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북주능(장수대- 서북주능 - 천불동8.21-8.22)

산행 일자 : 2004.8.21-8.22(2박 2일)

산행 인원 : 파란늑대(나) 혼자 그리고 중간에 호우님과 동행

산행 날씨 :
21일 오전(장수대-귀떼기청봉) 비교적 맑음
21일 오후(귀떼기청봉~~)비교적 흐림
22일 오전(희운각-소공원) 잔뜩 흐림, 몇 방울의 비

준비물 :
(음식물:햇반 3개, 참치 캔 한개, 장조림 캔 한개, 스팸 한개,
누룽지, 너구리 3개, 김치 큰 통, 도시락 한 끼, 북어국 한개,
자장 한 봉, 카레 한 봉. 영양갱 3개, 초코렛 3개.)
( 식수:2L & 500ml.)
(의류-등산복 반팔-반바지 차림. 반티, 긴팔 한개 씩.우비
긴 등산바지. 평상복 상하의 한 벌& 언더웨어 두 개.)
(기타-배낭 카바, 헤드랜턴, 가스, 버너, 코펠, 무릎 보호대,
스틱, 맨솔레담, 시에라 컵, 숟가락 세트, 샌들. 등산양말 1개.)

산행시간표:

8.21
02:00 장수대 도착, 취침(비박)
06:00 기상, 식사
06:50 장수대매표소 통과
08:10 대승령
09:50 1408봉
12:00 귀떼기청봉 너덜길 초입에서 식사(호우님과 조우)
13:15 귀떼기청봉
14:15 한계령 갈림길
17:15 끝청
17:45 중청산장
19:15 희운각 도착
22시 경 취침

8.22
06:00 기상, 식사
07:30 희운각 출발
08:15 양폭산장
09:10 비선대 직전 멱 감다.
10:40 모(某)식당에서 하산주.
12:20 소공원 버스정류장

산행후기


“장수대”에 떨어진 시간이 새벽 2:00경. 같이 내린 두 분은 바삐
“장수대”를 통과하신다. 나는 멀뚱인다. 새벽시간. 매표소에서 밑으
로 보이는, 저 밑 매점의 불빛은 환하지만, 서늘한 공기가 썰렁하
다. “오색”도 아닌데, “설악산”에서 밤에 움직일 맘은 없다. 시간이
촉박하지도 않고. 나는 예정대로 매표소 앞 벤치에 침낭을 올리고,
몸을 들이민다. 그리고는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아침 6시 경, 몸 상태가 50%이하이다 보니, 산에서 맞는 아침에
별 감흥을 못 느낀다. 머리와 몸통의 상태가 별로다. 어쨌든, 서늘
하면서 싸한 숲의 냄새가 콧구멍만은 상쾌하게 한다. 동은 터있다.
태양은 않 보이지만. 엷은 몇 홀의 안개 자락이, 아침에야 선명한
기암들에 살짝 얹혀 있지만....나는 아무래도 좀 허하다. 아무래도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으리라. 햇반, 북어 국, 참치 캔 하나, 장조
림 캔 하나. 배라도 든든해야...

한참 식사 준비 중에, 한적한 매표소 앞에 관광버스 한대. 그리고
그 수의 산행객이 하차. 홀로 능선에 오르나 했더니, 과욕 이였나
보다. 매표소를 통과하며, 찬찬히 내가 처한 상황을 스크린한다.

문제점들, 며칠째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요 근래 운동량은 생활체
력 유지 정도다. 급하게 산행을 결정했다. 자료 및 지도 찾아보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장비 중에는 랜턴이 고장상태고 윈드스토퍼가
빠졌다. 일년 전 내 모습을 생각하며, 잠시 쉰 웃음을 지어본다.

(1년 전 나의 산행 준비 모습. 모든 산행계획은 2달 전에 정하되
다양하게 했다. 항시 철저한 체력준비. 자료 찾아보는 시간과 산
행시간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꽃등의 식물 자료들과 산행자료 찾
아보는 데에, 하루 2시간 정도 꾸준히 투자. 모든 짐은 전날 챙겨
놓고, 음식물만 당일 챙김. 멀거나 긴 산행일 경우, 2주 전부터 산
행리듬에 나를 맡김, 그리고 산행 전날 사우나에서 몸을 풀었다.)


결론, 일단 체력적인 문제가 크다. 아마도 도중에 허벅지나 장딴지
또는 무릎에 이상이 예상된다. 산행에 흠뻑 빠져들 정서적 여력이
부족하다. 산행 중, 1년 전과 같은 것을 얻을 수는 없다. 대개, 삶
은 준비한 만큼 누리는 것이니까.

대책, 그동안 염두에 뒀던 , 철저한 페이스 조절을 실행한다. 산과
산행을 즐기기보다, 효율적인 산행진행에 신경을 기울여야 할 듯.
철저한 완보에 꾸준히 걸으며, 30분 워킹 5-10분 휴식하는 방식
을 엄수.

경사가 조금 있는 흙길. 고산지역의 서늘한 아침공기를 들이키며
발길은 어느새 “대승폭포”에 이른다. 사실 이름밖에 들어보질 못
해다. “오색-대청봉” 방향의 “설악폭포”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고
짐작하고 오른 터였다. 미리 자료를 찾아봤다면, 이 폭포가 한국의
3대 폭포에 꼽힌다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으리라.
하여튼 주능선에 가까운 지역에의 폭포란 조금은 의외다.

곁능선을 오르다보면 능선길이 절벽을 이루고, 그 좌측에 급작스레
탁 트인 대(臺)가 보인다. 급작스레 널찍한 공간을 격하고 저 건너
편에 설악산의 멋스럽고 널찍한 기암과 낙락장송을 병풍인 양 거느
린 폭포에서 밀려온, 포말인지 서늘한 바람인지 얼굴에 닿고 있다.
좋은 것이 확대되어 보이는 것보다 거슬리는 것이 먼저 보임은, 몸
상태의 영향일까? 주변 풍광에 못 미치는 수량이 조금은 애처로워
보인다. 수량이 적은 시기도 아닌데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매표소에서 앞에서 본, 대구팀 멤버 중 일부가 자
리를 펴고 있다. 이 쪽 저쪽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이 일별(一瞥)로
보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즐긴다는 것은 무리다. “대승폭포”는
절경임에도 그렇게, 내 발걸음을 오래 잡지는 못했다. 폭포 이후
로 경사는 완만하고 편안했다.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 개울을 두
군데나 지났다.

“대승령”. 대구팀중 선두인 몇 분이 진을 치고, 사진 찍느라 여념
이 없다. 인사말과 가벼고 의례적인 몇 마디. 이곳은 “흑선동계곡”
방향(통금구간)과 “안산” - “십이선녀탕”방향 그리고 “귀떼기청봉”
방향의 사거리다. 이 분들은 “십이선녀탕”방향. 난 몇 번인가 이
곳을 들렸다. 비교적 익숙한 풍광들에 밋밋한 시선을 던진다. 배낭
무게와 경사로의 산행으로 땀이 흥건한 무더운 날씨지만, 시원한
능선바람에 잠깐 피서의 기분을 내어 본다. 물이 조금 걱정이다.
많은 땀이 흐르고, 몸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서로에게 즐
거운 산행을 기원하며, “귀떼기청봉”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비교적 수월한 능선길. 조망이 좋은 곳에서 남설악과 내설악 방향
의 기암을 익숙하게 바라보며...하지만 여기에 인적 드믄 산행로에
는 선행자의 아픔이 있다. 잠간 한 눈 파는 사이에, 얼굴에 거미줄
을 왕창 뒤집어쓴다. 크게 불쾌한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거추장
스럽고 점성이 있는 거미줄이, 땀에 흠뻑인 얼굴에 붙는다는 것이
좋은 촉감일리가 없다. 새벽에 지나갔을 분들 이후로 새로 뽑아 놓
은 모양이다.

1408봉에 가까워지면서 관목과 고사목 그리고 좌우의 기암들에,
“설악산”에 있음을 실감한다. 보라색 “투구꽃”이 눈에 많이 띈다.
이 곳 같은 고지대 능선에서 보다는 계곡에 많은 녀석들인데. 간간
이 밝은 황토색의 “동자꽃”이 반갑다. 하지만 역시 거기서 더 무엇
을 즐길 여유는 없다. 어느새 등산복은 축축하지 않은 곳이 없다.
고산지대 능선바람은 살갗에 스미듯 슬쩍 부딪히곤 모른 척 한다.
햇볕은 엷게 허연 구름에 가려있지만 대체로 무덥다.

고른 호흡, 규칙적인 보폭 그리고 잔잔한 의식 정돈된 정서. 나의
대부분의 에네지는, 이 것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문득,
나에게 산행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부산의 “하얀능선‘누나
를 떠올린다. 그 분이라면 여하간의 상황이라도 의지대로 산행을
즐길 텐데. 냉정한 산행 준비, 감성적인 산행으로. 하지만 가능성
높은 50-70점을 얻는 방법이란, 대개 이런 방법인 것을. 나는
그런 선택에 비중이 높은 사람이고.

어느새 몸은 후끈하게 덥혀졌고, 컨디션은 적당히 회복돼있다. 땀
을 흘린다는 그 싱싱함이, 어느새 불충분한 준비로 떨어져 있는 몸
상태를 적당히 올려주고 있다.

1408봉에 오른다. 좌측의 화려한 장관에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조우하는 “공룡능선”의 힘이 뻗치는 골암미. 근데 오늘은 공룡의
등엔, 환한 뭉게구름이 한짐 슬쩍 지여져 있다. 그 코믹한 모습이
란....역시 설악산은, 화려함과 다채로움에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다. 화려한 시각의 성찬을 천천히 즐기고는 우측으로 시선을 돌린
다. 뼈와 근육질이 엉켜진 것 같은 “점봉산”, 그 넘어 --하얀 구름
이 가로로 긴 띠를 만들고, ---그 넘어서 ----파란 바다가 널찍
하게 펼쳐있다. 더운 날씨 속에서 이 멋들어진 장관들이, 어느새
내 몸을 서늘하게 식히고 있다. 난 침묵으로, 음미의 시간을 만끽
한다.

순간적으로 풀린 감정의 기복 때문일까? 허기지기 시작한다. 영양
갱 한개, 초코렛 한개. 좀 괜찮아 졌다. 좀 앉아 있는 도중에 잠깐
졸았다. 참내 @.@)) 산행하다가 졸은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아니 앉아서 잠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일만 없었다면 한량
없이 잠이 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팔뚝을 내리치고 감
촉과 나뭇잎에서 우두둑하는 소리. 비가 오나? 화들짝 놀라며 하늘
을 본다. ??? 엷은 흰 구름 듬성듬성. 하여튼 비 오는 분위기는 아
닌데 하면서. 하지만, 언젠가 보이는 하늘에 구름이 없어도 비를
맞은 적이 있다. 비는 구름이 만들지만, 바람이 날라다 주기도 하
니까. 그러나 순간 묘한 감촉이 팔뚝에서 전해져 왔고. 간지럼이라
니. 곧 상황은 정리됐다. 개미들이다. 아마 늦여름엔 의례히 날개
달린 개미들이 수선을 떤다. 그래도 이렇게 단체로 날아다니는 것
은 꽤나 볼거리다. 공중에 군무를 추는 개미를 멀뚱이며 물을 들이
킨다.

그런데 순간 놀랄만한 것을 발견한다. 동해상에 작은 섬도 아니고
수평선 아스라히 육지가 있는 것이다. 잠깐 눈을 깜빡여 본다. 허
상은 아니고. 잠시 멍하고. 그럼 일본인가? 설마. “설악산”에서 일
본이 보인다는 얘긴 못 들어봤는데, 하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좀 시간이 지나서야,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저기 엷지만 흰 구름이 풍성한 편이다. 그런데 동해의 수평선 쪽
에 거무스레한 구름이 낮고 길게 자리하고 있는 것 이였다. 그 것
이 마치 바다 건너, 육지나 큰 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 것 이다.
이런.

“1408봉”을 지나 10분 정도 지난 비슷한 높이를 가진 봉우리에선
한 분이 앉아 쉬고 있었다. “대승령”을 떠나온 이 후로 처음 보는
산행객이라 많이 반갑다. 그 분도 반가운 낯을 띄우고, 서로의 일
정에 대해 의례적인 질문. “안산”에서 비박이라. 쯥, 천천히 가더라
도 4-5시간이면 닿을 거리다. 그 분도 그 것 때문에 천천히 가려
고 노력 중이란다(-,.-;;).

“1408봉”을 지나며, 길은 좀 험해지고 있다. 능선을 좌로 우로 돌
아가며 손을 써야 될 길들이 많아지고 걷는 자세도 다양해지고 받
줄 걸린 곳도 몇 곳 있었다. 15-20kg 나가는 배낭을 메고 이리 저
리 넘어 다니는 것이 편할 리 없다. 간간이 좌우의 멋지게 뻣어 내
린 골암들을 보며, 내가 “설악산”에 있음을 실감한다.

“귀떼기청봉” 오르기 직전의 바위 너덜지대에 이른 시간이 정오 쯤
이였다. 도시락을 풀고, 몸 상태를 감안해 철저히 천천히 꼭꼭 씹
어 먹는다. 그렇더라도 땀을 흥건히 뺀 후의 식사란, 여하간의 상
황에서도 달콤하기 마련이다. 부족한 물을 아껴가며 라면도 끓여먹
고, 나른한 포만감을 만끽할 때 쯤, 뒤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반가운 마음에 일어설 시간임에도 몇 마디. 같은 고향. “설악산”이
초행이고, 산행 경력도 일년에 3-4회 근교산행 수준이다. 쩝. 예정
코스도 나와 같다. 아니 중청에서 일박하고, 대청 일출 보고 “공룡
능선”을 탈 계획이란다. 난 “희운각”에서 일박하고 “공룡능선”을
탈 참이다. “호우”님의 계획은 조금은 무리다 싶었지만, 직설적으
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체력은 좋아 보이고 장비도
갖춰져 있었다. 강골 체질이지 싶다. 외모도 그렇고 내가 가입된
“나사산”이라는 카페의 “날망”과 닮았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바, 보편적인 산행들에 관하여 간단히 얘기해
주고 커피 한 잔을 건넨다. 그러고는 일어서려는데, 이 분도 따라
일어선다. 아무래도 동행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쩝. 난 혼자서 산
에 왔다. 혼자라는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번은
혼자이고 싶어서 혼자인 산행이다.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혼자의 시간이 필요함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 내가 다른 산행할 때 같으면 슬쩍 동행이 되겠지만, 오늘은
산행 중 가장 이성이 많이 남아 있는 날이다. 다른 면으로는 기분
이 별로라는 뜻이기도 하다.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부족한 준비
로 인해서 최소한 유쾌함과 유익함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난 딱히 거부의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내 페이스대로 산행을 진행
했다. 무언의 의사표시가 전해졌는지, 오르막길이 힘드신지 “호우”
님은 먼저 갈 것을 권한다. 난 별로 거리낌 없이 페이스를 유지한
다. 오르막길에 오르는 속도와 평지 보행 속도가 비교적 큰 차이
가 없다는 것은, 내 산행의 장점 중 하나다.

너덜지대를 올라 “귀떼기청봉” 정상엔 한 무리가 진을 치고 있다.
몇 마디를 통해, 과단위로 학생들이 산행에 나섰다는 것. 선두라
는 것. 간단한 대화와 조망을 즐길 때 쯤 “호우”님이 지나쳐 간다.
“공룡능선”은 개스에 가려져 있었고, 날씨는 어느새 잔뜩 흐려져
서 대부분의 멋진 골암들이 가려져 있었지만, 구불거리는 44번 국
도가 보이는 쪽으로 “상투바위”가 조금은 고적하다.

다시 진행. 곧 “호우”님과 같이 걷게 된다. 작년 막 산을 타기 시
작할 때,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무작정 설악행을 감행했던 기억
이 떠올랐다. 그 때 도움을 준 “이진남”씨 덕에 얼마나 산행이 유
쾌하고 유익했는지 모른다. 이 것은 사회적 선순환으로 돌려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미 혼자 산행을 결심한 애초
의 동기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냉정한 이성으로 유지한
채로, 즐기는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긴 이미 힘들다. “호우”님 한
테 간단히 이런 사정을 말하고, 우린 무언으로 동행하기로 합의한
다.

너덜지대가 이어졌지만 경사도 그렇고, 그리 험한 길이 아니였다.
이미 날씨도 잔뜩 흐려졌고, 설악 곳곳엔 개스가 차있었다. 너덜
지대를 이루로 등산로는 비교적 편했지만, 간혹 약간의 경사가 있
기도 했다. 그 때면 의례히 “호우”님은 힘겨워 했다. 산행진행은
30분 워킹 5-10분 휴식을 고수했고, 비교적 편한 길임에도 완보를
유지했다. “한계령 삼거리”에 가까워질수록 산행로는 상당히 편
해져 있었다. “중청산장”까지 길은 수월했다. 그런 사정상 “호우”
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호우”님은 산행 전반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나는 이런 저런 경험담들을 애기하곤 했다. 오늘
내내 걷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물었을 땐, 잠깐 어이없어 했다.
중간에 “한계령”으로 빠지는 분들한테 물을 얻었을 때, 무척 방가
웠다.

“호우”님은 “대청봉”에 오르고 싶어 했지만, 대청에 오르는 오르막
길을 보고 곧 포기했다. “중청산장”에서 500ml짜리 물 한 병씩을
사서는, 소청으로 향한다. 소청에서 전망도 역시 개스로 인해 꽝이
였다. “소청”을 지나 “희운각”에 이르는 길은 급경사에 노면 상태
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돌과 나무로 어느 정도 정비를
해놓아서, 예전 보다는 많이 편했다. 오르막길만 힘들어하던 “호
우”님도 급경사는 힘들어하는 눈치다.

난 “신선대”의 선경에 대해 말을 했고, 적당히 개스찬 “신선대”의
진 면목을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개스가 덮은 이후
론 좀 체 벗겨질 생각을 않는다. “신선대”가 멋지게 보이는 그 포
인트에서, 살짝 엷어진 틈으로 윤곽만 확인하고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어느새 해가 져서 어둑해지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희운각”에 도착했을 땐, 좀 어두워져 있었고, 곧 비가 올 듯한 날
씨였다. 우린 산장에서 운영하는 군대 막사 같은,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희운각” 앞의 개울에서 서로 등목을 해주면서, 하루 종일
고단했을 몸을 위로한다. 그 상쾌함이란. 이 등목은 피로를 푸는
그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즐거운 식사시간. 햇반과 라면 카레 스
팸 등등 .산장에서 구입한 막걸리와 함께 오늘 산행과 간단한 신변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철저히 절제한 산행 탓에, 다리엔 전혀 무리가 없었고 오히려 체력
은 상당한 여력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일 “공룡능선”은 포기
하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무래도 이 번 산행전반에 대
해 성실히 준비치 못한 스스로에 대한 트집 정도가 맞는 말일 것이
다. 설령 그 준비하지 못한 이유가 타당하더라도, 그 절경을 산행
페이스 조절이나 하면서 지나간다는 것이, 또 못 마땅하기도 했
고.

“호우”님에게도 다음 기회를 볼 것을 권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급경사로로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인 그 코스로의 진행
은 무리일 것. 물론 불가능은 아니란 것. 그리고 서울에서 “공룡능
선”을 탈 기회는 많다는 것. 좋은 기본체력을 가진 것은 대단한 장
점이란 것. 오늘 많이 힘들었던 이유는, 준비 부족이 때문이였다는
점(참고로 “호우”님은 하루 내내 초코렛 종류만 먹었음). 보통 사
람이 산행 시작 하면서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걸리는 시간 같은
것. 또 “천불동계곡”이 상당히 멋지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
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 나름대로의 산행관 같은 것. 산행은 체
력테스트나 극기 훈련을 위해 또는 그런 것처럼 산행을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점. 산과 산행, 그 것의 아름다
움과 유쾌함 그리고 유익함을 적절히 얻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3:00시 쯤 산장에, 의례히 부지런히 출발하는 팀의 부스럭거림에
잠을 꺴지만, 머 딱히 할 것도 없기에 다시 잠이 든다. 비가 조금
온다는 말을 흘려들으며. 22일 기상한 시간은 6:00시 경이였다. 산
장에서 느긋하게 기웃거려도 보고 누룽지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다. 빗방울이 당장이라도 쏫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난 샌들을 신
고 출발한다. 역시 “무너미고개”에서도 “신선대”의 모습은 허락 되
지 않았다. 곧 비가 몇 방울 떨어지곤 다시 그친다.

내리막길을 좀 지난 후에, “천불동계곡”의 화려한 기암들에 “호우”
님도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난 이곳의 기암들의 화려한 모습을 기
억한다. 아마 전설 속 용들이 집단 서식지인, 용들의 절벽이라고나
할까? 계곡의 양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기암들의 연속. 그 기암들이
천개의 불상 형태라는 “천불동”. 계곡물은 통바위로 된 좁은 협곡
을 뚫고 내려가는 것처럼 살아있다.
그리 급경사는 아니지만, 물살이 상당히 거칠게 내리친다. 계곡의
바위들은 붉은 기운이 어려 신비로움을 돋군다. “공룡능선”과 “천
불동계곡”의 화려함에 나는 “풍접초”란 외래종 꽃을 떠올린다. 그
장식성과 화사한 모양을. “호우”님도 “천불동계곡”에 만족해하는
모양이다. 처음 “무너미고개”에서 한 20-30분 내리막길 이후론 산
행로는 편안한 편이다.

“양폭산장”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신 후, 곧 길을 재촉한다. 여기 부
터는 협곡의 급류가 아닌 널찍하고 편안한 계곡이다. 중간 중간 발
을 담구며, 편하게 걷는다. 마침내 “비선대” 직전의 멱 감는 장소
(비밀 장소-“***”)에 이른다. 예전에는 인적을 피해 좀 더 계곡
안으로 들어갔지만, 비도 몇 방울씩 떨어지고 잔뜩 찌푸린 날씨하
며 인적이 드믈다. 다른 때 보다 상류로 덜 들어가고. 덕분에 작은
폭포를 이루는 장소를 잡았다.

오늘 산행은 그저 평이한 코스고 약산은 심심한 산행이였지만, 어
쨌든 몸은 적당히 달아올라 있었다. 심산유곡의 빙수가 정수리와
온 몸을 뿌려댈 때의 그 짜릿함이란. 역시 산행 후의 탁신(濯身)이
란...그 황홀함에 한 번 빠져 본다면, 산행에서 이 과정을 빼내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를 잘 알 것이다. 조금은 무뚜뚝한 편
으로 보이는 “호우”님도 흥분을 금치 못한다. 우린 환호하며 서늘
한 계곡이 주는 최고의 시간을 즐겼다. 물은 풍부했고, 우린 시간
도 많았으니까.

개스에 뒤덮힌 “비선대”를 거쳐 “소공원”으로 향한다. 편안한 대로.
난 여직까지 이 길이 비포장도로인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포장된
도로였다. 생각해 보면, “설악산”에서 즐겁게 산행을 마치고 만족스
럽게 내려 갔던 기억들 때문인가 보다. 포장도로지만 여늬 포장로같
이 꺼려지지 않는다. 길 양 쪽의 아름드리 소나무도 여전히 멋지고.


우린 중간의 모(某)식당(주인이 좀 서운하게 한 것이 있어, 이름 않
밝힘)에서 동동주와 한 동이를 맛있게 비우며 만족한 산행을 축하했

다. 소공원에서 “호우”님은 “장수대”에 파킹된 차로, 난 “속초고속터

미널” 로 향한다.

버스시간이 남아서 해수욕장을 거느리고. 백사장에 앉아 먼 바다를
보기도 한다. 처음엔 부족했지만, 설악은 그런 것조차 허락하지 않
나보다. 이미 흔쾌하고 만족스러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준비과
정이 아주 좋지 않았고, 날씨도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버스를 타고 귀경하는 길에 오히려 살픗 들뜨며, 마음이 차분해 진
다.

20040907 tyf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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