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15. 처음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 대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겨울을 맞았고, 그때부터 근 1년을 쉬고 있다가 얼마전부터 다시 대간길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대간길을 잇기위해 화령재로 내려갑니다. 

문득 지나 온 날들이 그리워 몇장의 사진을 올려봅니다.

 

(초상권 침해가 안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해 봉화산 구간을 가면서 복성이재에서 올라가니 헬리포트가 나왔습니다.

헬리포트에 올라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봉화산을 떠난 대간주자 한분이 엄청난 배낭을 메고

 

월경산에서 비박한후 봉화산(뒤 배경이 봉화산인 것 아시죠?)을 떠나 헬리포트 위로 힘겹게 올라 섰습니다(위 사진).

남진중이라고 하셨는데 그때 무사히 대간을 끝내셨겠지요.

 

추풍령에서 부터 계속 무지원 남진중이라고하였는데 물이 다 떨어졌다고하였습니다.

조금 더가면 대간길 새멕이재에 물이 있다고는 알려 주었지만 지나고 나서 내 물통에 있는

 

물을 나누어 주지 못한 것을 지금까지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모양새는 서울역 지하에서나 볼수있는(?)

남루한 차림새 였지만(대간 꾼이 다 이렇죠?ㅎㅎㅎㅎ) 말을 나누어 보니 가방끈이 무척 긴분같았습니다.^^

 

대간길에 만났던 멋진 분이었기에 사진을 올려 봅니다.

그때 철이없어서 미쳐 물을 나누어 줄 생각을 하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올립니다. 

     

지난해 광대치를 중재로 착각하고, 또 광대치 직전 무명봉우리를 월경산으로 착각하고 그 무명봉에서

모 사장님에게 중재로 차량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광대치 내려서기직전 우측을 보니 산허리를 도는 임도가 보이기에 저는 그 임도가 중재인 것으로 굳게 믿고

광대치에서 정신없이 그 임도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차량은 없고, 간간히 터지는 통화는 이어지다 끊어지다를 반복하고, 안되겠다싶어

정신없이 수풀과 잡목을 헤치고 마을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광대치에서 대안리로 내려가는 길은

 

희미합니다). 마을로 내려가 물아보니 제가 내려 선곳은 중재가 아니라 광대치였고, 그 마을은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오지인 대안리 마을이었습니다. 

 

그때 마을 어귀에 있는 위 사진의 할머님이 저를 할머님의 집으로 인도하여 집전화를 사용하게 하시면서

손수 택시를 불러 주셨고(중재 차량 사장님은 대안리까지 못간다고하면서 난리가 났었습니다..제탓입니다만

 

죄송합니다..에혀..), 집앞 감나무에서 따놓은 감이며, 냉장고에서 꺼낸 도회지의 음료수까지 건네 주셨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하였으나 사양하였고....택시가 도착하자 택시기사와 택시비 흥정까지 해 주셨습니다.^^

 

할머님덕에 함양까지 무사히 대안리를 탈출하여 서울로 올라올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1년후 대간을 다시 이으면서 할머님 드릴 내복을 한벌 산후 육십령서부터 배낭에 메고 광대치로

역주행해 갔습니다. 혹여 새벽에 광대치에서 출발하여 할머님을 깨우게 될까 우려되어 저녁에 드리려고

 

일부러 대간길을 역주행해 갔던 것입니다(육십령-광대치 구간은 지금까지의 대간길중 유일한 역주행 길입니다).

육십령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광대치를 지나 대안리 할머님 댁에 저녁에 닿았으나 할머님은 며칠간 출타 중이셨습니다.

 

옆집 할머님에게 내복을 전해 드리도록 부탁드리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대안리를 떠나 왔습니다.

위 사진은 저녁에 광대치에 도착한후 조금후에 만날 할머님을 생각하면서 대안리 마을을 바라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몇주전 큰재에서 차량을 히치했습니다.차에 타고보니 배낭에 흙과 낙엽이 묻어 있어 다시 차에서 내려 배낭을 털었으나

옷을 갈아입었다 하더라도 목욕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땀냄새도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차량 뒷자리 제옆에 앉으신분은 상주시 국회의원이신 이상배 의원님이셨습니다.

이상배의원님은 27세에 울진군수를, 33세에 경북지사를,  90년대 초에는 서울시장을 하셨던

 

꽤나 명망있는 분인데 정치에 관심이 없다보니 제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죠.^^

이날도 지역구에 내려와 암암리에 지역구를 돌아보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이분은 저를 모동면 버스 정류소까지 태워다 주시면서 저에게 차에 있으라고하면서 우정 차에서 내려

모동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 서울가는 차편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아래사진은 제가 너무 죄송해서 뒤늦게 차에서 내린후 버스편을 알아보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나 전에는 모동 버스정류장에서 서울가는 버스가 있었으나 손님이 없어서 지금은 서울 노선이

없어 졌다고합니다. 그러자 의원님은 저를 상주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물론 제가 모동면에서 내려서

 

그냥 가겠다고 우겼는데도 말입니다. 등산객에게 이렇게 친절하신 고관대작님은 난생 처음보았습니다. 

지난 선거때 왜 몰표로 당선되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사진이 바뀌었지만 저위에 신의재 터에서 찍은 사진은 모동면 버스 터미널을 떠나 신의재터를 지나 갈때

제가 다음 구간때 내려설 곳이라 사진 촬영을 요청했더니 기꺼이 차를 세워 촬영에 응하셔서 한방 찍은 사진입니다.

지기재 도로를 건너 나즈막한 등로를 오르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우측 사과나무 아래서

한무더기의 사과를  쌓아 놓고 수확한 사과를 고르고 계십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인지라 사과 하나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싶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려는데 아주머니는 사과하나 먹고가라며 흠집이 난 사과하나를 건냈습니다.

 

얼씨구나 반가운 마음으로 아주머니 앞에 자리를 펴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앉은자리에서

아주머니가 주신 사과하나를 뚝딱 해 치웠습니다.

 

몰골이 불쌍했던지 아주머니는 사과 하나를 더 건냈고, 건네받은 사과를 또 하나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사과하나를 또 건네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어느정도 갈증과 시장기를 해결한 나는 가지고 가다가 식사후에 먹겠다고하면서 배낭을 열어

배낭 한켠으로 소중하게 집어 넣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를 먹은 보답으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마침 가지고있던 새 담배한갑을 꺼내 아저씨에게

드리라고 아주머니에게 건넨후 다시 햇빛 따사로운 정오의 가을하늘 밑을 걸어 갔습니다.

 

길을 떠나는 저에게 아주머니는 내년 이맘때 다시 오라고 하십니다.

 

이길을 다시 오게 되지는 않겠지만 갈증으로 숨넘어가던 그때 아주머니의 그 마음씨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우리네 시골인심 그대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