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에 다시 또 가고 싶다/Photo 에세이  

선자령에 가고 싶다
(2006.2.2/구 대관령 휴게소-기상대입구- 새봉-선자령-근신봉-보현사 쪽/고양늘푸른산악회 따라/전화 017-450-9427 이장엽 회장)

잿빛 도시에서 바쁨을 살다가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까맣게 잊고 살던 바다, 그 중에서도 동해의 검푸른 바다다. 그 동해를 겨울에 가보자. 달려가서 바다를 숨쉬고, 바다를 마시며, 바다를 먹어보자.
그보다 그 바다를 향하는 구대관령 휴게소에 내려 북쪽 고개를 향해 보자. 거기서부터 겨울 산행지로 유명한 선자령으로 가자.
선자령은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다.  그러나 그 능선 길에는 산도 있고 들도 있는 재산재야(在山在野)의 고개가 바로 선자령이다.
선자령 능선 길에 들어서면 산을 그리워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나, 산에 가서도 산이 두려운 나이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과 바람과 추위와 그리고 초원을 가득 덮은 민둥산의 설원을 열어줄 것이다. 어린아이들처럼 마포대에 엉둥이를 얹고 미끄러 내려오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고개로 치면 한국에서 제일 높다는 고한에서 태백시를 이어주는 133m의 만항재가 있고, 바로 이웃에는 설악산의 관문인 935m의 한계령도 있지만, 그건 차로 넘는 고개다. 그러나 선자령은 구름처럼 걸어 넘는 낭만의 고개 길 위에 있다.
한국에서 가장 겨울이 먼저오고 그 겨울이 3월 늦게까지 머무는 곳이 선자령이다.
선자령은 마을과 마을을 넘어가는 재가 아니고, 백두대간을 탐하는 이가 북으로 향하는 대관령과 오대산  노인봉 능선 상의 길 위에 있는 산이다.
대관령 구 휴게소에서 6km 내의 거리에 있는 곳이 선자령이지만 865m 대관령휴게소와 1,157m의 선자령과는 292m의 표고 차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그 길은 완만한 긴 능선 오름길이기 때문에 등산보다 트레킹이라고도 하는 산이 선자령이다. 그래서 민둥민둥한 산이라 해서1,100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도 '산'이나 '봉'이란 이름 대신에 '령(嶺)'으로 만족해야 하는 산이 '선자령'이다. 선자령에는 이름도 많다.  '대관산', '보현산', '만월산' 등등.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유명하다는 말도 된다.


*. 동화의 나라 속으로 떠나는 여행

  등산 회에 예약을 할 때 금년에 강원도 지방에 유난히 적게 내린 눈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제 낮 TV에서 뉴스를 시청하던 아내가 급히 나를 부른다. '저렇게 눈 내리는데 어떻게 가려고 하느냐?'는 거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有朋이自遠方來(유붕이자원방래)하니 不亦說乎(불역열호)아, 그걸 보러 가는 건데 기쁜 일이 아닌가."
차가 강원도에 들어서니 차 안 곳곳에서 탄성이 터진다. 어제 내린 눈이 길가의 논밭, 길과 집들을 온통 흰눈으로 덮어 버린 것이다.
"어마, 크리스마스 엽서 속의 그림 같네!"
"그래, 그 엽서의 동화 속을 차가 달리는 것 같애!"
"시(詩) 속의 세상 같이 아름다워!" 
  어제 미시령의 통행이 통제 될 정도로 눈 내리던 날이 오늘은 영하 16도라던데, 왜 날씨까지 이렇게 화창한가. 하늘은 눈 때문에 너무나 파랗고, 눈은 그 파란 하늘 때문에 더욱 희다. 
 
*. 대관령 관문
  풍수가들이 '자물쇠 형국'이라고 말하는 대관령은 영동의 진산(鎭山)으로 예로부터 영동, 영서를 구분하는 방어적인 관문이었다.  고려 시인 김극기는 이 고개를 험한 요새의 큰 관문이란 뜻으로 '대관(大關)'이라 불렀다.
왕 건을 도우려 출병한 강릉의 김순식 장군이 대관령에 이르러 승전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고사로 보면 대관령은 이 지방의  산신과 성황신과 같은 수호신이  머물러 거처하는 곳으로 믿어왔다는 것을 입증하여 주고 있다. 그뿐인가 대관령은 시인 묵객이 넘나들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주고받던 낭만적인 곳이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정월 초하루 새해가 떠오를 때에 맞추어 전국 각지에서 대관령 선자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 드는 명소가 되었다.

*. 풍력발전소
 
  강릉에서 아흔아홉 고갯길이 끝나는 길의 도로를 건너면 대관령기상대 입구가 되고, 허브 높이 46m의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3.5km의 풍속에서 돌기 시작한다는 직경 48m나 되는 거대한 세 개의 날개 달린 이 풍력발전기 한 대가 연간 2,000m wh의 전기를 생산한다는 영구자석 동기발전기다.
그 발전기는 몇 기나 될까?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도 13 개나 되었다. 그 풍력발전기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이 고장이 전국에서 가장 바람이 많고 따라서 추운 고장이란 말도 된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통신중계소가 있고 이를 지나 대관령에서 1.4km 지점에 갈림길의 이정표는 '국사성황당'이 1.3km라고 말하고 있다.

*. 대관령국사성황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대관령국사성황사는 대관령 산신을 모시는 곳으로 5평 정도의 작은 당우를 말한다. 활과 화살을 메고 말을 탄 장군의 말고삐를 잡고 있는 시중의 좌우에 호랑이가 호위를 하고 있는 모습의 국사서낭신을 모신 곳이다. 이 신은 강원도 강릉시와 명주군에서 대관령 산신과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시는 대관령국사서낭신이다. 그 대관령국사성황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신라 시절 강릉의 한 어머니가 샘물에 뜬 해를 마시고 범일(梵日)을 잉태하였다.   범일은 자라서 고승이 되어 불법을 전파시키고,   이 고장을 처들어오는 적을 술법으로 격퇴시키매 사람들이 그 후부터 이 고장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 백두대간 등산로 '선자령 가는 길'
  백두대간이란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400km 구간을 말한다. 여기는 선자령(1.157m)과 능경봉(1,123m) 그 구간으로 오대산 국립공원의 일부인 선자령 가는 길이다. 북쪽으로 더 가면 노인봉이 있고, 남쪽으로 뒤돌아 가면 제왕산과 능경봉과 만나는 등산로다.
이곳을 트레킹 하다 보면 등산로 왼쪽이 한국의 대표적인 산림지역이라는 평창의 'Happy700'이고, 오른 쪽으로는 강릉 시내를 넘어서 청정의 바다 동해가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한겨울이라 은백의 흰눈의 나라요 흰눈의 세상이 되었다.





*.'새봉'을 지나서

  그 눈 덮인 광활한 초원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겹겹의 산에 어울려 한 바탕 꿈꾸는 듯한 아름다운 능선 오른쪽 경치에 한눈을 팔다가 보니 '뉴밀레니엄 기념 '"천년수" 주목식재' 석비가 있고 이정표가 있는데 선자령 가는 화살표가 둘이다. 어느쪽으로 가야 할까 하다가 앞서 가는 이들을 뒤 따라 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더 멀긴 하였지만 그것이 '새봉'을 가는 길이었구나 생각하니 후회가 앞선다.
  드디어 바라만 보던 광활한 눈 덮인 초원에 서 있다. 그 광활한 초원이 온통 눈으로 덮인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마음까지시원하게 열어주는 관경에 온 세상을 품에 안은 듯한 호연지기를 느낀다.
그 눈 덮인 초원 한가운데서 우리들 일행이 오늘의 아름다움을 즐겁게 기념하고 있다. 저 끝에 산 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저기가 선자령의 정상인가 보다.
아름다움을 멀리 보면 풍경이 되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도 그 아름다움 중에 하나인 착각을 일게 한다. 나무에 덕지덕지 흰눈이 얼어붙은 나무에 가까이 서니 더욱 그러하다.

*. 선자령에서

  민둥산이라는 선자령도 이름값을 하는가. 그 정상까지는 눈 덮인 팍팍하고 지루한 길을 한동안이나 올라야 그 얼굴을 드러내어 주었다.
옛날 정상의 사진으로 보았더니 '仙者嶺'이라고 쓴 나무목이 던데,  지금의 작달막한 기념석에는 한글 '선자령이다. '仙者嶺'이 맞는가. '仙子嶺'이 맞는가. 요즈음 등산 서에는 仙子嶺이라 나오던데.
선착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야단이다. 우리들의 일행은 직진하여 1,135m의 근신봉을 향하고 있었다.

 

*. '강릉 대공산성'에서
  근신봉에서 하산길에 좌측에 비석이 선 고개가 있다.
여기가 '강릉대공산성'(강원도 기념물 제28호)으로 산성(山城)이 있는 곳이지만 눈이 쌓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이 군사를 훈련 시키기 위해 축조했다고도 하고, 발해 왕이 쌓았다고도 하는 성이다. 길이 약 4km, 높이는 2.4 m 내외의 산성이란다. 치성(雉城, 성가퀴)의 흔적도 보이고 성내에 건물터, 우물터, 토기 조각 등이 발견 되었다는데 눈처럼 역사에 깊이 묻히고만 신비의 산성이 되고 말았다.
우리들의 일행은 거기서부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향하여 하산하는 거다.
올라올 때는 그렇게 부드럽던 능선이 근신봉에서 시작된 하산 길은 몹시도 가팔랐다. 엉금엉금이 아니면 그냥 궁둥이 썰매를 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선자령까지 올라올 때에는 필수품이라던 아이젠과 스패츠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더니 하산 길을 위해서였구나!
푹신한 눈길이라 넘어져도 크게 다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등산사고가 가장 많은 것이 겨울 등산이라서 하산 길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선자령에 오고 싶었다. 겨울 산다운 겨울 산을 보고 싶어서다. 그래서 늘 가장 후미에서 늑장부리던 내 체력도 신이 나서였나, 그래서 오늘은 일행의 중간쯤에서 등산을 마칠 수 있었나 보다.
산에 와서, 특히 먼 산에 온 경우에 힘든 등산을 정상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 그 많은 산 중에 못가본 명산도 많은데 이 나이에 언제 다시 또 오랴.' 해서였는데 선자령은 다시 또 오고 싶은 산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