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세월의 흐름은 이어지고.. [보련산 / 충주 앙성]


 


 


 

2010. 12. 18 (토)


 

   산사모  송년산행  20명


 


 


 

하남고개 ~ 676봉 ~ 698봉 ~ 보련산 정상 ~ 동암계곡 ~ 돈산온천(P)

 

 

 


 


 

            겨울로 찾아든 이른 시각, 절정에 다다른 시기의 단계다. 겨울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으레

         찾아드는 건 필수, 첫 12월의 산행 겸 송년산행 보련산이다. 희미한 창공속에 먹구름과

겨울안개가 뒤엉켜있는 천공화의 묘한 형상이 스산한 기운을 몰고 오는 듯 하다.

 

 

 

 


 

   설원 속 찬 기운이 스르르 가슴속을 파고든다. 눈 위의 완만한 오솔길을 걷는다. 숲속의

기운이 완연한 겨울을 맞으면서 생기에 찬듯하다. 긴 숲으로 둘러싸인 상봉의 고요한

      모습엔 세월의 흐름이 앞서갔음을 직시한다. 빠르다는 개념에 속수무책으로 일관하는 듯

자연의 변화에 신통치 않은 모양이었다. 시기를 관망하듯이. 

 

 

 

 

 
 
 
 
 
 
 
 

 

        솔숲의 향기가 소소하게 피어오른다. 얼마 후 깊숙이 펼쳐있는 미연한 숲에서 상봉으로

       연결된 능선으로 가는 길은 쇠락하고 저물어가는 것들을 보여준다. 풍성한 나뭇잎으로

  쌓였던 산로가 말없이 나신의 숲속과 공유하고 있다. 빈 소리만 요란한 숲의 허물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채색된 그늘이지만 거쳐 간 가을색이 선연하게 느껴지는 황토 빛

낙엽이 연연한 정한을 생각나게 한다. 허공에다 휘파람소리를 내지른다.


 

 

 

 
 
 
 
 
 
 
 
 
 
 
 
 
 
 
 
 


  설산 속을 감싸 안은 안개무리가 적요하게 숲속을 물들인다. 겨울의 심난함이다.

계곡사면의 위쪽까지 넘나들면서 상봉의 너머까지 무게를 넓혀간다. 짙게 타는

        구름이 산정을 굽어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멈춰서게 한다. 바람을 멈추게 하는 시간의

         정지됨이다. 가을을 구르며 겨울이 오기 전 찰나의 흐름을 생성시킨 것이다. 겨울속의

주 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국망봉
 
 

 

산 아래에서 굽어보는 겨울풍경이 애잔하다. 황량한 겨울들판에 솟아나는 안개무리,

    그 속을 휘짚는 바람결 찬 공기의 흐름이 삭막함을 느끼게 한다. 천공 속 구름은 박차게

 흐르는 겨울속 냉기류의 물결을 타고 돛단배 흘러가듯이 자적하게 흐른다. 그 겨울의

기류에 무게감이 중첩된다.


 

 


 
 
 
 
 
전망바위에서
 
 
 
 
 
 
 


운무 속에 핀 설원의 향기가 산 능선의 너울을 몰고 온다. 완만한 연봉의 곡선들이

    겨울 선을 그리며 가을이 서려있는 계곡 쪽으로 흐른다. 그 속에서 핀 겨울의 색 꽃을

     아롱지게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심원한 생각이 든다. 마음이 사뭇 간결해진다.

 

 

 


 
 
 
 
 
 
 
 
 
 
 
 
 
 
 
 
 
 
 
 
 
 
 
 
 
 
 
 

 
 
            온천의 고장답게 산정의 온기가 겨울을 잊게 한다. 널따란 상봉에서의 바라봄은 신비한

세기가 도래되어 어느새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시원하게 펼쳐져있는 연봉들의

    아스라함과 겨울안개 속에 피어오르는 운기의 신묘함, 진달래능선의 짙은 雪景의

             산자락 등, 12월의 곧추선 여기의 산상은 공존의 상념을 넘어 미망을 통렬히 깨트리듯이

                장쾌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해서 시선을 붙드는 이유인 것이다. 겨울만이 풍기는 그것들의

짙은 색감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敞然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자주 오신다는 산객에게 보련산의 온후함을 물었다. 골(谷)이 깊고 능선의

연결이 부드럽다고 운을 떼자,


 

       「 오지중의 상 오지였어요, 저 국망봉과 맞닿은 이 능선은 동천길이라 불렸지요. 무슨

          난이 있어도 여기로 피신하면 안전했지요, 아니 꿈쩍도 하지 않았지요. 내륙의 두리허

피난지라 우복동천 같은 천혜의 피난처였지요. 」


  「 어쩐지 산세가 부드럽습니다. 마을을 안고 사방으로 펼쳐있는 산세의 포근함이

단번에 느껴집니다. 앞 국망봉은 조선말기에 국운이 다하여 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께서 그 난을 피해서 은신처로 삼은 곳이었지요. 상봉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서 왕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로서의 심중을 펼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북망봉이라 부릅니다. 」 


 

            「..... 젊은 양반이 많이 아는구먼. 」

 

「 과찬이십니다, 어르신. 」


 

 

         장대하며 은은하게 드리운 산맥이 솟아나는 깊은 심중을 알린다. 선인들의 발자취가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다. 특히 골 따라 깊게 패여 있는 사면의 형상이 눈 안에

          그을림이다. 만겹의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이다. 겨울하늘아래 잔잔히 솟은 크고 작은

연봉들이 서서히 몸을 뒤로한다.

 


 

 

 
 
 
 
 
 
 
 
 
 
 
 
 
 
 
 
 
 
 
 
 
 
 
 
 
 
 
 
 


           앙성시내를 바라보며 동암계곡으로 향한다. 계곡 쪽으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쇠잔하다.

         움츠려들은 무림들의 인사에 한 세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아챈다. 산길이 수다스럽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의 소리가 허공속을 가른다. 소로 길을 걷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중을 뒤로하며 숲속에 다다르자 피어나는 겨울의 잔재감에 진한향기를 품는다.

           어느덧  바람소리가 잔잔하다. 지나온 상봉을 쳐다보고 산정의 애잔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이별을 고한다. 

 

 

자적하게 산책하시는 노인 한분에게 이 산정이 깊어 애틋하다고 말하자, 그분은,


 

  「 그 옛날 팔도에서 사람들이 여기로 많이 모여들었지요. 특히 북쪽의 사람들이 많았지.

       외지인들이 오손 도손 모여서 소박하게 사는 마을이었지. 그리고 장에 가는 날, 충주로

넘어 갈 때는 앙성령 옛길을 돌아 동량면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하루 종일 걸렸지.

        새벽에 쌀 반 가마씩 지구 떠나면, 오는 길에 생필품을 사 푸대로 짊어지고 오곤 했는데

밤 늦게서야 집에 도착했지. 하루 온종일 걸렸지. 그러한 곳이 였지요. 」

 

   「 오지라 그렇겠지요. 마을을 안위하고 수호신처럼 서있는 보련산정이 자랑스럽습니다.

예전엔 그러한 게 많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전과는 다르게 그러한 일들이 아련한

추억으로만 생각하게 되네요. 」

 

「 그러게요. 」

 

「 눈 길 조심하십시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요. 」

 

 

 

 

 

 
 
 
 

 

    가끔 돌아보며 겨울의 아름다운 산정속에 의연히 솟은 상봉의 형상이 지나온 세월에

  말없는 듯하다. 세태의 물결속에 묻히고 마는 단상의 그림자에 쉽게 가려지는 것은

아닌지. 깊어가는 겨울의 추상속으로 묻혀지는 것은 아닌지. 잠시 침묵에 잠긴다.

고요함이 깊어진다.


 

                     [ 에필로그 ]


 

    이제 십 여일 남았다. 세기가 지고 또 한 세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 길이 끝이

    아니다. 항상 마음속에 다시 길이 시작된다. 희망으로 시작해서 열망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가 가는 새로운 길과 지나왔던 옛길이 다시 열릴 것이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름 하여 숙명의 길이다. 그 누구에게나 그 길이 열릴 것이다.

 


 

                        2010. 12. 20