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진달래 분홍빛이 온 산을 감싸고 봄바람이 유혹하는 따스한 햇살에 마음은 저만치 산정에 머무는데 몸은 콘크리트 더미 속에 갇혀 애꿋은 신음만 토해낸다. 하루하루 채색이 더해져만 가는 산과 들을 바라보노라면 생활속에 잠겨 마음껏 날 수 없음에 4월은 정말 잔인하다. 남도의 봄바람에 기지개를 켜며 화들짝 피어나는 무수한 봄꽃들이 4월과 함께 사그라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피곤함을 무릅쓰고 무박산행에 나선다.

 

  ‘남도답사 1번지’ 해남, 강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용봉 한마리가 산 너머 남쪽을 향해 비상하는 덕룡-주작산. 며칠 전부터 다소 무리라는 마음과 가고픈 마음이 서로 키재기를 한다. 그래도 가고픈 마음이 약간 우세하여 기어이 나서고야 만다. 토요일 밤 11시에 출발하여 흔들리는 차안에서 잠을 청하니 잠이 제대로 올리만무인데 새벽 3시 반경 도착하니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아득하다. 이른 새벽 아침을 먹고 4시에 오소재에서 출발하니 약간 이그러진 달이 그래도 환하게 비춰준다. 새벽바람이 제법 차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오르는데 초입 등로는 부드럽게 시작하더니 첫 봉우리 앞에 도착하니 제법 가파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등로엔 잡목이 거칠게 달라붙고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는데, 산죽은 키보다도 훨씬 커서 헤쳐 나가느라 선두와 점점 벌어지니 캄캄한데다가 길 찾기도 쉽지 않다. 거친 암봉 봉우리도 몇 개 넘은 것 같은데 캄캄하여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5시가 넘어서자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주변 조망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니 암봉들의 행렬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매우 흥분을 자아낸다. 어둠속에 지나온 능선을 눈에 담지 못해 안타깝다. 그 너머로는 두륜산의 위용이 덮칠 기세로 다가온다. 다음엔 두륜산을 꼭 오르리라 점찍고 주작산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간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장엄한 일출은 아니라도 멋진 일출도 보고 무리지어 피어있는 진달래 군락에 무박의 피곤함이 싹 가신다. 산 아래 해남, 강진 벌판에서는 황토벌에 푸른 마늘밭과 남해바다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봄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용봉의 날개를 타고 있는 산님들을 저 바다로 날려 보낼 기세다. 아무래도 신성한 날개를 타고 있으니 호되게 날갯짓하는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사라도 지낼 걸 그랬나? 설악산 공룡릉이 부럽지 않다더니 거친 암봉을 수없이 반복하여 오르락내리락 한다. 주작산을 눈앞에 두고 시간관계상 수양리재로 내려서려니 마음이 무척 찜찜하다. 게다가 10시간 코스를 8시간으로 당겨 쉴 새 없이 전진하니 다리가 고장이 나지 않으려나 걱정도 된다.

 

  수양리재에 내려섰다가 다시 덕룡산을 향하여 산줄기를 탄다. 이제까지 거칠게 오르내렸던 주작산 줄기를 벗어나 덕룡을 향하는 초입 능선은 완만한데 아직 빛바랜 초원이라 황량하기만 하다. 앞쪽으로는 주작산 암릉 줄기가 멋진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고 그 너머로는 두륜산이 지붕처럼 감싸고 있다.

 

  덕룡에 다가갈수록 또 거친 암봉이 손짓하는데 한두 봉우리가 아닌 것이 아픈 다리에 잔뜩 겁을 준다. 500미터도 안되는 봉우리들이 이렇게 거칠줄이야! 그래도 사방에 펼쳐지는 조망과 하얀 암봉에 진달래와 앙증맞은 야생화들이 장식을 해주니 힘든 산행에 위로가 된다. 암봉을 오르내리는 스릴 만점의 덕룡산 서봉, 동봉을 거쳐 소석문에 도착하니 7시간 30분이 걸렸다. 세찬 봄바람에 호되게 얻어맞은 주작-덕룡산행이었지만 또 다시 보고 싶고 밟고 싶은, 힘찬 비상을 꿈꾸는 멋진 용봉 날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발걸음이 무척 상쾌하고 가뿐하다.

                (칠흙같은 어둠속에 유일한 길동무가 된 약간 이지러진 달님)

                       (지나온 능선 뒤로 두륜산의 자태가 위용을 드러낸다)

                                                  (여명에 비친 강진벌판)

                     (힘겹게 오르는 로프구간이 참 많았다)

                                    (덕룡을 오르면서 본 주작산 줄기들)

                                   (덕룡산을 향하여 가는 초원능선)

                                                      (덕룡산을 향하여)

                                      (난공불락 요새처럼 거칠다)

                                                 (서봉을 향하여 )

                                       (드디어 서봉에 도착한다)

                              (지나온 덕룡줄기 너머로 두륜산이 보인다)

                                 (오르락 내리락 드디어 동봉에 서다)

                              (거친 암봉과 앙증맞은 진달래가 공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