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리 물길따라 (아~대둔산)

 

대둔산 매표소~동심바위~금강구름다리~삼선구름다리~마천대~낙조대~태고사~장군약수터~청림골~살구쟁이

 

날짜---2004년8월28일,토요일,맑음

소요시간---7시간30분(식사와 휴식시간포함),10.61km,23592보(만보계)

 

 

금남정맥의 계룡산과 운장산 사이에 우뚝 솟굳쳐 오른 산으로 기암절벽이 단애를 이루고 남한의 소금강 이라는 대둔산 이 갑천의 발원지라~~`그 발원지 대둔산을 찾아 갑니다.

 

문명의 발자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천의 흐름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때 대전문화의 발상지이며 한밭의 젖줄인 갑천이 대둔산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대전 서부터미널에서 아침7시45분발 대둔산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으로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태풍은 올라오다 힘이 빠졌나 꿩구어먹은 소식이라~아침 햇살이 넘 좋아 마음이 설레인다.

 

주차장에 내려 대둔산을 바라보니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상가 와 호텔뒤를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니(08:30) 동학농민 혁명 대둔산 항쟁 전적비가 눈에 들어온다.

 

전봉준을 필두로한 동학농민 혁명군이 공주 우금티 에서 참패를 하자 잔류인원이 험준한 대둔산 지형을 이용해 3개월간 항쟁하다 모두 장렬하게 전사 했다는 전적비,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전적비를 뒤로 하니 바위가 서로 맞되어 져 있는 동심바위에 도착한다.슬픈 전설을 가만히 읽어보고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금강문,임진왜란당시 왜병들이 금산을 점령 하였을 때 영규대사가 왜병들과 싸우기 위해 연곤평으로 진군할 때 이 금강문을 통과 하였다 한다.

 

금강문 의 가파른 돌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 아찔 하다.드디어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높이 81m에 폭 1m의 대둔산의 명물 금강구름다리에 도착한다.인공의 철다리이지만 대둔산의 주능선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대둔산 최고의 백미구간이다.구름다리를 건널 때는 아찔 하면서도 구름위를 걷는 듯 하다.

 

<금강구름다리와 대둔산 주 능선>

금강구름다리를 건너 다시 가파른 돌 계단을 오르면 2번째 명물 삼선구름다리,이번에는 수직으로 오르는 코스,우회로도 있지만 이번 만큼은 삼선구름다리를 도전 해보기로 한다.다리가 후들거려 포기하고 미완으로 남겨놓은 삼선구름다리,온정신을 집중 도전에 성공하여 올라서니,감탄이 절로 나온다.

<삼선구름다리>

밑을 보니 금강구름다리가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위를 쳐다보니 대둔의 서부에서 동부능선 까지 그야 말로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금강의 작은 모습이다.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마천대로 올라간다.

<마천대 개척탑>

마천대에 올라서니 개척탑이 우뚝하다.(10:25)동서남북 조망이 가슴 후련하게 만든다.천등산이 눈에 들어오고 계룡산 천황봉 송신탑이 보이고 서대산,운장산 모두다 거칠 것이 없다.계룡산에서 대둔산 까지 대둔산에서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줄기를 점점이 이어본다.

<마천대에서 바라본 금강구름다리>

잠시 다리쉼을 하고 낙조대로 향한다.금남정맥 마루금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왼편으론 바랑산 월성봉 능선이 따라오며 오른편으론 깍아지르듯한 절벽 밑으로 이름 모를 기암들 앞에 눈이 떨어질줄 모른다.장군약수터 1.4km 이정표를 지나 낙조대에 도착한다.(11:20)

 

해질 때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낙조대(落照臺),마천대 만큼이나 조망이 좋은 곳이다.드디어 태고사와 갑천의 모태가 되는 행정저수지 가 눈에 들어온다.산줄기 개념에서 아~~물줄기 개념으로 바라보니<산줄기,물줄기> 불가분의 관계인데 이전에는 왜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또 다른 느낌과 흥분으로 다가온다.

<낙조대 로 향하는중 오대산 능선>

낙조대 올라온 길에서 반대방향으로 내려갈려니 길이없다.어~~~??태고사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데...자세히 살펴보니 오른편 으로 작은 등로가 나있다.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는다.오른편으로 해서 낙조대 올라온 길의 반대 방향으로 내려간다.급경사를 10여분 내려가면 조릿대가 무성한 안부가 나오고 오른편 으로 내려가는 길이 태고사 뒤편으로 내려가는 길이다.골짜기를 따라서.......

<낙조대로 향하면서 바러본 오른쪽 방향 바위군>

태고사 뒷편으로 내려오면서 물길을 확인해 봐도 물줄기는 일우어지지 않았다.드디어 갑천 그 큰 물줄기가 이곳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태고사에 도착한다.(11:50)

 

갑천이 발원지는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대둔산 낙조대 아래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태고사와(장군약수터),이 곳에서 발원한 갑천의 물줄기는 청림골을 지난다.그리고 또하나의 발원지인 논산, 벌곡면 수락리에서 시작된 물줄기와 합수되어 금강을 향한 고단한 장정을 준비한다.갑천의 최상류를 형성하는 벌곡천이 그 서막인 셈이다.양산을 거쳐 한밭벌로 여정을 옮긴 갑천은 그 초입에서 맞이하는 곳이 서구 오동 장밭탱이 마을이다. 여기에서 다시 평촌동을 휘몰아 굽이 치던 물줄기는 용천동 정뱅이 에 이르로 다시 한번 그 면모를 일신하여 용트림을 시작한다.계룡산 암용추에서 발원한 두계천과 만나 비로소 시냇물다운 의연한 자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이로써 계룡산의 웅혼한 기상과 대둔산의 부드러운 기운이 하나가 되고,계촌(溪村)중에 제일로 친다는 갑천은 그 본디 모습을 완연히 드러낸 채 대전의 심장부 둔산을 향해 도도히 흘러 금강이 합류하는 신탄진 문평동에서 150리물길은 그 고단한 임무를 넘겨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갑천의 뿌리를 찾아(우희창 저) 중에서)

<낙조대에서 바라본 행정저수지>

낙조대 아래 의연히 자리잡고 있는 천연고찰 태고사(太古寺)신라 신문왕 때에 원효대사가 창건했고,우암 송시열 선생이 수학을 했고,서산대사의 법손 진묵대사가 수도하다 입적한 도량으로 만해 한용운 선생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서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이를 정도로 빼어난 절정을 자랑하는 곳이다.고려때 태고화상(太古和尙)이 중창을 함으로써 태고사라는 절 이름이 지어졌고 조선시대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삼창을 했으나 6.25때 불탓다 한다.

<천년고찰 태고사>

 

지금도 불사가 한참 진행중인 태고사,탁트인 조망에 서대산이 정면으로 바라보인다.태고사 샘터를 물으니 삼불전옆 공양간 바깥에 있는 우물을 알려준다.부럭크 벽돌로 쌓아 막아 놓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발원지 물이라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이 든다.발원지 물 한잔을 마신다.

<태고사 발원지 우물>

 

태고사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물길을 따라 내려간다.처음으로 이루어진 물줄기를 감상하고 내려서니 바로 태고사 일주문에 해당하는 "석문"에 도착한다.석문 이라는 글씨는 우암 송시열 선생 글씨라고 한다.도량의 세계에서 속세로 벗어 나는 순간이다.

 

이제는 장군약수터로 발길을 옮긴다.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화장실이 보이고 옆으로<장군약수터0.8km,태고사1.0km>이정표와 장군약수터와 생애봉에 대한 전설 안내도가 있다.

 

내려오다 직진하기 쉬운데 화장실에서 →우편 으로 내려가야한다.내려가다 보니 출렁 다리를 만난다.150리의 기나긴 물길위에 최초의 다리 일지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리...

 

출렁다리를 건너 바로 철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장군약수터 오름길이다.잘 정비된 가파른 오르막을 20여분 오르니 장군 약수터에 도착한다.이정표와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약수터 위로는 깍아지르듯한 절벽위로 생애봉이 나뭇잎 사이로 아련하다.

 

장군약수터(將軍藥水),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되자 허둔장군이 잃어 버린 나라을 되찾겠 다는 결심으로 대둔산에 입산하여 지금의 장군절터에 집을 짓고 은든생활을 하면서 약수를 마신곳이라 하여 장군약수터라고 전해오고 약수터의 근원인 상여봉을 멀리서 바라보면 용이 하늘로 구름을 타고 힘차게 승천하는 형상을 볼 수 있고 상여봉이 용의 머리라면 장군약수터는 용의 입으로 물을 내뿜는다 하여 일명 용천수라고도 한다.이 약수를 마시며 100일 기도하면 만병통치가 된다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아 온다는 장군 약수터가 150리 물길에 시작점이라................

 

절벽밑 절개지 부분으로 콸콸 물줄기가 요란하게 쏟아져 내려가는데 그저 신기할뿐이다.누군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 적어 놓았다."근원을 생각하는 물"이라는 뜻인데, 매일 보고 지나고 생활하는 대전의 물줄기 들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니 어찌 생각이 없으리요.장군약수물로 목을 축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올라온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이제부터는 마루금이 아닌 물줄기를 따라 내려간다.장군약수터 물줄기가 처음으로 형성되어진 물줄기를 감상하고 개울을 따라 내려간다.내려가는 중에 뒤돌아 보니 숲사이로 생애봉(상여봉)이 가물거린다.

 

옛날 한스님이 태고사에서 열심히 백일기도를 드리다,백일기도가 끝나는날,꿈에 신선으로부터 장군약수터 정상(용머리)에서 뛰어내리라는 선몽을 받고,이후 스님은 수 차례 낭떨어지 앞에 섰지만 "생의 애착" 때문에 뛰어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중 진산의 부잣집 아들인 포수가 스님의 행동을 보고 그 연유를 물으니 스님은 그동안의 일을 상세히 얘기하고 "생에대한 애착" 때문에 뛰어내리지 못함을 고백하니"나는 평생 살생만 했습니다.앞으로도 더 많은 살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며 이를 속죄하기 위해 포수가 대신 뛰어내리고 말았다.그런데 바로 이때가 등천할 수 있는 시각인지라 포수가 등천을 했다고 한다.스님은 크게 탄식을 하고 말았다.오랫동안 도를 닦은 스님이 생의 애착 때문에 뛰어 내리지 못했다고 하여 그 이후론 이봉우리를 "생에봉"이라 불렀다 한다.속세를 떠난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전설인 듯 하여 가슴이 슬프다.

 

물줄기는 땅속으로 스며들고 이 상태가 태고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류지점까지 계속된다.큰 바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 합수지점인데 장군약수터 방향은 흐르는 물이 거의 없고 태고사 방향으로는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14:05)

 

계곡을 따라 내려 가면서 돌 하나 하나 건너면서 진행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 조그마한 폭포가 형성된 물줄기를 지나 태고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니...!! 개울을 가로질러 천막을 쳐놓고 성업(음식)중이다.150리 물길중 최초의 상업현장을 본다.주차장을 지나면 태고교(태고사 다리)밑으로 물줄기가 이어진다.시멘트 다리로는 처음 만나는 다리인 셈이다.(14:40)

 

태고교를 지나고 부터는 본격적인 계곡의 형태를 갖추어진 물줄기는 청림골로 들어선다.느티나무 한 구루가 운치를 자아내는 청림골 마을 그리고 앞 냇가에서 아이들은 물놀이에 열중인데 이름모를 물새가 보인다.처음으로 물새가 나타난다.청림골은 행정구역 상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에 속하는데 행정리에서도 가장 위쪽에 자리한 마을, 주변에 푸른숲이 많이 우거져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150리 물길중 최초의 마을인 셈이다.

 

몇가구 안되는 청림골 마을 앞을 지나 내려가면 청림골 주차장과 행정(청림)저수지에 도착한다.1970년 조성된 행정저수지,저수 면적만도 9.8ha 달하는 대형 저수지로 행정리,지방리,논산 벌곡면 도산리 등의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저수지,태고사와 장군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작은 지류들과 합쳐 내려오다 행정저수지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저수지에서 한참을 쉰 물들은 배수로를 통해 살구쟁이 마을로 흘러들어간다.저수지 아래로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살구쟁이 마을,조선말기에 살구나무 정자가 있어 살구쟁이 마을이라고 부른다는데 행정상으로는 행정1리 마을 이다.

<살구쟁이 마을 표지석>

 

행정저수지의  첫 혜택을 보는 마을로 저수지 배수로를 나온 물줄기는 논으로 이루어진 살구쟁이 마을 한가운데을 가로질러 도롱정으로 향한다.살구쟁이 표지석이 있는 행정1리에서 도산리에서 진산으로 향하는 16:30분 버스에 몸을 싣는 것으로, 150리 물길따라 첫 나들이를 마감합니다.

 

<대전 서부터미널에서 대둔산행 버스시간표>

07:45-09:30-11:30-13:20-30-18:20

<진산에서 도산(행정리)리행 버스 시간표>

07:20-08:50-10:00-12:05-12:55-14:30-15:40-17:00-18:35-19:755

<진산에서 대전행 321번 버스 시간표>

06:40-06:55-07:29-10:15-11:57-04:22-16:00-17:45-18:55-19-07-20:00

금산 버스시간 문의전화:041-752-4008    010-9752-4008

참고자료<갑천의 뿌리를 찾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