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14 

침묵은 금인가!


 


 

 알 수 없는 갈증이 밀려와 그 뭣인가에 푹 취하고 싶은 충동질에 마음이 산란하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을 시원하게 적셔줄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심정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으로 간다. 
 

 약간 흐려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더위가 한풀 꺾였으나 늦더위가 심술을 부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의지력 결핍과 게으름으로 자꾸만 늘어지는 뱃살을 운동 부족으로 여기지 않고 나이 탓으로 치부해보지만 왠지 씁쓰름해 새삼스레 비육지탄(髀肉之嘆)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상식으로 해결하면 쉽게 풀릴 일들이 자꾸만 꼬여 머리가 띵하다. 이런저런 해결방안을 생각하면서 아기자기한 능선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걸어 고갯마루에 올라서 한줄기 서늘한 바람결에 그 동안 쌓인 울화를 훌훌 털어버린다. 

  

 이곳에서 약수터로 가기 위해서는 신작로 같은 널따란 길을 걸어야 한다. 20여 년 전에 일주도로 개설하려다가 많은 사람들의 반발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소나마 생채기가 아물고 가로수로 심어놓은 단풍나무와 느티나무가 숲 그늘을 이뤄 그런대로 걸을만해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환경파괴가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겨 주는지 여실하게 보여준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지나치게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기심의 발로로 말미암아 발생된 결과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약수터에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쉼터에 도착하니 많은 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저마다 진한 추억거리를 만들기에 열중인지 왁자지껄해 앉아있기가 거북해서 슬그머니 자리를 떠 산길로 접어든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서로 교통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매개체다. 이처럼 중요한 대화의 기본요소인 말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번 뱉어버린 말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는 것이 불멸의 진리다. 그러나 우리들은 상대방을 칭찬하기보다는 쉽게 비웃고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불쑥 내뱉은 한마디 말이 부메랑이 되어 엄청난 불이익으로 작용될 때 “침묵은 금이다”라는 금언이 생각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로 자신을 옥죈다. 
 

 요즈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로 떠들썩하다. 이럴 때 우리가 무었을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곰곰이 되뇌다가 우리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재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산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흔히들 역사를 오늘의 거울이요 내일의 길잡이라고 한다. 개인과 사회와 민족공동체는 자기네들이 살아온 역사에서 새로운 힘과 교훈을 구체적으로 만나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열심히 읽고 있다. 역사는 어느 영웅이나 지배집단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역사를 기본적으로 구성하는 민중들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니 입조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조선 연산군 시절, 임금을 비난하는 괘서(掛書)와 방문(傍文)이 곳곳에 나붙고 궁중과 관아에 투서가 날아들었다. 궁중과 벼슬아치들 사이에 별별 해괴하고 이상한 말들이 떠돌아 다녀 인심이 흉흉해지자 연산군은 모든 벼슬아치와 내시들에게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입은 재화를 불러오게 하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쓴 팻말을 허리춤에 달고 다니게 했다고 한다. 
 

 말조심과 관련하여 남생이는 뽕나무를 조심하라는 “龜桑愼”(구상신)이라는 재미있는 한자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촌부가 개울가에서 남생이 한 마리를 잡아 푹 고아먹으려고 솥에 넣고 불을 지핀 후에 솥뚜껑을 열어보니 죽지 않고 두 눈을 뜬 채 쳐다보고 있어 화들짝 놀라 솥뚜껑을 다시 닫고 한참동안 불을 지피고 나서 이제는 잘 삶아졌겠지 생각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아직도 죽지 않고 두 눈을 말똥말똥 거리며 쳐다보고 있어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남생이를 살려주려고 솥에서 꺼내 바가지에 담아 부엌을 나서는데 극적으로 살아난 남생이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멍청한 인간아! 남생이는 뽕나무로 불을 지피면 바로 죽는데 엉뚱한 나무만 태우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이 말을 들은 촌부는 화가 나서 다시 남생이를 솥에 넣고 뽕나무로 불을 지펴대니 신기하게도 남생이는 금방 죽고 말았다. 
 

 이처럼 입 한번 잘못 놀려 죽음을 자초한 남생이의 이야기를 빌려 입이 가벼운 사람을 비유해서 “남생이 모양으로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린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요즘 입 한번 잘못 놀려 곤욕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생이의 죽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순간의 실언으로 손해를 보는 일들이 다반사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 했던가. 어쩠든지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한다. 
 

 산길을 걸으면서 삶의 의미를 터득하고 자연의 변화에서 생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산행이라고 생각한다. 산정은 어느덧 억새풀이 고개를 내밀어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으악새의 향연에 취하고 나니 찌든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져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가을은 이렇게 소리 없이 슬며시 나래를 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