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을 걸은 지리산 종주

 3년 동안이나 벼루어 오던 지리산 종주를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지리산 종주 일정을 3박 4일로 계획하였으며 15일 전부터 노고단, 벽소령, 로터리 산장에 숙박 예약을 미리 하였다.

 

 8월 2일 10시 20분 경에 집을 출발하여 백무동에 차를 세워두고 성삼재에 영업용 택시를 타고 도착하였을 때는 오후 4시 30분 경이었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도중에 비가 내려서 비옷을 입고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차도를 따라가면 길은 평탄하였지만 멀어서 험하지만 가까운 돌계단 길로 올라갔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였을때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하였고 우리가 배정받은 가족실이 있는 제2대피소로 빨리 뛰어갔다. 침실에 들어가자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을 때 아버지께서 기상특보가 내려지면 내일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취사장에서 참치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하고 올라올 때는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려 정말 하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빗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볼 정도로 몹시 걱정이 되었나 보다. 5시 30분쯤 일어났을 때는 다행히도 비가 그쳐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벽소령으로 출발했다. 밤새 비가 내려 새벽 공기가 싱그럽고 구름이 주위를 자욱이 에워싼 길을 걸어 노고단 고개에 이르렀다.

  

 노고단 자연탐방을 계획하지 않아 우리는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길을 가지 않고 바로 임걸령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못내 아쉬웠다. 대신 노고단 고개에 있는  표지판과 함께 반야봉, 노루목, 삼도봉, 토끼봉 맑은 날은 촛대봉, 천왕봉까지 보이는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이 들어오는 곳에서 잠시 쉬면서 도표보다 멀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돼지평전을 지나 임걸령까지 왔다.

 

 임걸령 샘에서 물병 두 개에 물을 채워왔다. 물맛이 시원했다. 아버지께서도 임걸령 물맛이 좋다고 하셨다. 임걸령을 출발해 노루목에 도착했다. 여기가 반야봉으로 가는 갈림길인데 우리는 오늘 벽소령 산장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노고단 정상과 함께 반야봉도 가지 못하여서 아쉬웠다.

 

 삼도봉에 이르러 삼도를 표시하는 삼각뿔 모양의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삼각뿔에 삼도봉의 높이가 1550m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1499m로 알고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삼각뿔의 끝은 등산객들이 하도 손으로 쓰다듬어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여전히 구름은 걷히지 않고 있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 길에 나무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이 계단이 유명한 지리산 550계단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와 위치로 보아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루한 나무계단길이 끝나자 곧 화개재가 나타났다. 화개재는 아주 넓었다. 화개재는 옛날 세 도의 물물교환 장소였는데 탐방객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많이 훼손되어 한가운데로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토끼봉 정상에 이르렀다. 야생화가 주위에 아름답게 피어 있어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었다. 명선봉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지나쳐 가다 보니 어느새 지리산 550계단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내 확신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희미하게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와서 연하천 산장 부근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1시 정각에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였다. 노고단 산장에서 출발한지 6시간 30분 만이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라면과 햇반을 사서 라면을 끓여 먹고 국물에 햇반을 말아 점심을 먹었다. 꿀맛이었다.

 연하천은 화장실이 몹시 불결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벽소령으로 출발하였다.

 

 지리 10경 중의 하나인 연하선경을 둘러보려니 깊은 바다 속에 잠긴 듯 자욱한 구름 속에 고사목 몇 그루만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서 있었다. 형제봉 부근을 지나치는 길에 또 소나기를 만났다. 바위 밑으로 비를 피하려는데 벌써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 하는 수 없이 비옷을 꺼내 입는 중에 비가 그쳐 버렸다. 숨이 차서 헉헉 대며 간신이 벽소령에 도착했다. 시간은 4시 50분이였다. 대피소 입실 시간이 6시부터라 대피소 마당에 앉아 기다리려는데 그쳤던 비가 그새 또 쏟아졌다. 중앙 홀로 뛰어들어가 젖은 옷을 아버지께서 널어 말리면서 몸살이 났다 하신다.       

    

나는 벽소령 산장에서 파는 지리산 엽서를 샀다. 엽서 그림이 정말 좋았다.

 벽소령 마당가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이 신기하였다. 나는 여기까지 우체부 아저씨가 다니는지 궁금하였다. 엽서에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어 집에서 받아 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이윽고 방 배정 시간이 되어 1층에 들어가길 원했는데 다행히 1층에 들어가게 되어서 기뻤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숙소에 들어가시자 마자 누우시는 것을 보고 불안했다.

 어머니께서 저녁을 지으려고 버너에 불을 켜자 불꽃이 솟아올랐다. 깜짝 놀라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께서 간단히 손 봐 주시고는 저녁이 다 되면 부르라고 하시며 다시 들어가셨다. 저녁이 완성되어 식사를 하려는데 한결이가 보이지 않았다. 벽소령이 짙은 비구름에 뒤덮여 어둑어둑해 지는데 혼자 개인행동을 하지 말라고 단단이 일렀건만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벼랑 밑에 있는 샘터에서 물을 담아 왔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내 나이 또래의 아이가 그저께 세석 부근에서 실종된 일도 있어서 아버지께서 놀라시고 화가 나셨을 것이다.

 뒤척이기도 힘들만큼 비좁은 마룻바닥에서 아버지의 몸살이 낫기를 바라며 피곤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버지께서 카메라로 새벽달을 찍고 계셨다. 벽소령에 뜨는 보름달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구름 때문에 보지 못해서 사진을 찍으시는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쯤 느지막히 세석으로 향했다.

 우리는 덕평봉,칠선봉,영신봉을 거치는 도중에 다람쥐가 자주 눈에 뛰  었는데 그때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 같은 모습이 앙증스럽고 귀여웠다.

 

 선비샘에 도착하여 땀으로 뒤범벅이 된 머리를 감고 다시금 길을 재촉하여 세석에 도착했다. 세석 대피소에서 보니 세석평전이 한눈에 보였다. 처음 지리산 종주 계획에는 오늘 세석을 지나 천왕봉을 오른 후 중산리 하산길에 있는 로터리 산장에 묵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으나 아버지께서 몸살이 나셨고 세석의 경치가 좋아서 세석에서 자기로 했다.

 

 세석산장에 들어가서 모포를 빌려 아버지께서 자리에 누우시자 산장 관리소장님께서 아버지의 이마도 짚어 보시고 꿀물도 타 주셨다. 나는 관리소장님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는 세석에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와 그 부모, 환자, 60세 이상 노인은 우선적으로 묵을 수   있어서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세석에 머무를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저녁을 짓고 계시는 동안 나는 세석 운해와 세석평전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튿날 서둘러 아침을 먹고 7시 30분 경 다시 출발했다.

 한결이는 세석평전에서 넘어져 생채기가 났다. 삼신봉으로 생각되는 봉우리에서 뒤를 돌아다 보았는데 노고단이 까마득히 보여서 깜짝 놀랐다. 우리가 이렇게 멀리 왔을줄 몰랐기 때문이다.

 연하봉 표지판에 장터목 대피소까지 0.8km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서둘러 걸으니 장터목 대피소에 금방 도착했다. 머리맡 위 제석봉 부근에서 구름 사이로 드러난 웅장한 지리산 산세가 하도 좋아서 아버지께 찍으라고 하였는데 제때에 찍지 못해서 아쉬웠다. 

 장터목을 출발한지 1시간 반만에 드디어 나는 천왕봉에 도착했다. 난 천왕일출을 보지 못해서 못내 안타까웠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산자락과 멀리 백무동이 보였다. 천왕봉 정상에 있는 안내도에 의하면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모든 봉우리와 노고단까지 일망무제로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간식도  먹고 사진을 찍고 장터목 1.7km를 다시 내려왔다.

 장터목에서 꽁치 통조림과 런천미트, 햇반으로 모처럼 푸짐하게 차려 점심을 먹고 부모님께서 휴식을 취하셨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다.

 오후 2시 정각에 백무동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도 아주 험하고 힘이 들었다.

 

 내가 이번 지리산 등산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식물은 조선까치밥나무(명자순), 동자꽃, 노린재나무, 산수국, 모싯대, 짚신나물, 참취, 내귀쓴풀, 들메나무, 비비추꽃, 야광나무, 박쥐나무 등이다.

  

 5시 반에 드디어 백무동에 도착하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지리산 일대에 호우 주의보가 발령되어 계곡 피서객들은 빨리 대피하라는 방송이 연이어 들렸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나는 몹시 피곤하였지만 지리산 종주를 해낸 것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참 보람있는 지리산 기행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고생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