5, 천 21.0)
    2004/08/01-08:34 삼도봉 (노 5.5, 천 20.0)
    2004/08/01-08:56 화개재 (노 6.3, 천 18.7)
    2004/08/01-09:55 토끼봉 (노 7.5, 천 18.0)
    2004/08/01-10:23 명칭모름 (노 8.5, 천 17.0)
    2004/08/01-11:07 명칭모름 (토 2.0, 천 16.0, 연 1.0)
    2004/08/01-11:40 연하천 대피소 도착
    2004/08/01-11:45 휴식, 점심식사(주먹밥)
    2004/08/01-12:20 벽소령으로 출발
    2004/08/01-12:32 명칭모름 (천 14.3)
    2004/08/01-12:45 명칭모름 (벽 2.4, 연 1.2)
    2004/08/01-13:15 형제봉(벽 1.5, 노 12.6)
    2004/08/01-13:43 명칭모름 (벽 0.7, 연 2.9)
    2004/08/01-14:09 벽소령 대피소 도착
    2004/08/01-17:00 저녁식사(밥짓기/3끼분량)
    2004/08/01-18:00 숙소배정
    2004/08/01-19:00 휴식, 잠잘 준비
    2004/08/01-20:23 잠자기

  • 벽소령에서 장터목까지
    2004/08/02-05:00 일어나기
    2004/08/02-05:20 아침식사(눌은밥)
    2004/08/02-06:00 마른 설겆이
    2004/08/02-06:16 세석으로 출발
    2004/08/02-06:41 명칭모름 (벽 1.1, 세 5.2)
    2004/08/02-06:54 명칭모름 (벽 1.7, 세 4.6)
    2004/08/02-07:23 선비샘 (벽 2.4, 세 3.9)
    2004/08/02-07:51 명칭모름 (벽 3.3, 세 3.1)
    2004/08/02-08:28 칠선봉 (벽 4.3, 세 2.1, 장 5.5)
    2004/08/02-09:45 영신봉 (벽 6.7, 세 0.6)
    2004/08/02-09:59 세석 대피소 도착
    2004/08/02-10:50 장터목으로 출발 (벽 6.8, 장 3.0)
    2004/08/02-11:13 촛대봉 (세 0.7, 장 2.7)
    2004/08/02-12:26 연하봉 (세 2.6, 장 0.8)
    2004/08/02-12:45 장터목 대피소 도착
    2004/08/02-12:50 점심식사(주먹밥/라면)
    2004/08/02-13:30 휴식
    2004/08/02-17:00 저녁식사(밥짓기/3끼분량)
    2004/08/02-18:00 숙소배정
    2004/08/02-18:30 마른 목욕
    2004/08/02-18:40 잠잘 준비, 기록
    2004/08/02-19:30 잠자기

  • 장터목에서 정왕동까지
    2004/08/03-03:00 일어나기
    2004/08/03-03:30 천왕봉으로 출발
    2004/08/03-05:02 전왕봉 도착
    2004/08/03-05:50 다시 장터목으로 출발
    2004/08/03-06:07 통천문 (장 1.2, 천 0.5)
    2004/08/03-06:35 제석봉 (장 0.6. 천 1.1)
    2004/08/03-06:51 장터목 대피소 도착 (백 5.8)
    2004/08/03-07:30 아침식사(눌은밥)
    2004/08/03-08:40 백무동으로 출발
    2004/08/03-09:34 망바위 (장 1.0, 백 4.0)
    2004/08/03-10:24 소지봉 (장 2.8, 백 3.0)
    2004/08/03-11:03 참샘 (장 3.2, 백 2.6)
    2004/08/03-11:57 명칭모름 (장 4.0, 백 1.8)
    2004/08/03-12:57 백무동 야영장 (장 5.8)
    2004/08/03-13:17 백무동 매표소
    2004/08/03-14:30 인월행 버스 (남원행 14:00 놓침)
    2004/08/03-15:30 남원 버스터미널
    2004/08/03-15:48 남원역
    2004/08/03-19:20 휴식, 물 목욕
    2004/08/03-19:32 수원행 새마을호 열차
    2004/08/03-23:04 수원역 도착
    2004/08/04-00:35 탐사대 무사 귀환
    2004/08/04-01:00 짐풀기, 정리

     


     



    지리산 탐사대 : 일지 : 리산



  • 탐사 첫째날 (7월 29일 : 가방 챙기기)
    	가방에 꾸역꾸역 짐을 넣자!
    	상자에 필요한 걸 모으고 가방으로 들어가기!
    	나는 우비(비 올대 입는 옷), 겉옷 2벌, 왕지우개, 연필, 샤프,볼펜은 6개
    	그리고 모자, 팔에 차는 것, 작은 노트, 손수건, 칫솔, 치약은 소금,
    	컵, 비타민, 베개가 3개, 무겁지도 않네!
    	으히히 2.5Kg 밖에 안돼~.
    	아빠가 3Kg아래로 되야 한다고 하셨는데...
    	아빠가 자기 몸무게의 3분의 1이 되면(1/3) 안된다고 하셨다.
    	그 무게가 바로 3Kg(?) 
    	에~게~지만 아빠 말은 들어야지!
    
  • 탐사 둘째날 (7월 30일 : 마지막 준비)
    	마지막 준비를 했다. 가지고 다니는 작은 국자와 작은 주걱, 5개의 그릇,
    	작은 냄비 1(들고 다닐 수 있는 것), 그 안에 냄비 2, 냄비 3, 냄비 4,
    	모두 열면 그 안에 국자, 그릇, 주걱이 있다. 그리고 각자 물은
    	아빠가 5병씩이나 들고 가고, 나는 모자를 사오셔서 짐이 1개 더 늘고,
    	미숫가루도 챙기고, 얼음은 못 챙겨 ㅠ.ㅠ; 녹으니깐,
    	알사탕도 챙기고!! 왜냐하면 졸릴때 입에 넣고 깨물면 아프고.
    	진동이 오고, 소리때문에 잠이 확! 깨 버리니깐.
    	으싸! 어서 자서 내일 5시에 일어나자!
    	(원래 그래야 돼... -.-;;)
    
  • 탐사 셋째날 (7월 31일 : 출발)
    	힘차게 나아가기 전에 일어~~낫~! 기상!
    	아침밥 없음.
    	챙기고 나가서 기차, 전철타고 힘차게!~ 나아간다!!!
    	노고단에서, 노고단 자연탐방, 지금은 노고단이 훼손되어서
    	다시 복원 중이다. 그리고 노고단 산장에서 밥을 먹고
    	짐을 싸서 산장으로 옮기고 엄만 윗층 21번, 나는 아랫층 3번,
    	아빠는 아랫층 5번, 각자 짐을 옮기고, 씻고, 머리씻고,
    	발 씻고, 몸 닦고, 베개에 바람 불고, 기록하고 자자!
    	아니지;; 일기....는 다 썼다.
    
  • 탐사 넷째날 (8월 1일 : 벽소령으로!)
    	노고단에서 벌떡! 일어나... 데구루 구르고, 
    	데구루르 구르고 ( 근데 일어나서 어떻게 구르지?)
    	어쨌든, 밥 먹고 벽소령으로! 임걸령 샘...
    	노루목... 9:00 화개재, 삼도봉, 토끼봉, 12:10 연하천...
    	형제봉... 드디어 벽.소.령!
    	이젠... 저녁식사. 냐암 냐암, 숙소 배정!(짐풀고)<영차>, 휴식, 
    	랜턴 꺼내고 물끓이고, 밥은 먹었으니까 엄만 커피, 아빠도.... 
    	나는 코코아... 이젠 자자! 일기는 .... 또 다썼음!(진짜 자기)
    	드르러엉~쿨~
    
  • 탐사 다섯째날 (8월 2일 : 사탕받기)
    	낑 낑 ~, 힘들어, 어서가자 - 세석산장에서 1시간 쉬고 - ,
    	다시 헉헉, 핵핵 장터목이닷! 쉬자!
    	사진도 찍고... 점심먹고... 앉아서 쉬자!
    	그런데 웬 누나가 와서 내 뒷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누나가 몇살이니? 해서 글씨를 썼다. 3학년 10살 이라고...
    	말하기가 싫어서... 요번엔 이름을... 이번에도 땅에 
    	지리산 진짜 내이름 맞음. 이라고 썼다.
    	요번엔 좀 못 믿는 것 같았다.
    	돌쌓기 하다가 누나가 핫브레이크라는 초콜릿을 주었다. 
    	전에는 아저씨가 사탕 3개, 그리고 그전엔 아주머니가 
    	사탕 봉지에 사탕을 담아 주셨다.
    	히야~ 사탕 많다.
    
  • 탐사 여섯째날 (8월 3일 : 천天 왕王 봉峰 으로! 추울~발!)
    	장터목에서 버얼떠억! 일어나! 또 데구루루구룰까(?) 기이~상!
    	3시 30분, 준비를 하고, 발걸음은 무겁게 산행 가는 길~
    	일출 볼라꼬 헐레뻘떡 가서 일출 볼라꼬 그러는데
    	사람들이 햇빛이 나오면(해는 안나오고), 우아~~~ 
    	빛이 나오면 우아~~ 나는 그 때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진 것을 보았다. 나는 무서워서 절벽가까이 가기가 싫어졌다.
    	다행히 밑에 땅이 있어 많이 아프지는 않고 다치지 않았다. 
    	그리고 천왕봉(天王峰)이라고 쓰여있는 돌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천왕봉에서 아래를 보았다. 와~~~
    	나는 내가 구름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름이 있는 광경을
    	사진으로(물론 구름은 우리의 아래에) 찍었다.
    	역시 *천*왕*봉*은 하늘의 왕인 봉우리!!! 하늘의 기둥!!!
    
    	천   왕   봉   !
    
    	그리고 백무동으로 내려와 기차를 탔다(밤기차, 잠 안잠 -->)
    
    .
  • 탐사 진짜 마지막 일곱째날 (8월 4일 : 날샜다!)
    	그런데 그 기차는 식당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기차 였다.(놀이방도...)
    	그리고 의자의 팔걸이에 안에는 식탁이 숨어 있고,
    	옆 버튼을 누르면 다리대는 곳이 나왔다. 그 기차는 재미 있었다.
    	계속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23:21이라고 써있는게 아닌가!!! 
    	39분이 지나면~~~, 헥 조금 기다리니까 24시간!!!!
    	나~알이이 새앴다아~~~ 
    	드디어 집에 도착! 기념촬영! 1,2,3(카운트 다운),4,5,6,7,8,9,10! 찰칵!
    

    지리산 탐사대 : 일지 : 아빠

  • 1. 지리산 처녀산행
      피가 끊던 스물 둘의 나이에 선배2명, 동기4명이 한 팀이 되어 어머니의 웃음을 위해 극
    기 훈련을 왔었다. 배낭엔 우리의 합숙방을 채우고 있던 대부분의 살림이 기적처럼 꾸겨 넣
    어지고, 특별히 다량의 식량이 각각의 배낭에 분배되었다. 화엄사-노고단-세석-백무동. 세
    석산장에서는 가방무게 때문에 토론을 해야 했을 정도. 가방을 점령했던 굵은 감자들은 세
    석평전에 감자밭을 일굴 수도 있을 만큼 많았다. 하산 후에도 한동안 식탁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던 감자. 이때의 지리산은 야영의 기쁨 보다는 후들거리는 근육과 지나친 진지함으로 
    기억된다.
    
  • 2. 지리산 신혼여행
      한해 뒤에 또 왔다. 6월인데도 노고단의 밤은 아주 추웠다. 홑이불 하나로는 너무 추워서 
    좁은 2인용 텐트 안에서 마누라와 체온으로 버텼다. 노고단에서의 출발이 조금 늦어서 해 
    떨어지기 전에 세석에 도착하려고 거의 달리다시피 했었지만, 산길을 가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산속에서 만나는 세석평전의 경이로움이 좋았다. 천왕봉에서 칠선계
    곡으로 하산.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으니 이때의 산행이 신혼여행이 되었다.
    
  • 3. 지리산 탐사여행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지리산을 가슴에 묻고 살다가 드디어 올해, 나이 마흔, 더 늦
    으면 안 되겠다 싶어, 열 살이 된 지리산을 데리고 지리산에 오르기로 한다. 두 번 모두 남
    원에서 화엄사로 왔었기 때문에 구례구에서 삼성재행 버스를 타기로 한 것이 조금 불만스러
    웠다. 하지만 화엄사-노고단 구간은 이전 산행의 기억에 의하면 아주 힘에 겨웠고, 남은 일
    정들에서 산을 보는 즐거움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산은 대원사와 백무동을 저
    울질하다가, 상행선 열차타기가 쉽다는 이유 하나로 백무동을 택하였다. 
      사실 지리산에 가자는 말이 한두 번 나온 것이 아니었지만, 결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산이의 학교 과제 때문이었다. 생태체험 활동을 하고 체험 보고를 하는 것인데, 이산이가 '
    지리산 탐사대'라는 제목으로 과제를 수행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 4. 체력에 대한 우려와 준비운동
      날짜가 정해진 것은 7월 초, 그 동안 다니던 새벽 수영과 병행하여, 퇴근 후에 학교운동
    장을 달렸다. 3년 전에 당일 코스로 갔던 산행에서 거의 초죽음 상태에 이를 정도로 고생을 
    했었다. 끝 없이 계속되는 만복대 계단을 발을 질질 끌면서 들어 올려야 했다. 초등1년이던 
    아들 녀석도 다리에 힘이 없어 오르막을 오를 때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벌였었다. 산 중턱 
    쯤 가서는 오히려 내가 너무 지쳐서 두 모자의 재촉을 받아 가며 겨우 겨우 발을 떼는 지경
    에 까지 갔었다. 게다가 한 해전에 위장병으로 심하게 고생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에도 만복
    대 때보다 체력이 더 떨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물론 그 뒤에 담배도 끊고, 술도 
    자제하면서 새벽 수영을 다닌 것이 조금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최근의 관악산 등반에서 또 
    한번 고생을 했었다. 사당동에서 과천 구간을 토요일 오후에 무리하게 감행했다가 손전등도 
    없이 야간 산행을 하고 기진맥진한 상태가 돼 버렸다. 
      10층 계단 뛰어 오르기, 운동장 10바퀴 돌기, 팔 굽혀펴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 틈틈이 
    해둔 준비 운동 덕에 자신감도 생기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 5. 행장에 대한 고민
      지난 여행에 대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 없다보니, 장거리 산행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한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산행기를 찾아서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기
    도 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추위의 정도가 크게 다른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정도의 채비
    에 대한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물병에 점심 도시락이나 담아 들고 가까운 산에나 
    오르던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압박감이 자리를 잡았다. 65리터 배낭과 디지털 카메라를 사
    기로 했다. 침낭은 샀다가 집에 두고 갔다. 대피소 예약하고 모포를 빌리면 필요가 없다고
    한다.
      2주를 남기고 드디어 대피소 예약을 하게 되었는데, 예약 하루 전날 미리 좀 봐두려고 접
    속을 해보니 자정이 되자 순식간에 대기자 까지 꽉 차버렸다, 다음날 자정이 30분이나 남았
    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손가락을 꺾으면서 준비운동을 하다가, 편집기에 미리 입력해 둔 
    주소며 주민등록번호를 단축키로 복사해서 집어넣는 방법을 동원하여 무리 없이 예약을 할 
    수가 있었다. 8월 3일 장터목 예약에서는 서버에 연결이 안 되어 공단에 전화를 하기도 해 
    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예약 서버가 살아나면 알람을 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테스트 하느라고, 새로 고침을 소홀히 한 탓에 예약을 놓칠 뻔
    했다.
      그렇게 벌벌 떨며 대피소 예약을 했지만, 막상 산에 올라가 보니, 다음에도 여름산행을 
    한다면 산장 마당에서 비박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피소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면 산을 더 자유롭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6. 차편과 이동에 대한 문제
      차를 대원사에 놓고 삼성재로 가자는 것이 첫 번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하산 후의 운전
    을 위하여 산 위에서 몸의 상태를 조절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힘이 다 할 
    때까지 산을 걷다가 편안하고 여유 있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나의 주장에 
    모두 이견 없이 따라 주었다.
      수원에서 무궁화를 타고 구례구로 갔던 '지리산 탐사대'는 초반부터 심하게 허둥대기 시작
    했다. 거의 정오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삼성재 가는 차 시간도 모른 채 배부터 채우려고 
    하다가, 거의 2시간을 기다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더구나 4시에 노고단 자연 탐방을 예
    약해 놓은 상태라서 시간이 빠듯했다. 왜 구례구역 바로 앞에서 삼성재행 버스가 출발할 거
    라고 상상을 하고 그 버스가 자주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해버렸는지. 결국 택시로 10여분을 
    달려 터미널을 막 떠나려 하고 있는 12시 20분 발 삼성재행 버스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산
    행기를 꼼꼼히 읽고 좀 더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했었다.
    
  • 7.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탐사활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하긴 했지만, 탐사라는 주
    요한 목표가 산행이라는 부차적인 목표에 밀려서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백무동 하산 길
    에서 약초 공부를 위해 탐사를 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우리의 '지리산 탐사'는 목적과 수단
    이 뒤바뀐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악화든 양화든 거래가 잘 이루어지도록 
    자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처럼, 탐사를 위한 탐사대의 필요조건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 역
    시 탐사의 한 부분이라고 강변해 본다.
      탐사를 위한 세부계획이 없었고, 산에 대한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이 허접한 
    탐사와 기분 좋은 산행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 8. 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삼성재까지 오르는 차안에서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려하는 것은 성급하다. 멀미를 하는 사
    람이 있을 정도로 휘둘리고 급작스럽게 높은 곳에 올라서는 것으로 인해서 소화가 안 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다. 천천히 올라야만 아름다운 산세를 눈에 오래 담아 둘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에는 좀더 체력 훈련을 하고, 산 아래에서 부터 한 걸음씩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밤새 배가 아프다고 잠에서 깨는 이산이, 차안에서 멀미를 하던 학생, 구토로 인
    해서 일찍 자리 배정을 받고 누워있던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이 모두가 자연에 가깝게 다
    가가기 위하여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떼어내며 생기는 고통이다.
      삼성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대피소 거의 아래까지 돌길로 닦아 놓았다. 오후 시
    간이라서인지 많은 탐방객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어느 산에서나 
    비슷한 경관이다. 그러나 이 돌길이 크게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에 이르면 조망대가 만들어
    져 있어 아래로 보이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내가 지리산을 오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산자락과 계곡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웅장한 계곡의 모습은 가슴을 시원하게 훑
    어 내린다.
      노고단에서는 하루 몇 차례씩 정상에 이르는 탐방로를 개방하여 정상까지 복원된 자연환
    경을 설명하고 안내하고 있다. 이전에는 샘터가 가까운 곳을 명당자리로 해서 모두가 텐트
    를 쳤었기 때문에 거의 흙과 돌들만이 함께 뒹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잘 복원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의 정원이라 부를 만하다. 야생화와 야트막한 관목, 멀리 보이는 능선과 계곡 
    그리고 굽이치는 섬진강까지, 미리 신청을 안했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다음날 아
    침에도 역시 구름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부터 서두른 덕에 이슬 머금고 흔들리는 야생화에 취할 수 있었다. 능선 어디
    에서든 볼 수 있었던 동자꽃 그리고 원추리꽃. 이산이의 몸 상태가 걱정이 돼서 임걸령 샘
    터에 도착할 때까지는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언뜻 언뜻 보이는 발아래 흐르는 
    구름과 그 위를 타고 앉은 봉우리들의 웅장함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반야봉으로 가는 삼거
    리쯤 가서는 가족 모두가 제대로 산길에 익숙해져서 마음이 다들 느긋해졌다. 하지만 역시 
    반야봉은 무리라고 생각되어 그대로 지나쳤다.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으로 가는 길은 이 많은 탐방객이 엇갈리며 지나치는데도 산죽과 관
    목길 들이 더 이상 넓어지거나 사람의 손을 타서 훼손된 흔적이 없어 가슴이 뿌듯해진다. 
    괜히 길을 낸답시고 스틱을 휘두르거나, 비켜설 만큼 넓지 않은 곳에서 무리하게 수풀을 뭉
    개면서 지나치거나 하는 일 없이 누구나 지리산 능선을 소중히 아낀 결과가 아니겠는가?  
      벽소령에서 다시 하룻밤을 지새우고 장터목으로 향한다. 칠선봉에 가는 도중에 밖으로 보
    이는 산세가 곱다. 특히 영신봉으로 가는 도중에 긴 계단을 오르고 나면, 장터목산장이 멀
    리 눈에 들어오고, 뒤로 돌아서니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른 사
    람들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세석평전에서 느꼈던 시원함, 후련함은 색다른 것이다. 복원이 되어 푸르게 변한 모습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서 조금 어리둥절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석평전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과거의 좋지 못한 모습을 그리워해서는 안 되겠지. 마치 유신이나 일
    제 강점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한 시간쯤 쉬고 
    촛대봉에 올라서 다시 세석평전을 보니 예전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장터목에 도착하니 날씨가 좀 흐려지는 듯하더니, 구름이 능선을 휘감으며 비를 뿌린다. 
    역시 산에서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조화는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다. 비로 인해 어수선한 대
    피소에서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새벽에 청왕봉에 올랐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태양은 
    떠오를 시간이 지나서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노고단에서 보지 못한 운해가 돌
    아선 발아래에 펼쳐졌다.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눈으로 이 광경을 직접 대하지 않은 사
    람에게 어떻게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겠는가? 그저 올라보라! 가서, 보고, 느끼라! 고 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9. 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산은 사람이 찾아오면 그 사람의 심성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발길질을 하면 하
    는 대로, 더럽히면 더럽히는 대로, 무너져 내려야 하면 무너져 내리고, 밟혀야 하면 밟히면
    서 훼손과 복원을 그대로 기억하며 이곳에 있는 것이다.
      힘든 것을 싫어하면서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힘 좀 덜 들이겠다고 미답지를 뚫어
    서 직선 길을 만든다. 썩는 건데 어떠냐 하며 음식찌꺼기를 산속에 뿌리는 사람, 큰 소리로 
    쉴 새 없이 고함치듯 떠들어 대는 사람, 하지 말라는 야간산행을 기어이 하다가 길가에 누
    워 잠드는 사람. 산에 기대고 사는 다른 많은 동물이 있다. 그들을 우리가 배려해야 한다.
      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제일의 덕목은 인(仁)이다. 산에 오르면 마음이 넓어짐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든 품어주는 넉넉한 산이 우리에게 베푸는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든 
    쉽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집착과 아집을 버릴 수 있도록 하는 이 힘은, 우리가 산
    이 보여주는 모범을 배우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민족 기상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의 내우와 외환을 타고 흘러든 놀란 
    가슴들에게 쉴 곳을 내어준 산이다. 이 길 위에 그려진 역사의 핏자국이 의롭게 살다 지고
    자 한 외로운 영혼들을 기리도록 한다. 지금도 국외의 어떤 전장 마당에서는 이산이 또래의 
    아이들이 난데없이 날아든 포탄과 총탄에 비참하게 스러져가고 있다. 민족에게 의(義)의 길
    을 가르치고 있는 지리산을 가슴에 담는다.
    
  • 10. 감사의 말
      노고단에서 만난 용인의 두 부자, 노고단 자연 탐방로에서 친절히 환경공부를 안내해 주
    신 직원 여러분, 물의 소중함을 역설하시던 벽소령의 직원, 그리고 동행한 아이를 잘 챙기
    라고 주의를 주시던 세석의 직원, 공단에서 고생하시는 모든 분과 세석에서 만난 강 부잣
    집, 특히 수원에서부터 백무동까지 동행하며, 힘을 나눠 주신 수원의 일가족, 이산이가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산이 아니라면 어디라서 이렇듯 서로에 
    대하여 힘차게 격려해 주고, 마음을 열어 도움을 나누는 것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을 수 있
    겠는가? (노고단에서 만난 용인의 정군, 그리고 수원의 가족께서 이 글을 보시고 연락을 주
    시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지리산 탐사대 : 일지 : 엄마

  • 아들‘지리산’과 함께 지리산을 다녀와서
      15년 전 남편과 함께 지리산종주를 하고 이번이 두 번째다. 그 당시 남편과 함께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에서 1박, 세석에서 2박을 하고 천왕봉을 오른 뒤 칠선계곡으로 하산 하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땐 느낄 수 없었던 감회가 이번 산행엔 특별한 느낌으로 남는다. 아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 전 부터 남편은 산행을 위해 운동장을 달리고 10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걱정을 하였다.
      부담을 가지고 7월의 마지막 날 새벽에 일어나 7시 38분 수원역을 출발, 12시쯤 구례역에 도착하였다. 
    성삼재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 한결 수월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잘 닦여진 노고단까지의 산행은 지
    루하기까지 하였다. 
    
    첫째날 : 
    
      노고단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여 가볍게 노고단의 자연탐방로를 자연해설 도우미들의 도움으로 탐
    방하고 저녁 후 숙소배정을 하고 슬라이드 상영으로 일과를 마친다.
    
    둘째날 :
    
      밤새 아들 지리산이 배가 아프다며 뒤척인다. 깜박 잊고 소화제를 빠뜨리고 온 걸 후회하고 있을 때,
    새벽 잠결에 일어나 선뜻 소화제를 꺼내주신 분이 고맙게 생각된다.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옆자리에서 일
    어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 4시 30분.
      6시에 노고단에 다시 올라 혹시 운해(雲海) 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였으나 맑은 날씨 탓에 기대는 
    어긋났다. 대나무 숲 사이 길을 따라 걸을라치면 여기 저기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잰걸음을 멈칫거리게 하고 
    혹시 아들이 어젯밤 아팠던 배가 다시 아프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완주를 기도하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
    쁨에 대한 설레임을 기대하며 본격적인 산행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의 숙소는 벽소령, 돼지평전에 펼쳐진 산세는 한숨 숨을 돌릴 만큼 시원스러웠다. 다시 임걸령 샘터
    에서 목을 축이고 노루목에서 잠시 쉬었다. 두어 시간 지났나보다. 잘하면 12시쯤 벽소령 숙소에 도착
    할 수 있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걷기 시작했다.
      동자꽃,  이질풀, 산수국, 원추리... 주변에 함께하는 야생 꽃들이 이번산행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같다. 
    십 여 년 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라면 군데군데 나무로  만든 인위적인 계단과 철 계단을 늘어놓은 것
    이 영 거북하였다. 위험의 부담은 줄일 수 있겠지만 산행의 참맛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슬슬 아
    들이 힘이 들어 하는 모습이다. 토끼봉까지 오르는데 조금 투덜거린다.
      연하천에서 비닐에 넣어온 찬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다. 아들은  사발면을 먹겠다고 한다. 매점에
    서 3,000원이나 하는것을 고생한 아들에게 기꺼이 사주었다. 사실 집에서였으면 벌써 몇 번이고 투덜
    거리고 삐지고 했을 녀석이 제법 의젓하리만큼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게 기특하다. 
      수원역에서 출발할 때 만났던 가족이 계속 눈에 띈다. 일정을 물어보니 우리가족과 하산하기까지의 일
    정이 똑같다. 눈인사로 반가움을 표현하던 것이 이제 서로 조금씩 걱정하게 되었다.
      1시가 다되어서야 벽소령에 도착했다. 7시간정도의 산행이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물, 물이 귀하다. 노고단에서 느끼지 못했던 난관이다.,
      휴지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 그것까지는 버틸 만한데 몸을 씻지 못하는 괴로움이 힘들다. 60미터 내
    려가서 줄을 서서 겨우 수통을 준비하지 못한 덕에 코펠과 작은 물병 3개에 물을 받아와서 내일 아침
    까지 쓰기로 하였다. 소금양치를 하는데 아들이 양치물을 많이 쓴다며 잔소릴 한다. 소금은 그냥 삼켜도 
    되니까 헹구지 말란다. 물을 아껴 쓰라나...
      눈치 보며 물을 조금 얻어 겨우 입안에 한 모금 물고 우물우물 퉤! 그게 전부이다. 숙소를 미리 예약하기를 
    다행이지 피곤에 지쳐 힘든데 숙소를 정하지 못해 분주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수원에서 온 가족과 이젠 가까워졌다.
      딸 서진과 엄마는 어렵사리 방을 배정 받았지만 아빠와 아들 호진을 비박을 해야 한다는데 아주머니는 
    걱정을 하신다. 어찌할 수 없었지만 아들 호진은 한번 비박해 보는 것도 괜찮다며 위로를 한다. 고단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했지만 여기저기 쑤시는 데가 많다.
    
    셋째날 :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일어나 아침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을 깨우니 비틀비틀 정신이 없다. 그래도 
    부스스 일어나 걸어오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물병을 들고 산행 중 마실 물을 뜨러갔던 남편이 그냥 올
    라 왔다. 줄이 너무 길단다.  
      6시, 벽소령을 뒤로하고 가볍게 산행시작,  선비샘을 보고 너무 반가워 배에 물을 가득 채웠다. 물론 물
    병에도 가득,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니 넓게 펼쳐진 세석평전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세석 평전을 보며 
    옛 생각에  젖어본다. 그전과 색 다르게 복원공사로 정갈하게 정리되어진 모습이지만 그래도 세석은 예
    나 지금이나 푸근하다. 오히려 뻘건 흙을 내보이며 있던 야영장의 모습보다 지금 나무와 풀들로 채워진 
    모습이 더 보기 좋게 느껴진다. 물론 자연스러움은 없어졌지만 ....
      세석평전을 뒤로하고  촛대봉에 오르니 한 가족이 쉬고 있다. 아이이름이 영신이라나... 초등학교 3학년 
    우리아이와 같다. 제법 씩씩하게 산행을 한다. 장터목까지 가는 길,  햇볕이 따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
    쳐할 수 없다. 아들이 있기에   더 그러하다. 허리도, 어깨도, 다리도, 발가락도 아파서 힘이 들지만 꾹
    꾹 참아본다. 장터목에 가까워 졌을 무렵 산 아래에서부터 하얀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쨍쨍하던 하늘이 
    금 새 구름으로 덮였다가 다시 해를 내보이고를 반복한다. 물을 뜨러 갔던 남편이 한참 만에 온다. 여기
    도 물 사정이 좋지 않다나...  점심을 먹으려는데 아들은 라면을 끓이란다. 그것도 신라면 ... 없는데... 
      옆자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리던 아저씨들이 라면을 건네신다. 김치도 주셨다. 허겁지겁 요기를 
    하고 쉴 자리를 찾아본다. 다음엔 자리를 꼭 가져와야지 쉴 곳이 마땅찮다.   겨우 자리를 잡고 쉬려는
    데 수원일행이 온다. 자리 잡는 것을 보고 다시 자리에 누우려는데 빗방을이 떨어진다. 얼른 짐을 챙겨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큰비가 오려나보다 싶어 이른 저녁을 준비해서 먹었다. 아니나 다
    를까 장대비가 내린다.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오던 길에 초등학생이 길을 잃어 아직 찾지 못했다는데 
    119구조대, 소방헬기, 경찰관이 동원돼서 찾아보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단다. 비는 내리는데 걱정이
    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등산객들이 비를 피해 모두 숙소로 들이닥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쟁 때의 피난
    살이가 이러했을까?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부족한 공간에서 오늘밤 모두 함께 보내야 한단다. 잠자기는 
    틀렸군! ...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누웠지만 어느 쪽으로 누워도 편하질 않았다. 엉덩이, 다리, 팔, 어깨 
    안 쑤시는 데가 없다. 
      엎치락, 뒤치락 깜박 잠을 청하고 눈을 뜨니 옆자리는 벌서 산행 준비를 한단다. 
     
    넷째날 :  
      새벽 2시 30분, 좀 더 잘까 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남자 숙소로 가서 남편을 깨우려니 보이질 
    않는다.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고 산행준비를 했다. 3시 30분 벌써 줄지어 천왕봉을 향해 오르고 있다. 
    밤사이 비가 내려 바위가 미끄럽다. 손전등을 하나밖에 준비하지 못해 앞사람의 발만 쳐다보며 겨우 올랐다. 
    계속되는 바위길 칠흑같은 어둠, 두려움을 뒤로하고 차츰 동이 터오려나 보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는 일이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올랐다.
      통천문을 지나 드디어 천왕봉!!! 5시 2분이란다. 아직 동이 터오지 않은 하늘에 달이 밝게 떠 있다. 해 
    뜨는 시각이 5시 20분이라는데 좀처럼 구름이 비껴서질 않는다. 구름사이로 여명이 비추는데 둥근 해는
    보이질 않는다. 약간의 실망과 함께 돌아내려 오려는데 구름바다가 출렁이는 사이로 작은 섬 산봉우리들이 
    보였다가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일출을 보지 못한 서운함이 싹 가신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운해가 출렁인다. 출렁이는 운해를 가르며 천왕봉을 내려왔다. 
      식수 전쟁!!! 물통을 채워야 산 아래 까지  갈수 있을 텐데...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드디어 하산을 한다. 
    백무동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하였다. 
    
      8시 장터목산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
      발걸음이 가볍다. 여유 있게 걱정하는 어른들께 전화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내려간다. 사실 이틀 동안
    의  산행은 여유가 없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소홀했다. 이제는 한껏 여유다. 내려가기만하면 된다는 생각
    뿐이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만만찮다. 그래도 백무동 길이 순조롭다 하여 택하였는데 지리산은 역시 쉬운 곳
    이 없는 것 같다. 계속되는 돌길에 가파르게 내리닫는 길을 내려오자니 무릎이 욱씬욱씬 쑤신다.
    5시간에 걸쳐 몸서리를 치며 내려왔다. 매표소 근처엔 야영장이 있고 계곡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 
    다. 몸을 담그고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렇게 쉬운 방법도 있는데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버스 타러 내려가는 길에 산에서 만난 서진이네 
    가족과 만나 산채비빔밥을 먹고 남원 가는 버스에 오른다.  
    
      3박4일 동안의 산행을 마치고 정리하면서 할 말도 많고 감회도 크다.15년 전의 산행은 별다른 느낌보다는 
    그저 산을 오른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즐거움이었다.
      그에 반해 이번 산행은 그 의미가 크다. 아빠가 아이의 이름을 ‘지리산’이라 지어놓고 내심 부담감
    을 갖고 생활해 왔던 것 같다. 이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었다. 예상보다 아이는 잘 
    적응했고 요즘은 이름 때문에 자기를 기억해 주는 것을 즐기는 눈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와서 1학년 
    때 자기이름의 산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1박으로 산악회를 따라 만복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어른들을 
    따라가는 산행이라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의외로 잘 따라 주었다.
      가까운 산행은 가족이 가끔씩 즐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긴 산행은 처음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먼저 산행하는 동안 너무나도 대견스럽게 힘들다는 표현하나 
    없이 잘 따라준 아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더욱 고마운 일은 남편이다. 평소보다 훨씬 더 넓어 보이는
    어깨를 볼 수 있었다. 3일 동안의 식량과 옷가지들을 챙겨 짊어지느라 힘들었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내 걱정을 해주는 모습에 새삼 고마움이 느껴진다. 평소 보지 못했던 남편 어깨의 무게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또 산에 가면 사람들이 좋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친근하다. 어린꼬마가 산행하는 것을 격려해주는 
    사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식료품들  서슴없이 나눠주기. 세상의 모두가 산사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
    해본다.
      이번 지리산종주에서 새삼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역시 환경이었다. 도심 속에서의 환경오염만 가까웠지 
    이 깊은 산속에서 몸살을 앓았을 나무와 풀과 동물들이 있다는 것은 와 닿지 않았다.
      자연을 훼손시켜가며 도로를 내야했고, 편의를 위해 야영과 오물투척을 자연스럽게 해왔던 세월들을 복
    구하느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붙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새삼 자연의 소중함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깨끗하게 씻지 못하면서도 불만스러워하지 못하고 3박 4일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복원된 지리산의 여기저기를 보면서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도 십 여 년 전에 이곳에서 야영을 
    했었는데... 
      산행동안 마주쳤던 많은 사람들 중‘지리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기억해 주고 격려해 주었던 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고 싶다. 수원의 호진이와 서진이의 명랑, 씩씩함도 보고 싶고, 장터목에서 신라면을 
    주신 아저씨도 감사하고, 리산이를 기억하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주겠다던 젊은 연인들, 노고단에서 자
    연해설해 주시던 분들 모두모두 감사하다.
     
    다음엔 조금 더 준비된 산행을 하고 싶다.      
    


    지리산 탐사대 : 일지 : 사진자료

  • 출발한 사람들과 도착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