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수와 영시암은 불사중]
因緣을 소중히 하고자... [설악보듬기 10] | 인드라망 2006/08/22 10:49  
http://blog.naver.com/ckcssh/100027705670
[永矢庵 遺墟/영시암 옛터]
                          -凌壺觀/李麟祥-
(1)
三淵翁의 기이한 일 전하여 오니
산에 사는 취향이 아주 濃厚하였네.

밤이 깊은 水簾洞(수렴동)
가을비 개인 고명봉
흔히 구름가에 가서 춤을 추고
때로는 눈 속에서 발자취를 잃었네.

지금은 禮樂에 뜻 둔 이 菽廖(숙료)하고
가곡 만이 스스로 봄의 모습이네.


(2)
여러세대에 보기 드문 호걸이 나시어
문명을 華夷(중화와 오랑캐)에 떨치셨네.

耕鑿(경정착정)의 뜻에는 부응하지 못하였으나
이 분은 곧 제왕의 師傅(사부)였네.

氣數는 궁한한 운명으로 돌아갔으나
天人은 영묘한 사상의 세께에 드셨네
우연히 큰 바다와 큰 山嶽을 만나
浩蕩(호탕)하게 소리 내어 시를 읋으셨도다.


(3)
일단 학문의 도를 經綸한다면
내 누구를 軌轍(모범으로 할 선배)인 종사를 삼을까?

靜老(조정암을 말함)는 나라를 위하여 뜻이 있었고
潭翁(서화담을말함)은 이치를 분석한 공이 있으며
대강은 宋子(송우암을 말함)를 존경하며
성의는 重峯(조헌을 말함)을 우러러 보도다.

그러나 規範의 테두리 밖에서
玄妙(도교와 불교)를 융합하시니
先生께서도 蒙昧(몽매)함을 啓發하셨도다.
-----
영시암 회주이신 雪峯스님과 마주앉아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벌써 설악의 해는 고명봉을 넘어간다.
스님의 수행담은...대학을 졸업하구서 공부나
더 해볼 요량으로 속리산 복천암에서
관응(觀應)스님을만나게 된 것이
실로 큰 인연이었다하신다.

복천암에 들어간지 3년만에 직지사에서 관응스님을
은법사로 하여 戒를 받고 스님이 데었는데...
그후 만행중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설악산 오세암이었고 다음에 봉정암으로 옮겼다가
1966년부터 1970년까지 백담사주지로 있었는데
그 무렵 오세암과 백담사 사이를 오가면서
영시암유허의 존재를 알았고,
그후 우연한 인연으로 1968년
삼연선생의 11세손이신 如初居士
김응현선생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는 큰 인연이었습니다.
함께 늘 영시암의 복원을 의논하던차에
1987년 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복원에
진심한 것이 40년이 되신단다.

이 영시암은 내설악의 중심에 위치하여 백담사를 출발하여
오세암 봉정암을 돌아 내려오는 불교성지순례
코스의 길목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영시암의 역사재적 가치를 조명하고 암자를 창시하신
삼연 김창흡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관련되는
사료와 시문을 모아 이 뜻있는 책자를 만들었답니다.

이책을 통하여 맨처음 암자를 창시하신 삼연선생과
의기투합하셨던 雪淨스님과의 인연은...
설정의 법통을 이은  雪峰道允 과 삼연선생의 혈통을 이은
여초거사와 김희동사장(영가문화사사장)  
이 두분과의 인연은 실로 300여년의 時空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으니 ,
이 얼마나 기연이겠습니까?

독자여러분께서도 아무쪼록
이 책을 읽고 因緣을 소중히 하는 계기를 삼으시고,
만상에서 佛性을 보시기를 願하는 바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불기2549년(乙酉) 立夏之節
님들의 많은 불사 부탁드립니다.
----
오늘도 스님께서는 경내외
개울가에 쌓여있는
수해의 잔해를 치우기위해
구슬땀을 훔치고
계시겠지요.
---
08월14일 늦은 3시에
보살2분,거사1분과 함께
스님과 상주보살2분께
동행의 기약을드리며
합장드립니다.
내설악 보듬기에서 큰인연을
주신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2006년08월15일
진부령에서
白霞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